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6화 (416/577)

< 드림팀 >

서브웨이 2033의 원작은 소설이다. 소설에는 괴수들의 모습이 나름대로 묘사되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그 탓에 괴수의 외형에 대

해서 최대한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보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지금 화면에는 상상만 해온 괴수의 디자인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충격도 잠시, 올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화면에 빠져들었다. 아까의 영상보다 오히려 그저 괴수들의 디자인만이 나오는 이번 영상에 더 몰

입하고 있는 점이 웃기면서도 이해가 간다.

[어때요? 이제 우리의 주인공이 어떤 괴수와 싸움을 해야 하는지 조금 더 명확한 느낌이 오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당장 이것들을 우리 동료들에게···!]

[올리.]

[네?]

[진정해요. 그거 몇 분 빨리 보여준다고 작업이 빨라지는 게 아니에요.]

[아! 죄송합니다.]

[다시 아까의 주제로 돌아가죠. E3에는 아까 보여준 영상을 제대로 서브웨이 2033으로 바꾸어서 보여주게 될 겁니다. 이것이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공개하고.]

[제멋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강철 사장이 가볍게 웃었다.

[오늘 얼마나 죄송해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실 거면 이따가 몰아서 한 번에 죄송해 주시겠어요? 그것도 계속 들으니 괜히 쳐지네.]

[죄송합··· 아니··· 죄송 아! 그게······.]

자기가 내뱉은 말에 본인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올리. 그 모습에 회의실 내부 사람들 전부가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건 됐고. 마이코닉스에서는 이 영상으로 확실하게 서브웨이 2033이 어떤 게임인지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동료들과 영상을

함께 보시고, 개선했으면 하는 점. 그리고 이런 장면들이 들어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서브웨이 2033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들을

자료화해서 제출하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이전의 작업을 전면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 없는 거죠?]

[네!]

[그나저나 여러분의 방식과 우리의 개발 방법은 차이가 있어서 적응하기에 꽤 힘이 들 겁니다. 각오 단단히 하시고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들의 지원을 요청한 보람이 있었다. 올리는 GF의 노하우를 남김없이 배우겠다고 다짐하며 전투적으로 개발에 임했다.

한편, 김강철 사장은 보르타 게임즈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움직였다.

[회의를 진행합니다. 핵심 개발자분들은 지금부터 서브웨이 2033 개발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찾으셔야 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

이 어울리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주세요.]

[······.]

시작 때 염두에 뒀던 상황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김강철 사장이 눈빛으로 압박을 주건, 말을 끌어내고자 애를 쓰건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은 서

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그를 무시해서 침묵을 고수하는 게 아니었다.

주어진 발언권에 자신들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김강철 사장이 재차 말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전부 개발자이긴 하지만 여러분 모두가 동일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개발자들도 다들 자기만의 특

징이 있죠. 그것들을 설명해주면 됩니다.]

[······.]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30분이 넘도록 입을 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렇게는 곤란하네요.]

아무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보르타 게임즈 핵심 개발자들은 모두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리 회장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그렇게 쉽게 떨구지 말라는 거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

까? 하면서 느는 거지. 기존 GF의 식구들도 모두 그래요.]

거기까지 말하고는 그는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어. 그래. 오늘 회의 있지? ···응. 그거. 회의실 좀 큰 곳에 잡으면 안 될까? ···그게, 이번에 내가 우크라이나 쪽 프로젝트 하나 맡은

거 알고 있지? 이 친구들이 우리 회의 방식에 너무 적응을 못 해서 말이야. ···맞아. 너희가 하는 것 좀 보여주려고.”

통화를 마친 김강철 사장은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저쪽 일정이 빡빡하니 얼른 움직여야 하겠네요. 다들 본사로 이동하죠.]

[본사?!]

한국어로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더니 30분을 회의실에서 날린 개발자들을 데리고 본사로 이동한다고 했다. 월급쟁이들에게는 무섭고 불안한 일

이었다.

[오해 마세요. 조금 전에 말했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잘못해서 가는 거 아니니까 울상은 그만 짓고··· 지금부터 우리는 GF의 회의

를 견학하러 갑니다. 견학생의 신분이니까 회의 내내 최대한 조용히 하고 회의를 지켜봐야 하는 거 아시죠?]

[저희는 한국어를 모르는데요. 다른 팀의 회의라면 저희가 견학을 한다고 해도, 뭐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영어로 할 거예요.]

[저희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그게 아니라, 폴란드와 함께 하는 회의라서 그쪽 팀도 우리와 비슷한 방식의 회의를 진행합니다.]

간단히 설득한 일행이 GF의 본사로 이동했다.

*

명실상부한 최고의 드림팀과 폴란드의 개발사 CDPRed의 합작게임인 워쳐의 회의실.

평소라면 절반도 채우지 못했을 넓은 회의실이 가득 채워졌다.

‘예전에 교육받을 때에도 와 보았지만. 정말 깔끔한 회의실이야.’

대부분의 건물이 구소련 시대에 지어진 우크라이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대식의 깔끔함이다. 현재 보르타 게임즈의 본사도 한창 공사를 진행

하고 있었는데 올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렇게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회의실에 낯선 동양인들과 낯익은 폴란드인들이 앉았다.

[지금부터 중간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자신들과 어떤 점에서 차이를 가지느냐’를 이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차후에도 아까와 같이 입도 떼지 못하는 추태를 또다시

보여야 하리라. 그런 창피함을 더 겪을 수는 없기에 올리는 최대한 회의의 내용에 집중했다.

[회의 내용은 챕터 7부터 챕터 16까지입니다.]

회의의 안건이 정해지자 김현섭 실장이 손을 들었다.

[저는 유닛 테스트를 빠르게 붙이는 장점이 있으며 눈이 빨라 코드를 신속하게 해독하고 리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전체 개

발 흐름을 파악하고 서로 간의 맥락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찬성합니다.]

[찬성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 부분은 지금까지처럼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어 방식을 쭉 설명하는데 올리로서는 지금의 회의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후의 참여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액션의 효과와 그게 맞추어진 사운드를 찾아내는 능력. 그리고 적절한 시간 밸런스를 잡는 것에 자신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액션의 비중

이 높은 챕터 9와 11 그리고 14부터 16의 전투를 위한 레벨을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성합니다.]

[찬성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맡겨주신 만큼 확실하게 처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할 방식은···]

‘우리와 너무 달라.’

보르타 게임즈의 개발자들은 지금까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정하고 핵심 개발자들은 그 프로젝트를 모두에게 나누어준 후, 그것의 진행을 감독하

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 그런데 GF에서는 오히려 서로가 자신이 해야 할 영역을 먼저 찾아내고 그것을 가져가는 형태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결국 코드를 쪼개는 방법이다.

그런데 차이점은 있었다.

‘누가 어느 영역을 담당하고 어떻게 진행할지를 이야기하고 있어.’

올리는 순간 누군가가 머리를 강하게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언뜻 보아서는 미묘한 차이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결과물

이 되는 방식이다.

다른 동료들이 어떤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전부가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코딩을 진행하게 된다. 결국, 하나로 합쳐질 때

그만큼 화합이 잘 될 것이다. 올리의 사고방식에 이런 회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이런 충격을 받고 있는 동안에도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폴란드에서 온 개발자들도 GF의 개발자들처럼 자신

들이 맡을 역할과 해당 역할을 수행할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꺼내고 있다는 점이다.

‘저들은 우리보다 더 늦게 GF에 합류했잖아?’

그런데도 자신들보다 더 빨리 GF와 협업을 했다는 것. 그 차이만으로 거리가 벌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핵폭탄급의 충격이었다.

[새로운 챕터에 대한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실 게 있으신 분?]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CDPRed의 개발자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받는다. 개발자들의 면면을 올리가 알지는 못했으나 GF의 직원인지 아닌지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양인이면 GF이고 백인이면 CDPRed의 사람이다.

[말씀하세요.]

[제가 최근에 담당했던 챕터 5. 그중에서 마구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문제죠?]

[주인공의 액션을 더욱더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오브젝트들 때문에 버그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 버그가 마구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

이 아니라 챕터 5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저 개발자 망했네.’

치명적인 실수다. 이런 실수 하나면 개발 과정에서 엄청난 손실을 주게 된다. 필시 저 개발자는 앞으로 담당할 역할과 입지가 줄어들 것이 분명

했다. 그런데 이를 왜 공개적인 자리에서 먼저 이야기한 걸까?

[그럼. 그 버그에 관한 문제는 해결이 된 상태입니까, 해결이 되지 못한 상태입니까?]

[현재는 해결을 모두 한 상태입니다.]

[해결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을 했죠?]

누구의 도움을 받아 어떤 순서로 버그를 찾고 해결했는지를 숨김없이 말했다. 또 다른 개발자 역시 거침없이 발표했는데 그중에는 해결이 된 오

류도, 아직 미해결상태의 버그도 존재했다.

‘실수를 당당히 말하는데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아.’

모두가 한마음처럼 이 오류를 해결하려면 어떠한 방식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을 통해 해결방안들을

찾아 나가며 의견을 합치고 있었다.

[좋은 처리 방식이었습니다. 차후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시는 분은 지금 이 대처와 같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거구나.’

실수는 누구나 한다. 사소한 실수부터 치명적인 실수까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비난을 하면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실수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

렇게 끝까지 감추어진 실수는 결국 아무도 모르게 고객의 집까지 배달되어 버린다.

사후에 터지는 치명적인 오류라는 형태로.

이 회의는 그것에 대한 답이었다.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실수를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법의 장점은 같은 실수가 벌어질 때 이전보다 더욱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회의 중에 자연스럽게 구상이 된다는 데 있다.

즉, 향후 동일한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참으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어려운 방법이었다.

‘놀랍다.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다워.’

이러한 환경에서 개발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이 개발하는 것들을 보면 그저 마구잡이 개발로 보였을 것이다.

순조롭게 착착 이뤄지던 어느 날.

[이거 시야가 왜 이럽니까?]

[시야요? 그··· 딱히 문제 될 건···]

존경해 마지않는 김강철 사장을 우물쭈물하게 만드는 이가 개발실에 시찰을 나왔다.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윤태식 회장이었다.

< 드림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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