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26화 (426/577)

< 구매중입니다 >

이름만 같은 게임일 뿐, 용량의 한계가 한없이 작은 제도의 피파 2008은 영상으로 들어가는 모든 이벤트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출시했다. 기기의 부족한 성능 탓에 낮은 해상도는 물론이고

색감까지도 검고, 칙칙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붙잡아 두기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조금 전의 태권과는 달리 비교할 수 없었고 이렇게 되면 대전 게임과 스포츠 게임이라는 취향이 크게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오오! 축구! 축구!]

[나도! 나도 이거!]

[이딴 이상한 게임 말고! 나도 축구 해볼래!]

3D 축구 게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꽤 흥미롭게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옆에서 태권2를 하던 아이들도 덩달아서 자기도 축구 게임을 틀어달라고 성화를 부릴 정도다.

“이건 정말 곤란하군요?”

“회장님. 그렇게 웃으시면서 곤란하다고 말씀하시면 이상해 보입니다. 뭔가 엄청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이십니다.”

“그렇습니까?”

괜히 김유천 실장의 말을 장난스럽게 따라 하고는 행사장 쪽으로 지시를 내렸다.

- G 크로스에서도 게임을 피파 2008로 바꾸십시오.

제도는 롬 카트리지라던가 CD와 같은 이동식 저장매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콘솔이다. 무조건 온라인 다운로드로만 게임의 구매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불법 복제가

만연한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장에서는 미리 다운받아두고 저장한 게임이 아니면 실행을 시킬 수 없다는 단점이 되지.’

우리는 디스크만 바꾸면 다른 게임이 실행되지만, 제도는 다른 게임을 실행하려면 콘솔 기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러니 저들이 무슨 해괴한 수를 사용하더라도 경쟁이 될 리가 없다.

그리고 똑같은 종목에서의 경쟁이라면 그 승패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와! 여기도 축구 게임 한다!]

[어? 이름이 똑같아!]

[맞네! 여기도 피파 이공공팔 저기도 피파 이공공팔···인데?]

[···이름이 같은데 왜 다른 게임이야?]

같은데 다르다. 달라도 지나칠 만큼 차이가 컸다. 아이들이 혼란에 잠시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사기야! 저건 가짜라고! 완전 다른 게임이잖아!]

[얘들아 거기 이상한 거 하지 말고 이리 와 봐!]

[여기는 진짜 축구 경기 보는 거 같아!]

[진짜랑 가짜랑 티가 너무 나잖아?]

[오와! 오와! 바셀바셀! 축구팀은 바셀이지!]

[지뉴를 버린 바셀 따위보다 카카의 밀란이 진짜 축구팀이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지뉴가 게으른 거지 바셀이 잘못 한 건 아니거든?]

[선수들 얼굴 봐! 진짜 선수들을 촬영해서 만든 거 같아!]

[진짜다! 와 진짜 선수들 같아!]

아이들의 목소리는 정말 크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퍼져나가고 점점 건너편에서 제도로 축구 게임을 하거나 그것을 구경하던 아이들의 관심이 우리 행사장으로 몰렸다.

[브라질은 이거야. 이게 진짜 브라질 게임!]

[좋은 게 브라질!]

[나도 이거 할래! 이거! 이거!]

버젓이 드러난 차이점은 아이들조차 알 수 있었다. 그 탓에 제도는 브라질 게임이 아니라며 부정당했고 이제는 매수된 직원들조차 그게 아니라며 설득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듣지 않는 지경

에 이르렀다.

심지어 이제는 애국심으로 어떻게든 설득당하던 부모들마저도 등을 돌렸다.

‘애초에 꼼수도 어느 정도 비벼볼 만할 때나 먹히는 거야. 이런 차이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소용이 없는 거란다.’

아이가 게임기에 빠져서 사달라고 조르는 상황이 왔을 때 89달러까지 고퀄리티 게임기와 129달러짜리 저퀄리티 게임기 둘 중에 무엇을 고를까?

‘이건 애국 마케팅으로도 안 되지.’

결국 행사 초기에는 그래도 총인원의 30% 정도를 끌어들였던 제도의 행사장이 텅 비어버리고는 전부 G 크로스의 행사장에 몰렸다.

[저기··· 얘들아? 우리 제도는 줄을 안 서도 게임을 할 수 있으니 우선 하면서 기다리···]

[싫어요!]

[그딴 재미없는 게임을 맘껏 하느니, 여기 재미있는 게임에 줄 서서 할래요!]

[구경하는 게 더 재밌어! 브라질 게임 할 거야!]

아이들의 대기 줄이 길어졌다. 놀라우리만큼 인내심을 발휘하는 애들에게 어떻게든 호객 행위를 해보는 제도의 직원들이 있었으나 줄을 이탈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결국, 제도의 행사장에는 직원 말고는 손님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행사 시간이 한 시간만 남게 되었을 때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저 직원들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자기들도 우리 게임을 해보고 싶답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은 지 몇 시간이나 지났기에 제도의 직원들은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G 크로스 게임을 즐기기 위한 대기열에 합류해버렸다. 그리고 직접 플레이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멍청하기는. 이런 게임이랑 같이 출시하는데, 우리 게임기가 팔릴 수가 있겠냐?]

[망했어. 이건 이미 망한 거야.]

[제도에는 미래가 없어.]

[빨리 회사를 옮기는 편이 좋지 않을까?]

G 크로스 출시 행사 이후 GF 브라질 법인에 엄청난 입사지원서가 몰려왔다. 덕분에 배신자들을 색출하고 나면 한동안 인력이 부족해서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와 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전부 쓸모없는 고민이 됐다.

150. 구매 중입니다

맞은 놈은 잊지 못하지만 때린 놈은 두 다리 쭉 뻗고 잘만 잔다고 한다. 국내 언론과 우리의 관계가 이것과 비슷했다.

G 크로스가 발매되고 심상치 않은 성과를 이뤘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자 국내의 언론사들은 브라질에서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자기들이 어떤 기사를 냈었

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제도 모르고 우리에게 직접 취재 자료 요청까지 한 것이다.

“무시하세요. 우리가 무슨 호구도 아니고.”

딱 잘랐다.

“저딴 놈들에게 굽신거리면서 자료 주고 광고비까지 쥐여주면서 기사를 내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회장님.”

사람이라면 양심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다. 우리 때문에 기사를 내고, 밥 벌어 먹고살고 있는 주제에 우리가 뭐만 했다 하면 까기 바쁘니 이놈들의 어딜 예쁘게 봐줄 수가 있을까?

단칼에 거절!

그러자 뿔난 언론이 자기들 멋대로 또 기사를 양산했다. 이쯤 되면 진실을 보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조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의 자존심 싸움으로만 여겨진다.

【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브라질에서 최초 발매를 한 G 크로스. 그 실적은?】

【브라질에서 성공을 이루었다는 G 크로스의 발매 행사. 그러나 판매 실적을 철저히 감추는 GF. 과연 감춰진 이유는 무엇일까?】

【브라질의 게임 시장 규모는?】

【2007년 브라질 게임 규모는 3,300억 원 수준.】

【3,000억 수준의 브라질 게임 시장. 9조 원 규모의 한국 시장과는 비교도 안 돼.】

【전략적인 듯 실패한 GF의 발매 현장?】

다채롭게 헛발질을 하고 있다.

“보배로운 진짜 기자들까지 싸잡아서 욕하고 싶지는 않은데, 정말이지 대다수 기자한테는 쓰레기라는 소리조차 아까울 정도네요. 직접 조사해보면 쉽게 나오는데 우리가 대답을 안 해줬다

고 이렇게 나온답니까?”

브라질 현지 사정을 조금만 조사해도 알 수 있는 문제였지만, 이런 허접한 기사들이나 내보내는 언론사에는 그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그냥 자기네 회사 사무실에 앉아

서 30분만 투자하면 조사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기사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보통은 홍보 효과를 위해서 어떻게든 부풀리기를 해서라도 언론사들에 정보를 제공하니까요. 반면에 초창기부터 회장님께서는 철저하게 갑의 태도를 고수하셨고 흔들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꿋꿋이 성장하셨지 않습니까. 미운 녀석이 승승장구하면 더 배 아픈 법입니다.”

뭐가 됐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콘솔 게임을 출시했는데 게임 시장의 총규모를 가지고 비교하고 앉았네. 이 기자가 정말 게임 분야의 기자가 맞기는 하는지 의심스럽군요.”

“다 알면서 저러는 걸 겁니다. 저희에게 ‘너희가 이런 식으로 우리와 적대해서 좋을 게 없어.’라면서 언론사답게 강짜 부리는 거죠.”

‘나중에 제대로 된 자료가 나오면 이불킥 제대로 하게 될 각인데 이 자식들이 그걸 몰라.’

냉소를 지을 따름이다.

‘내수 시장에 국한됐었다면 저 길들이기에 진작 굴복당했을 테지.’

참 교묘한 건 생판 없는 사실을 만들어낸 것은 또 아니라는 점이었다. 저들이 기사를 낸 것처럼 브라질의 게임 시장 규모는 3,300억 원대가 맞다. 국내 게임 시장과 비교하면 5%도 채 되지

못하는 작은 규모라는 점도 진실이다.

그러나 콘솔로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브라질은 전체 게임 시장에서 콘솔이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점유율이 무려 57%를 넘어가는 나라다. 즉, 3,300억 시장 중에 2,000억이 콘솔에서 나오는 점유율이라는 것이

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할까?

9조 원 규모!

하지만 콘솔 시장은 1,300억 수준으로서 고작 1.3%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게임 시장이 가진 규모는 한국이 더 크지만, 콘솔 게임만으로 범위를 좁히면 브라질이 더 큰 시장이다. 게다

가 저 9조 원의 규모 중 절반 가까이는 애초에 우리 GF에서 만들어낸 수익이었다.

‘이래서 사람이건 기업이건 여유가 있어야 초라하게 굽실거리지 않는 거야.’

G 크로스는 행사 직후, 폭발적으로 구매자가 몰려들었고 1분당 30대까지 판매 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는 판매량이 완만하게 줄어들다가 분당 한 대의 수준에서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다.

1분에 한 대씩 계산하면 1년에는 52만대의 기기가 팔리는 셈이다. 전 세계에서 판매 중인 게임 스테이션과 ZBox가 1년에 200만대에서 500만대 사이로 판매된다는 점을 돌아볼 때, G 크

로스가 브라질만을 대상으로 이룩한 지금의 성과는 굉장하다는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브라질의 게임 시장이 한국 시장과 비교해서 3.5%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이미 무의미해.’

북미의 전문가들은 올해, 브라질 게임 시장이 못해도 5,000억. 잘하면 1조까지도 성장할 것으로 견해를 밝혔다. 이 가운데 80%의 매출은 G 크로스를 통해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말이다.

오죽하면 자국 콘솔을 밀어주려고 우리를 견제하고 훼방하던 브라질 정부가 태세 전환까지 했겠는가. 어떻게든 G 크로스의 약진을 밟아 버리려 노력하던 제도와 브라질 정부는 두 손 두 발

다 놓고 G 크로스를 기반으로 브라질 게임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깜찍한 계획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국익을 위해서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저희 입장에서야 황당하긴 하지만 얼마나 훌륭한 반응입니까? 다른 나라였다면 끝까지 제도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자랑이라고 떠들던 제도를 그렇게 빠르게

손절매하고 G 크로스를 밀어주다니요.”

원래대로라면 브라질의 산업화는 이제 정체가 되고 처참하게 경제 침체로 이어져야 하는데, 어쩌면 이것을 토대로 그런 역사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브라질의 경제 수상이 회장님께 식사 한 번만 제발 같이해달라고 애원한 지 꽤 지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도 또 미룰까요?”

“그러세요. 조금 더 애태운 다음에 적당히 때를 봐서 만날 요량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억지로 만나는 거라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네요.”

“그래도 한 나라의 경제 수상입니다. 심지어 지금은 G 크로스의 최대 시장이기도 하죠. 그런 사람이 계속 기다리려면 마땅한 핑곗거리가 필요할 텐데요.”

“좋은 핑곗거리가 있습니다. 당분간 해외 출장이 많을 예정이니 그 일정이 끝나고 보겠다, 전하면 됩니다.”

“해외 출장이라시면 진짜로 출장을 가실 계획인 겁니까? 아니면 그냥 거짓 정보입니까?”

김유천 실장의 물음에 나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시기에 구매하기 딱 좋은 물건이 있으니 놓쳐서는 곤란하다.

‘호러 게임계의 왕위를 계승하는 계기가 될 테지.’

백번, 천 번이고 떠올리는 바지만 미래를 안다는 것만큼 대단한 행운은 없을 것이다.

“김 실장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한 나라의 경제 수상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 곤란하지요. 당연히 진짜로 갑니다.”

“어느 나라로 준비할까요?”

“우선은 일본입니다.”

해외 출장 후에는 만나줄 생각이다.

그 해외 출장이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구매중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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