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20화 (420/577)

< 업그레이드 >

“오오! 과연 김재용!”

[세상에!]

[이런 방법이!]

감탄과 흥분의 반응이다. 나한테는 외계어지만 저들에게는 환상적인 교향곡이라도 듣는 듯 보였다. 이윽고, 김재용 실장이 내게 말했다.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응?’

자기가 혼자 무언가를 깨달아 놓고는 ‘역시 회장님.’이라니?

이게 또 무슨 소리야.

“저도 오늘 회장님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우네요.”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개념을 찾아내시다니.]

[역시 회장님은 저희 같은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십니다.]

김강철 사장에 이어서 올리를 비롯한 개발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뭐야? 뭔데 그래? 나도 같이 좀 알고 좋아하자고!’

어리둥절 이라는 단어가 지금 내 상황보다 어울릴 수 있을까. 황당해하는 내게 김재용 실장이 말했다.

“보이는 범위만 로딩하고 또 금방 시야의 범위에 들어올 곳들만 미리 준비하도록 한다면 충분히 프로젝트 X의 성능으로도 고해상도의 텍스쳐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시야의 범위와 언로딩이라는 회장님의 힌트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깨닫지 못했을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유명한 짤을 떠올렸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겠어.’

눈치껏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이건 바로 적용이 가능한 겁니까, 아니면 새로이 개발해야 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게임에 전반적으로 적용을 시키기 위해서는 엔진 전체를 다시 만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결과적으로 고해상도의 텍스쳐를 프로젝트 X에서도 선보일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는 것 정도야 문제가 되

지 않는다.

이윽고 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김재용 실장은 호언장담한 바를 충실히 지켰고 그가 새로이 적용한 기술이 서브웨이 2033에 적용됐다.

남은 건, 제대로 구동되는지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하여간 능력자들이라니까. 새로운 알고리즘을 고작 사흘 만에 뚝딱 완성해서 적용해버린다니.’

기대감을 안고 지켜보는 가운데 초고해상도의 텍스쳐가 적용된 화면이 매끄럽게 드러났다. 놀랍게도 테스트를 진행하는 내내 해상도가 높아졌

음에도 프레임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해냈다! 완벽하게 적용이 되고 있어!]

[괴물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런데 이게 잘 적용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보다도 흥분한 올리가 앞다퉈 김재용 실장에게 물었다. 필시 그 자신은 고작 텍스쳐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그룹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

는 플랫폼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는데 김재용 실장이 대번에 해결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야 범위가 넓은 곳으로 와서 확인하면, 저기 왼쪽 보이죠?]

[왼쪽이라면··· 아!]

인간의 시야 범위는 상하좌우 200도 정도가 되지만 실제 판단력을 보유한 시야의 각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인식은 가능하지만,

사물을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버려지는 부분이 저해상도의 텍스쳐로 로딩되어 있었다.

[모서리 위치라고 해도 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모서리들은 플레이 캐릭터의 가까운 벽일 수도 있고 먼 곳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합니다. 그럴 때는 가까운 곳이 출력될 때 고해상도의 텍

스쳐를 이런 식으로 유지하지요.]

새로운 질문에도 김재용 실장은 불쾌한 기색 없이 설명과 화면 출력을 보여주었다. 고작 사흘 만에 개발한 알고리즘이 다양한 변수들을 모두 계

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아! 나는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자괴감이나 질투심이 아닌 탄식만이 들렸다.

[회장님은 잠깐 테스트 화면을 본 것만으로 이런 시스템을 위한 개념을 찾아내고···]

[이 개념을 듣는다고 바로 적용할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하니···]

[우와···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지?]

수군거리지만, 귀에는 쏙쏙 박히는 면전에서의 평가였다. 이런 말을 자기들도 모르게 떠들고 주억거리는 걸 보면 충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닌 모

양이다.

이때부터 서브웨이 2033은 거칠 게 없어졌다.

김재용 실장의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고부터 아무런 트러블도 없이 게임 개발을 이어나갔고, 워낙에 개발자들의 속도가 빨라서 다른 파트에 있는

사람들이 울상을 짓는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런 건 정말 조금도 기대를 안 했는데.”

E3에 영상으로만 공개하려던 서브웨이 2033. 이를 위해서 정말 영화 같은 트레일러 영상을 뽑아내기까지 했던 이 게임의 데모 버전이 완성되

어 버렸다. 소식을 듣고 신바람 나게 달려와서 바로 플레이했다.

데모 플레이는 게임의 극 초반을 다루었다.

주인공이 전초기지로 향하는 길.

높아진 해상도와 훌륭한 광원 효과가 눈을 만족시키는 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정도로 하얀 타일이면 빛이 반사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런 조명 같은 건 어렴풋하게 벽에 반사되어야 할 거 같은데?”

텍스쳐의 질감이 떨어지면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질감이 너무 좋아진 탓에 빛 반사의 부족이 오히려 부각됐다.

“그런 효과까지 넣으려면 계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메모리 연산에서 과부하를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요?”

“네? 왜냐고 물으시면···”

“굳이 이 벽이 진짜 저 불빛을 반사해서 보여줄 필요는 없잖습니까. 벽 뒤에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위치에 똑같은 불을 만들고 이 벽이 살짝 투과

시켜주기만 하면 되지요.”

아주 나중에 밝혀진 명작 게임들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서 만들어 낸 꼼수다. 최적화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이런 빛 반사

를 포기하자니 자존심이 상한 어떤 천재가 발견한 꼼수!

‘이번에는 제가 좀 사용하겠습니다.’

내 설명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개발자들을 위해서 가볍게 그림판으로 아주 삐뚤빼뚤 그림을 그려서 쉽게 설명해주었다.

뒤이어 한 달 전에 들은 장면이 고스란히 재방영했다.

[말도 안 돼!]

[아아! 이런 방법이!]

“이럴 수가! 도대체 왜 이걸 생각 못 했을까요!?”

그다음으로 ‘역시 회장님!’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끊었다.

“그 말은 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네! 좌표만 따면 바로 적용 가능합니다.”

체크 포인트!

확실하게 숙지한 뒤 데모 버전을 마저 진행했다.

‘아주 좋아. 이런 건 우리 GF가 세계 최고라고.’

꿈속 미래보다 나아진 서브웨이 2033!

그것은 말도 많고 욕도 배부르게 먹은 모션이었다. 사실 이 모션에 관한 문제는 동유럽권 게임들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다. 훗날 기술이 좋

아지고 충분히 더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줄 능력이 된 후속작에서도 여전히 어색한 모션이 드러나곤 했다.

하지만 데모 버전의 서브웨이 2033은 이전의 어색한 모션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 어색하게 ‘만세’ 동작으로 점프만 하

는 누살레스가 이제는 꽤 위협적인 자세로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게임 자체에서 생성되는 공포감이 배가 되었다.

‘고작 기초 잡몹인데도 제법 긴장되게 만들잖아.’

내 기준이기는 하지만 잡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등장하는 모든 누살레스는 사이좋게 너도 한 방 너도 한 방인 헤드샷으로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죽더라도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존재한다.

이렇게 만족스럽게 플레이하면 나도 점점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설마 또 고칠 부분이 있는 건가요?”

“지금도 좋습니다만, 진행 방식이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무조건 개발진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게임이 진행 가능한데?”

이쯤 되자 내 말에 기뻐만 하던 개발자들의 표정에서 ‘일거리다··· 이제는 안 돼···!’라는 울먹거림이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 흘린 땀방울이 훗날

흘릴 피를 줄여준다면서 개고생시키는 유격 훈련처럼 이들도 조금만 더 고생하면 더 활짝 웃을 날이 올 것이다.

“그건··· 스토리 중심형 게임에서는 어쩔 수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연히 스토리 중심이니 그것을 벗어난 플레이가 안 되도록 막아야지요.”

“그럼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전투가 너무 단조롭습니다. 지금도 보세요. 일종의 잠입 액션과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전투는 개발자가 정해놓은 딱 그 플레이로만 클리

어가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보다는 조금 더 샌드박스다운 전투를 원합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들이 샌드박스 게임과 오픈 월드 게임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게임은 절대 같은 형태의 게임을 말하는 것이 아

니다. 드래곤 소울은 오픈 월드 게임지만 샌드박스가 아니며 몬스터 프레데터스는 샌드박스이지만 오픈 월드가 아니다.

그리고 서브웨이 2033에게 내가 원하는 샌드박스는 이런 개념이다.

“클리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게이머들은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해보고 그중 가장 자원의 소모가 적은 방

법을 찾아내는 거지요.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게이머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게이머가 잠입 플레이를 하는 도중에 실패했을 때, ‘아.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시도를 해봐야겠다.’와 같은 생각이 든다면 샌드박스.

‘내가 잘못된 방법으로 시도를 했구나. 클리어할 방법을 찾아야겠다.’와 같은 생각이 든다면 선형 전투다.

데모 버전에서 보이는 부분이 이와 같다. 지금도 전방에 괴수가 있다는 걸 알고 나는 지금 이곳에서 저 괴수를 정확히 조준해서 쏠 수 있었다. 그

러나 아무리 총을 쏘아도 괴수는 맞지 않는다.

왜?

개발자의 의도가 저곳에 가서 괴수와 만난 후에 전투가 벌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게임 내의 스토리와 연관이 있다면 그럴 수 있으나 만약 그랬다면 차라리 괴수가 시야에 잡히지 않는 위치에서 대기하게 만들었어야 옳

다.

‘하지만 반드시 만나게끔 만든 저 괴수와 이 스토리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고 조금 편하게 클리어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나중을 편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저격했더니 원래라면 만나지 않아도 될 괴수가 이곳까지 돌격해 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말이다.

“즉, 애먼 짓을 한 덕분에 소비하지 않아도 될 탄약을 더 소비하게 되고 어쩌면 사망으로 다시 플레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이면 게임에 더 몰입하고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유저들이 자신의 선택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겁니다.”

데모 버전을 즐겁게 플레이하며 게이머로서의 요구사항들을 이리저리 남겼다. 꿈속 미래의 단점은 하나도 없고 진일보를 넘어서 진화해버린 게

임이 될 수 있도록.

*

한편, 윤태식 회장이 돌아가고 난 서브웨이 2033의 개발실에는 깊디깊은 한숨만이 남았다.

[이만하면 된 줄 알았었는데··· 진짜 잘 만든 거였는데······.]

[사장님께서 회장님의 합격선을 통과하는 게 어렵다고 하신 이유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매번 쓱 보고는 일 폭탄을 무진장 남기시다니!]

존경심이 질려버릴 만큼 그는 너무나도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이였다. 서로 마주 보는 시선에 힘이 없고 어깨가 축 늘어지면서 엉덩이가 눌어붙

어 버릴 만큼 또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한껏 칭찬받을 기대만 했었기에 그 반대급부가 더욱 큰 것도 같았다.

그러나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니 GF에서 출시하는 게임이 실패하지 않을 수밖에요.]

성공이냐 대성공이냐 만이 문제인 이유는 남이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확신할 만큼 그들의 게임은 생각할 수 있는 완성

도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업그레이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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