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깔짝 스트리머 >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아이템이 등장해버렸구나.’
지금까지 다른 무기들은 근거리 명중으로 표기되어있던 부분이 기르가스의 검은 공격 성공으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표기상의 문제는 소소한 문제일 따름이다.
내가 알기로 원래 이맘때 기르가스의 검은 이렇게 강력하지 않았다.
‘원래 타격치가 소형 38에 대형 38. 그리고 추가 타격치가 18인가 했었지. 그래서 집행검 보다는 강력하지만 어마어마할 정도의 차이는 나지 않았었고.’
현존 최강 무기인 집행검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명황의 집행검
28/33
양손 무기
근력 +2
추가 대미지 +23
근거리 명중 +5
클래스 : [나이트], [드래곤 나이트]
재질 : 블랙 미스릴
무게 : 100」
이러니 기르가스의 검이 문자 그대로 오버 밸런스인 것이다. 접속한 김에 벌인 개인 이벤트 겸 사냥이었는데 내가 플레지에 큰 문제를 일으킨 게 틀림없었다.
‘우리 회사 게임 아니라고 너무 막 나갔으려나. 재미있었으니까 나로서는 성공이었다만.’
플레이어로서의 기쁨은 잠시일 뿐, 운영하는 측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나라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 생각하자 답이 금방 나왔고 나는 이전과 대응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조건 롤백이거나 기르가스의 검을 손질하여 하향시킬 것이다. 즉, 우리의 성과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르가스 레이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 검의 스펙을 공개해야 한다. 소수의 비밀은 소수만 입막음하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지는 퀘스트나 스토리 따위가 중요한 게임이 아니야. 경제관리 능력 때문에 장수했지.’
1998년도에 나온 플레지가 2009년까지도 게임 순위에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환금성에 있다. 그리고 이 환금성은 엠씨 소프트의 기가 막힌 경제관리 능력 덕분이었는데 기르가스의 검이라는 아이템 하나가 그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이 아이템은 고작 칼 한 자루로 볼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과감한 대처가 신속하게 이루어질게 불을 보듯 뻔했다.
‘게임이 망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내 알 바 아니지. 어차피 무너질 게임은 무너지고 잘 해낼 게임은 잘 해내게 되어 있는 법! 나는 플레지를 믿고 엠씨를 믿는다. 너희는 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어! 나는 너희들 자신보다도 더욱 너를 더 믿어주겠다!’
이런 헛소리로 격려해주며 곧장 아이템 정보를 띄워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 뭐야! 뭐야! 구경 좀 해보자!
- 기르가스의 검이라니이이!
- 실물 영접 좀 해보··· 우와. 이거 미쳤다.
- 타격치 43에 추가타격 33이라니!
- 황홀하다··· 아름다워······.
- 심지어 대형 몬스터가 53이네.
- 대박!
- 이건 미쳤어!
과거엔 대형 몬스터 타격치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11/6이었던 레이피어가 유행했던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형 몬스터가 많아져서가 아니다. 나이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카운터 배리어 때문이다.
이 스킬의 반격 데미지가 대형 몬스터 데미지에 비례하는 까닭에 대형 몬스터의 데미지가 중요해졌다. 그 수치가 무려 53이다.
- 카배 맞으면 그냥 아주 후덜덜하겠다.
- 카배 한 방에 다리 힘 풀릴 듯.
- 이놈들 이거 쓰라고 만든 무기 아니야.
- 애초에 잡지 말라고 만든 보스가 주는 무기였잖아요.
- 그냥 선심 쓰듯이 스펙을 밸붕까지 끌어올려서 만들어 놓은 게 틀림없어.
- 얘네들 골 때리겠다. 그걸 잡아버렸네? 심지어 템을 이미 얻었네?’
완벽하게 정당한 공략이었고 버그라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조금도 없었던 데다가 가장 중요한 것. 이들이 억지를 부릴 것을 대비해서 진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녹화까지 했다.
‘신규 클래스 때문에 나이트가 쓰레기라고? 예전에는 그랬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나이트가 최강이다.
참고로 단순하게 기르가스의 검으로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왕 플레지를 확 뒤집었고 운영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격이니 이 녀석을 강화하고 품위 있게 사라질 계획이니까.
160. 깔짝 스트리머
엠바고 같은 건 없다. 오히려 기르가스 정벌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아낌없이 자랑하도록 권유했고 기르가스의 검이 뽐내는 우월한 스펙은 그림 파일로 온갖 게시판에 공유되었다.
당연히 이 소식은 온라인을 타고 수많은 플저씨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 기르가스 그거 절대 안 죽던데. 그걸 잡았다고? 그게 진짜 가능한 거였어?
- 대체 누가 그걸 잡아?
- 한 동안 안 보였던 사람 있잖아.
- 구운몽?
- 그래. 이번에 갑자기 전섭 최초 지 브라퀴 사냥 이벤트로 다시 이름을 보이더니 기르가스로 대형사고 치네.
- 역시 드래곤 슬레이어인가?
- 근데 지금 기르가스가 잡힌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음?
- 그 칼! 미친 칼!
그렇다. 플레지인들에게 중요한 건 강력한 보스를 정벌했느냐가 아니다.
‘무엇이 나왔느냐’였다.
- 기르검 나옴.
- 대박. 진짜 나옴? 그거 스펙 공개됨?
- 이거 눌러 보셈. 「기르가스의 검」
- 이미 켄헬 서버 사람들 연합 측에서 공개했음.
- 능력치가··· 아놔··· ㅅㅂ. 현타 온다.
- 내 칼은 구데기여··· 좌절감 존나 크네···
- 작은 몹 43에 큰몹 53?!?!?!?!?!?!!!!
- 스탯 추가에 추뎀 33 등등 ㅋㅋㅋㅋ 이제 진명검은 걍 쓰레기네.
- 에이. 그래도 기르검은 한 자루밖에 없는데 쓰레기는 아니지.
- ㅇㅈㅇㅈ 진명검 나왔다고 무양이 지금 쓰레기냐?
- 근데 후져 보이는 건 ㅇㅈ?
- ㅇㅇ ㅇㅈ
- 옛날엔 샤방샤방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꼬져 보임.
- ㅋㅋㅋㅋ 집행검 가진 쉐리 놀려줘야지~
성을 가진 길드이자 일인자라고 자부하던 이들.
각 서버에서 사냥터를 통제하며 군림한 유저들에게 조롱할 거리가 생겼다. 그들보다 자신이 한참 레벨과 장비에서 부족하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최고입네 하는 저들의 자부심을 건드리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집행검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웃음거리는 하나가 더 있었다.
- 근데 한 번 잡았으면 두 번도 가능하다는 거잖아. 그럼 기르검으로 사람들 길드 무장하려나?
- 불가능해.
- 왜? 들은 거 있음?
- 없어졌어 ㅋㅋㅋㅋ 옛날에 안사락스도 이런 적 있었는뎈ㅋㅋㅋㅋㅋ
- 오오오! 기르가스 빤스런-!
- 영자야-! 영자야-!
- 미아를 찾아요 ㅜㅜ 켄헬에서만 집 나간 기르가스 ㅜㅜ
- 우리 커염둥이가 없어졌어요 ㅠㅠ
보지 않아도 저들의 상황이 짐작될 정도의 임시방편이었다. 졸속 처리라고 혹자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 아이템을 얼마나 강화했는지 알게 된다면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들이 실로 난감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11 기르가스의 검
43 + 22/53 + 22
양손 무기
근력 +2
체질 +1
매력 +2
추가 대미지 +33
공격 성공 +7
클래스 : [나이트], [드래곤 나이트]
재질 : 블랙 미스릴
무게 : 100」
전설로 마무리 지으려는 거. 확고한 전설로 남기고 끝을 맺는 것도 좋지 않겠나?
나는 한탕 재미나게 즐긴 플레지를 종료하며 이 스샷을 진수에게 넘겼다.
- 으아아악! 야이! 미친 새끼야!
- 왜? 뭔데? 허어억! 이런 진짜 이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문제 생기면 알아서 써라. 나 없는 동안 구운몽 아껴서 잘 간직하고 있고.”
- 벌써부터 해보고 싶은 길드원들이 줄을 섰어! 대기열 존나 쩐다고!
- 엥? 그만하게? 벌써?
“보고도 모르느냐? 짐은 이룰 것을 다 이루었도다.”
- 오오! 재수가 옴팡지게 없사오나 인정할 수밖에 없소이다.
- 업데이트 신박한 거 이루어지면 신이 폐하를 부르겠나이다. 그때까지 꺼져버렷!
“닥쳐라, 이 새끼들아.”
여느때처럼 낄낄거리는 웃음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사실, 플레지에서 더 즐길만한 콘텐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벤트가 변신과 토너먼트인 게임이고 다크 엘프에게 나이트가 밀리는 작금의 상황상 ‘그딴 거 다 필요 없이 구운몽이 짱이다!’라는 사실을 PvP로 확인시켜주는 재미도 나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애들 놀이터에 고등학생이 가서 힘자랑하는 꼴에 불과하고 굳이 내가 컨트롤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소소한 업적에 불과했다. 길드원 아무나 구운몽 캐릭터를 사용만 한다면 1위는 맡아놓은 메달을 회수하는 일일 따름이니까.
‘게다가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양심이 콕콕 찔리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조금 더. 조금 더.’를 바라게 되고 변화를 추구한다. 만약 휴가 겸 즐기는 플레지를 이어서 한다면 지금 이상의 밸런스 붕괴를 일으킬 게 뻔하고 제아무리 운영자가 안간힘을 써도 이를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히 엠씨 소프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음 휴가 때 돌아와서 즐길 놀이터가 영원히 없어지는 불상사로 귀결된다. 그러니 플레지는 여기까지!
“이번에는 뭐 하고 놀지?”
맛있는 것을 먹고 관광명소에 가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사실, 제아무리 맛집이랍시고 TV 프로그램에 나와 봐야 내가 전혀 모르는 기상천외한 음식은 없는 수준이다. 미디어에서 연예인이 먹은 그 메뉴를 먹는다는 정신적인 충족감은 있을 테지만, AAA급 호텔에서의 식사가 그것만 못할 리 있으랴.
전망 좋은 경치 역시 값비싼 룸을 예약하면 알아서 해결된다. 물론, 고유한 다른 맛과 멋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나는 이를 취향의 문제라고도 본다. 금쪽같은 휴가를 맞이하며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어디에서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는지는 개개인에게 달린 것이다.
‘기왕이면 갖고는 있지만 쓸 일이 없었던 재능을 활용해보자. 꿈속의 내가 동경했던 것들을 목표로 두고.’
내게는 정말 여러 가지 재주가 있다. 영화나 만화 속 주인공은 온갖 시련을 겪어서 가진 능력을 몽땅 활용해야 생존할 수 있지만, 현실의 윤태식은 미래의 정보 하나만으로도 너끈하게 대성공을 이뤄버렸다.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사기적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쓸 일이 없어서 잊히고 곰팡내가 나기 직전인 능력을 손가락 꼽아가며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센스다. 반응속도와 감각이며 게임으로 따지면 피지컬이 된다.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우리 회사 소속이자 세계 최정상에 거론되는 프로게이머에게 뒤지지 않는 컨트롤 능력이 내게는 있다.
‘이 덕분에 게임 잘하는 회장님으로 잠깐 방송했었지.’
지금은 GGT에서 같은 포맷의 방송이 꾸준하게 인기리에 이어지는 중이다.
둘째는 내비게이션이다. 간절히 기도하면 우주가 들어주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방법을 찾다 보면 상황을 해결해주는 NPC에게 연결해주듯이 이끌림을 통해 묘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랜더 팜 문제로 릭을 만났을 때 발동했었지만, 그 이후로는 영 쓸데가 없었지. 슈퍼컴퓨터라는 생소한 분야 이외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었거든.’
미래 정보를 가진 채로도 헛발질하며 사업상 위기를 겪을 만큼 나는 얼간이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별의별 능력을 가진 채로도 온갖 시련을 겪는 여타 만화 속 주인공들은 정말 멍청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아니라 사기 캐릭터겠지. 아포칼립스라도 오지 않는 한 나는 실패할 리가 없겠어.”
이 능력들을 활용하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게 의미 없어졌다.
그냥 나는 뭘 해도 잘한다. 그러니 그냥 꿈속 미래의 자신이자 과거의 나라고도 할 수 있던 윤태식이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에만 중점을 두기로 했다.
집을 팔아야 가질 수 있다는 플레지의 집행검!
그 이상인 기르가스의 검을 얻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그래. 이번에는 퇴근하고 맨날 방송만 보면서 부러워했던 크리에이터로서 놀아보자. 얼굴 드러내놓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충분히 경쟁력 있어. 개 쩌는 컨트롤이 있으니까.’
꿈속 내가 동경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현실의 내가 이뤄주겠다.
‘이번에는 남의 게임 말고 우리 게임에서 골라야지.’
< 깔짝 스트리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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