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70화 (470/577)

< 내거 아닌 내 캐릭터 >

- 열쇠 전부 확보했습니다. 저희도 전투에 참여합니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는 인원은 소수정예의 사람들 연합 내에서도 정예다. 그들이 전투에 하나둘 합류하면서 적들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시간 거의 다 됐습니다. 제단 확보합니다!”

- [연합] 지옥검 : 제단 확보합니다! 제단으로 모이세요!

모든 유저들이 일사불란하게 쿠쿨탄의 제단으로 모여들었고, 빠르게 제단을 향한 길목에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다.

수성전을 방불케 하는 팀플레이의 방벽!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구나.’

방금 선보인 조직적인 움직임은 리더의 한 마디로 척척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도자의 길을 비롯한 길드의 주축들이 지휘하며 이룩한 성과였다. 이 차이는 숫자만 많은 산적과 진을 운용하는 정규병들의 싸움이라 봐도 무방했다.

- 걷다가 : 오우··· 씹@#[email protected]!

- 노벨전복상 : 들이댔다가는 갈려나갈 분위기네 ㄷㄷㄷ

- 주접황태자 : 쩐다······

- 버거왕 : 저걸 연습했나? 아니, 뭐가 이렇게 빨라?

이벤트 팀에만 20명. 그것을 제외한 인원이 40명 도합 60에 이르는 인원이 둘러싸고 자리를 잡으니, 마치 공성전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그 서슬 퍼런 위엄에 결국 적 길드들은 멀리서 떠들어 댈 뿐, 감히 주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 수요무댕 : 통제하지 마요!

- 악몽의기억 : 맞아! 사냥터 통제하지 않는다며!

- 너는칸쵸다 : 이러지 맙시다! 사람들 길드는 다른 줄 알았는데!

힘으로 밀어내지 못할 것 같아지자 물타기에 돌입한 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떠들건 시간이 될 때까지 철통같이 자리를 고수했다.

“됐습니다. 보스 룸. 입장합니다.”

그렇게 우리 20명은 보이스 챗에 들어와 있는 딱 그 인원 그대로 정확히 보스 룸에 입장하는 데 성공했다.

*

깜짝 놀란 외부의 사람들 못잖게 계획대로 100% 움직인 우리 길드 역시도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웃고 떠드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그중에는 진짜 구운몽이 돌아오니 뭔가 다르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진함을 느꼈다.

‘다크 엘프한테 썰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조금 더 전력을 보강하자.’

자고로 게임은 이겨야 재미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우고 스펙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플레지에서 이를 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강화였다.

“원래 인생은 내로남불이고, 나도 그 수준인 녀석이지.”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기적인 잣대를 필요할 때마다 골라서 쓰는 보통 사람이다.

강화!

한순간에 수억 골드가 투자된 장비가 증발해버리는 악랄한 게임 시스템!

보통 사람들에게는 손이 덜덜 떨리는 위험천만한 행동!

하지만 내게는 게임 전체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히 참아주는 수준에 불과한 일이기도 했다. 조금 더 강력해지기 위해 이 봉인을 깨고자 마음먹었다.

‘공격력을 더 높이기보다는 방어력 쪽이 낫겠지.’

현재의 내 방어력은 ?91이다. 켄헬 뿐만이 아니라 플레지의 전체 서버 내에서도 이보다 방어력이 높은 캐릭터는 손에 꼽힐 수준이고, 그 방어력의 차이도 기껏해야 2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이자 최강의 구운몽에게는 부족한 수치다.

‘얼마나 올릴까?’를 머리에서 되뇌며 나는 강화 성공의 직감에 따라서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때마다 강화 주문서가 소비되었고 아이템들은 은빛으로 빛났다. 그러다 캐릭터 창을 보니 한층 강해진 구운몽이 보였다.

「+11 마법 방어 투구 (13)

+10 화룡의 마갑주 (21)

+10 반사 방패 (12)

+10 안사락스의 근력 부츠 (13)

+11 파워 글로브 (11)

+11 티셔츠 (11)

+11 마법 방어 망토 (12)

레벨 방어력 추가 20

방어력 -104」

높은 수치다. 게임 자체로만 보자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최고의 방어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이머의 마음은 만족을 모른다.

10이랑 11이 섞여 있는 게 눈에 거슬린다.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장비들의 숫자가 조금 더 깔끔하기를, 세팅이 딱딱 맞는 모습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 12까지 가자!’

인벤토리에 있는 방어구 강화 주문서를 더블 클릭했다.

「+11마법 방어 투구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10 화룡의 마갑주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11 화룡의 마갑주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10 반사방패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11 반사방패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이어지는 안사락스의 근력 부츠, 파워 글러브, 티셔츠까지 모두 +12로 강화 수치를 완성했다. 단 몇 분 만에 일어난 변화이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스펙업이다. 하지만 게이머로서는 막힌 무언가가 뻥 뚫린 것처럼 마음이 놓이는 시원한 숫자들임이 분명했다.

‘구운몽 캐릭터 길드원들한테 돌려주면서 원위치시켜야겠다. 아니면 버그니, 뭐니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나만 즐기고 이 장비들을 날려버리는 것도 조금 치사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생각해도 하루 만에 일어난 이 장비 업그레이드는 정말 비상식적이고 미친 짓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도 알고 너도 알며 세상이 모두 인정하는 사자성어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남의 회사 게임에서 깽판 치는 재미.”

내로남불!

*

최고의 플레이어이자 최강의 길드라는 인식을 유감없이 남겨준 뒤, 상금 1억 골드를 향한 일정을 이어나갔다.

“쌍두사인 지 브라퀴는 수컷이 격수의 역할을 하고 암컷이 누커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광역기를 사용하는 건 수컷이나 암컷이나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즉, 둘이 광역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냥 난사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됩니다.”

-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당장은 처음 상대하는 보스라 자리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플레지와 같은 90년대에 나온 고전 게임이나, 요즘 나오는 게임이나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보스 레이드에서는 자리만 제대로 잡아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략할 보스에 맞춰서 각각의 포지션 정비에 들어갔다.

“엘프와 매지션은 제가 지금 서는 자리 쪽으로 모여주세요.”

지 브라퀴의 방에는 아즈텍 문명과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텍스쳐들이 중간마다 위치하고 있다. 공략 포인트는 바로 이런 요소들을 활용해서 위치를 기억하고 자리를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 있는 동그란 그림에서 두 칸입니다. 이 두 번째 칸에 엘프들이 자리를 잡고 바로 그 뒷줄에 매지션이 자리를 잡으십시오.”

이렇게 자리를 잡으면 엘프들은 화면에 딱 지 브라퀴의 얼굴만 보인다. 최대 사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셈이다. 한편, 한 줄 뒤에 있는 매지션은 지 브라퀴를 볼 수 없고 그 앞에서 탱킹 중인 격수들은 시야에 잡힌다.

이른바, 완벽한 위치인 셈이다.

“제가 먼저 수컷에게 돌입하겠습니다. 이후, 제 신호를 받고 격수들이 암컷에게 돌진. 격수들이 자리를 확보하면 매지션들이 자리를 잡아주시고 그 후 엘프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연습 없는 실전으로의 돌입이다.

메시지를 잘 숙지했는지 거듭 확인한 지 내가 말했다.

“이제 레이드 시작합니다.”

- 네!

- 고고!

예전에 용을 잡을 때와 마찬가지다. 구운몽 캐릭터가 홀로 달려 나가며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버티고 어그로를 끌었다.

진입과 동시에 사원에 전체적으로 토네이도가 발생했다. 보스 몬스터의 광역공격에 내 캐릭터가 움찔거렸다.

『Hit Point : 987/1400』

『Hit Point : 1231/1400』

『Hit Point : 1400/1400』

『Hit Point : 889/1400』

『Hit Point : 1337/1400』

넓은 범위를 타격하는 스킬은 다수를 공격하는 만큼 데미지가 낮아지는 것이 밸런스다. 그리고 물리 방어와 마법 방어가 높은 구운몽은 지금 그런 광역 공격은 얼마든지 맨몸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스펙을 너무 높였나? 이거 엄청 무난한데?’

이번만 끝나고 자체적인 다운그레이드를 얼른 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Hit Point : 326/1400』

체력이 놀랍도록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물약을 먹으며 뭉텅 달아난 체력을 복원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보스 몹 둘이 단일 대상 스킬을 사용하면 나조차도 위험하구나.’

자칫 멋지게 돌진해서 혼자 벌러덩 누워버리는 불상사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물론, 나니까 그냥 위험한 정도이지 다른 사람이 맞았다면 그대로 즉사했을 공격이었다.

‘하긴, 애당초 지 브라퀴는 한 사람이 두 보스의 어그로를 끌고 상대하는 보스가 아니라 위아래에서 각각 다른 어그로를 끌고 시작하는 보스니까.’

중요한 건, 강화한 보람이 있게 혼자서 보스 몬스터의 데미지를 모두 감수할 만하다는 사실이다.

- 와. 저걸 혼자서 다 버티네.

- 버틸 만 한 거 아닐까?

- 그런가 봐. 구운몽은 돌아가면서 해봤잖아.

- 이거 쉽게 금방 잡겠는데?

잠시 후, 겪어보면 깜짝 놀랄 대화가 귀를 들릴 즈음.

『Hit Point : 599/1400』

『Hit Point : 1311/1400』

때가 왔다.

“수컷 어그로 확보! 격수들 진입합니다!”

- 넵!

- 돌격!

- 달려라! 달려!

처음 안사락스를 사냥할 때에는 배경이 흔들리고,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것이 신기했었지만,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다양한 보스들이 등장했고 이제는 이 정도 이펙트는 그냥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지 브라퀴는 두 머리 중, 위쪽에 자리 잡은 자주색 비늘의 머리는 암컷이고, 아래쪽에 자리 잡은 푸른색 비늘의 머리는 수컷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현재 아래쪽으로 자리를 잡았고 아직 격수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 관계로 두 머리의 데미지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 슬슬 분산되기 시작했다.

- 뭐야! 이거 왜 이래?!

- 지금 격수들 피 빠지는 거 보이냐?

- 한 마리 데미지 맞아? 이게?

- 존나 세잖아!

나를 제외한 모든 격수들의 체력이 순식간에 50%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70% 수준까지 복구되기를 반복했다. 초반에 암수 전체의 어그로를 끌었던 나와 달리 오롯이 암컷 하나의 견제에 체력이 이리도 떨어지는 것이다.

방어력의 수치 자체가 높지 않은 탓에, 숫자 1 하나가 꽤 커다란 성능 차이를 보이는 플레지에서 10 이상의 격차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길드원들은 나와 많이 차이가 나면 20방 이상까지도 차이가 나고 있었으니, 그것이 눈에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비교되는 것이다.

“매지션 힐 올!”

플레지는 맞아서 피를 흘리거나 상태 이상에 빠졌다고 화면에 어두워지지도, 나가떨어졌다가 다시 이를 악물고 일어나는 액션은 없다. 그저 ‘윽!’ ‘컥!’ 거리는 짧은 비명과 변신 상태에서의 몬스터 울음소리가 전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숫자와 막대기에 집중해야 한다. 빨간색 체력 바가 확 줄어들어서 하얀 바닥을 보이는지 여부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살 수 있다.

“힐 올! 수컷 토네이도!”

한 마리를 내가 확실하게 담당했다. 또한, 공략만 제대로 한다면 지 브라퀴 자체는 그렇게까지 강력한 보스는 아니다.

그러나 두 보스를 함께 상대해야 하는 탓에 한순간 방심하면 바로 차디찬 바닥에 누워버리게 된다. 그때가 바로 지금처럼 수컷과 암컷이 동시에 광역 공격을 하는 때였다.

수컷 매스 토네이도!

암컷 어스 익스플로전!

지 브라퀴의 광역 공격 중 매우 강력한 편에 속하는 마법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화면 전체가 뒤집어지고 소용돌이치며 난리였다.

- 난장판이다!

- 죽는다! 으아!

안 그래도 암컷의 광역 공격을 물약과 힐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격수들에게 수컷의 강력한 광역기는 그야말로 심연의 공포였다. 낮으면 30%에서 높아도 70%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던 격수들의 체력 바가 순식간에 하얗게 탈색된다.

- 죽었··· 으아! 체력 7 남았어!

- 난 체력 3 남았음!

- 흐아! 쫄깃쫄깃하구나!

특히나 체력이 낮은 편인 다크 엘프들은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에서 힐 올로 겨우 목숨 줄을 붙잡는다.

“매지션들 뭐합니까? 바로 체력 회복하세요! 우리 씽 엘프 없습니다.”

- 아!

- 죄송합니다!

엘프들의 정령 마법이 이제 막 등장했던 초창기에만 해도 엘프 속성 중 최고는 물이었다. 체력을 깎아서 마나를 채우는 블러드 투 소울로 마나를 채우고, 아군 파티원 전체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블레싱은 최고의 궁합이이면서 그만큼 효율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체력 120을 깎아서 블레싱을 사용할 마나를 채워서 블레싱을 사용하면 체력이 150 회복 되니까.’

원거리 캐릭터가 소모보다 회복이 좋은 스킬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였고, 그 덕분에 매지션들은 힐러로서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그야말로 백수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블레싱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힐 올의 경우 사용자의 체력도 회복시켜주는 블레싱과 달리 사용자는 오히려 체력이 깎여나가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그 차이는 더 컸다.

“일반적인 보스전이라면 엘프들이 씽을 썼다가 소울을 썼다가 하면서 무한 회복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에 최대한 한 대라도 더 때려야 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 내거 아닌 내 캐릭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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