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는 너로 정했다 >
- 신기하다니까. 오래간만에 복귀한 녀석이 계속해서 쭉 해온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니. 이건 아무리 봐도 엠씨 사장한테 소스 물어오는 게 분명해. 회장님쯤 되면 그런 거 듣게 되는 거, 맞지?
“어떤 미친놈이 경쟁사 운영하는 놈한테 그런 걸 알려주겠어?”
- 역시 그런가?
녀석은 중얼중얼 의문을 표하며 내게 아이템을 가져다주었다.
「엘프족 단검
4/3
근거리 명중 +2
언데드 추가 대미지
클래스 : [로열], [나이트], [엘프], [매지션], [다크 엘프]
재질 : 미스릴
무게 : 10」
엘프족 단검은 기본 스펙으로 따지면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무기다. 지금 한창 잘 나가는 다른 두 단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오리하루콘 단검
7/7
추가 대미지 +2
언데드 추가 대미지
클래스 : [로열], [나이트], [엘프], [매지션], [다크 엘프]
재질 : 오리하루콘
무게 : 50」
「미스릴 단검
6/5
SP +1
MP회복 +3
언데드 추가 대미지
클래스 : [로열], [나이트], [엘프], [매지션], [다크 엘프]
재질 : 미스릴
무게 : 50」
현존하는 사냥검 중 최고의 스펙인 오리하루콘 단검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이 무기의 하위호환이라 할 수 있는 무기인 미스릴 단검과도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한 스펙이다. 그런데도 미스릴 단검이 아닌 엘프족 단검을 선택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 이 쓰레기가 무슨 업데이트로 떡상을 하게 된다는 건데?
“업데이트가 필요 없어. 지금도 충분히 제 성능을 다 끌어낼 수 있으면 지금 그대로도 최고 효율을 뽑아내는 사냥검이 될 거거든.”
-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스펙으로 무슨 효율을 뽑아낸다는 건데?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우선은 무기 강화 주문서나 있는대로 다 끌어와 봐.”
아무리 엘프족 단검이 떠오르는 무기가 된다고 해도 애초에 기본 가치가 워낙 낮다. 그냥은 백날 팔아봤자 돈이 안 되는 만큼, 돈이 되게끔 최소 +7 이상의 강화를 해야 한다.
- 여기에 강화질까지 하려고?
“당연한 거 아냐?”
- 나는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예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면, 아주 정중하고 공손하게 거절을 당하고, 한국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면 ‘싫어.’ ‘귀찮아.’ ‘그딴 걸 왜 해?’라는 거친 말과 함께 부탁을 들어준다고 말이다.
지금 친구의 모습이 딱 그랬다. 말로는 이번만큼은 정말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면서 대체 뭘 하려는 거냐고 툴툴거리는데, 결국 시키는 대로 가져오라는 건 따박따박 다 가져오고 있다.
그렇게 성찬이가 가져온 주문서를 사용해서 80자루의 축복받은 +7 엘프족 단검, 다섯 자루의 축복받은 +8 엘프족 단검, 한 자루의 축복받은 +9 엘프족 단검을 만들었다.
+7보다 +8과 +9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고강화 아이템이라서 희소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만들려면 충분히 더 만들 수 있었지만, 그래 봐야 팔릴 리가 없기 때문에 숫자를 줄인 것이다.
‘이 무기의 타깃은 중간층의 게이머라고.’
아무리 쓰레기라고 해도, +8 이상이 되면 기본적으로 강화 스펙만큼의 가격이 붙게 된다. 그럴 거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오리하루콘 단검을 사고 말지 엘프족 단검을 살 이유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7에서 강화를 멈추었다.
‘가끔 이런 아이템의 고강을 사는 극소수를 위해서 몇 자루만 고강을 한 거고.’
이제 다음 단계다.
돈을 만들 준비물들을 마련했으니 본격적으로 아이템을 판매할 차례!
여기서 마케팅 작업이 들어간다.
지금 당장 이것들을 시장에 내보내면, 절대로 그 누구도 이 단검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랴! 모두가 외면했던 메일 브레이커, 광전사의 도끼, 다마스커스 검의 가치를 상승시킨 사람이 아니던가!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나의 지시를 받은 오프로더였지.’
버림받은 아이템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어 그것을 떡상 시키는 리뷰에 있어서 최고의 인재라 할 수 있는 오프로더. 이번에도 그의 힘을 빌릴 차례다.
아이템 실험을 위해 오프로더에게 축복받은 +7 엘프족 단검과 +9 오리하루콘 단검을 넘겼다. +7 엘프족 단검의 시세는 존재하지 않지만, 대략 15만 정도로 잡을 수 있고 +9 오리하루콘 단검의 시세는 약 6,000만 골드다.
양쪽의 가격은 무려 400배.
아이템의 가치나 스펙 중 무엇으로 봐도 엘프족 단검은 오리하루콘 단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이것을 두고 실험한다는 건 플레지 유저들에게 유머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의 의도가 듬뿍 담겼으나 거짓만큼은 조금도 없는 리뷰가 게이머스 포럼에 올라왔다.
『오프로더의 실험실! 제287장! 엘프족 단검의 새로운 발견!』
이 사람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예전에 광전사의 도끼가 올라왔을 때가 ‘오프로더의 실험실! 제21장. 광전사의 도끼 리뉴얼!’이었으니 자신만의 특별한 리뷰를 290개 가까이 올렸다는 의미였다.
‘플레지 같은 게임에서 이 정도의 재능을 소비하다니.’
게이머의 잉여력이란 실로 놀랍다.
『주의 : 오프로더의 실험실은 플레지 서버 내에서 테스트한 것입니다. 실제 데이터 수치와는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옛 향수에 취하는 심정으로 게시글을 감상했다.
『기억하십니까?
카타르라는 무기 하나에 의존하던 플레지의 세계에 다마스커스라는 새로운 충격을 전했던 실험!
만약 그때 그 실험을 기억하신다면 오늘의 이 실험도 다시 한번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은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감히 장담하건대, 이 무기가 고여버린 플레지 월드에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 실험 목적 :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으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사냥터에 간다면, +9 오리하루콘 단검과 비교하여 그 성능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 실험의 조건
1. 공격을 담당할 나이트는 레벨 63에 체질 22, 근력 25다.
2. 방어구는 동일하며 방어력은 ?68로 맞춘다.
3. 대상 몬스터는 날개 달린 사도와 마족 성지 크리쳐로 제한한다.
4. 데미지에 영향을 주는 모든 버프는 배제. 물약 역시 사용하지 않는다 = 오직 순수한 능력치로만 실험한다.
이쯤 되면 많은 분이 의문을 가지실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타격치 4/3의 엘프족 단검이 7/7 심지어 추가 타격 +2까지 있는 오리하루콘 단검의 상대가 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결과로 이루어질 거라면 제가 이렇게 실험을 하지도 않았겠죠?
자! 그럼 실험 시작합니다!』
숫자라는 데이터를 보여주며 오프로더의 실험 전문이 이어졌다.
『미리 알아두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오리하루콘 단검이 최고의 사냥검으로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리하루콘이라는 재질이 가진 언데드 추가 타격치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데드 추가 타격은 오리하루콘에만 있는 것이 아니죠. 바로 미스릴과 은으로 만들어진 무기도 동일한 성능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 엘프족 단검의 재질 역시 미스릴입니다.
여기서 또다시 떠오르는 새로운 의문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왜 미스릴 단검이 아니라 엘프족 단검이 대상인 걸까?
왜 그냥 엘프족 단검이 아니라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인 걸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같은 아이템이라도 축복받은 아이템이 더 높게 쳐지는 이유는 단순히 무기에서 나오는 그 빛이 예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축복받은 무기에는 숨겨진 옵션이 존재합니다. 바로 악마와 언데드에 대한 추가 타격 옵션입니다. 많은 분이 은, 미스릴, 오리하루콘 재질이 언데드에 대한 추가 타격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지만, 축복받은 무기의 옵션은 잘 모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과연 축복받은 무기는 일반 무기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가?』
오프로더는 단순히 오리하루콘 단검과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에 대한 실험하나로 리뷰를 쓰기에는 분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우선 축복받은 아이템에 대한 타격치 검증 실험을 먼저 선보였다.
『실험 결과, 축복받은 무기는 일반 무기와 비교해서 언데드를 대상으로 약 3~6 정도의 추가 타격을 발생시켰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축복받은 무기는 언데드만이 아니라 마족에게도 추가 타격을 발생시키는데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의 재발견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다크 엘프의 업데이트 이후로 등장한 새로운 사냥터, 그림자 신전.
이곳에는 마족들이 등장한다. 플레지의 몬스터들은 그동안 한 가지의 속성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포럼은 단 한 가지 속성만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곳의 몬스터들이 그저 마족이라는 속성만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모든 몬스터가 그냥 마족인 것은 아니다.
『혼돈, 타락, 죽음.
이 세 가지 사도들은 마족이면서 언데드입니다. 즉,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이 가진 모든 추가 타격을 전부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단순히 무기가 가진 성능을 최적화 할 수 있기만 한 그런 사냥터가 아니다. 이곳은 현존하는 최고의 사냥터 중 하나이기에 최고의 사냥터에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깡패 가성비의 무기가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이라는 뜻이 된다.
『+9 오리하루콘 단검.
날개 달린 사도 최초 시도 : 19대.
2회 : 18대, 3회 : 19대, 4회 : 20대, 5회 : 18대
평균 공격 횟수 : 18.8
+7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
날개 달린 사도 최초 시도 : 18대.
2회 : 20대, 3회: 19대, 4회 : 19대, 5회 : 19대.
평균 공격 횟수 : 19
맙소사!
첫 번째 시도에서 오리하루콘 단검 최고의 타격 횟수와 동일한 횟수가 나와 버렸습니다. 놀랍게도 두 무기는 비슷한 성능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마족 성지 크리쳐를 대상으로 한 실험 역시 경이롭습니다.
+9 오리하루콘 단검 : 최소 58, 최대 61. 평균 59대.
+7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 : 최소 57. 최대 62. 평균 59대.
믿어지십니까, 여러분?
보시는 바와 같이 두 아이템이 정해진 몇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만큼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비싸서 오리하루콘 단검의 구매를 망설이고 계셨던 분이라면 지금 당장! 창고에 있는 축복받은 엘프족 단검을 강화하여 사용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상세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전달하는 리뷰이자 홍보!
내가 이래서 오프로더를 좋아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리하루콘 단검을 구매할 능력이 없었던 유저들에게는 지금 이 실험을 해낸 오프로더가 마치 구세주처럼 느껴졌는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 뭬야? 엘프족 단검 실험. 이거 레알임?
- 아니. 맨날 거미새끼 잡다가 나오면 쓰레기라고 버렸던 그 아이템이 이제 와서 이렇게 재조명받는다고?
- 역시 오프로더! 리스펙트! 개 쩐다. 어떻게 이런 실험을 할 생각을 했지? 진짜 이런 게 공략 아니냐?
- 난 안 될 놈인가··· 방금 전에만 해도 버렸던 건데··· 으허헝 미치겠네. ㅜ_ㅜ
- 이 잡템이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 진짜 미쳤다. 근데 성능이 좋으면 뭐 해? 엘프족 단검 쓰레기를 누가 갖고 있다고. 가끔 창고에 뽀대용으로 넣어둔 몇 명 제외하면 이거 서버에 몇 자루 남아 있지도 않을걸?
- 글쎄다. 존나 쩌는 거 알려줄까?
- 뭔데?
- 이거 공략 뜨자마자 지금 켄헬 서버 자판기에 +7부터 +9까지 엘프족 단검이 등장했다.
- 뭐?
- 어디서 구라를··· 아니네? 진짜 있네?
- 더 쩌는 건 이 실험글 올라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자판기 앞에 줄 서고 있다는 거임.
- 이 속도면 자판기 매진되는 거 아니냐?
- 진짜 플레지 형님들 정보력 존나 빨라. 후덜덜 혀.
정말 순식간이었다. 과거 오프로더가 글을 올렸을 때, +7 이상의 다마스커스의 가격이 급등하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소요됐던 것과 달리 엘프족 단검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수많은 유저가 +7 엘프족 단검을 구매하기 위해 몰려드는 장면은 그야말로 내 입장에서 장관이었다. 진수와 성찬이도 오래간만에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 태식이 이 미친 새끼. 우와··· 진짜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 너 이미 그때부터 이걸 기다리고 모아두라고 그런 거야? 도대체 몇 년 뒤를 내다본 거냐? 예언자 윤스트라태식스가 여기 있었네, 여기 있었어!
- 내가 진짜 너랑 플레지하면서 별별 신기한 걸 다 봤지만, 자그마치 거의 십 년이다, 십 년! 그걸 내다보고 아이템을 쟁여두다니!
- 너 인간 아니지? 대박 미친놈아!
사태를 보고 가장 놀란 진수성찬은 내게 전화를 걸어서 따발총과 같이 말을 쏘아댔다. 나는 쌍욕을 하면서 웃는 녀석들과 함께 웃으며 적당히 둘러댔다.
“내가 뭐 정확히 이렇게 될 걸 다 예상했겠냐? 그냥 뭐든 기다리면 다 때가 오고 그런 거지. 그리고 생각해봐. 이건 예측도 있지만 아이템을 띄우는 실력도 한몫한 거라고. 지금 같은 실험이 없었다면 이게 잘 팔릴 리가 없잖아.”
- 그건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무덤에 박혀 있던 단검들을 네가 다시 다 살려낸 거잖아. 아무거나 묻어둔다고 전부 떡상 될 리가 있어?
- 태식아. 난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솔직하게 말해도 될 거 같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너 신내림 같은 거 받은 거지? 솔직히 말해. 나는 이제 네가 미래에서 왔다고 해도 믿어줄 용의가 있다.
“그래. 이제는 말할 수밖에 없군. 나 미래에서 왔어.”
- 꺼져. 미친놈아.
- 그런다고 진짜 그런 개소리를 하냐?
친구 새끼들은 진짜를 말해줘도 저 지랄이다.
< 목표는 너로 정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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