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56화 (456/577)

< 꼭 필요한 변화들 >

1,000만대를 바라보니 어쩌니 하는 마당에 50만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국내 시장을 고려하면 이는 대단한 수치다.

“이게 진짭니까?”

“네. 진짜고 말고요. 이게 은근히 애국마케팅이 통한다니까요?”

휴대용이야 닌텐두에서 200만대도 판매한 적이 있지만, 거치형 콘솔에서는 50만대를 돌파했던 콘솔이라고는 과거 복제품이 즐비했던 패밀리 게임기가 전부다. 그나마 그것도 99%가 복제 게임기였으니까 가능했던 이야기다.

그런데 G 크로스가 50만대라고 한다. 게다가 벌써 이 정도면 정말 국내에서만 100만대 돌파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회장님께서는 게임 대상 같은 것에도 참여 안 하시고, 인터뷰도 아주 오래전에 클로버 스팅 때나 하셨지 지금은 전혀 안 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들 회장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한 번 인터뷰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 실장님. 혹시, 언론사에서 뭐 받으셨어요?”

“받다니요! 언론사 놈들이 우리에게 콩고물을 받아먹었으면 받아먹었지, 제 놈들이 뭘 줄 놈들입니까?”

“하긴 그건 그렇네요.”

그놈들이야 돈을 받고 글을 써주는 놈들인데, 글 쓰겠다고 돈을 줄 리가 없다.

“그런데 인터뷰를 왜 이리 권하십니까?”

“그냥 이렇게 관심이 뜨거울 때는 이런 멘트가 어울리지 않을까 했습니다.”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사극의 충신처럼 말하겠다더니?”

“늙은 흉내 내려다 진짜 늙는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게다가, 진짜로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소견이나마 회장님께서 인터뷰하셔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 그게 뭡니까?”

“이제 곧 이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비용도 상당하게 들어갔습니다.”

승승장구하면서 어느덧 으리으리하게 여겨지던 강남 사옥이 좁아터질 지경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그래서 판교 사옥으로의 이사를 기획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건축비로만 무려 1조 5천억이 들어간다.

“공사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데, 우리가 그렇게 여유가 많은 게 아닙니다.”

“여유가 왜 없습니까? 매달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가장 큰돈이 흐르는 레이컴은 R&D만 판교에 함께 갑니다. 그러니 그들의 돈을 너무 많이 끌어다 쓸 수도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거기는 매출의 대부분을 다시 연구에 쏟아부어야 하는 회사입니다. 기업 가치와 비교해서 여윳돈이 넘치는 곳은 아니죠.”

마냥 장난스러운 기색을 지우고 김유천 비서실장이 말을 이었다.

“카이닉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는 만큼 투자합니다. 그러니 사실 여유가 가장 많은 분야가 게임인데··· 이는 회장님께서 거하게 미국 기업을 쇼핑하시느라 시원하게 돈을 쓰셨죠. 그러니 다를 게 없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실패한 투자는 결단코 아니다. 다만, 막대하게 버는 만큼 어마어마하게 쓰고 있으니 아직, 투자금 회수가 다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내가 보유한 주식을 팔면 수십조가 나오기는 하는데, 그건 아깝잖아.’

지금도 막대하지만 묵혀두면 더 큰 돈이 되는 내 개인재산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것과 인터뷰 한 번의 귀찮음을 저울질하는 걸 알면 나를 미쳤다고 욕할 것이다.

“이럴 때 회장님이 인터뷰를 한 번 딱! 해주시면 사람들 반응도 좋고 마케팅도 되고 또! 주가도 오를 거 아닙니까?”

“주가야 오를 테지만, 그룹 주식의 대부분이 제 소유입니다. 올라봐야 크게 오를 리도 없고 그게 아니면 거의 다 저기 해외에 상장된 기업이니 별 효용이 없을 겁니다.”

“아닌 곳이 있습니다.”

“카이닉스요?”

“네. 카이닉스는 국내 상장입니다. 사실 그쪽에서 좀 부탁을 세게 받았는데요. 경영 부문에서 돈이 흘러야 자기들도 운영이 된다면서 자꾸 우는소리를 해서 그럽니다.”

‘아! 내 씀씀이가 너무 컸구나! 이래서 수십억 복권 당첨된 사람이 빌딩 몇 개 사고 파산한다는 말이 있는 건가?’

판교의 사옥을 조금만 알뜰하게 지을 걸 그랬나 보다. 하지만 김유천 비서실장의 조언에 회의감이 든다.

“좋습니다. 국내 상장한 계열사도 있긴 하니까 뭐 그렇다 치지요. 그런데 고작 인터뷰에 불과한데 그거 했다고 주가가 오른답니까?”

“오릅니다. 이건 회장님께서 지금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몰라서 그러십니다. 그리고 해외에 상장한 기업도 오를 겁니다.”

“어째서요?”

“회장님 인터뷰는 그날 다 번역해서 전 세계에 뿌려질 테니까요.”

‘설득력이··· 있어!’

그렇게 해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여기서 없어서 움직였다고 여기면 마음 아프니 살짝 정신승리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절대로 김 실장이 돈 문제로 나를 설득해서가 아니야. 이건 G 크로스의 국내 판매량이 50만대를 돌파했다는 점이 나를 감동하게 해서거든. 심지어 G크로스 구매자들이 데스 아너드와 워쳐를 전부 패키지처럼 사 갔다잖아.’

암시라는 건 놀랍다. 이렇게 몇 번 되뇌니 정말로 그렇게 여겨진다!

그랬다.

예상했던 대로 데들리 스페이스는 그 고어함 때문인지, 공포 분위기 때문인지 썩 한국에서 잘 팔리지 않았다. 두 게임이 50만 장 팔렸다면 데들리 스페이스는 10만 장 정도 팔렸다. 이러한 성원에 나도 응답을 해줘야 할 것이다.

*

창립으로부터 10년도 채 되지 못한 회사가 대한민국 재계 1위까지 올라섰다. 인터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언론사가 넘쳤고 그룹의 홍보팀에서는 개중에 어떤 곳과 인터뷰를 해야 하느냐가 엄청 중요한 회의 주제로 떠올랐다.

“여기 몇 곳 추려보았습니다.”

“몇 곳? 한 곳이 아니라 몇 곳이요?”

“한 곳만 하면 너무 섭섭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우리 그룹의 홍보를 계속 맡아줄 창구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국내 언론사들에 기업 홍보를 맡겼다고 그럽니까?”

“요즘은 꾸준히 광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 라디오, TV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신문 등의 모든 매체에 광고하는 기업은 대한민국에 오성과 GF, 딱 둘 뿐일 겁니다.”

그렇게 진행하는 도중 나는 퍽 우스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GF가 대기업 집단으로 자리를 잡고는 처음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였기 때문일까.

홍보팀 직원들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이번이 처음인 만큼 여기저기 흥분한 기색이 다분했다. 이것이 옷차림에 딱 드러났는데, 인터뷰하는 사람은 나인데도 정작  꾸미기는 직원들이 더 꾸미고 왔을 정도다.

‘아주 패셔너블해졌네. 매번 이런 식이면 우리 회사의 외모 지수는 평균 1등급씩 높아지겠어.’

미국과 한국의 차이인 것도 같다.

미국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아닌 한, 이런 인터뷰가 있다고 특별하게 뭘 하려고 한다거나 그런 게 없다. 그런데 한국은 남자들도 괜히 왁스라도 바르거나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스킨이나 향수를 썼고 여자 직원들 역시 화장 솜씨를 뽐내며 아름다움으로 부장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가족관계가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이 한 분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여동생분이 대한민국 최고 명문에서 수의학과를 올해 졸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동생분이 졸업과 동시에 수의사면허 취득에 성공했고, 바로 병원을 차리기보다는 병원에 취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일반 의사들처럼 대형병원 경력이 중요한 분야가 아닌 만큼 그냥 병원을 차리셨어도 됐을 텐데. 굳이 취업한 이유가 있습니까?”

‘···뭐지? 이 병신은?’

GF 그룹의 총수에게 하는 인터뷰다. 그런데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은 상황에서 한다는 질문이 신변잡기라니. 도대체 이따위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오는 걸까?

‘이건 굳이 나에게 안 물어보고 인터넷에만 쳐도 나오는 건데.’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돌아다녔다.

‘나 인터뷰하러 왔다며? 근데 태희는 왜?’

느닷없이 ‘발언 기회를 한국 기자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해도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지 못하던 어떤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만큼 당황스럽고 황당할 따름이다. 그렇게 생경한 문화충격을 안겨준 기자는 15분간 쓸모없는 질문과 쓸데없는 대답만을 가지고 사무실을 나갔다.

“지금 저 기자의 소속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고려일보입니다.”

한숨이 나온다. 제대로 된 기자들이 활동하는 언론사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활활 타오를 정도다.

“보내는 기자 수준을 보니 알만하네요. 고려일보에는 일 생기면 맡기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기자 들여보내겠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임원 면접도 아니고, 그냥 쫙 모아서 한 번에 하면 안 됩니까? TV보니까 카메라 번쩍번쩍하면서 한 방에 끝내고 그러던데.”

“그러면 각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차이점을 얻어가지 못합니다. 지금처럼 딱 마음에 드는 언론사를 분별하는 것도 못 할 거고요.”

“그건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들여보내세요.”

다음은 석양 일보였다.

우리 직원들만 잘 치장한 게 아니다. 기자들도 패션에 힘을 팍팍 주고 있었다. 외관으로 보이는 노련함이나 노련함 역시 프로페셔널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건 닥 외모만 그랬다.

“부모님의 직업이···”

다음도.

“여동생 분이···”

그다음 기자도.

“수의학과를 졸업한 여동생이···”

‘무슨 컨닝 페이퍼가 있었어? 질문지를 복사 붙이기를 했나?’

두 세 명을 그리 보내고 나니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제 동생을 인터뷰하러 오셨습니까?”

“네?”

“제가 연예인으로 보입니까?”

“아닙니다.”

“저를 인터뷰하러 왔으면 제 인터뷰를 하세요. 괜히 조용히 살고 있는 가족들 들쑤시지 말고.”

부모님이나 동생은 사회에 알려질 이유가 조금도 없는 일반인이다. 그런데 이들은 무슨 의도에서인지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내어 널리 소문내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모양새다.

‘제대로 된 언론인이 있으니까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도 된 건데, 왜 내가 만나는 놈들은 다 이렇지? 게임 분야라서 아직도 우습게 보나?’

총 다섯 곳과의 인터뷰 중 네 곳.

이들이 총 인터뷰 시간 중 70%를 쓸모없는 질문으로 가득 채웠다. 앞으로 이들 언론사들이 GF에서 좋은 광고를 받아가기 힘들어질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입니다.”

“하도 하찮은 대답만 하다 보니 이 짓도 다른 의미에서 지치네요.”

“죄송합니다.”

“김 실장님이 죄송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병신 같을 거, 빠르게 마무리하고 식사나 합시다. 점심부터 든든하게 소고기나 구워보지요. 먹어서 기분 전환이나 합시다.”

그렇게 마지막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회장님께서는 초기에 중국 진출을 통해 많은 부를 얻으셨습니다. 이후 그때 얻은 부를 활용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발판으로 활용하셨죠.”

‘오! 가족으로 시작 안 했어.’

이래서 상대평가는 순서가 중요한 거다. 딱히 마음에 드는 질문이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앞의 순서들이 하향 편중화되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최소한 나를 인터뷰하러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성공 덕분에 국내의 수많은 기업이 이제 아메리카 드림을 버리고 중국몽이라는 부푼 희망으로 중국 진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여전히 물음의 수준은 낮았고 나 역시도 딱 거기에 어울리게 대답해주었다.

“제가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네?”

“다른 기업들. 그것도 나와 관계없는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려는데 그걸 제가 굳이 생각해야 하는 건가 싶군요.”

“그래도 그들이 회장님을 보고 꿈을 꾸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무관하지는 않으니 한 경험자로서의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연결해서 생각하자면, 네 조언은 이렇습니다. 당신들을 말리고 싶다는 거지요.”

“만류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중국은 이미 발전할 만큼 다 했습니다. 요즘 중국의 임금이 얼마나 빠르게 치솟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제는 중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볼 때입니다. 그런데 저를 보고 중국 진출의 꿈을 꾸신다? 매우 높은 확률로 실패할 거라 봅니다.”

“실패할 거라고 단정 지으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다들 알겠지만, 소문이라는 건 말입니다. 듣기 좋은 소식이 내 귀에 들렸으면 이미 늦은 겁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을 수는 없겠습니까?”

“중국이 좋다는 소문이 돌았으면 이미 중국에서 벌 사람들은 다 벌고 자리 잡을 사람은 다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소문이 여러분에게 들렸다면 당신들은 성공자들이 진출했을 때의 중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다른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을 찾으면 늦어도 한참 늦지요.”

“그렇다면 중국에는 이제 희망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니지요. 경영에서 100%로 단언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세상에 다시없을 낮은 확률이라 공언한 복권도 매주 누군가는 당첨자가 나오듯, 실패할 확률이 99%일지라도 어떤 이는 1%를 뚫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성공할 사람? 분명히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전체의 1%이고 사람들 대부분은 99%에 들어간다.

< 꼭 필요한 변화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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