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필요한 변화들 >
“기자님은 요즘 게임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과금제 랜덤 박스를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0.1%는 S, 1%는 A, 30%는 B, 69%는 C등급의 아이템이 나온다고 칩시다. A와 S는 둘이 합쳐봐야 1.1%입니다. 그런데 다들 그걸 뽑겠다고 구매합니다. 현실적인 결과는 어떨까요? 다들 B 아니면 C입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대부분은 성공 확률이 희박하지요.”
“그런데 왜 그리 환호할까요?”
“희박할수록 보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S등급의 아이템을 그냥 구매하면 2만 원 랜덤 박스를 통해 획득할 확률은 최소 19만 원입니다. 그런데 저 아이템 획득의 95%가 랜덤 박스에요. 운만 좋다면 1,000원에 뽑을 수 있습니다.”
“중국몽도 이와 같다는 말씀이시네요. 1,000원으로 행운을 잡은 극소수를 보고 희망을 품지는 말라는 것 말이죠.”
“현실은 냉정합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기대만 높게 품는다면 그 결과는 매우 차가울 것입니다.”
“하지만 윤태식 회장님께서는 모두가 무모하다 여기는 도전을 거듭하셨고 도박으로만 여겨지는 시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공의 과정을 밟아오셨고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십니다. 그런데 도전하기를 경계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으시네요.”
나는 남들과 다르다. 남들에게는 없는 기억이 있고, 정보를 가지고 있고 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나를 따라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는 절대 실패할 테니까. 그러니 어설프게 좋은 말이나 대답 따위는 해줄 수가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딱히 해주실 말씀이 있는 지요?”
‘마지막에 제대로 난처하게 만드는 기자를 만나는군.’
나는 차마 ‘기적을 만날 정도로 운이 좋아야 한다’라는 대답은 하지 못했다.
*
인터뷰에 관한 기사가 나가고 인터넷에는 난리가 났다. 중국 진출을 꿈꾸고 준비하는 기업들이 많은 시대이니만큼 수많은 사람이 이번 인터뷰에 대해서 손가락질을 해왔다.
- 표현이 좀 직설적이긴 하지만 결국 다 맞는 말 아닌가? GF가 중국에 진출한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ㅋㅋㅋ
- ㅇㅈ 그때부터 이미 지금까지 자리 잡은 기업들도 많아. 그런데 굳이 거길 왜 가?
- 근데 열심히 준비한 기업 입장에서는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냐?
- ㄴㄴ 지금 와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게 잘못이지. 진작 하던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분석을 하던가.
- 봐봐. 지금도 제대로 분석하고 까는 게 아니라. 그냥 감정적으로 까기만 하고 있구만.
- 감정적으로 까는 게 아니라. 정작 지들은 중국에서 여전히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으면서, 괜히 경쟁할 기업들 진출 못 하게 알 박기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거지.
- 이봐요. 지금 신생이 중국 진출하면 GF 아래로 가야지 GF랑 경쟁이 될 거 같아요? 어차피 텐션 통해서 가는 거 아니면 중국에서 돈도 못 버는 게 요즘 시대인데.
- 맞음. GF랑 손 안 잡고 넘어간 게임 치고 잘 된 게임이 없음. 심지어 중국 애들 취향에 딱 맞춰진 것들도 그런 게임이 있는지도 모름.
- 근데 마지막 질문에는 그냥 웃는 거로 끝낸거임? @[email protected]
- 맛집 소스랑 똑같은 거지. ‘이건 우리 집 양념장 비밀이라 안 알려줌’ 같은 거. ㅡㅠㅡ
- 내가 그 소리 하는 거. 진짜 노하우는 안 알려준다니까?
- 뭔 개소리. 난독증 있냐? 당시의 중국이란 비스무리한 지금의 다른 곳을 찾으라는 거?
- 그러니까 거기가 어딘지를 짚어줘야지. ㅡㅡ^
- ㄷㄷㄷ
- 망하면 다 윤태식 탓이고?
- 당연하지. 원래 잘 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저 개새끼 때문임. ㅋㅋㅋ
확실히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예전 같으면 손가락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욕이 한 바가지는 날아왔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주 많이 건전하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군. 돈 문제가 한 큐에 해결됐어.”
온갖 언어로 즉시 번역한 인터뷰는 확실히 주가를 높여주었다.
*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사장단을 불러 그간의 보고를 받을 겸, 그룹의 총체적인 방향도 결정 지을 겸 회의를 했다. 미국에서 오래 머물렀던 만큼 보고의 양도 많았다. 하지만 그간 고진환 부사장이 일을 잘해준 덕분에 딱히 고생이랄 것은 없었다.
“와이폰이 3GS라는 신규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와이폰이 스마트폰의 세계를 새로운 혁명으로 이끌었다면 와이폰3GS는 휴대폰이라는 세계 전체를 새로운 혁명으로 이끌어낸 기종이다.
좁게는 대한민국의 위피라는 플랫폼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기종이었으며, 전 세계의 휴대폰 시장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대사건을 이루어 낸 기종이다.
“우리 레이폰은 어떻습니까?”
“레이폰도 와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신규 기종 레이폰3가 이미 개발 완료되어 있습니다.”
“재미있겠군요. 과연 현 대세라 할 수 있는 피처폰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리는 기종이 이번에는 무엇이 될지 말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에는 제대로 와이폰과 승부해서 이겨보시라는 말입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도 아직 우리는 와이폰을 제대로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성능이나 디자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국적이 단점인 셈이지.’
와이폰에게 부족한 것이 없으나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저들이 미국의 기업인 반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오는 유불리였다. 확실하게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성능이 있다면 모를까, 조금 앞서는 정도로는 좁히기 어려운 요소였다.
하지만 꿈속 미래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도전해볼 만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카이닉스도 바빠지겠군요.”
“네, 회장님. 요즘 신형 레이폰을 위한 APU 개발 때문에 정신없습니다.”
“레이폰3부터 자체 제작 APU가 들어갑니까?”
“아닙니다. 자사의 제품으로 제작하려면 제작할 수 있을 정도는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안정성 면에서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비록 이번 세 번째 시리즈까지는 포기해야겠지만, 네 번째 시리즈부터는 저희 카이닉스의 기술로 개발한 APU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카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곳이다. APU 개발에서는 경험과 기술력이 많은 부분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쫓아왔어.’
이후, 마이코닉스의 신규 애니메이션부터 GGT의 신규 사업에 대한 보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보고할 것들이 많은 게임 스튜디오의 보고를 들었다.
“드래곤 소울과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동시에 개발하면 또 출시시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많아지겠군요.”
수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GF IP의 후속작들.
그것들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는 중이다.
이제부터 개발되는 게임은 기존의 GF 엔진이 아니라 신규 엔진을 통해 개발하게 될 것이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퍼포먼스들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모두가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드래곤 소울은 개발이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개발의 시작은 비슷하게 했지만, 완료는 몬스터 프레데터스가 더 빨리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둘 다 액션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게임이라서 김대익 실장이 절대 빠지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게임 스튜디오에서 가장 바쁜 인물을 꼽자면 김대익 실장이 당당히 그 1위에 자리할 것이다.
“폴란드의 CL 게임즈에서는 신규 게임이 완성되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혹시 완성도 문제?”
“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너무 없습니다.”
대충 어설프게 기존 게임에 있는 소스들을 짜깁기해서 게임을 완성해내는 것에 특화된 CL게임즈. 그곳에서 서브웨이 2033의 소스와 데들리 스페이스의 소스를 버무려서 만들어낸 첫 게임의 평가는 아주 가혹했다.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저희의 자존심과 브랜드 가치에 큰 흠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정도로 엉망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아닙니다. 오로지 CL 게임즈의 자존심이지요.”
“그래도 G 크로스의 독점작이고 GF의 자회사에서 출시하는 게임인데요?”
“싸게 팔 겁니다. 아주 저렴하게. 그리고 CL 게임즈는 저렴하고 단순하다는 점. 딱 그 값에 어울리는 게임을 꾸준히 쏟아내기 위한 회사입니다.”
“저렴하게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라는 겁니까?”
“개당 10달러입니다.”
GF에서 독점작으로 내놓는 대표 독점작의 가격은 45달러로 책정됐다. 떼먹힐 곳이 적어진 만큼 그 가격을 낮춘 것인데, 지금은 경제 대공황 이후 환율이 너무 올라서 과거 60달러가 72,000원이었다면 현재는 45달러가 67,500원이었다.
15달러의 차이다.
그런데 고환율 덕분에 한국에 들어오면 별 차이가 없어진다. 즉, 10달러는 예전이었으면 12,000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15,000원이나 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직 더 오를 기세이기도 했다.
‘빨리 찍어내면 그만큼 돈이 된다.’
이런 면에서 CL 게임즈는 최고의 효자 역할을 해준다.
“이번에 만들어진 데스 아너드의 소스도 CL 게임즈에 보내세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잘 버무려 보라고 응원하시고.”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사람들의 취향은 제각각이지요. 이 중에는 7만 원짜리 대형 타이틀보다 오히려 2만 원 이하의 저렴한 타이틀만 찾아다니는 이들도 은근히 많습니다. 그들은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만큼 게임 퀄리티에 대한 불만도 없지요. 그러니 AAA급 타이틀보다 훨씬 소비자들의 관리가 편합니다.”
“네,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곳은 보고하실 것이 더 없습니까?”
“서브웨이 2033은 언제쯤 발매를 해야 할 지 다들 조급해하고 있습니다. 완성을 시켜놓고는 계속 묵혀둬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도 나옵니다.”
“거긴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하세요. 데스 아너드의 판매 곡선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의 추세라면 여름이 오기 전에 500만 장을 돌파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때에 서브웨이 2033을 출시한다면 우리끼리 제살깎아먹기로 기세가 꺾일 수 있습니다.”
서브웨이 2033을 제작한 보르타 게임즈의 직원들은 데들리 스페이스 때문에 발매가 미뤄지고 데스 아너드 탓에 두 번째로 미뤄지는 중이다.
조급해서 발만 동동 구를 지경이지만, 어쩌겠는가. 아직은 더 기다리는 편이 낫다.
“최고의 날에 발매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 일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유럽 쪽도 됐고, 일본이랑 북미에서는 별다른 보고사항이 없습니까?”
해당 스튜디오의 사람이 와서 직접 보고할 수 없으니, 이곳에는 각 스튜디오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시선을 두자 담당 직원이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북미는 지금 배다스 랜드와 툼 이터널 개발이 한창입니다. 배다스 랜드의 경우는 올해 말에 발매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툼 이터널은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넘겼다.
‘그들이야 알아서 할 테니까.’
이곳이나 RlP의 작가들은 걱정이 없다. 지금까지처럼 완성도를 두고 내가 이래라저래라할 이들이 아니니 뚝심 있게 믿고 기다려주면 된다.
‘부디 시나리오의 완성이 빨리 이뤄지기만을 바랄 수밖에.’
꿈속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은 만큼 그저 기도할 뿐이다.
“넷플렉스 측에서는 현재 데들리 스페이스의 시놉시스가 완성되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작가들이 이야기를 꾸며갈 거라고 합니다. 소설과 달리 넷플렉스의 작가들이 함께함으로 각본의 완성은 꽤 빠를 듯합니다.”
“빠르다면 구체적으로 언제 정도를 예상합니까?”
“아마 내년쯤이면 완성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난 또 올해 안에 제작할 수 있는 줄 알았잖아.’
빠르다는 말에 지나친 기대를 했었다.
“그렇다면 게임 부분에서는 제가 직접 손댈 일이 잠시간 없겠군요.”
몬스터 프레데터스나 드래곤 소울도 반년은 지나야 내가 확인하며 수정할 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 없는 마당이니 지금은 마음 가는 일을 실컷 하거나 한껏 놀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 꼭 필요한 변화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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