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수 >
그렇다면 시스템적으로 이 부분을 해결해주는 게 선결과제다. 나는 조금 전에 내보냈던 김유천 비서실장을 다시금 불렀다.
“우리 인터넷 스트리밍에 G 크로스로 실시간 방송을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패치를 제작했으면 싶습니다. 시일이 대략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발자가 아닙니다.”
‘아차.’
너무 편하고 뭐든 말하면 다 대신 일해주는 사람이라서 내가 깜빡했다.
“그럼 관련 부서에 연락해서 언제까지 가능한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북미의 게임 스트리머 중 입담이 좋은 사람을 한 명 섭외해주세요. 굳이 순위가 높거나 시청자가 꼭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되도록 비속어를 쓰지 않으면서 입담이 좋은 정도면 됩니다.”
“네, 찾아보겠습니다.”
시청자가 많다면 이점이 크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태동하는 인터넷 스트리밍 문화에서 벌써부터 엄청난 비속어를 사용하는 스트리머를 밀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30대라서 그런지 미래의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은 영 적응하기 힘든 불편한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부모님 안부를 묻는 건 기본으로 칠 정도의 험악한 표현들이 되도록 적었으면 좋겠다.
지시사항들은 단 하루 만에 해결됐다. 적당한 스트리머를 찾아서 그와 계약하고 G크로스로 방송까지 할 수 있도록 설비를 끝냈다. 이럴 때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참 뛰어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김유천 비서실장이 찾아낸 해당 스트리머는 미국에서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스트리머였다. 절제되어 있지만 나름대로 좋은 입담을 보유한 이였으니 내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셈이다.
‘이름이 Dr.데저트 스펙터? 너무 긴데.’
아무렴 어떠랴. 이름이 길건 짧건 일만 잘해주면 그만인 것을.
오늘부터 이 스트리머는 G 크로스의 파트너 스트리머로 선정되어 하루에 두 시간씩 주 3회 이상 G 크로스의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대신 합당한 수고료를 받는 것이 계약이었다.
“어디 얼마나 잘 플레이하는지 볼까?”
최초의 G 크로스 파트너 스트리머의 방송이다. 못하면 적당히 시청자인 척 조언도 해주고 미션도 걸어주면서 보너스도 안겨줘야겠다.
*
러셀 타일러.
현재 닥터 데저트 스펙터라는 이름으로 게임 스트리밍을 하고 있는 그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전율하는 게임계의 태풍! 대 GF 그룹에서 직접 파트너십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요구 조건도 마음에 쏙 들었다. 재밌기로 정평이 난 GF의 게임을 G 크로스로 주 3회 방송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달 1,000달러를 지원받기로 했으니 즐기면서 돈을 버는 꿈같은 바람을 드디어 이룬 셈이었다.
“나도 이제는 당당히 취직한 거라고!”
그동안 방구석 폐인과도 같은 대우를 받던 러셀 타일러. 이제 그는 당당히 스트리머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들뜬 기분에 따라서 방송을 준비하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송 시간이 되자 쾌활하게 웃었다.
- 오! 닥터가 오셨다!
- 닥터의 방송 오늘도 기대합니다!
- 오늘은 어떤 방송을 하실 예정인가요?
“여러분 축하해 주세요! 제가 이번에 GF그룹과 협력하는 파트너 스트리머로 선정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틀린 말이었다. 그가 맺은 계약은 G 크로스와의 파트너십이지 GF 그룹과의 파트너십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러셀 타일러가 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마도 조만간에 GF 그룹에서 이 부분에 대한 것들은 멘트 정정을 요구하게 되겠지만, 큰 부분에서 틀린 것이 아니니 후일 이 부분을 수정해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오! 뭔진 모르겠지만! 잘됐네요!
- 이야! 역시 GF 그룹! 사람 볼 줄 아는 회사야!
- 그럼. 내가 그동안 우리 닥터를 사람들이 너무 안 알아줘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드디어 빛이 생길 모양인가 보네.
- 미묘해. 뭔가 나만 아는 스트리머가 이제 모두가 아는 스트리머로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참 잘 됐다 싶으면서 아쉬운 마음?
- 그래도 축하합니다.
비속어가 없는 방송이었던 만큼 그의 시청자들 역시 과장된 표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표현의 수위가 차이 날 뿐, 함께 기뻐해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들 이렇게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한동안 G 크로스의 게임을 해보려고 합니다.”
- G 크로스? 콘솔 게임인데, 그거도 방송이 되나요?
- 그러게. 지금까지 그런 방송은 없지 않았나?
“그쵸? 없죠? 그런데 제가 누구입니까? 대 GF 그룹의 파트너 스트리머가 아닙니까?”
- 오오! 설마!?
“맞습니다. 바로 오늘! GF 그룹에서 G 크로스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설비를 다 맞춰주고 갔어요. 즉, 저는 가능하다 이겁니다.”
- 오! 굉장하다!
- 그럼. 오늘 어떤 게임 하나요?
- 저 G 크로스 없어서 G 크로스 독점 게임 진짜 궁금했는데.
“하하하! 기대 많이 해주세요. 그럼 최신작인 데들리 스···”
막 멘트를 하던 그의 눈에 똑같은 단어들이 보였다.
- 워쳐도 하나요?
- 워쳐 좋다. 워쳐.
- 명작 중에서도 명작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 에이 아니지 지금은 데들리 스페이스가 핫 한데. 그걸 해야지.
- 아니죠. 데들리 스페이스는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기왕이면 먼저 나온 것들을 우선 해보고 그 후에 데들리 스페이스를 하는 쪽이 낫죠.
- 워쳐 보고 싶어요!
- 워쳐로 가자!
열띤 반응에 잠시 생각한 러셀 타일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데들리 스페이스를 하려고 했었는데, 워쳐를 더 좋아하신다면 이걸 하는게 맞지. 게다가 이것도 G 크로스의 게임이잖아.’
메시지 전달 중에 일어난 작은 실수가 말미암은 사고였다.
궈쩍? 회장이 G 크로스의 파트너를 찾고 지금 러셀이 방송을 켜기까지 30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듯이 이루어진 계약이었던 것이라서 데들리 스페이스를 플레이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걸 놓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러셀은 윤태식 회장이 스트리머를 찾아 계약한 의도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스트리머는 결국 방송의 시청자들이 말하는 의견을 외면할 수가 없다. 당장 채팅창을 확인했을 때, 데들리 스페이스보다는 워쳐 쪽을 원하는 채팅이 훨씬 많으니 러셀은 당연한 판단을 내렸다.
[그럴까요? 원래는 저도 데들리 스페이스를 생각했는데 여러분의 의견을 보니 워쳐를 먼저 하는 것도 좋겠어요. 자! 그럼 워쳐로 가보겠습니다!]
흥겨움을 한껏 담은 그의 게임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Dream_Player’라는 이름의 시청자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나갔다.
*
헛웃음이 나온다.
“워쳐를 할 줄이야. 이건 진짜 생각지도 못했어.”
실소가 멈추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신작 게임을 외면하는 스트리머가 있을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워쳐가 걸작이기는 하지만 그쪽은 데들리 스페이스에 비하면 김빠진 콜라와도 같다.
‘너무 급하게 진행해서 그런가? 저런 녀석이 걸릴 줄이야. 입담은 둘째 치고 콘텐츠 선택하는 걸 보면 크게 되긴 그른 녀석이야.’
대관절 생뚱맞게 왜 워쳐를 골라서 태연하게 플레이하는지 처음에는 궁금했었다. 그러나 김유천 비서실장을 통해서 계약 내용을 확인한 결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후원하는 식으로 데들리 스페이스를 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만··· 왠지 저 녀석한테 내 돈을 주기는 아깝단 말이지.”
돈은 넘치도록 쌓았다. 아닌 말로 1만 달러씩 시원하게 쏘면서 ‘워쳐 말고 데들리 스페이스 합시다.’라고 하면 러셀이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돈 낭비를 할 바에는 다른 이와 조항 하나를 빠뜨리지 않는 신규 계약을 맺는 편이 훨씬 나았다.
‘김 실장한테 또 주문하는 것보다는 직접 찾아보자.’
그리 생각하고 게임 스트리머를 쭉 훑고 있을 때였다.
[아! 대장!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알버트처럼 불쑥 찾아온 에밀리가 심통 맞게 빽 소리 질렀다.
‘얘는 어릴 때는 그래도 귀엽게 ’대장‘거리면서 나름 말투도 조심스럽고 그러더니 이제는 완전 다 내려놨네?’
하여간 당찬 소녀다. 나는 웃으며 조카한테 하듯 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뭐가 그리 억울해졌어?]
[아니. 처음에 나 데리고 올 때는 막 GF에서 하는 것들 다 시켜주고 할 것처럼 그러더니, 라이언 맨에도 내 배역은 없다 그러고!]
‘실제로 없는 걸 왜 나한테 그래?’
[영화는 그렇다고 치자고요. 근데 게임은요! 알버트 그 아저씨보다 원래 내 영역이었잖아요. 근데 왜 나는 아무것도 안 시켜줘요?]
‘데들리 스페이스 같은 게임을 너 같은 꼬맹이한테··· 가 아니네?’
툴툴거리는 그녀의 말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 16살의 어린 꼬맹이였던 에밀리도 이제는 성인이 되었다.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무려 23살이다. 그런데 7년이나 본 탓일까, 다 큰 여자라기보다는 마냥 어린 꼬마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데들리 스페이스 때는 에밀리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게··· 이번 게임은 워낙 연령대가 높은 캐릭터들로 채워져서 그랬어. 위로라나 캘리를 보면 알 수 있잖아?]
[그럼 스트리밍은요!]
[응?]
[그거라도 나 시켜줘요! 자꾸 따돌릴 거예요?]
[너, 그게 뭐 하는 건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왜 몰라요. 나도 그런 거 방송 다 보고 그러거든요? 사람들하고 소통하면서 게임을 하면 되는 건데 그걸 왜 몰라요? 대장은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하나도 모르겠지만, 나 어려서부터 게임에 관련된 일을 하도 하고 여기서 크다시피 해서 게임도 엄청 잘하거든요?]
‘모르긴. 내게 네 팬인데 다 알고 있지. 생각보다는 딱히 게임을 잘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도.’
최대한 그녀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단어를 골라가며 변명하려고 했다.
‘근데 어차피 게임을 잘하는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거든. 비속어도 덜 쓰고 인지도도 있으···면···서? 어라?’
손가락을 꼽으며 조건을 다시 따져봤다. 그 결과 에밀리만큼 딱 맞는 인물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밀리라면 요상한 인터넷 신조어를 구사할 이유도 없고 전성기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그녀 역시 할리우드의 무비스타다.
인지도? 러셀 정도는 씹어 먹을 정도다.
최상위권의 그 어떤 스트리머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 하겠다. 모든 조건에 딱딱 들어맞는 최상의 인재인 셈이다.
딱 하나만 제외하면!
[너, 근데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는 알고 하겠다는 거야? 이거 엄청 무서운 거거든.]
[피-! GF에서 만든 게임인데,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요? 게다가 자꾸 꼬맹이 취급하는데 저도 어른이라고요!]
‘얘가 은근히 담이 큰가 보네.’
그럼 잘 됐다.
[좋아. 그렇다면 한 번 해보자. 스케줄은 언제 돼?]
[진짜요? 진짜 내가 해도 돼요?]
[안 될 게 뭐 있어. 나야 에밀리가 해준다면 고맙지.]
[예~! 역시 우리 대빵!]
에밀리는 최근 영화 촬영 스케줄이 끝나면서 놀고 있다고 한다. 데들리 스페이스의 새로운 배우니 뭐니 하면서 떠들썩했던 게 언젠데 왜 이제 찾아왔냐고 핀잔하니 뉴욕에서 촬영하느라 당장 쫓아오고 싶었는데 이제야 온 거라며 외려 속상해했다.
그렇게 우리는 유명하면서도 요구 조건이 까다로운 스트리머와 함께하게 되었다.
[이게 뭐야? 막 라디오 방송 하는 거 같은 디테일이잖아요. 너무 칙칙해요! 스튜디오를 좀 막 여성스럽고 블링블링 사랑스럽게 꾸며주면 안 돼요?]
[아니. 뭐 방송을 얼마나 한다고 그런 장식까지 하고 그래. 그냥 대충해. 그리고 어차피 화면은 게임 화면이 중심이고 여기는 너랑 의자밖에 안 나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거라면서요?]
[···알았다. 바꿔줄게.]
[의자는 제일 먼저 바꿔줘요. 이 의자 너무 아저씨 의자 같아!]
확실히 태희도 그렇고 여자애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다.
“공주님 방을 꾸며주게 생겼군. 김 실장님. 의자부터 에밀리한테 맞는 거로 구해줘요.”
“네. 공주님께 대령하겠습니다. 색상은 핑크색으로 말이죠.”
말 많은 에밀리 덕에 우리는 집사가 되어 당최 받아들이기 어려운 핑크 룸을 꾸며주었다. 나로서는 동심은커녕 유치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몸서리가 쳐지는데 여자한테는 다른 느낌인가보다.
‘저기서 춤이나 노래를 부르면 몰라. 고어한 게임을 하는데 왜 저리 꾸며 달라는 건지······.’
남자에게 여자란 참 알 수 없는 존재가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러셀이라는 스트리머 대신 에밀리가 방송하게 되었다.
< 실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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