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71화 (471/577)

< 목표는 너로 정했다 >

1등의 영예와 1억 골드의 상금을 위해, 전 서버의 고수들이 모인 온갖 길드에서 지금도 열심히 사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보다 더 빠르게 사냥하려면 그만큼 딜에 더 집중해야만 한다.

게다가 이 보스는 하나를 잡고 난 후, 1분 안에 나머지 하나도 잡아내야만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번 파티에는 블레싱 엘프가 끼어 있지 않았다. 활 공격의 데미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공격적인 성향의 바람 속성으로만 선발했기 때문이다.

“다시 광역입니다. 힐 올!”

힐 올은 블레싱에 비하면 리스크가 많은 스킬이다. 그러나 매지션이 자리만 잘 잡으면 오히려 훨씬 효율이 뛰어난 회복 방법이 될 수 있다.

매지션은 엘프와 달리 굉장히 빠른 마나 회복 속도를 가지고 있기에 메디테이션만 잘 활용하면 충분히 돌아가면서 전원의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엘프들은 주요 딜러진 중 하나다. 그런 딜러가 블레싱과 블러드 투 소울을 번갈아 사용하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딜로스가 생기기 마련이며 지 브라퀴처럼 1분 내 모두 사냥하지 못하면 무한히 부활하는 보스를 상대로는 전력의 손해가 생기게 된다.

“위부터 돌아가며 힐 올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힐 올을 받은 매지션이 바로 앞 매지션의 체력을 회복시키면서 합니다!”

- 네! 알겠습니다!

베테랑들이 모인 만큼 컨트롤이 부족하지는 않다. 지 브라퀴라는 생소한 몬스터의 패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길드원들은 차츰차츰 적응해나갔고 레이드는 내가 소리치는 일이 줄어들 만큼 점점 안정세에 들어섰다.

바로 그즈음, 격수들의 체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광격기들이 의미하는 바는 닥 하나였다.

- 으오오! 아프다! 아파!

- 발악한다!

- 끝이 보인다!

“죽어가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

공식적으로 플레지의 보스 몬스터들은 딱히 죽어가기 전이라고 데미지가 늘어난다거나 마지막 남은 마나를 모조리 퍼붓고 죽는다는 등의 소리는 사이트에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유저들이 몸으로 느끼고 공공연하게 아는 부분이 있다.

보스 몬스터들이 죽기 직전에 이르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데미지를 유저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플레지의 유저들은 이런 상황을 보스의 발악이라고들 표현했다.

- 우와. 단체로 암컷을 상대하는 격수들은 다 죽을 똥 말똥한데 군주님은 체력이 50%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없네.

- 뭐가 다른 거지? 컨트롤인가? 내가 해본 운몽이랑 군주님의 운몽이는?

- 차이야 있지. 지금 군주님한테는 허좁 형님들이 전담 마크해서 피 관리하시잖아.

- 하긴, 아무래도 안정적일 거야.

- 맞아. 허좁 형님들이 연합 내 최고의 힐러들이니까.

지나치게 높아진 장비와 주인공이 힘을 숨기고 있는 콘셉트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기가 막힌 대화가 들렸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진수성찬의 공로가 더 큰 것으로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얘네가 최고라고? 이거 망한 거 아냐?’

한심하다 여기는데 진수가 짧은 헛기침과 함께 내게 말했다.

- 군주님이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우리가 그동안 놀고 있던 거 아니거든?

- 이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힐러들이란 사실!

“뭐야? 들렸냐?”

- 들렸다. 왜?

뭐가 많이 찔렸는지, 나는 밖으로 아무 말도 내뱉은 게 없는데, 혼자서 괜히 변론해대는 친구들이었다. 그 상황이 내게는 마치 그가 독심술을 쓰는 것만 같은 놀라운 타이밍이다.

‘나 없는 동안 눈칫밥 좀 많이 먹었었나 보네.’

그러고 보면 진수와 성찬은 전 서버 최고의 길드에 있기에는 많이 부족한 컨트롤을 보유하고 있기는 했다. 애초에 얘들의 재능은 컨트롤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진득하게 한 곳에서 지겨운 노가다 사냥하는 것에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둘은 내 친구라는 이유로 상위 보스의 레이드란 레이드는 다 따라다녔으니, 조금 눈치가 보였을지도 모른다.

‘검이랑 지옥검과 같은 우리 초창기 포도밭 멤버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줬을 테고. 아마 지금처럼 괜히 많이 찔려서 힐러라도 열심히 했었나 보네.’

저 둘의 손 감각으로 봤을 때, PVP에서 좋은 컨트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혹자는 ‘이런 고전 게임에서 컨트롤 실력이 좋아 봤자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저 잘하는 캐릭터는 이상하게 잘 안 죽고, 안 그런 캐릭터는 금방금방 죽는 정도로만 여겨질 것이다. 캐릭터의 모션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에는 고전의 맛이 있는 법!

이게 또 요즘 나오는 게임과는 다른 컨트롤의 맛이 존재하는 게임이다.

‘플레지는 상당히 단순하고 인터페이스들이 불편하게 짜인 것들이 많지.’

이런 게임에서의 컨트롤은 써야 하는 스킬을 제때 쓸 수 있는가, 타깃을 잘 골라서 클릭할 수 있는가로 알 수 있다.

손이 둔한 사람이 매지션을 잡으면 괜히 아군에게 디버프를 걸고 강력한 마법을 난사하거나 적에게 회복이나 버프를 걸어주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진수성찬이 달라졌다는 점은 바로 이 부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강력한 마법의 힘이 당신을 감싸 보호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늘긴 했어.’

지금의 시스템 메시지는 매지션의 핵심 버프 마법이라 할 수 있는 이뮨 투 함을 받았을 때 나오는 메시지다. 파티원들이 현재 받고 있는 버프의 상태를 파티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의 게임과 달리 플레지는 정작 당사자도 정확히 버프가 끝나는 타이밍을 알기 어렵다.

그런데 진수는 정확히 이전에 걸었던 이뮨 투 함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새로이 버프를 걸어주었다. 참고로 이 마법의 유지 시간은 32초다. 분 단위로 유지되는 마법이 아니라 32초마다 새로 걸어주어야 하는데 이걸 일일이 계산하면서 걸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치열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야.’

굳이 게임도 하나의 현실이라는 등의 소리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경쟁이라는 것의 본질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살거나 혼자서 노는 게 아니라면, 승리하기 위해서는 타인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이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순리였다.

- 죽었다! 오! 죽었어!

- 암컷 클리어!

오연하게 선 채 혀를 날름거리던 거대한 뱀의 머리가 쓰러졌다.

“좋습니다!”

바로 격수들을 내려오게 했다.

“나이트들은 몰라도 다엘은 말갱이 계속 빨면서 때려야 합니다.”

암컷의 광역 마법은 분명히 아주 위협적이다. 조금 전만 해도 암컷과 수컷의 광역기가 한 번에 몰아치니, 다크 엘프들이 전멸할 뻔했지 않았던가.

수컷은 암컷만큼의 광역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크 엘프들에게는 그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였다.

“콜라 한 방이면 피가 훅 빠집···”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하늘에서 강렬한 벼락이 다크 엘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 우오!

- 씨! 뭐야?

- 방금 체력 빠진 거 봤음?

- 한 방에 700피 빠짐. 체력 2 남음.

- 오늘 진짜 죽다 사는 거 많이 해본다.

나이트라면 모를까, 다크 엘프들에게는 벼락을 떨어트리는 콜 라이트닝과 연계기를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가게 된다. 그러니 이제 한 마리만 남았다고 안심을 한다거나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데미지 보소. 초 살벌하네.

- 이걸 암컷 광역을 맞으면서 버티고 있었던 거야?

- 아까 한 말 취소. 허좁형님들로만 이게 될 리가 없어.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놀라움과 의문이 다 그랬지만, 저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는 않았다. 최대한 독려하며 시간 내에 사냥하도록 재촉했다.

“최대한 화력을 다 쥐어 짜냅니다! 한 방에 끝냅시다!”

- 넵!

다행히 수컷은 한 번 다크 엘프에게 공격해보고는 아까부터 계속 어그로를 끌고 있던 내게 다시 집중하는 중이다.

“매지션도 공격! 어그로 돌기 전에 끝내야 편합니다!”

매지션들의 마나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만 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직접 공격을 시도하게 될 경우 아무리 커다란 마나통이라도 하더라도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상관없어. 그때쯤이면 죽을 테니까.’

그리고 매지션들은 지금까지 내 오더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마법을 수컷을 향해 토해냈다. 모니터 속의 화면은 매지션들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고 불타올랐으며 또 얼어붙었다.

‘불과 얼음이 한자리라니 정말 판타지스럽네.’

각종 비명, 귀를 때리는 마법의 울림, 온갖 이펙트가 모여서 일그러지다시피 하는 지 브라퀴. 그 가운데서 검을 휘두르는 근접 캐릭터들.

이들 모두가 제한 시간 1분을 향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마침내. 보스가 쓰러졌다.

- 오오오오! 수컷 클리어!

- 잡았다! 잡았어!

- 첫 트라이 만에 바로 해냈네!

- 와! 우리 좀 짱인듯!

- 플레지 전섭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다우십니다!

신입들은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했고 구멤버들은 왕년의 내 별명을 거론했다.

드래곤 슬레이어.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사냥의 결과 역시 뿌듯했다.

- 이게 바로 마안이구나!

- 송곳니도 나왔어! 한 번에 두 가지 다 나오네!

지 브라퀴의 송곳니와 마안.

무시무시한 이름과는 달리 둘 다 목걸이로서 액세서리에 해당하는 아이템이다.

「+0 지 브라퀴의 송곳니

AC 0 + 0

최대 HP+30

STR+1

DEX+1

클래스 : [모든 클래스]

재질 : 뼈

무게 : 1」

「+0 지 브라퀴의 마안

AC 0 + 0

최대 MP+10

CON+1

INT+1

클래스 : [모든 클래스]

재질 : 보석

무게 : 1」

판타지 게임이라서 그런지 이름과 재질이 판타스틱하기는 했다.

‘송곳니는 이빨이라서 재질이 뼈이고, 눈알은 보석.’

레어템이 한 번에 두 개나 생겼다. 예전 같으면 일단 송곳니 배분의 우선권을 내가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딱히 욕심도 나지 않는다.

“아이템은 지옥검이 알아서 분배하세요. 그리고 스톱워치. 보스 잡기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 2시간 31분 11초입니다!

사냥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순간도 여럿 있었고, 덕분에 이 두 마리 같은 한 마리의 뱀과 사투를 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지 브라퀴와 싸운 시간은 1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1분 11초면 우리가 충분히 1위 할 수 있겠네요.”

- 그럴 겁니다.

- 테섭에서 최초로 잡혔을 때도 20분인가 걸렸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테스트 서버의 유저들을 비교 대상으로 두고 있었지만, 하나둘 클리어하는 이들이 나오면 알게 될 것이다. 테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스펙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 시간이 한참 앞당겨지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다른 도전자들이 제아무리 날고뛰어도 2분 이내에 사냥하는 클랜들이 나타날 뿐, 1분 11초는 등장하기 어렵다.

‘공략도 공략이지만, 나랑 동급으로 강화하지 않는 한 어림도 없지.’

구운몽의 플레지 복귀 기념 이벤트로는 괜찮은 시작이었다.

159. 목표는 너로 정했다

지 브라퀴를 사냥하고, 1억 골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사실은 진입할 때부터 여러 길드와 마찰을 빚었던 만큼 숨기고 말 게 전혀 없었다. 떡하니 상금까지 받는 마당이니 오히려 자랑해야 옳다.

- 역시 섭 최강인 사람들 길드네. 아직 죽지 않았어.

- 어떻게 지 브라퀴를 저렇게 빨리 잡냐?

- 그보다 구운 봤음? 오랜만에 봤는데 진짜 여전하더라. 옛날 그대로임.

- ㅇㅈ 그동안 구운몽도 이제 퇴물이라고 지껄인 놈들 나와. 이게 퇴물이냐?

- 후기 들어보니까 지 브라퀴 수컷 딜을 혼자 버텼다더라.

- 대체 방어구가 얼마나 되어야 그게 가능한 거야?

- 카더라 소식통을 믿는 병신들이란. ㅉㅉㅉ

- ㄴㄴ 원래 예전부터 구운몽은 다른 세계 캐릭터였음. 남들 플레지할 대 혼자 무쌍게임하는 사람이라고 봐야 함. 그래서 랭킹 메길 때도, 늘 구운몽은 제외하고 랭킹을 메기고 그랬잖아.

- 요즘 애들은 켄헬의 포토밭에서 뭔 사건이 있었지는 알랑가?

- 드래곤 슬레이어~!

- 노인네들이 맨날 ‘내가 왕년에~’지롤이지.

- 섞은 물로 잊혔다가 간만에 등장했다고 좋아하기는. ㅋㅋㅋ

- 임팩트 있게 파팟! 등장했잖아. 지 브라퀴 잡았는데 그거 무시하냐?

- 사실 그동안 구운몽 이야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긴 해.

오랜만에 들려오는 추억의 아이디 덕분일까. 많은 사람이 과거의 추억들을 꺼내는 장이 열렸다. 나 역시 구운몽을 검색해나가며 ‘역시, 아직 안 죽었어.’ 같은 자아도취에 빠져 보았다.

한편, 전화를 걸어온 성찬이가 내게 1억 골드에 관해 물었다.

- 그거로 뭐 할 거냐? 장사의 신이 오래간만에 플레지 시장을 흔들어 볼 거?

“글쎄다. 딱히 별생각 없는데?”

- 1억인데? 그거 먹으려고 한 거 아냐?

“내가 골드가 탐나서 그랬겠어? 그냥 복귀 각에 괜찮은 이벤트가 뭐 있나, 하다가 진행한 거고 그렇게 즐긴 것뿐이야.”

- 굉장히 재수 없는 소리지만, 너니까 인정. 그럼 재밌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온갖 이슈를 불러오는 구운몽 놈아. 이번에는 계획이 어찌 되냐? 다음 코스는?

“생각 좀 해보고.”

전직, 플레지 게이머로서 꿈속 과거의 내가 이루지 못한 여러 가지의 미련이 있기는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집 한 채와 같은 돈값을 자랑하여 ‘집판검’이라 불렸던 집행검을 갖는 것이었다.

< 목표는 너로 정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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