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50화 (450/577)

< 균형감각 >

155. 균형감각

평화로울 때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사업에서도 일이 잘 풀리고 돈이 안정적으로 흐르는 시기에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게임 회사에서 일찌감치 준비해야 할 무기는 무엇일까?

바로 게임 엔진이다.

“김재용 실장님과 김무곤 실장님이 미국에 오셔야겠습니다.”

“네? 그 둘이요? 왜요?”

“우리 엔진을 수정해서 돌려막기 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가 왔습니다. 지금 콘솔에 맞는 더 좋은 엔진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GF 엔진이 개발 된지도 벌써 6년이나 지났었네요.”

그렇다. 세월이 지나며 어느덧 우리 GF 엔진도 구식 엔진이 다 됐다.

우리가 그동안 새로운 엔진 개발에 대해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과대학교 연구소에 꾸준히 물리엔진을 위한 연구를 의뢰해왔고 또, 발전된 게임 사양에 맞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엔진을 부단히 업그레이드 해왔다.

그 덕분에 지금의 GF 엔진과 초기 GF 엔진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이 빨고 보수하여 증축한다고 해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이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나기는 했어. 내가 회사를 만들고 가장 처음으로 직접 추진했던 대형 프로젝트가 GF 엔진이었었는데 그게 퇴물이 될 정도가 되었다니.’

강산이 변하기까지 절반도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당시를 떠올리면 바로 어제처럼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처음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그런 게임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많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비록 국내 개발자들이 해외의 개발자들과 비교하여 부족한 실력이기는 했으나 게임의 완성도에서 그들과 경쟁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 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개발사가 되어 있다.

“회장님.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는데 굳이 그들을 이곳까지 불러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있죠.”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 전에 인수한 하이드 소프트 때문입니다. 하이드 소프트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게임 엔진 개발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FPS의 아버지인 조지 카맥의 회사가 보유한 훌륭한 자산이다.

“그런데 하이드 소프트의 엔진은 원래도 그리 잘 쓰이는 엔진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보통 게임들 보면 하이드 소프트의 엔진을 사용했다고 하는 게임이 거의 없었던 거 같아서 말입니다.”

김유천 비서실장의 말이 맞았다.

“실제로 별로 없습니다. 해당 엔진을 활용한 게임들도 따지고 보면 결국 하이드 소프트와 관련된 회사의 게임이었거나 아니면 그쪽 엔진을 사용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게임을 뜯어보면 완전 새로운 엔진이라고 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저희끼리 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닙니까?”

타당한 지적이다. 하이드 소프트의 게임 엔진은 GF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의 엔진 수준이 높으냐고 질문한다면 단칼에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비싼 돈을 치르며 이 회사를 인수했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엔진을 개발했을까? 저력이 있어서다. 지금까지 소규모의 인원으로 대형 게임사들과 경쟁했던 하이드 소프트의 경험이 GF를 한 단계 더 올려줄 것이라 확신한다.

‘실제로 조지 카맥이 기존의 소수 정예 마인드를 버린 뒤에는 툼 시리즈의 퀼리티가 비약적으로 상승했거든. 즉, 기술만큼은 진짜배기라는 뜻이지. 규모만 확장되면 바로 확 바뀔 만큼.’

하지만 딱 하나는 예외다. 메가 텍스쳐라는 쓸데없는 고집! 그것만 제외한다면 GF에서는 기존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최고의 엔진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메가텍스쳐는 하이드 소프트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그래픽 렌더링 기술이다. 일반적인 텍스쳐들은 각 텍스쳐마다 개별적인 타일로 구분이 되는데, 메가 텍스쳐는 맵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타일로 뒤덮어 버리는 개념이다.

이로써 메모리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조지 카맥의 주장이었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단점이 뒤따른다. 메모리의 압박에서 벗어난 대신 무지막지한 용량의 압박이라는 새로운 난제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제가 볼 때 하이드 소프트의 엔진이 범용성에서 떨어지는 건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자기들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기능을 넣은 엔진이라서 그런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엔진은 뭐가 다르죠?”

“예를 들면, 지금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데들리 스페이스나 서브웨이 2033을 들 수 있겠군요. 보면 어두운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력이 없는 곳에서는 불을 밝힐 필요가 있죠?”

“네.”

“이러면 그 빛을 표현하기 위해 광원 효과라는 게 들어갑니다. 그런데 하이드 소프트의 게임은 이런 게 전혀 필요 없고 엔진에도 그런 기능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이드 소프트의 엔진으로는 랜턴을 만들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냥 기본 그대로 사용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물론 편법을 이용해서 비슷한 느낌을 만드는 건 가능합니다. 4라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 2 더하기 2를 사용하면 참 쉽지만,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이라는 방법으로도 결국 4가 만들어지긴 하니까요.”

“아······.”

“그렇지만 광원과 비슷한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텍스쳐가 아닌 곳에는 무슨 짓을 해도 해당 효과를 줄 수 없다는 단점이 명확히 존재하는 겁니다. 범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이번에 우리가 개발할 엔진은 당연히 그런 부분을 다 잡아내서 개발해야 합니다.”

비로소 이해한 김유천 비서실장이 의견을 게재했다.

“그런 거라면 단순히 엔진 개발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해당 엔진을 이용해서 개발될 게임의 핵심 개발자들도 함께 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좋은 의견입니다. 그들도 부릅시다.”

일단 데스 아너드는 새로운 엔진으로 개발했다가는 너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기존 GF 엔진으로 개발할 예정이니 이건 패스다.

‘그렇다면 배다스 랜드 정도인데··· 이거는 새로운 엔진으로 개발한다고 봐야 할 테고, 몬스터 프레데터스2도 새로운 엔진으로 만들어야겠군.’

그뿐이랴, 드래곤 소울2도 준비해야 한다.

‘넷젠, 크라비티, 팬더그램의 게임들도 개발할 준비를 해야 하려나? 아니야. 크라비티는 일본이 메인 무대라서 아직은 기존 GF 엔진을 다루는 게 나아.’

이제는 오히려 일본보다 중국이 더 높은 사양의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게임 대부분의 매출이 일본에서 나오는 크라비티는 딱히 새로운 엔진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고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넷젠과 팬더그램의 핵심 개발자들이랑 카이저 박스의 핵심 개발자들도 함께 부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돌아갔던 김대익 실장도요?”

“당연히 다시 불러야지요.”

“······.”

“비카미 신지는 아직 샌프란시스코에 있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직접 지시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김재용 실장에게만 이야기할게요.”

엔진 개발에 대한 감독이 누구인지만 정해주고, 그에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전달하면 나머지야 개발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지금도 솔직히 상대가 김유천 비서실장이니까 마치 전문가처럼 설명이 가능했던 것이지 진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대화도 알아듣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나는 방향만 짚어주면 돼.’

실무자들이 척척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무려 회장의 소환이다. 한동안 중요한 직책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었던 김재용 실장은 내가 찾는다는 말에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그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 있던 개발자보다 오히려 김재용 실장이 지금 가장 먼저 내 앞에 자리하고 있다.

‘잘 됐어. 어차피 김재용 실장만 따로 만날 생각이었는데.’

일거리를 빨리 안겨주고 이 골치 아픈 업무에서 얼른 벗어나야겠다. 그 마음을 담아서 얼른 말했다.

“왜 부른 건지 예상은 하고 계십니까?”

“네, 회장님. 저희 엔진을 새로 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엔진을 개발할 때가 지났는데,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 꽤 불안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답입니다. 이제 새로 개발할 겁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새로운 엔진 개발을 위해 불렀다는 대답에 김재용 실장의 표정이 해처럼 밝아졌다. 대체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려왔으면, 사람의 표정이 해처럼 환해졌다고 느낄 정도로 밝아질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엔진을 개발하시려는 겁니까? 전처럼 완전 범용 엔진입니까?”

“이전에는 아무래도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드래곤 소울에 매몰된 엔진으로 개발한 후 수많은 개량을 통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게임을 두고 그것들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엔진으로 개발했으면 합니다.”

“다양한 게임이라고 말씀하시면 어떤 것들 말입니까?”

“조만간에 여러 개발자가 올 겁니다. 그리고 그 개발자들은 전부 만들고 싶은 게임이 다르죠. 이번 엔진은 GF 산하의 모든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엔진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대형 게임 개발사가 자체 엔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해당 회사에 소속된 모든 스튜디오에서 그 엔진만 사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무리 범용성을 위한 엔진을 개발했다고 한들 정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대단한 엔진을 보유한 회사조차 필요에 의해 하나의 게임을 위한 엔진이 제작되곤 한다.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 그럴 수도 있는 거거든.’

기본적으로는 기존 엔진을 활용할 방법부터 찾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일단 게임 개발을 계획하면 GF엔진을 딱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이번에 함께 개발하게 되는 개발자들이 누구입니까?”

“개발은 김재용 실장님이 대표로 맡게 되실 겁니다. 나머지 개발자들은 함께 엔진을 개발한다기 보다는 자신들이 개발할 게임의 특징과 개발에 필요한 기능 같은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오는 겁니다.”

‘별거 아니구나’하는 표정을 지었던 김재용 실장이 이어지는 두 사람의 이름을 듣고 경직됐다.

“대표적으로 탱고의 비카미 신지씨와 하이드 소프트의 조지 카맥이 있습니다. 특히 조지 카맥의 경우는 자기 개발자들이랑 함께 와서 김재용 실장님의 개발을 도울 예정입니다.”

“혹시 조지 카맥이라는 사람이 볼프 슈타인, 툼, 페이크를 만든 그······? ”

“이런. 소식 못 들었어요? 얼마 전에 하이드 소프트를 인수했습니다. 앞으로 함께할 가족이에요.”

“아이고··· 회장님! 저 못합니다. 이건 진짜 곤란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워낙 유명한 개발자이기 때문에 놀라고 있다 생각했는데, 점점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왜 그러십니까?”

“조지 카맥이라는 개발자는 진짜 고집 세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입니다. 그런 이가 제가 원하는 대로 엔진을 개발하도록 둘 리가 없습니다.”

“괜찮아요.”

“혹시 미리 약속이라도 받아놓으신 건지···”

“저는 우리 김재용 실장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

어떤 분야를 보아도 창작자들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에고가 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지 카맥은 그런 창작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에고가 강력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김재용 실장의 입에서는 한숨이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럼. 김재용 실장님. 파이팅.”

“회··· 회장님. 어디 가십니까?”

“오늘로 엔진 개발에 대한 모든 권한은 실장님에게 드린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에 남아있으면 오히려 불편해지겠죠? 그러니 파이팅입니다.”

“아닙니다. 파이팅이라니요! 전혀 안 불편합니다. 같이 있어 주세요!”

“에이. 실장님이 안 불편하더라도 다른 개발자분들이 불편하겠죠. 그럼. 모쪼록 파이팅.”

“회장님? 회장님!”

드디어 정말 오랜만에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김재용 실장은 그 찬란했던 과거를 잊고 금방 나락으로 떨어졌다.

< 균형감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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