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32화 (432/577)

< 하나 더 >

한국에서 일본까지의 비행은 사실 김포에서 제주로 날아가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김포에서 제주까지의 순수 비행시간이 1시간 10분인데 인천에서 간사이까지의 순수 비

행시간은 1시간 40분이다.

물론, 제주행 비행기는 유류비 절감을 위해서 속도를 조금 천천히 가는 구간이 대부분 이긴 하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비행시간은 고작 30분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니 참 가까운 나라다.

“아들~!”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간사이국제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오는 데 문제는 없었고?”

“문제는 무슨~! 그나저나 외국에 왔는데, 아들이 마중을 나오니까 이거 은근히 기분이 묘하다?”

“오빠! 오빠! 오빠!”

“어. 그래. 사춘기 소녀. 오랜만에 바깥 공기 좀 마시니까 기분이 어때?”

한껏 들뜬 태희의 모습도 정말 반갑다.

“우우우! 사춘기 소녀 아니거든!?”

“알았다.”

태희도 이제 25살이다. 이제는 제법 나이가 찰 만큼 찼지만, 그래봤자 한 번 막내는 영원히 막내다. 마치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겠다는 듯이 볼이 빵빵해질 정

도로 바람을 넣은 여동생을 보니 괜스레 더 기분이 좋아진다.

“미리 차 준비해뒀으니까, 이동하죠. 일단 호텔에 짐 풀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자연스럽게 말하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이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 중에는 밥, 식사, 맛있는 거가 대부분일 거라고 말이다.

근데 뭐 어쩌겠나?

원래 한국인들에게 밥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만약에 진짜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그냥 그 거짓말 자체가 지옥에 들어갈 사유라면 한국인들은 전부 지

옥에 갈 거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지옥에 들어가는 사유는 이거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것.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 말이거든.’

오죽하면 한국에 들어와 있는 보르타 게임즈의 직원들은 김강철 사장이 툭하면 내뱉는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 라는 말 때문에 언제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최적의 타이밍일

까? 라는 고민을 직원들이 단체로 했다는 사건마저 있었을 정도다.

이 외에도 한국에는 밥에 관련된 것들이 참 많다. 만났을 때에는 ‘밥 먹었니?’이고 헤어질 때는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고 하며 화가 났을 때는 ‘콩밥 먹게 해줄까?’라고 하듯이

말이다.

심지어 개차반이라는 단어는 ‘개가 먹는 밥’을 말하고 밥보라는 말의 유래 역시 ‘바보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밥만 축낸다.’라는 말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게 다 고맥락 사회 문화권이라서 그런 거라더라.’

고맥락 사회는 말 그대로의 의미보다 당시 상황에서의 함축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농경사회와 같이 한 곳에 하나의 문화로 오래 정착한 곳이나 구성원 간에 공

유하고 있는 바가 많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언어 습관이다.

‘밥 먹었니?’라는 인사하나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밥 먹었니?’에는 ‘누가’라는 주어가 빠져있다. 굳이 이런 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는 전

제가 깔린 것이다.

이런 고맥락 사회와 워낙 농사의 효율이 떨어져서 굶는 일이 많았던 보릿고개 시절과 같은 것이 겹치면서 한국의 자연스러운 언어 습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갑자기 내가 이런 뻘 생각에 심취한 이유는? 내가 밥 얘기를 자주 하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문화 탓이다, 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지. 하하하하!’

듣는 사람도 없건만 이렇게 혼자 놀아볼 때도 더러 있다.

“맛있는 거? 어떤 건데? 뭐 먹을 거야?”

조금 전까지 볼을 부풀리고 있던 태희는 맛있는 거라는 말에 금방 표정이 풀어졌다. 툴툴거림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부푼 볼을 손가락으로 눌러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있지!”

“뭐? 말만 해. 뭐든지···”

“빵!”

“에이··· 태희야. 부모님도 계신대 빵보다는 고기가 좋지?”

“면!”

“고기 먹자. 와규 먹자.”

“아! 오빠는 맨날 고기만 먹어!”

인간은 자고로 육식동물이란다.

“근데 진짜 빵 안 먹어? 오사카는 빵의 성지란 말이야! 빵지 순례한다고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랑하고 왔는데에!”

“알았어. 갈게. 간다고.”

“아자!”

떠들썩하게 오사카 최고의 호텔 스위트룸으로 이동했다. 그러며 태희는 내게 메모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데?”

“뭐긴~! 우리 가족의 알찬 일본 여행을 위해서 착한 여동생이 이렇게 여행 계획을 준비해온 거지~”

방에 짐을 풀어두고는 처음 하는 일본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마음껏 드러낸 태희.

동생이 적은 메모는 빼곡하게 글씨로 가득했다.

‘고작 하루 만에 이런 걸 알아보고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거냐? 무슨 과제물 제출하듯이 일정을 적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자와 남자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 같다.

‘맙소사. 여행 계획이 너무 빈틈없어. 전투적이라고.’

「기타노이진칸, 난킨마치, 모자이크, 청수사, 아라시야마, 우메다 공중 정원, 오사카 성(천수각불은 꼭 봐야 함.), 신사이바시와 도톤보리, 동대사 사슴공원, 글리코맨에서 사진

찍기. ‘오사카 빵!’」 등등이 적혔는데 특히 오사카 빵은 거듭 강조되어 있었다.

“오빠가 준비한 스케줄이 더 편하지 않을까?”

“흥! 오빠가 준비하면 지난번 호주에서처럼 하는 것도 없이 있다가 이상한 거 몇 개 하고 끝이잖아.”

“하는 게 없었다니? 그게 얼마나 비싸고···”

“그래~ 그냥 비싸기만 하고 정작 중요한 관광지는 한 곳도 안 가는 여행~ 하여간 오빠는 여행을 몰라. 이번에도 또 그렇게 계획했지?”

‘···고 여사의 피가 흐르는군.’

이 녀석.

아주 예리하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게 가장 합리적인 소비였다. 자고로 뭘 모를 때는 그냥 명품을 집는 게 중간은 가는 구매 방식이다. 그러니 부자가 된 만큼 비싼 것을 고르면 중타는 칠 것이

다. 그러나 태희의 말과 계획표를 보니 내가 실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알았어. 그런데 내건 너무 없고 네건 너무 많아. 그러니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괜찮다고 하시는 곳들로 가자. 방해는 전혀 안 할 테니까 설득은 태희 네가 직접 하고.”

“진짜?”

“물론이지. 누가 알겠어? 놀라운 로비력으로 이걸 몽땅 성사시킬지?”

“헤헷. 믿어보셔~”

자신감 있게 나오지만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아버지와 나는 판박이다. 그냥 먹고 즐기면 되지 계획적으로 노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반면에 어머니는 다르다. 효율적이며 절제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시는 분이다. 그러

니 태희의 계획표에서 절반 이상은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고 여사님이 말씀하셨다.

“좋네~! 우리 딸 계획도로 하자!”

“아자!”

‘엥? 아니, 어머니가 변하셨다?’

태희의 계획대로 여행 일정이 결정 났고, 나는 4박 5일간 쉴 틈 없이 다니게 되었다.

“여자들 체력은 진짜 모를 일이구나.”

“네, 아버지. 진짜··· 아이고.”

“또 부른다, 또 불러.”

“네~ 네. 갑니다요, 가!”

참으로 이상하게 분명히 휴가이고 여행이었는데 강철같은 내 체력이 고갈될 만큼 무진장 힘든 시간이었다.

대신 추억은 한 보따리가 생겼다.

*

여행 일정을 마치고 간사이공항에서 가족들을 마중했다. 그리고 돌아서 내 짐을 챙기는데 5일간 보지 못했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회장님도 지금 인사 마치고 돌아오시는 겁니까?”

“김 실장님도 그러신가 보군요. 그런데··· 야근이라도 하셨나 봅니다. 안색이 엄청······.”

휴가가 아니라 철야를 한 모양이다. 그는 기운이 쪽쪽 빨려서 메마른 것 같은 몰골이었다. 김유천 실장의 입에서 초탈한 듯한 헛웃음만 나왔다.

“회장님께서는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기타노이진칸에 난킨마치에 우메다 공중 정원··· 무슨 여행 계획을 그렇게 꽉꽉 채워왔는지.”

주마등처럼 기억이 스치는지 그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나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태희 덕분에 기차를 타고 걸어 다니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라는 소

리를 들으며 굳이 5일간 30㎞는 족히 걸어 다녔으니까!

‘어머니께서도 그리 강철 체력을 발휘하실 줄은 정말 몰랐지.’

밥 먹는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는 여자들의 위처럼 그녀들은 일할 때 쓰는 체력과 여행할 때 쓰는 체력을 나눠서 보관하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원기회복을 할 겸 우리는 다시 일하러 갑시다.”

“네, 회장님.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미국에 갑니다.”

대공황.

세계가 충격에 휩싸이는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

때는 2001년.

내가 아직플레지를 하면서 게임 머니를 팔아 돈을 벌고 있던 그 시절의 일이다.

미국의 수많은 투자자가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투자처로 미국 국채를 이용해 투자 수익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미국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금융 정책 기구. 우리로 치면 한국은행)는 이러한 투자 방식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러던 2001년의 어느 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인 앨런 그리스펀은 한 연설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연방준비제도의 산하 위원회) stands prepared to maintain a highly accommodative stance of policy

for as long as needed to promote satisfactory economic performance」

직역하자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경제적 상태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절 가능한 정책을 펼칠 준비를 할 것이다.’의 의미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자면 ‘이제는 너희가

미국 국채로 손쉽게 돈 따먹는 거 못 봐주겠으니까 딴 곳으로 꺼져!’와 같은 소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연설에서 말한 것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앨런 그리스펀의 연설 이후로 수많은 투자 은행과 펀드 매니저들은 이제 미국 국채를 떠나서 새로운 안전하면서 소득이 높은 투자처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찾아낸 것이 바

로 부채담보부증권이다.

무려 40%라는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고 채무자의 90%가 성실하게 갚아나가고 있는 부채담보부증권은 미국 국채를 떠난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그리고 집을 담보로 하는 대출이라는 것은 애초에 대출을 갚지 않으면 노숙자가 되어야 하는 대출이었으니만큼 대출을 갚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었

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부채담보부증권은 매우 견실했고 꾸준한 수입과 안정성을 동시에 보장했다.

‘더 이상 프라임 대출을 받을만한 사람이 고갈되기 전까지는.’

2003년경이 되자 미국에 존재하는 프라임 대출이 가능한 대상자들은 전부 이미 모기지를 받고 있거나 혹은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었다. 그러자 수익을 더 늘

릴 욕심이 생긴 투자은행은 새로운 고객들을 물색했고 그렇게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탄생했다.

재앙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참고로 서브 프라임 등급은 이름과 달리 프라임 등급의 바로 아래 단계가 아니다. 프라임의 바로 아래 단계는 알트라는 단계로서 ‘프라임 등급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을 떼

먹힐 확률은 낮은 등급’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브 프라임은 ‘아무래도 돈을 떼먹힐 확률이 높은 고위험 등급’을 뜻했다.

신용 등급은 대출자에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담보 그 자체에도 신용 등급이 들어가게 되는데 언 랭크부터 AAA까지 대충 7개 정도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대형 투자 은행은 이중 AAA 등급의 건물에만 법적으로 대출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AA의 상품에는 대출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은 ‘AAA 조금,

AA 조금, A 조금.’의 방식으로 섞어 하나의 AAA 상품으로 묶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부채담보부증권이며 이로써, AAA만이 아니라 B등급에도 대출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미국은 부동산 버블과 함께 서브 프라임 대출이 급부상하게 되었고 이것이 돈이 된다는 소식을 들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돈은 미국은행으로 몰렸다.

‘여기서 미쳐버리지.’

더 많은 투자금을 확보한 은행!

그들은 이제 대출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기준 자체를 없애버리는 정신 나간 짓을 벌이고 말았다.

그냥! 아무 기준도 없이!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산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대출을 해준 것이다. 오죽하면 오하이오주에서는 23명의 이미 죽은 사람이 대출을 받았을 정도다.

사망자의 명의를 도용해서 손쉽게 돈을 타낼 만큼 절차가 없다.

이쯤 되면 상황은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부채담보부증권으로 한창 돈의 맛을 본 뉴욕의 금융사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더욱 돈을 벌 수 있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이름하여 신용파산스와프!

대출은 기본적으로 신용을 기준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신용이라는 것은 언제나 파산의 위험이 따르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그 위험에 보험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부도가 발생하여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한 금융 파생상품이지.’

아무리 섞어도 AAA로 묶지 못하는 건물이 생기는 법.

이럴 때 신용파산스와프는 그들에게 보험을 들어줌으로써 A등급을 단숨에 AAA로 둔갑시켜버리는 마법을 발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국의 신용파산스와프 규모는 무려 60

조 달러다. 한화로 계산하면 7경 7,100조로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으아아아!]

여기까지 말했을 즈음, 비버리힐즈의 저택에서 한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머리 아파! 난 이렇게 머리 아픈 이야기는 질색이라니까?]

오랜만에 만난 나이를 초월한 친구, 알버트였다. 그는 요즘 할 일이 없다면서 내 옆에서 계속 죽치고 지내는 중이었는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궁금해하더니만, 정작 설명을 듣

게 되면서부터는 세상 다시없을 고문을 받는 어린 양이 되고 말았다.

< 하나 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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