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9화 (419/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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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방문할 때는 지금과는 다른 창의적인 무기들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아서 좀 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더 바랄 게 없겠군

요.]

[꼭 그리하겠습니다.]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

450명의 개발자로 시작하여 이제는 600명의 인력이 함께 작업하는 대형 프로젝트.

서브웨이 2033은 어느덧 GF 역사상 유례가 없었을 정도의 작업이 되었다. 내가 이토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건 단순히 좋은 게임을 만

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후에 이 게임을 개조해서 양산형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지.’

만일 이런 속내를 밝힌다면 ‘한국 게임계의 자존심이라는 GF에서 양산형 따위를 만들려 하다니!’라며 비분강개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양산형 게임과 실제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양산형 게임은 기준이 다르다.

딱히 어울리는 단어가 없어서 양산형이라 했을 뿐, 조금 더 가까운 표현으로는 파생형이라는 단어가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워드래프트를 들 수 있지.’

아이스 스톰에서 워드래프트Ⅲ를 개발했고 대성공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이어서 그 게임을 개발할 때의 자원을 활용하여 세계 최고의 성공을

이루는 월드 오브 워드래프트라는 작품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뿐이랴,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월드 오브 워드래프트를 운영하면서 워드래프트Ⅲ를 개발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원을 사용하

는 개념이나 활용도가 발전했고 마침내 월드 오브 워드래프트Ⅲ의 리포지드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이 세 개의 게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건 눈으로 볼 때는 완전히 다른 단계의 게임을 개발한 것 같으

나 실상, 워드래프트Ⅲ를 개발할 때의 자원을 활용하고 발전시켜서 이어졌다는 점이다.

내가 말하는 양산형 게임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

‘서브웨이 2033이 장래에 대작을 만들어내는 튼튼한 초석이 되어줘야 해.’

이것이 6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개발자들을 투입한 이유다. 그리고 이에 합당한 작품으로 완성되어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비쳤다.

“안개의 효과가 굉장히 세밀하군요. 이건 게임 그래픽이 아니라 진짜 영화 같습니다.”

“역시 회장님이 보시기에도 그렇게 보이십니까? 보르타 게임즈의 개발자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GF의 개발자들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광원 효과를 보고 칭찬을 꺼내기가 무섭게 김강철 실장은 흥분한 표정으로 침까지 튀기며 보르타 게임즈의 개발자들을 칭찬했다.

‘다행이야. 내가 우려했던 딱 한 가지가 말끔하게 해결됐어.’

지금까지의 개발과정을 보면 그냥 인력만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일 뿐이지 시작부터 끝까지 GF에서 개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칫

내가 훌륭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서브웨이 2033의 특징들이 사라지지는 않는지 일말의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괜한 우려였던 것 같다.

‘역시 포텐이 있는 사람들다워.’

우크라이나 개발자들이 GF의 시스템을 몸으로 익혀가며 점차 자신의 포텐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하도록 견인한

김강철 사장은 순수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뛰어난 개발자들과 게임을 함께 개발하고 결과적으로 훌륭한 게임이 완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것도 한 번 보시겠습니까?”

“랜턴은 지난번에도 테스트해 보지 않았습니까?”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어디 보죠.”

아이처럼 신나서 권하는 김강철 사장.

그의 말대로 이번의 랜턴은 확실하게 달랐다.

“빛이··· 역동적일 수 있었군요!”

그저 랜턴의 빛이다. 그러나 빛이 사물에 닿는 그 순간순간이 명확하게 진짜 현실적인 빛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동안은 빛이 닿는 물체의 질감과는 상관없이 시야의 방향으로 광원 효과에 대해서 접근했습니다. 그저 시야와 그림자가 전부였죠. 하지만 이

제는 단순한 시야 효과가 아니라 사물의 질감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진 반사각과 투사까지 계산하게 됐습니다.”

압도적인 비주얼!

지금 이 광원 효과는 이것보다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지금까지 서브웨이 2033이 가지고 있었던 비주얼은 초고해상도 텍스쳐에 의한 질감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이 광원효과가 진짜 비주얼의 정체였고 우크라이나 개발자들이 보인 역량이었다.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주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여기까지 언급한 김강철 사장이 올리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가 준비했다는 듯이 결연한 태도를 견지하고 입을 열었다.

[회장님. 지금 회장님도 보셨듯이 서브웨이 2033은 정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게임으로 출시될 겁니다. 단언컨대 언제 출시가 되더라도 그해

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최상위 10선에는 들어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다음이 본론이다.

[그러나 현재의 해상도로는 물체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텍스쳐의 해상도를 조금만 높이면 제가 말씀드린 것이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일단 최고의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먼저 얻어내게 된다면 이후에 보르타 게임즈라는 회사의 브랜드가 게이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이 될 것이고 그 후에는···]

여기서 눈살을 찌푸렸다.

[기각합니다.]

더 들어줄 이유가 없다.

[네? 회장님. 제 이야기를···]

[아니. 됐습니다.

꿈속 미래를 통해 잘 알지만, 3A 게임즈가 개발한 본래의 서브웨이 2033은 유저들의 그래픽 카드가 터지거나 말거나, 최적화는 저세상으로 보

내거나 말거나 초고해상도의 텍스쳐를 남발했었다.

최적화의 실패!

이를 바꿔 말하면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은 비주얼에 집착을 보인다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그 본래의 성향이 고스란히 넘치는 자부심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더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군요.]

일부러 평소보다 훨씬 더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딱 잘랐다.

[지금 프로젝트 X가 아닌 그 외의 플랫폼으로 게임을 출시하자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건······.]

초고해상도의 텍스쳐.

물체의 질감이 정말 현실에 있는 것과 같은 텍스쳐를 만들려면 당연하게도 뛰어난 그래픽 카드가 필요하다. 이는 곧 프로젝트 X의 성능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게임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였다.

‘서브웨이 2033은 지금 한계점을 오가고 있어.’

엔진이 허락하는 최고점에 이르렀다는 말은 간당간당해서 아차 하다가는 망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텍스쳐의 해상도를 더 높인다는 건 절

대로 승인해줄 수 없었다.

[욕심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압도적인 비주얼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은 마음도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따로 당신이 만들도록 하세요. 올

리.]

저들이 앞서갈까 봐 치졸하게 분탕질 치는 게 아니다.

만약 서브웨이 2033이 출시된 해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된다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 개발자들? 디렉터?

아니다. 나다.

그런 만큼 당연히 이 게임이 최고의 게임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 생각하고 진행하기엔 이 일은 너무 주객전도나 마찬가지다.

애당초 보르타 게임즈를 인수하고 서브웨이 2033의 개발에 김강철 사장까지 투입해서 더 완벽한 게임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프로젝트 X를 견인할 게임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플랫폼이라니!

[서브웨이 2033은 오직 프로젝트 X의 독점 타이틀이 되기 위해 개발하는 게임입니다. 올해 최고의 게임이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없습니다. 재차

강조하건대, 프로젝트 X를 명심하십시오.]

[네··· 그··· 죄송합니다.]

들뜬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매사에 당근만 줄 수는 없으니 이따금 이런 채찍질도 필요한 법이다.

‘나라고 이러는 게 편한 건 아니라고. 높은 해상도의 텍스쳐를 구현할 수 있으면 나부터도 하고 싶다. 그러나 프로젝트 X로 그런 해상도를 구현

하는 것은 불가능··· 어라? 잠깐만. 진짜 못하는 건가?’

따끔하게 혼내고 나서 상념에 빠졌다가 문득 의문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최적화가 잘 되는 게임은 게임 자체의 구현이 바뀐 게 없음에도 높은 해상도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그 해상도를 유지할 수 있었

을까?

‘서브웨이 2033은 오픈 월드 게임이 아니야. 그만큼 시야에 잡히는 것들에 한계가 있지.’

어두운 배경.

이것은 어느 정도 편법을 사용하기에 딱 좋다. 이 지점은 드래곤 소울을 개발할 때 충분히 증명했다. 아직 기술이 부족하던 당시에는 어두운 배

경 덕분에 한 단계 더 높은 그래픽처럼 유저들을 속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가.

‘이를 서브웨이 2033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밉맵이라는 기술이 있다. 그래픽 카드의 과부하를 줄이면서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술 중의 하나인데 이는 시야에 잡히는 배경 중 가까운

거리는 고해상도의 텍스쳐를 활용하고 먼 거리는 낮은 해상도의 텍스쳐를 사용하는 기술이다.

이것이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김강철 사장에게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단호히 부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안 됩니다. 텍스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해상도와 저해상도를 같은 파일로 저장하는 형태입니다. 그 때문에 맵을 불러올 때, 동시에 두 가지

해상도의 텍스쳐를 불러오게 됩니다. 개별적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죠.

불러온 파일은 그래픽 카드의 메모리에 저장이 되게 되는데 프로젝트 X에 들어갈 메모리를 생각하면 서브웨이 2033에서 텍스쳐를 두 가지 버

전으로 전부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메모리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 치명적 오류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여기까지가 김강철 사장의 시각이다. 하지만 묘한 내 예감이 뇌리에서 간질거렸다. 사업을 도박하듯 하면 곤란하지만 나는 예감과 직감을 매우

신봉하는 부류였다. 그렇기에 김유천 실장에게 말했다.

“김재용 실장을 불러주세요.”

“네, 회장님.”

크라비티의 창립 멤버 중 하나이자 GF 엔진의 핵심 개발자.

외부에는 배틀 오브 발러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총괄한 김강철 사장이 가장 알려져 있으나 GF 내부에서의 평가는 다르다. GF 엔진을 가

장 잘 사용하는 개발자를 꼽으라면 김강철 사장이 아닌 김재용 실장이 1순위로 꼽힌다.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보르타 게임즈로 찾아온 김재용 실장.

그에게 지금의 상황과 함께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설명해 나갔다. 만약 그도 불가능하다고 하면 미련 없이 손을 뗄 요량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래픽카드의 메모리를 늘린다면야 가능은 하겠지만 프로젝트 X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휴대형과

거치형의 통합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저렴한 가격이 최대의 무기인데 하드웨어를 더욱더 비싼 것으로 채용할 수는 없습니다.”

“아쉽네요. 시야도 좁고 그냥 보이는 곳만 구현하면 되는 거로 봤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많이 잡아먹을 줄이야······. 애초에 우리 게임 자체가 직

선형 구조로 되어 있고 그렇기에 로딩을 해야 하는 범위가 훨씬 좁혀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봅니다.”

아쉬움에 덧붙이고는 포기하려고 할 때였다.

“범위가 좁혀진다··· 좁혀진다··· 로딩의 범위를 좁힌다. 로딩과 언로딩···”

어느 순간부터 김재용 실장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범위와 언로딩이라는 단어만 반복하면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테스트 화면을 지켜볼 뿐이었

다. 그러다가 초점이 엇나갔던 눈을 바로 뜨고는 김강철 사장에게 물었다.

“이 게임. 지금 플레이가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까?”

“제대로 구현된 건 아니지만, 일단 챕터 1정도는 데모 형식으로 구성해두긴 했지.”

뭔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의 김재용 실장을 보면서 김강철 사장이 그의 요구를 빠릿빠릿하게 들어주었다.

“서브웨이 2033이 이렇게 진행되는 게임이었군요. 그렇다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직접 플레이한 후 감을 잡은 그.

이후부터는 무아지경 상태로 세상에 오직 자신과 컴퓨터만이 존재한다는 듯 작업을 시작했다. 나로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를 상황이지만 개발자들

의 눈에는 달리 보였나 보다.

< 업그레이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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