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5화 (415/577)

< 드림팀 >

[일단 지금까지의 업무처리 방식부터 확인해볼까요?]

스틸 프로젝트 스튜디오의 직원 250명, 보르타 게임즈의 개발자 330명, CL 게임즈의 130명. 이토록 많은 인원을 어깨에 짊어진 인물이 김강철

사장이다.

그뿐이랴. 세계적인 히트작, 배틀 오브 발러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개발자이기까지 하니 이 성공을 흠모하지 않을 이는 드물 것이다. 이토

록 김강철은 올리에게 기대감과 낯선 카리스마마저 느끼게 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존경스러운 그가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이 내민 자료를 보고 지은 첫 반응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역시··· 지금 서류의 내용으로 보면 코드를 쪼개서 작업하는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서브웨이 2033이라는 게임을 조각조각 내서 개발자들 개개인에게 할당해주었냐는 거였습니다.]

50명이 함께 작업하여 완성품 하나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가장 효율적으로 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결과물 한 개를 450개로 쪼개어 개인에게 할당량을 배분하고 개개인의 업무가 끝이 났을 때 이를 합치는 것이었다.

코드 쪼개기가 바로 이러했다. 여러 인원에게 작업량을 맞춰서 할당하기 위한 작업이다.

[네. 게임 개발을 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당연하지 않아요.]

[네?]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요.]

올리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김강철 사장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코드 쪼개기는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과거의 GF는 물론이고

한국의 수많은 게임 개발사가 이 방식으로 진행했었다.

그러나 마이크루와의 협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국산 게임에 그간 존재했던 손댈 수 없는 버그들. 그게 다 코드 쪼개기 때문에 나온 거였어.’

게임은 일종의 유기적인 생명체와 비슷하다. 여러 명령이 물리고 물려 하나의 게임으로 완성된다. 그런데 조각품이나 장난의 조합으로 접근하면

어떻게 될까?

작업자가 지금 자신이 하는 작업과 옆의 동료가 하는 작업이 어떤 식의 상호 작용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만들어 낸다면?

더 큰 문제는 오류가 생겼을 때 발생한다. 개발자들은 자신이 짠 코딩에 문제가 생길 경우 온갖 방법들을 사용해서 해당 오류를 해결하게 되는데

이때, 당장 자신이 짠 코딩에는 오류가 해결될지 몰라도 하나의 게임으로 합쳐졌을 때는 치명적인 오류를 낳곤 했다.

‘효율적으로 인력을 활용한다는 게 정작 비효율적인 노동을 해버리는 셈이 되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처럼 토론문화가 익숙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사회의 문화가 수평으로 자리 잡은 나라라면 모를

까, 수직적인 조직의 위계가 당연한 국가에서는 코드 쪼개기가 아닌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애초에 상상조차 힘들다.

‘그런 면에서 우리 그룹은 회장님 덕분에 수월하게 혁신을 이룰 수 있었고.’

위계조직보다는 역할조직으로의 형성, 토론의 참여, 회의의 방식, 끝으로 직원을 자원으로 보기보다는 사람으로 보는 사주의 시각이 큰 영향을

끼쳤다. 김강철은 확신할 수 있었다.

GF의 선진 경영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도 한국의 기업 중 모방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서브웨이 2033의 해결방법 역

시 마찬가지였다. 간단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서브웨이 2033에 대한 지금까지의 개발과정은 모두 폐기합시다.]

수습하지 않고 다시 만드는 것이다.

[네? 폐기요?]

[우리는 게임을 이런 식으로 개발하지 않습니다. 게임은 퍼즐처럼 조각내어 개개인이 따로 개발하고 그것을 합치면 완성품이 나오는 게 아니에

요.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만드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하다 보면 차차 알게 될 테니 지금은 몰라도 됩니다. 우선 게임 개발에 대한 회의 부터 다시 진행하도록 하죠.]

말은 쉽게 했지만 회의과정은 만만치 않다.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오래 하면 할수록 짜증이 솟구치는 작업이 회의인데 한국어로 해도 골치 아픈 작업을 무려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도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아니기는 매한가지였다.

언어의 문제로 두 배, 이런 개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또 두 배, 총합이 네 배가 어려운 난코스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게임 개발이 너무 늦어지게 될 겁니다. 당장 회장님께서 이번 E3에 서브웨이 2033을 공개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회장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GF는 항상 그리해왔다. 작은 손해에 연연해하지 않고 필요한 선택이면 주저 없이 실행한다.

[완성도가 미흡해서 갈아엎는 일은 GF에서 흔하거든요. 그래서 더욱 처음에 신경 쓰는 거고요.]

윤태식의 기준점은 매우 높고 요구하는 바도 정교하기로 정평이 났다. 그렇기에 그는 일정이 늦어지더라도 결코 무리하게 독촉하지 않았다. 어

설프게 속도만 높였다가는 고생하는 건 자신들이 된다.

이런 GF의 상식에 올리는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E3 때문이라면 이 역시도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시연 대신 트레일러만 공개할 겁니다.]

[트레일러요?]

반사적으로 되물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부정적인 태도였으나 김강철은 그 사정을 쉽게 알아차렸다.

‘SCG 게임 월드에서도 트레일러 마케팅을 하긴 했었지.’

드래곤 소울 출시와 비슷한 시기였다. 그걸 떠올리니 올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됐다. 이들이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먼저 공개해서 마

케팅할 때는 게임에 대한 진행도가 너무 더뎌서 어그로가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트레일러 공개를 했었다.

‘아마도 이전 사장이었던 시도르비치처럼 어그로를 끌기 위해 트레일러만 공개하는 것으로 보였겠어.’

SCG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는 그것이 게임의 시네마틱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마치 그럴듯한 음모론처럼 진짜로 좀비가 존재하는 곳을 민

간인 금지구역으로 설정해놓은 뒤 정부에서 관리하고 이를 공개하는 듯한 형식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이런 어그로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공식적인 채널에 영상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관리 소홀로 퍼져버린 불법 영상처럼 조용히 영상

을 퍼트리면서 게임 홍보가 아닌 척 속임수를 쓴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미국에서 빅풋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마케팅을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킹콩이라는 영화가 나오기 전, 킹콩의 제작진들은 배우

에게 탈을 씌워서 빅풋을 실제 촬영한 것처럼 가짜 영상을 세상에 퍼트렸다.

그리고 빅풋의 존재에 놀란 사람들은 후일 킹콩이라는 영화가 상영하자 더욱 열광했고 결과적으로 킹콩은 큰 성공을 이루었다.

시도르비치 역시 그것과 비슷한 효과를 노렸는데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2003년에 뿌리고 막상 게임은 2007년에 나오는 바람에 수많은 게이머

는 둘이 연관된 것을 모르고 게임을 구매하게 됐다.

‘그러고 보면 그런 상황에서 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니 훨씬 더 대단하다고 봐야 하는 건가?’

내심 웃으며 김강철이 말했다.

[아직 우리의 마케팅 방식을 잘 모르나 보네요. 괜찮습니다. 지금 확인하면 됩니다.]

[네? 확인하다니요?]

[E3에 공개할 트레일러입니다.]

[그걸 지금 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게임 개발에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이지도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놀라지 않으면 외려 이상한 일

이다. 그런 올리에게 김강철은 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개발자들의 의견을 알고 싶다고 마이코닉스에서 일단 보내온 알파 버전입니다.]

불을 끈 조용한 회의실에 서브웨이 2003 트레일러의 영상이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한 공간.

저 멀리서 세 개의 미사일이 쏘아진다. 핵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대한 미사일 이후, 시점은 자연스럽게 황폐해진 도시를 비추었다. 지하철역을 통

해 점점 지하로 내려가고 그곳에는 피폐해진 사람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들의 생활은 이질적이다. 낯선 재료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 조잡한 무대에서 춤을 추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군인들. 문명이 존재하지만, 야만과 야생이 뒤섞인 것 같은 분위기다.

이윽고 시점은 각기 다른 사람들의 실상을 비추고 또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다.

서로 다른 군복을 입은 두 진영의 전투.

핵과 군인.

당연하다는 듯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가 떠오르고 ‘저런 환경에서도 인간들 사이의 분쟁은 사라지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즈

음, 어디선가 빠르게 다가온 괴수의 공격이 이들을 엄습했다.

비명과 총성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으아악!]

영상 속 군인처럼 올리 역시 화들짝 놀라 의자 채 벌러덩 넘어졌다. 과연, 드래곤 소울로 호러와 같은 연출에 도가 튼 마이코닉스 다운 영상이었

다. 잠시 무안한 표정과 기침을 하는 올리에게 김강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물었다.

[어때요?]

[어··· 음··· 그··· 저희가 구상한 것에 대해서 자료를 넘긴 게 고작 이주 지났는데 벌써 이런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이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건 그의 상식에서 불가능하다. 엔지니어들을 갈아 넣는다면 가능하기야 하겠으

나 GF가 아무리 세계적인 대기업이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서브웨이 2033을 우선으로 여기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이 영상은 어디까지나 알파 버전이에요. 그냥 이런 개념이다, 이렇게만 아시면 됩니다.]

[네?]

전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는 표정의 올리.

김강철은 영상을 가리켰다.

[대충 느낌이 오지 않아요? 원했던 서브웨이 2033의 톤과는 조금 다르다는 거?]

[아? 네. 맞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잘 만든 영상에 빠져들면서도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었다. 게다가 이런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차마 말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점을 오히려 김강철이 먼저 말해주었다.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말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GF의 게임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만든 영상이라 그렇습니다. 진짜 서브웨이 2033의 영상이 만들어지면 더욱 확실한 느낌

을 받게 되시겠죠. 지금은 일단, 이 전체 흐름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영상에 나오는 도시는 서브웨이 2033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와는 너무나도 상관없는 LA가 배경이었다. 이 말을 듣고서 다시 보니 올리는 사이

버 쇼크, 신과 같이, 드래곤 소울이라는 게임의 이미지가 연거푸 떠올랐다.

이 느낌들을 서브웨이만의 분위기로 살려내면 된다.

[머리로 상상만 하던 것들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까 확실히 우리가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느낌이 좀 잡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듣더라도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놀라움, 두려움 등등 같은 감정이라고 해도 표현하는 방법 역시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

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과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눈으로 확인한다면 어떨까?

이 영상의 가장 큰 의도가 바로 이것이었다. 천 마디의 말보다도 확실한 시각적인 효과! 이를 통해 개발자들 모두에게 전체적인 윤곽과 표현기법

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올리의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GF는 항상 이렇게 게임을 개발합니까?]

[회장님이 관심을 두는 게임에 한해서는 그런 편이죠. 알다시피 이렇게 버려지는 영상을 만드는 건 또 그것대로 낭비니까.]

방금 본 짧은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천만 원 단위의 기회비용이 날아간다.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벌일 수 있는 이가 윤태식을 제외하면

누가 있으랴. 그런 면에서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은 매우 운이 좋았다.

미다스의 손이 큰 관심을 보인다는 건 대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는 보증수표니까.

[보여드릴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끝··· 이 아니었습니까?]

[영상이라 할 만한 건 끝났고 이번에 보여드릴 건 게임에 들어갈 디자인들이죠.]

다시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스크린에는 서브웨이 2033에 등장할 다양한 괴수들의 디자인이 나왔다.

< 드림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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