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는 너로 정했다 >
‘원 킬!’
힐을 받아 체력을 풀피로 채웠음에도 지옥검과 담덕 형님 둘 다 한 방에 사망했다.
- 역시, 이러네.
- 결국은 오늘도 눕는구나.
“즉사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왜 가만히 계시다 죽은 거예요?”
- 우리가 빠지면 뒷줄이 전멸할 거잖아.
파티의 체력을 확인했는데, 저건 틀린 이야기였다. 실제 공략 때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나, 구두룡검, 치명타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검도 있다. 그 둘이 귀환하고 남은 나이트가 다시 자리를 잡으면 될 일이니 저 공격을 그대로 맞아주는 건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이러니 잡지를 못 했지.’
스킬이 뒷 라인의 엘프나 매지션까지 원 킬을 내는 기술이라면 완전히 난감했겠지만, 딱 봐도 격수들을 날려버리기 위한 스킬이었다. 즉, 맞는 게 아니라 패턴이 나오면 쿨하게 귀환하고 잽싸게 합류해야 한다는 거다.
“다음부터는 기르가스가 지금 스킬을 사용하면 죽지 마시고 그냥 귀환하세요. 그게 낫습니다.”
- 그럴게.
공략법 한 가지를 알아내면서 우리가 달성해야 할 과제도 생겼다. 원 킬 패턴을 피하고자 격수들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이들이 다시 합류할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격수들이 재입장할 공간을 비워두어야 레이드의 사이클이 원활히 굴러가겠어.’
기르가스 분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망자가 다시 발생했다. 새로운 공격패턴인 브레스가 아무런 경고 없이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었고 이번 희생자는 원거리에서 활로 공격하던 비전이었다.
“방금 건 사용 빈도가 어떻게 돼?”
- 몰라. 잊을 만 하면 쓰는 것 같더라.
‘근거리 즉사와 원거리 즉사가 있구나. 치명적이기는 이번 게 더하지만, 그래서인지 범위가 좁아.’
지금까지 기르가스가 스킬을 사용할 때에는 전부 멘트를 사용해서 그 전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는데, 브레스는 아무런 예고가 없다. 그리고 예고 없이 날아온 이 스킬에 맞은 엘프는 바로 즉사한다.
하지만 비전의 바로 옆에서 공격하던 분노의 활질은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았다.
‘저 공격이 오로지 정면만 노리는 건지. 아니면 원거리 중 하나를 노리는 건지. 이걸 알아야 해.’
체크 포인트!
그렇게 약 50분가량이 이어졌다. 기르가스의 패턴 파악을 위해 꾸준히 관찰하고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적잖은 팀원들의 죽음이 있었지만, 오래도록 해석해본 결과 견적이 나왔다.
“공략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이제 더 확인할 필요는 없으니 돌아가죠.”
- 오오!
- 확실한 거야?
“확실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100%까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플레지가 다른 게임처럼 보스 몬스터의 체력이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 물론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 네 판단이 그렇다면 잡을 수 있는 거겠지.
- 그럼 다음은 뭘 하죠?
“훈련입니다.”
기르가스를 공략할 방법을 찾았으니, 이제는 녀석을 상대한 대규모 인원을 구성하여 제대로 손발이 맞도록 대응 훈련을 할 차례였다.
이제 책임감을 진수가 짊어질 차례다.
“알지? 내가 메인 지휘를 하지만 네가 보조 지휘를 제대로 해줘야 성공할 수 있어.”
이전에 드래곤을 레이드를 할 때는 보이스 채팅이 없었고 그 때문에 보조 지휘가 필요했었다. 반면, 지금은 보이스 채팅으로 당시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구운몽 캐릭터조차 귀환하고 합류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바람에 그 공백을 채워줄 필요가 있었다.
기르가스는 아차 하면 전멸하기에 십상인 패턴을 마구 쏟아내는 보스 몬스터다.
당연히 이전에 보조 지휘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막중한 책임이 따를 것이다.
- 걱정 마. 보조 지휘는 또 내가 전문가 아니냐?
- 웃기고 앉았네. 왜 네가 전문이냐? 내가 전문이지.
서로가 자신이 전문가라며 진수와 성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저러는 걸 보면 역시 게임은 어른이라도 동심에 빠져들게 만든다.
‘안 좋게 표현하면 주책바가지고.’
대충 둘 다 전문가라고 칭찬해 준 뒤, 전략에 맞춘 훈련을 시작했다.
사람들 길드 연합의 대부분이 비밀리에 초보자의 섬으로 모였다.
집합 장소는 허수아비 교육장!
굳이 이곳에 모인 까닭은 단순히 자리만 잡고 설명만 듣는 정도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칼질, 활질을 하던 도중 지휘에 따라서 정교하게 멈추는 일도 이루어져야 기르가스를 레이드 할 수 있다.
“첫 번째 규칙을 설명하겠습니다. 기르가스 공략법 제1절대 규칙! 원거리 캐릭터는 절대 기르가스의 정면에 위치하지 말 것!”
확인한 결과, 예고 없이 쏘아지는 기르가스의 브레스는 적이 있건 없건 무조건 정면으로만 방출된다. 그러니 정면을 비워두면, 원거리의 즉사를 면할 수 있다. 또한, 중간중간 격수들이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합류 루트를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적인 선택도 한몫했다.
이를 위한 최적의 진형을 훈련했다. 사실, 거창하게 말하면 공략법, 전술법, 진형 재배치라고 하는데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오와 열을 맞춰서 자기 자리를 숙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훈련을 하느냐 마냐에 따라 정예와 오합지졸이 갈린다.
“다들 중간 자리 비우세요.”
내 말에 맞춰서 엘프들이 중앙을 두고 갈라져서 자리를 잡았다.
“좋습니다. 지금 자신의 위치를 기억하십시오. 나중에 기르가스를 잡을 때도 지금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되는 겁니다.”
반복하여 숙달될수록 우리 레이드 팀은 레이드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최적의 움직임을 한치의 낭비도 없이 선보이게 된다. 단, 여기서 격수들은 자리를 고정해주지 않았다.
‘격수들은 이리저리 이동하고 칼질을 해야 하니 매번 같은 자리에 고정하는 게 불가능하거든. 하지만 활잡이들은 다르지.’
다음은 조 편성이다.
“격수는 크게는 두 그룹, 작게는 4개조로 쪼갤 겁니다.”
어제 사전답사를 통해 기르가스를 상대해 보니까. 지옥검 정도면 생각보다 꽤 오래 버텨줄 수 있다. 게다가 약이 따라가지 못할 경우라면 매지션이 급히 힐을 지원함으로 버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니 지옥검이 중심인 한 개의 조와 내가 중심인 조 하나를 합쳐서 총 두 개의 큰 그룹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는 또다시 근접해서 싸울 근접격수 조와 창 격수조로 다시 한번 쪼개야 했다.
- 그렇게까지 나누는 이유가 있습니까?
“워낙 사람이 많아서 모든 격수가 한 번에 몹에 붙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근접 격수와 중거리 격수로 나누어서 1열은 검. 2열은 창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13억 골드를 퍼부어서 만들어낸 첨단 병기가 등장한다.
「+11 쿠쿨탄의 창
24 +11/20 +11
민첩 +2
근거리 명중 +5
MR +5
마법 발동 : 쿠쿨탄 체이서
클래스 : [로열], [나이트]
재질 : 구리
무게 : 100」
이번 지 브라퀴의 업데이트와 함께 새로이 등장한 이 아이템은 소형 몬스터 24에 대형 몬스터 20이라는 준수한 능력치를 보여주는 무기였다.
‘쿠쿨탄 체이서라는 마법도 발동되는 마법창이긴 한데, 기르가스를 상대로 그게 터질 리가 없지.’
일반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마법이 막강한 위력과 효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보스 몬스터는 다들 엄청난 마법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오히려 매지션의 활약이 덜해지고 미련을 갖고 마법을 고수하다가는 안 터지는 바람에 더욱 DPS가 높아지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그러니 뭐 마법은 없다 치는 게 현명하다.
“우선 메인 격수들부터 앞에 자리 잡겠습니다.”
집행검이 없는 우리 켄헬 서버의 최상위 나이트들은 어차피 죄다 무사의 양손검을 들고 있다. 나를 제외하면 누가 더 좋은 검을 들었느냐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어력을 가진 사람이 근접 격수조를 담당하는 편이다.
그렇게 인원을 나눈 후에 창기사 조원들에게는 +11 쿠쿨탄의 창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 헐? 11강 창이라고?
- 허거걱!
- 지난주에 나온 건데 그게 벌써 +11이라니!
- 뭐야? 너도 11이야? 나도 11인데?
- 설마 창기사 조 전원이 +11 창을 받은 거야?
내 강화 성공률이 없다면 13억 골드가 아니라 그 몇 배가 있어도 지금같은 결과물은 나올 수가 없다. 플레지를 아는 만큼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는 상황이다.
- 이게 가능해?
- 예전부터 그랬다더라.
- 괜히 짱짱하게 드래곤 독점하고 켄헬 최고로 잘 나간 게 아니었구나.
- 그래도 이건 버그 수준인데. 혹시 전 군주님이 MC 사장님 아냐?
- 쉿!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마.
- 경쟁사 회장님이라는 거 알 사람은 다 아는데 무슨 MC 사장님이야?
- 아! 맞다. 근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 운이 억수로 좋으신 거 아닐까?
- 회장님쯤 되려면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게임에서도 저렇게 운이 좋아야 하는 거구나······.
말이 여럿 나올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과감히 쿠쿨탄의 창을 준비했다.
‘이거 없으면 공략 불가라고 봐도 되니까.’
기르가스는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있어서 다른 보스들처럼 기사들이 빙 둘러서 공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창 기사 조가 필수 아닌 필수가 되었다.
‘원래는 방어구를 맞춰줄 계획이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맞을만 하더라.’
원샷원킬 스킬이 문제지 평타가 너무 아파서 버틸 수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딜에 몰방하자!’라고 결정했다.
“격수들도 자리를 잡아주시고요.”
검을 든 나이트와 창을 든 나이트들이 우루루 전방으로 몰려나간다.
“스톱! 스톱!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 네?
- 무슨 문제라도?
평타가 맞을만하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는 언급은 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지옥검, 검, 그리고 내 캐릭터가 메인 탱커를 할 때의 이야기다. 우리 세 멤버가 아니면 얼마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이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먼저 어그로를 끌어선 안 된다.
“지옥검과 검이 가장 먼저 붙고 그 둘이 붙은 후 나머지 검기사가 붙으십시오. 그다음에 창기사가 붙고 이후에 엘프들이 활을 쏘는 겁니다.”
- 네!
이미 클랜의 사람들은 공성전과 다수의 보스전 등을 통해 많은 경험이 축적된 고수들이다. 기본기만 이해하면 더 많은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은 지휘에 따른 대응 연습이다.
“근접 원킬 광역기! 근접 귀환!”
지휘와 동시에 격수들이 주문서를 사용했다. 단체로 금빛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대기 격수 돌입!”
- 돌입!
- 돌입!
먼저 돌입했던 격수들이 비운 자리를 다른 격수들이 빈틈없이 메꿨다.
나는 도중에 기르가스가 공략되지 못한 골 때리는 패턴을 외쳤다.
“전 범위 원킬! 전원 귀환!”
- 귀환!
- 귀환!
일명 카운터 매직으로 방어할 수도 없는 불기둥이 솟구쳐서 화면 범위 내의 모두를 죽여 버리는 정신 나간 스킬이 있다.
‘이거 때문에 나도 결국 한 번은 죽어야 했어.’
광역 미티어!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스킬이다. 하지만 이 대응법을 마련해야 공략할 수 있기에 몇 번이나 헤딩했고 결국은 해답을 찾아냈다. 특히 이때 진수나 성찬의 역할이 중요해 진다.
기르가스의 전 범위 원 킬 스킬은 카운터 매직을 사용해도 무조건 즉사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마법만큼은 파훼하지 못했다.
‘앱솔루트 실드.’
이동을 제외한 그 어떤 행동이라도 하게 되면 풀려버리는 마법.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그 어떤 피해에도 면역이 되는 매지션 최고의 방어 마법이기도 하다. 즉, 기르가스의 즉사 스킬이 발동할 때 매지션이 혼자 남아 앱솔루트 실드로 버티고 그동안 모조리 귀환했던 길드원들이 달려와서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다급하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합류하려고 들면 곤란하다.
‘기르가스의 이 빌어먹을 마법은 유지 시간도 장난이 아니거든.’
함께 귀환한 내가 아니라 앱솔루트 실드로 버텨주고 있는 내부에서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 불기둥 끝!
“돌입!”
진수가 마법이 끝나는 것을 가정하고 말한 뒤에야 우리가 돌입했다.
괜히 좌호법이 합류하지 못한 게 아니다. 레이드도 아닌 훈련 시간에만 이어서 네 시간이 더 꼬박 걸렸고 실제 기르가스 사냥은 그 곱절은 더 걸릴지 모른다. 이건 정상적인 직장을 가진 성실한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오직 플저씨로 불리는 게이머들만이 웃으면서 감수할 수고이자 노동이다.
“좋습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 으아! 드디어 끝!
- 아이고~ 이건 유격 저리 가라네.
- 그래도 훈련이었잖아. 이따가 실전에서만 삽질 안 하면 돼.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기르가스를 사냥할 시간이다.
“갑시다. 우리 사람들 길드의 무서움을 보여줍시다!”
- 전 섭 최초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라는 약빨도 끝나가는데 기르가스 공략으로 새로운 전설을 다시 세워봅시다!
- 가자!
- 할 수 있다!
- 가자!
- 해내고 만다!
- 가자!
다크엘프의 성소로 집합한 이들을 내가 선두에서 이끌었다.
< 목표는 너로 정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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