< 깔짝 스트리머 >
반짝이는 아이템들이 즐비하게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막상 특별한 장비가 있지는 않다. 어렵다고는 해도 튜토리얼 보스를 사냥한 수준이지 않던가. 그저 남들보다 소모품을 조금 더 가질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보다 게임을 더욱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시간을 들인 만큼의 보상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용소의 튜토리얼 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쉽게 통과하는 대신 남들이 볼 때는 뻘짓으로만 여겨지는 무의미한 일을 했다.
그 결과, 이런 이벤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성취감은 이런 데서 오거든. 꿈속의 원작에서는 이런 뽕맛이 덜 했었다고.’
아이템들을 줍줍하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 보면 일반적인 플레이로서는 만나지 못하는 녀석을 보게 된다.
- 으힉!? 뭐야!?
- 아 씨! 또 사람 깜짝 놀라게 하네!
- 쟤가 왜 여기있어?
유폐된 거인.
드래곤 소울 후반부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강력한 보스 몬스터다. 수용소 최하층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와 게임 직후 만났다. 그러나 이벤트는 딱 여기까지일 뿐이다.
「이 땅에 올 수 없는 자가 들어왔구나.」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사라지거라.」
자신을 묶은 쇠사슬로 바닥을 쓸며 일어난 유폐된 거인은 단숨에 주먹을 내리쳤다. 이후 사방이 어두워지고 화면은 드래곤 소울의 상징적인 메시지로 채워졌다.
『You Died』
- 죽어? 왜 죽어?
- 이 빠진 짧은 검으로 몇 시간 사냥하는 줄 알았는데.
- 컨트롤 불가 상태였음. 저건 100퍼 뒤지는 씬이었던 거임.
- 그럴듯요. 여기서 안 죽었으면 밸런스가 안 맞거든요.
- 밸붕? 왜?
- 튜토리얼 때는 캐릭터의 체력이 원래보다 두 배입니다. 그러다 수용소 보스한테 죽고 다음에 능력치들이 봉인되었다, 는 식으로 튜토리얼 종료를 알려주거든요. 그런데 이 비제이는 안 죽고 보스를 잡아버렸으니 클리어 못한 유저들이랑 확 차이가 나 버리죠.
- 그래서 무조건 죽도록 만든 거구나.
정답이다. 드래곤 소울은 어렵게 만든 게임인 만큼 게이머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초반부에 적응하고 싸움법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고자 높은 체력 및 여타 능력치에도 가점을 주었다.
‘체력이 줄어든 상태에도 한 번은 더 버틸 수 있게 해줬지. 물론, 튜토리얼 때만.’
알게 모르게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한 후, 튜토리얼 보스를 사냥하고 나면 봉인 당하는 콘셉트로 원래 개발진이 생각한 난이도에 맞춰지는 형태였다.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태창이 바로 체력과 스테미나였다.
- 헐. 체력이 절반도 안 되네. 너무 많이 줄은 거 아닌가?
- 그럼 몬스터들도 같이 약해지나요?
- 아님. 원래랑 같음. 그냥 튜토리얼이라 두 배로 줬던 거.
- 미친. 진짜 개 악랄한 게임이네.
- 다들 잊고 계신 거 같은데, 지금 우리는 그 악랄한 게임을 무슨 무쌍하듯이 플레이하고 있는 BJ의 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 그러게.
- BJ가 제일 악랄하네.
글쎄다. 지금이야 내가 대단해 보이지 나중에는 팬티만 입고 자체적으로 몬스터의 숫자를 모드로 늘려서 플레이하는 등의 썩은 물들이 난립하게 된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는 정말 양반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유니크하니 나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며 잡몹들을 단 한 대도 맞지 않은 채 모조리 사냥하고 이동했다.
- 계승의 제단이네.
- 진심 빠르다. 잘 싸운다!
- 계승의 제단까지 8분 정도? 이 속도면 거의 스피드 런을 하는 속도 아닌가요?
- ㄴㄴ 비교적 빠르기는 한데 스피드 런 수준은 아님. 2분대로 와야 함.
- 안 잡고 그냥 뛰어왔으면 모르지만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빠졌는데, 스피드 런이면 튜토리얼 보스를 굳이 사냥할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스피드 런의 유저들과의 시간을 비교하면 몇 배나 오래 걸렸다.
‘내 콘셉트는 게이머들이 못 밝혀낸 히든 요소들을 보여주는 거거든.’
우리 게임의 고인물들이 드래곤 소울 2를 기념하며 더욱 다양하게 플레이해보기를 바란다. 이 방송은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의미도 있다.
- ?????
- 왜 제단으로 안 들어감?
- 컨트롤만 쩌는 길치인가?
- 누가 좀 알려줘! 저기 아니라고!
- 대답은커녕 말소리도 못 들어봤는데 뭘. ㅋㅋㅋ
- 냅둬요. 돌아오겠죠.
드래곤 소울은 맵이 화면 어딘가에 나와 있지도 않고 NPC들의 조언도 여타 게임에 비하면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도 하다 보면 어찌어찌 길을 찾고 어떻게든 최종 보스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맵 디자인 덕분이다.
표지판과 화살표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계승의 제단은 누가 봐도 눈에 딱 들어오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다. 복잡해 보이는 굴곡진 길 역시도 자연스레 시점이 몰리는 방향으로 선택하다 보면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 나오게 설계했다.
그래서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일단 저곳으로 가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직관하게 된다. 이런 배려 없이 무조건 길을 꼬아놓고 몬스터들을 어렵게만 만들면 속칭 ‘더럽다’는 레벨링의 게임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지.’
우리가 친절함 속에 숨겨둔 요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서 개발자들이 혀를 끌끌 차는 바로 그것들!
계승의 제단이 있는 무너진 신전의 입구 바로 옆에는 ‘여긴 지나가려다가는 무조건 낙사하겠는데?’라고 여겨질 아주 좁은 폭의 길이 존재한다. 어중간하게 시도하면 무조건 떨어지는데, 막상 벽에 바짝 붙은 채로 시도하면 의외로 떨어지지 않는다.
‘순진한 고객님들아. 우리 게임은 더욱 창의적으로 도전해야 재미있단 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의 아래로 떨어져 끔살 당하는 이곳. 가봐야 의미 없다고만 여겨지던 이곳에도 우리는 이벤트를 숨겨뒀다.
- 저리로 가면 떨어지··· 지 않네?
- 뭐야? 저쪽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였어?
- 개걸음이다!
- 게걸음이겠지.
- 그거나 이거나.
- 맞춤법 가지고 주최못하는 선비정신 발동! 일해라절해라 아주 그냥 마~
- 근데 저렇게 가면 뭐가 더 낳아요?
- 응?
- 다들 시험시험 싸워요. 우리 왜숙모가 싸우는 거 나쁘댔음.
- ···뭐야. 갑자기 왜 이래···
- 어디서 ㅂㅅ들이 유입된 겨?
절벽에 바짝 붙어서 조심스레 이동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엉뚱한 말싸움을 벌였다. 내 예상은 이런 건 처음 본다는 반응과 원래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대화 정도다. 그런데 대화의 방향이 막 나가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사람들이 이렇게 늘어났지?’
초기 10명도 안 되던 시청자를 보유했던 채널에 튜토리얼 보스를 잡는 시점부터 꾸준히 시청자들이 유입되었고 현재는 87명이라는 숫자가 되었다. 이전과 비교해 10배 이상의 시청자가 내 방송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채팅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했네.’
게임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선을 넘어서 물 흐리는 사람들은 내보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아이디를 눈여겨보며 절벽을 건넌다.
도중에 버젓이 놓인 보상은 딱 하나였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소울」
게임 속에서 화폐로 쓰는 자잘한 보상.
그것도 몇 푼 안 되는 작은 크기였다.
- 아~ 이렇게 오면, 100소울이 있구나.
- 특이하긴 한데, 어째 좀 허탈하네요.
- ‘굳이 허접한 소울 하나를 먹겠다고 여길 왜 와?’라고 개발진이 말한 것 같음. ㅋㅋ
- 목숨을 건 푼돈!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성격들 급하기는.”
드래곤 소울은 캐릭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버그가 아닌 새로운 공략으로 인정하는 게임이다. 즉, 이렇게 지나갈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곳이 길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길의 안쪽에는 사실 지금 난이도에서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가 존재하는 필드가 있다. 그리고 이 길로 걷다 보면 창문을 통해 주인공을 따라오는 몬스터들이 등장하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였던가?
- 어?
- 어어?
- 뭐야 저 해골들?
폭이 매우 좁고 그 옆은 천 길 낭떠러지다. 사람이고 몬스터고 조금만 실수하면 바로 낙사를 하는 곳. 그런 곳을 향해 나를 인식하고서는 공격하려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니 그 결과는 정해져 있다.
용맹하게 달려든 해골 전사들이 우수수 나락으로 떨어졌다.
「소울 + 500」
「소울 + 500」
「소울 + 500」
「소울 + 500」
「소울 + 500」
···
「소울 + 500」
「소울 + 500」
「소울 + 500」
저 아래에서부터 하얀 안개 뭉치 같은 소울이 거꾸로 솟아올라 내 캐릭터에게 흡수되었다. 잠시 몸이 하얗게 빛난다고 보일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 우와!
- ㄷㄷㄷ 대박!!
- 이건 진짜 미쳤네.
- 버그 아냐?
극 초반부 시점에서 일반 몬스터 한 마리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소울은 고작해야 60이다. 그런데 길을 지나온 것만으로 나는 12,000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울을 획득했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수치냐면, 지금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모든 모은 소울을 합친 게 2,600이라는 점을 회상하면 알 수 있다. 잡몹들을 모조리 잡고 튜토리얼 보스마저 처치해서 획득한 소울이었다.
- 미쳤네. 개고수 인정.
- 이걸 버그라고 해야 하나?
- ㄴㄴ 중간에 100소울 떨궈져 있었잖음. 개발자가 의도한 기믹이 분명함.
- 존나 불친절한 게임인데 존나게 자유도가 높네?
-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은 국뽕 걸작 겜이시다!!!!!
- 우와! 그럼 그냥 여기서 반복 노가다만 하면 소울이 쑥쑥 차오르겠네요!
- 그러게. 완전 사긴데?
- 시작부터 만렙 찍고 가자!!!
해봐라.
“그걸 되게 만들었겠냐?”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결과를 예상하고 만든 시스템이자 게임 콘텐츠의 일부다. 당연히 테스트했고 초반에는 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렇다고 이 소울 때문에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정도는 될 수 없었다.
‘왜냐면 이건 지금 한 번밖에 못 하거든.’
드래곤 소울의 모든 몬스터는 리젠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닥불을 피웠을 때만 리젠이 된다. 그리고 지금 모닥불을 피우려면 무조건 무너진 신전 내부에 들어가야 하는데 한 번 신전에 들어가면 다시는 이곳으로 나올 수가 없다.
다들 이제 쉽게 드래곤 소울을 플레이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텐데 직접 해보면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대신 ‘이런 게 가능했어?’라는 계기를 주었으니 앞으로 별의별 참신한 시도들이 엄청나게 나오리라 기대한다.
“개발자들의 예상을 뛰어넘기를 바란다고. 숨겨둔 것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건 너무 실망스럽잖아. 분발들 하세요.”
오늘 내가 대방출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노하우들은 100퍼센트가 아니다. 열정은 있으나 컨트롤이 부족하여 좌절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엄선했다.
드래곤 소울에는 게임의 난도를 크게 낮추는 아이템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어려운 게임은 실력으로 깨부수는 것!’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꽁꽁 감춰진 상태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7년이다. 긴긴 시간이니 이제는 공개되어도 좋다고 본다.
막대한 소울을 획득하고 바로 계승의 제단으로 들어가 모닥불에 불을 붙였다. 초반 2,600 소울에 지금 획득한 12,000소울까지 있으니 소모해야 하는 건 당연한 법이다.
- 쩐다······.
- 계승의 제단에 오자마자 14,600소울.
- 핵간지네.
- 스탯을 몇 개나 올릴 수 있는 거야?
드래곤 소울에서 소울은 게임 내에서의 화폐이자 경험치다. 또한, 죽으면 죽은 그 장소에 모두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회수하기 전에 한 번 더 죽는다면 영원히 소멸한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알 수 없는 이 게임의 특성상 모닥불을 만나면 무조건 다 소모해야 한다.
- 스탯 하나 올리는데 500인데 아까 한 마리가 준 소울이 500···
- 부럽뜨아···
- 나도 저거 할 꺼야! 존나 부자로 게임 할 거야!
- 네~ 튜토리얼에서 뒤져버릴 다음 손님~
「Jo밥찌끄레기님이 강제퇴장 처리되었습니다.」
- 억!
- 컥! 정의의 철퇴?!
- 뭐야! 비제이 살아있었누!?
시청하는 사람이 감사하기는 하다. 그러나 비속어, 욕설, 남을 비하하는 말을 일삼는 이들은 사절이다.
- 말 좀 해보셈!
- 목소리! 목소리가 듣고 싶다!
- 어떻게 안 거임?
- 드소 몇 시간 플레이했어요?
정답은 ‘만들었습니다.’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덜 유명했어도 진짜 제대로 방송했을 텐데.”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다.
워낙 기초 스탯이 낮은 태생을 선택해서 초반 스탯을 올리는 값이 저렴했다. 하지만 스탯이 높아질수록 비용 역시 상승하기 마련이고 순식간에 스탯 하나당 2,500이 필요할 정도에 도달하며 4레벨의 주인공은 19레벨이 되었다.
‘사실 내 컨트롤이면 레벨업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기는 하지.’
시청자들이 ‘우와!’를 남발하고는 있지만, 경이적으로 향상된 피지컬 덕분에 지금의 드래곤 소울은 내게 별로 어렵지 않은 게임이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맞춰서 출시하면 장사할 생각 말아야 한다.
- 강직하네. 한 마디도 말을 안 해.
- 고집있다.
- 그러면 뜨기 어려워요! 소통도 하고 그래야죠!
- 응~ 됐어~ 안 들어~
- 뭐야?
- 이 사람 또 이상한 곳으로 가네?
< 깔짝 스트리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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