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30화 (43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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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야. 같은 사람인데 뭔 대화가 이렇게 어려워?’

한국 기준으로는 온갖 미신이 넘쳐나는 나라라서 그런지 오컬트적인 예언과 꿈에 급속도로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내가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논리를 몇 단계 건너뛴 저 말이 사실 진

짜라는 점 때문이다.

‘내가 미래의 꿈을 꾸기는 했거든.’

이제는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정말로 꿈을 꾸었고 관련된 기사들을 꿈에서 보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신비한 꿈에 특별한 능력까지 덤으로 얻었으나 워낙 위기가 없어서 쓸

일이 없기는 하고 말이다.

“아무튼,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안이요? 어떤 제안을···?]

“GF의 품으로 들어오세요.”

[회장님께서는 저를 스카우트하시려 이곳에 오신 겁니까?]

일종의 자회사를 만들어서 거기에 앉히려는 거니까.

“스카우트라··· 스카우트라면 스카우트긴 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거로 생각했는데 딱히 저 단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게임 개발자로의 삶이 끝났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보다는 여기 이 친구를···]

[아닙니다, 선배. 우리는 함께···]

‘1절만 해! 1절만!’

비카미 신지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게임 개발자의 길을 은퇴했더라면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다. 원래 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서 결국 투자를 얻어내고 그렇게 또 회사를

차린다.

‘뭔 문제가 생겼는지 거기서도 금방 뛰쳐나오게 되지만.’

이유까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비카미 신지는 그렇게 뛰쳐나온 후, 또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하는 오뚝이 같은 사내였다. 그리고 마침내 디 이블 워든이라는 걸출한 호러게임을 만들어 새로운 프

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이런 사람이 게임 개발자로의 삶이 끝났다고 하는데 내가 어찌 믿겠는가. 신파극이나 계속 찍으려 들고!

‘아무튼, 대충 어떤 캐릭터인지 알았으니 나도 당신에게 맞는 화법을 해주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말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당신이 여기까지였다면 제가 찾아오지 않았겠죠. 전 세계의 게이머들은 여전히 당신의 게임을 사랑하고 여전히 당신의 게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는 했으나, 비카미 신지는 일본의 수많은 게임 개발자 중 손에 꼽히는 매력적인 개발자가 분명하다.

우선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찍어내기’에 있다.

한국에 맥슨이 있다면 일본에는 케코가 있다. 둘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좀 너무하는 것이 될 수 있겠으나 어찌 됐든 두 회사는 돈이 되는 것의 냄새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케코에서 하나의 성공이 보장된 작품이 있는데 그걸 활용해서 추가 수익처를 만들어 낼 생각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당연히 케코는 바이로 해저드라는 IP를 활용해 게임을 지속해서 찍

어냈고, 또 그것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찍어내기는 이것과 같으면서도 또 조금은 다른 이야기다.

‘센스가 있거든.’

내가 언급한 찍어내기는 바이로 해저드와 다이노 크라이스 같은 게임을 말한다.

1998년, 바이로 해저드라는 걸출한 게임이 등장하고 이 게임은 전 세계에 580만 장 판매라는 엄청난 성공을 이루어 냈다. 비카미 신지는 이 성공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바로

이미 완성된 게임인 바이로 해저드2를 활용해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게임이 바로 다이노 크라이스다. 바이로 해저드에서는 바이러스로 만들어진 좀비가 등장하지만, 이 다이노 크라이스에는 공룡이 등장한다는 정도의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같은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두 게임은 닮았다.

그러나 이미 바이로 해저드라는 게임에 맛을 들인 게이머들은 이후. 또 비슷한 것을 느끼길 원했고, 이 게임은 그런 게이머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맞추어 주면서 240만 장이라는 굉장한 판매

고를 올리게 된다.

하나의 잭팟을 활용해서 추가 잭팟을 만들어낸 것!

내가 그를 매력적이면서도 센스 있다고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뿐이겠어? 다이노 크라이스 개발을 통해서 또 여러 개발자를 발굴해내고 키워내는 것에도 성공했지.’

역전 법정 시리즈의 그 타케시 슈가 바로 이 다이노 크라이스를 통해 발굴된 디렉터였다.

이렇듯 비카미 신지는 이런 부분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즉, 그가 함께한다면 GF는 부족한 타이틀을 쉽게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되고 그로 인해 걸출한 개발자들이 꾸준

히 나타나면서 오랜 시간 사랑받는 게임사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이후에도 GF가 계속 성공하는 게임을 만들 최고의 토양이 되는 거야.’

이를 위해서라도 비카미 신지는 내게 꼭 필요한 인재다.

[회장님.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제안을 듣고 깊게 고민한 그가 진중하고 무겁게 되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동안 저를 원한 게임 개발사들은 꽤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꽤 잘나가는 개발자였으니까요.]

자조 섞인 목소리.

그러나 아까처럼 열패감에 찌든 그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를 원하는 게임사들에 저는 늘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께도 그 물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세요.”

[회장님이 가지고 계신 게임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처음이었다면 제법 고민했을 테지만, 나는 빌 게이트와의 대답을 통해서 이 물음의 답을 찾은 상태였다.

“행복입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게임을 하면서 행복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지독한 호러게임이라서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비명을 지르면서 플레이를 할지라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게임이라 엔

딩 이후 눈물을 흘리고 절규를 할지라도 게임은 결국 게이머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내 철학이다.

[행복이라는 말만으로는 정확히 회장님의 생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많은 게임사들에 질문을 했다고 말씀드렸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선 소미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의 엔진. 그것은 무궁한 미래의 엔터테인먼트를 품고 있고, 자신들은 그것을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할 것이라고요. 닌텐

두의 미야모토는 게임이라는 것은 결국 아이와 어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난감이라고 했습니다.]

아까까지는 소년물을 찍던 사람이 게임관에 대해 말하니 무섭도록 진지해진다.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난감이라. 그것도 좋네. 그런데 소미의 대답은 저걸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그냥 자기들의 포부를 말해 놓고서는 철학이라고 우기는 것처럼 들린다.

“신지씨.”

[네.]

“저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그게 어떤 게임이라도 당당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게임을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게임은 그런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렇습니까?]

“게임이라는 게 뭘까요? TV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그것을 향해 손가락질했어요. 왜? 아이들의 학습을 방해하니까. 그들이 받던 비난을 지금의 게임이 받는 셈입니다.]

나는 열정 가득한 그에게 만화 같은 대답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역시, 뭐든지 하면 할수록 느는 법이다.

“저는 게임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의 학습을 방해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며 미래 발전의 장애물이 아닌 게임.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이 꿈꿀 수 있고 미래가 되어주

는 그런 것 말입니다.”

[···지금껏 들어 본 대답 중에 가장 아름다운 대답이네요.]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면 참 다행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영화라는 건 종합 예술이라고. 그 안에는 영화를 위한 스토리가 들어가고, 음악이 들어가고, 연기가 들어가죠. 영화라는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종합예술이지요.”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와 게임의 차이가 뭘까요? 저는 게임이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철학은 행복입니다. 해당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아! 훌륭한 대답 감사합니다. 사실 이 질문을 드릴 때는 보통 거절을 위해 질문을 드리는 거였는데··· 역시 윤 회장님입니다. 아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대답을 들어버렸네요. 피할 수가

없어! 피할 수가 없구나!]

‘···텐션 진짜 확확 바뀌네. 막판에 와서 갑자기 또 소년 만화냐?’

어쨌거나 목적은 달성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조금 전의 질문 하나로 비카미 신지는 마음을 완전히 굳힌 것 같다. 나 스스로 그를 설득할 방법을 고민했는데, 애초에 이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설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어진 실패와 절망을 통해 잃어버렸던 에너지!

열정을 살려줄 동기! 오직 그것이 필요했을 뿐이다.

“게임 개발사를 만들 겁니다.”

[어떤 게임을 만들 계획입니까?]

“말했잖아요. 행복한 게임이라고.”

[범위가 너무 방대합니다. 제가 드린 질문은 RPG, 액션, 호러와 같은 것들···]

“그거야 신지씨가 결정할 문제죠.”

[네?]

“어떤 게임을 개발할 것이냐는 총괄 프로듀서가 생각하고 결정할 일입니다.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그 말에 그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제가 자유롭게 만들고 싶은 게임을 그냥 개발하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보르타 게임즈나 폴란드의 CDPRed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거기는 그들끼리 개발하는 게임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어서 GF라는 울타리를 지어주고 범위 안에서 게임이 개

발될 수 있도록 제어했다.

반면에 이 남자는 다르다. 그는 비카미 신지다!

‘내가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것을 보고 GF에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편이 훨씬 나을 정도의 인물이지.’

[이렇게 믿어주시다니······.]

아마도 지금까지 이런 제약 없는 조건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이의 속마음을 알 수 없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약을 통해 견제수단을 마련하고 조건 없이

믿어주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면서도 살아가며 겪기 어려운 진귀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미련하게만 보이는 어려운 일을 나는 확신 있게 할 수 있다.

‘미래를 아니까.’

이것이 바로 아는 자의 여유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떤 기기로 준비를 하실 건가요?]

“요즘 정신이 전혀 없으셨던 모양이십니다. 이런 질문이라니.”

[네?]

“게임은 당연히 GF의 독자 콘솔인 G 크로스의 독점 작으로 발매될 겁니다.”

[독점 말씀입니까?]

김유천 실장에게도 이야기했지만,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비록 기기의 성능은 다른 기기들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퍼스트 파티라는 것은 절대 다른 기

기로 이식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즉, 우리 품 안에서 개발하게 된다면 그의 게임은 비카미 신지가 바라던 대로 평생 유지될 것이다.

“일단 그러려면 먼저 회사가 있어야겠죠?”

[회사라면 여기 있습니다. 텅텅 비기는 했지만요.]

“아닙니다. 여기는 GF에 소속된 회사가 아니라 케코에 소속된 회사입니다.

[아······.]

“게다가 지금 이 꼴을 당해 놓고도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마음이 드십니까?”

[아까까지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었지만,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제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어떤 게임을 개발하느냐가 중요

한 거죠.]

딱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그의 방식이라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럼. 대충 대화는 된 것 같으니 계약 같은 건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그럼요?]

“식사나 좀 하죠.”

비카미 신지와 코미야 히데키. 이 두 사람과 대화하면서 애써 무시해준 소리가 있었다.

꼬르륵-!

도대체 최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는 연신 ‘배고파!’ ‘밥을 줘!’라는 몸의 비명이 들렸다.

“오늘은 우리가 만나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니 제대로 쏘도록 하겠습니다. 소고기 싫어하시는 분은 없죠?”

“와규군요!”

한국에서는 좋은 날 한우를 먹으니까. 일본에서는 와규를 먹어줘야 하는 게 맞다.

< 구매중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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