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46화 (446/577)

< 더욱 탄탄하게 >

“이번에는 한국, 미국, 일본의 합작이 되는군.”

워쳐는 그래도 한국에 있는 인력들끼리 개발하기라도 했지, 이건 일본에 있는 인력과 한국에 있는 인력, 거기에 미국에 있는 인력까지 힘을 합쳐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 한편으로는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

데들리 스페이스의 수정을 위해 찾아온 바이셜 게임즈.

[인사들 하세요. 이쪽은···]

[비카미 신지!]

[비카미 신지!]

그곳의 직원들에게 비카미 신지는 딱히 소개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연예인을 본 팬들처럼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더할 나위 없이 크게 환영했다.

[그리고 이쪽은···]

[데이 킴!]

[데이 킴!]

‘엥? 김대익 실장도 알아?’

똑같은 환대가 다시 한번 나왔다. 이는 내게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게임 개발자 중에서 한국인이 이런 영향력을 갖게 되는 일이 지난 미래에 존재하긴 했던가. 어느덧 한국 내에서 최고의 개발자로 손꼽히면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근데 데이 킴이라고 하니 뭔가 외국식 이름 같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영락없이 미국인인 줄 알 것 같다. 어쨌거나 막바지에 뜯어고치려고 부른 인력을 이토록 반겨주니 나로서는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괜히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가뜩이나 시간이 촉박한데 이보다 골치 아픈 일도 없다.

[둘 다 이미 알고 있다니 잘 됐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두 분을 모시고 찾아온 이유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데들리 스페이스를 수정하시려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체 수정이 아니라 일부 수정만 할 것이니까요.]

내 말에 개발진들은 ‘그게 말이 쉽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하다 보면 다 해내게 되어있으니 훗날의 뿌듯함을 기대하시라.

[우리의 과제는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요?]

[회장님. 시간이 얼마 없는데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고 하시면···]

검지를 내보이며 저들의 말을 멈추게 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내가 말하는 시간이지 토론 타임이 아니다.

[첫째. 데들리 스페이스의 조작감을 고치겠습니다. 느린 반응속도와 붕 뜬 것 같은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수정하도록 하세요.]

검지를 편 채 중지를 들었다.

[둘째, 보스전을 중심으로 전투 액션을 다시 잡고 일반 몬스터들의 수준 역시 더 어렵게 수정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정한 것으로 새로운 데모 버전을 만듭니다.]

레드우드의 개발자들은 뭐라 반박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자주 일해본 사람의 반응은 역시 달랐다.

“그럼 세 개잖습니까!”

“에이. 데모 버전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잖아요.”

김대익 실장의 표정이 우는 것처럼 바뀌었다.

“회··· 회장님. 저는 미국까지 와서도 이런 일에 치여야 하는 겁니까? IT의 성지인 샌프란시스코에 왔는데요?”

“제가 언제 일만 하시라 했습니까? 일하시다가 주변 구경도 하시고 관광도 하세요. 시간 안에 게임만 완성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고요.”

김대익 실장의 얼굴에 절망과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는 분노가 담겼다. 한편, 비마키 신지는 나와의 업무가 첫 경험인 만큼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안 그래도 마무리한다고 바빴던 바이셜 게임즈의 직원들은 대대적인 조작감 수정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받고는 거의 거지꼴로 변해갔다.

[회장님 이런 건 어떠십니까?]

[너무 쉬워요.]

무겁고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는 것 같은 불편한 조작감을 개선하는 일은 예상보다 손쉽게 해결됐다. 대신 하나를 해결하니 다른 문제가 부각됐다.

‘원래도 쉬운 게임인데, 조작감까지 좋아져 버리니까 너무 쉬운 게임이 되어버리네.’

지금 이대로 출시된다면 서바이벌 호러가 아니라 그냥 SF 액션 게임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더 어렵게 갑시다. 사지 절단에 대한 판정을 좁게!]

[넵! 확실하게 수정해서 다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친 모습이 역력한 개발자들 가운데, 비카미 신지만이 열정적인 표정으로 대답을 해온다.

[그럼. 믿겠습니다.]

대답하고 돌아서는 데 김대익 실장이 비마키 신지에게 조언하는 게 들렸다.

[그러지 마세요. 시간 단축하면 거기에 맞춰서 달성과제가 높아집니다. 회장님 마음에 들려면 진짜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럼 좋은 겁니다! 더더욱 최고가 되는 거잖아요!]

[이미 최고인데도 자꾸만 높아지는 데 뭐가 좋습니까!]

[오오! 완벽해지는 거군요!]

[아아··· 뭔가 말이 안 통한다······.]

열정과 절망이 오가는 스튜디오.

이곳에서 한국과 일본, 미국 최고의 인력들이 모여서 해나가는 수정 작업은 쾌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2009년 1월!

드디어 진짜 출시할 수 있는 데들리 스페이스를 완성해냈다.

“새로운 데모를 배포합시다.”

전 세계에 데들리 스페이스의 새로운 데모 버전이 뿌려졌다. 수많은 관심을 끌어들인 게임 인만큼 단 하루 만에 데모 버전은 15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면서 엄청난 화제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

【논란 종결의 날! 레이첼 맥클레인의 선택! 데들리 스페이스의 진면모가 공개된다!】

【오는 2009년 1월 9일 데들리 스페이스 발매! 일렉트릭 아트에서 GF로 옮긴 데들리 스페이스!】

【데들리 스페이스의 출연 배우들 게임 출시에 맞춰서 응원의 메시지. 공개.】

【과연 바이로 해저드의 아류작으로 불리는 데들리 스페이스는 그 불명예를 벗겨낼 수 있을까?】

【데들리 스페이스가 발매되면 아류작이라는 논란은 모두 잠재워질 것. 강한 자신감 보이는 GF】

【출연한 게임에 각별한 의리를 보여주는 배우들】

게임 하나에 이토록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바이로 해저드의 아류작 관련 기사부터 EA와 관련된 내용, 할리우드의 유명인사인 알버트, 위로나, 캘리 등의 배우들이 게임에 보내는 응원 메시지, 레이첼과 관련한 SF계의 내가 모르는 이들의 반응 등등 산발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논쟁이 오갔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펼쳐지는 모습이 아니꼬웠던 걸까. 오점이 되는 대목을 발견하고 집요하게 늘어지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이로 해저드와 관련된 부분들이었다.

- 게임이 아류작이면 어떠냐? 표절작도 아니고 그냥 아류작인데. 일단 아류작이라도 위로라와 알버트가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건 다 한 거 아니냐?

- 하긴 알버트가 공학자로 수트 입고 나온다면서? 이거 그냥 라이언 맨 이잖아.

-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해볼 가치는 있다고 본다.

- 근데 글 잘 쓴다고 선구안까지 좋은 건 아닌 듯. ㅋㅋㅋ 고른 게 아류작~

- 라이언 맨은 빔 쏨? 우주에서 크와앙 하고 우나?

본래 일렉트릭 아트에서는 데들리 스페이스의 발매 전에 최대한 바이로 해저드와의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말과 행동 모두에 조심을 더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비카미 신지가 있고, 그들과 달리 우리는 조심할 이유가 없었고 딱히 대응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거하게 어그로를 끈 다음에 시원하게 해결하려는 의도였지. 그런데 배우들이 나서주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됐어.’

내 편이 나타나 줘서 고맙기는 하다. 그런데 배우들과 대모에게 분산되고 어그로가 희석된다는 건 오히려 마케팅에는 방해만 된다. 게다가 이쪽이 희석되는 만큼 저쪽에 지저분한 물이 튀는 결과이니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 됐다.

하지만 본래 인간은 폭력적이고 칭찬보다는 비난을 즐긴다지 않던가.

- 근데 데들리 스페이스 해본 사람? 나만 그런가? 완전 바이로 해저드던데?

- 그냥 똑닮.

- 똑닮은 아니지. 솔직히 조작감이나 액션 같은 건 훨씬 낫더만.

- 바이로 해저드4가 벌써 몇 년 전 게임인데 그거랑 직접 비교를 하냐? 시간이 지났는데 이 정도 발전은 당연히 있겠지.

- 바이로 해저드5도 조만간에 출시한다던데. 이러면 두 게임이 정면승부네?

- 두 게임이 붙으면 데들리 스페이스는 그냥 망한 거지 뭐. 정식 작품과 아류작의 승부인데, 볼 게 있나?

- 그래도 알버트나 위로라 때문에 게임사는 애들도 은근히 있을걸?

- 아니 다들 왜 그런 이야기만 함? 게임 나만 재미있었음?

- 솔직히 아류작이라서 그렇지 게임 자체는 재미있음. 근래에 이만한 게임은 본 적이 없다 싶을 정도의 수작임.

- 그래서 표절 아류작~

원래 여론은 물타기 싸움이다.

처음에는 바이로 해저드의 아류작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때문에 긍정적인 말을 못 하고 그저 그들의 말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재미있다는 댓글 이후로는 ‘아류작이 재미있어서 뭐 하나?’와 ‘이것만의 재미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그게 왜 아류작이냐?’라는 두 부류로 나뉘어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승패는 이미 뻔한 싸움이지.’

비카미 신지가 우리 쪽에 있으니 둘이 싸우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론 의미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비카미 신기에 대한 이야기는 최고 보안으로 숨겨두는 중이다.

그의 공개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함으로 그동안 논란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그의 공개에서 큰 충격을 만들어내려는 계획이었다.

이윽고, 열흘 후.

데들리 스페이스의 정식 발매일이 찾아왔다.

“이야~ 날씨 좋네.”

한국에서의 1월은 가장 혹독한 날씨를 자랑하는 겨울이다. 오죽하면 군대에서도 이 시기에 혹한기 훈련을 하겠는가? 그러나 LA는 ‘그냥 시원한데, 바람이 불면 약간 쌀쌀하다.’ 그냥 딱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활동하기에도 적당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인파가 데들리 스페이스의 발매 행사를 위해 찾아왔다.

저들 중 60%는 GF의 신작 게임 발매 행사로 주어지는 떡고물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을 것이고, 나머지 40%는 바이로 해저드라는 어그로, 배우, 작가라는 요소들에 끌려서 몰려왔을 것이다.

‘이벤트장을 따로 빌려서 하길 잘했어.’

지금까지는 쇼핑몰에서 그냥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이제 규모가 커진 GF의 행사를 쇼핑몰에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이제부터는 우리만의 축제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도 따로 행사장을 빌려서 진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행사는 단순한 데들리 스페이스의 발매를 위한 것이 아닌 GF의 올해 계획 따위를 알리는 축제처럼 진행된다.

- 아. 아. 데들리 스페이스의 발매를 위해서 이곳까지 친히 방문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GF 전체의 행사처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은 당연히 데들리 스페이스다. 그 때문에 현재 무대에는 데들리 스페이스의 메인 디렉터 아이작 밀러가 마이크를 잡았고 그의 옆에는 데들리 스페이스의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세 사람이 무대의 한편을 자리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데들리 스페이스나 공개해라!]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그 근거나 보자!]

[맞아! 맞아!]

원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극성인 법이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목소리는 부정적인 것들이 훨씬 컸다.

- 하하··· 저도 지금 당장 데들리 스페이스를 보여드리고 싶지만, 일단 저희가 먼저 준비한 것들이 있거든요. 그러니 그것들을 먼저 보여드리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데들리 스페이스의 장엄한 음악과 영상을 다 함께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방에서는 바이로 해저드의 팬들이 내뱉는 야유로 가득했지만, 직원들은 그런데도 당황하지 않고 행사를 진행해 나갔다.

준비한 영상은 데들리 스페이스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 중 극히 일부분이다. 짧은 영상으로 방대한 스토리의 시작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게임의 배경이 되는 이타이시호에 괴수들이 왜 침입하게 되었는가는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역시 영상은 기대만큼 해.]

[CG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 투톱인 GF잖아? 오히려 저 정도가 아니면 이상하다고.]

[흥! 어차피 중요한 건 게임이야. 아무리 스토리를 이렇게 잘 꾸며 놓으면 뭐 해? 게임이 표절인데!]

듣는 나로서는 묘한 마음이 드는 소감들이 연신 들렸다. 높은 퀼리티의 영상에 감탄하면서 오히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고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마저도 저 정도는 아예 바탕으로 깔고 들어갔다.

높아진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큰 실망을 안겨줄 게 뻔하니 높아진 위상을 마냥 즐겨야 할지, 참으로 모호한 기분이었다. 어찌 됐건 장내의 사람들은 10분 남짓한 짧은 영상에 감탄했고 그렇게 영상은 끝을 향해 나아갔다.

< 더욱 탄탄하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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