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4화 (414/577)

< 드림팀 >

*

GF 한국 본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보르타 게임즈의 직원은 30명에 달한다. 이들을 보고 CDPRed의 직원이 코웃음 쳤다.

[아주 그냥 떼거지로 몰려왔네. 숫자만 많다고 게임이 만들어지나?]

[좋은 게임을 개발하려면 숫자도 중요하지. 인력 풀이 없어서 100명도 겨우겨우 뽑는 폴란드 입장에서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뭐? 아직 게임도 만들어본 적 없는 회사 주제에.]

[회사야 이제 갓 만들어졌으니, 만든 게임은 없지. 근데, 개발자들은 이미 200만 장이 넘게 팔린 보이드를 개발해본 사람들이거든. 200만 장. 그

잘난 회사에서는 몇 장이나 팔았으려나?]

우크라이나의 보르타 게임즈와 폴란드의 CDPRed.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GF 산하에 들어온 기업이다. 그런데도 서로 인정하지 않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도 한몫했다.

17세기에서 18세기경, 지금의 우크라이나 영토 대부분이 폴란드에 속해 있었다. 당시 이 땅에는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등등 여

러 민족이 함께 살았는데 그때는 민족이나 국가라는 인식이 희박했고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초, 폴란드가 독립하며 폴란드인 사이에서 민족주의라는 바람이 불어났고 이를 지켜보던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도 독립된 우

크라이나라는 열망이 생겨났다.

이윽고 폴란드 왕국 시절에 폴란드인들이 혜택을 더 많이 받아왔다는 것에 본격적인 불만이 터져나올 즈음,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어주면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싸움을 부채질했다.

그들이 개입한 이유는 폴란드의 독립 당시 폴란드 영지의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폴란드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광

을 상징하는 영토(한국으로 치자면 만주와 같은 개념)를 차지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는 것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한편,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저들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수 세기 간 폴란드인들이 갑질과도 같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

습으로 비친 탓이다. 이렇게 적개심을 높여가다가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그로서 생겨나는 두 국가의 불화는 폴란드 영화, 보윈을 보면 알 수 있다.

참혹한 당시 시대상을 말이다.

사실 현시대에 와서는 서로 간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고, 나름 우방국의 역할을 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서로에게 우호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가위바위보조차 져서는 안 되는 그런 앙숙이었다.

그러니 GF라는 한 울타리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이들이 바로 서로를 함께할 동료라고 인식하길 바라는 것은 억지스러운 생각이나 마찬가지였

다.

[우린 100만 장이지만 너희처럼 남의 밑에서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든 거거든?]

보르타 게임즈의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했던 보이드가 두 배나 더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 기껏 팔아 놓고. 수익 분배를 못 받아서 회사가 부도날 뻔했다는 그 게임?]

한편, CDPRed의 개발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들은 이제 보이드라는 이름의 게임을 개발할 수 없는 것에 반해. 자신들은 워쳐 시리즈를 앞으

로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에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자기네 게임을 콘솔로 옮기는 것도 직접 못해서 GF가 다 해주기로 했다면서? 그래놓고 뭐가 그리 잘났다는 건지 모르겠네?]

[이 우크라이나 돼지 새끼가 감히! 너 말 다 했냐?]

[뭐라고? 이 멍청한 폴란드 놈들이!]

Polack(멍청한 폴란드인)!

이 말은 조센징과 같은 멸칭이다. 이런 비하어가 자리 잡은 것은 ‘기창(기병창)으로 무장한 폴란드 기마대가 독일의 기갑사단에 무모한 돌격 공

격을 감행했고 전멸했다.’는 잘못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게 큰 몫을 했다.

당연히 폴란드인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조롱이고 양쪽 직원들의 마찰은 빈번하게 이루어졌기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원수와도 같았다. 그러나

머나먼 이국이라는 환경과 한 달이 넘는 교육기간, 비슷한 처지라는 공통점들이 이들의 감정 사이로 교차선 역할을 해주었다.

욕하는 사이 드문드문 오간 대화가 차츰 이들을 소통하게 도와준 것이다.

[마빈. 너 요즘 표정이 영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있었지. 엄청난 일들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둘의 대화는 제삼자가 보면 기묘하게 여겨질 것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별 관심 없는 척 이야기는 하는데 정작 둘이 사용하는 언어는 각기 다른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 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앙숙이면서도 양 국가는 크게 의식하는 사이였다.

[우크라이나 개발팀은 분위기가 어때?]

[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는데, 왜 난데없이 자신들은 어떤지 묻는 것일까?

[우리야 별다른 일은 없는데?]

[아··· 맞다. 너희는 우리와 달리 엔진에 대한 교육 위주로 받고 있었지?]

[그렇지.]

[우리는 GF에서 워쳐를 콘솔로 옮기는 작업을 직접 해주고 있거든.]

혹시 회사를 인수한 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게임을 GF에서 마음대로 수정하고 고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올리에게도 꽤나 심각하게 다가올 문

제였다. 사이 나쁜 이웃일지언정 한국인이라는 머나먼 타지인보다는 그래도 가깝다.

올리는 경각심을 가진 채 마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그동안 우리는 게임 개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 너희도 그럴 거 아냐? 그동안 개발했던 게임이 솔직히 GF의 게임보다는 부

족할지 몰라도 어디에 내놓아서 꿀릴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

비록 올리는 보이드가 출시될 때까지 SCG Game World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이드의 개발 막바지까지 함께 했었다는 자부심은 가지

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거든. 그런데······.]

마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GF는 그냥 레벨이 다르더라.]

[이 정도 엔진을 직접 개발하는 회사이고 세계적인 기업에다가 선진국이니 당연히 다르겠지.]

[그냥 그런 수준이 아니야.]

체념에 가까운 마빈을 보며 올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수준인데?]

[우리가 워쳐를 콘솔판으로 개발하려고 들였던 돈이 얼마인 줄 알아?]

[우리야 잘 모르지.]

[무려 300만 달러야.]

움찔 놀랐다.

‘엄청나네.’

300만 달러!

보이드가 워쳐와 비교하면 두 배의 판매량을 올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회사다. 올리는 지금까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마빈이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개발자였구나라는 인식이 새삼 다가왔다.

[300만 달러를 쓰고도 제자리걸음이었다고?]

그러면서도 내심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 돈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달라도 한참은 달랐을 거라고 말이다. 반면, 마빈은 올리의 반응 따위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어깨에 힘을 뺀 채 대꾸할 뿐이었다.

[맞아. 그 돈에 그런 노력을 들였는데도 제자리걸음이었지. 그런데 GF에 오니 이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게임을 모두 뜯어 고쳐버리더라. 달랑 일

주일 만에. 이게 말이 되냐?]

마빈 역시 세계적으로는 성공한 게임의 책임 개발자였다. 북미에 가더라도 모셔가겠다고 나설 회사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런 그조차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쪽 실력을 보여줄 좋은 기회잖아?’

보르타 게임즈의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한 소리였다. 사실 과거보다 대화가 늘었고 사이가 좋아지기는 했으나 욕하던 시절이 얼마인데 금방 절친

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겠는가. 예전처럼 적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은 남아 있었다.

혹시나 자신들과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면 이 역시도 나쁠 필요가 없었다. GF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그만큼 함께하는 보르타 게임즈에게도 신

뢰하고 따를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미안한데, 보여줄 수 있냐?]

[뭐를? GF의 개발자들이 개발하는 모습?]

[응.]

[그래라. 워쳐 개발실에 한번 놀러 와.]

너무 쉽게 대답이 나와서 의아할 정도였다.

[그래도 되냐?]

[뭐 어때, 다 한 가족인데. 여기 사람들이 외부에 대해서는 보안이 철저한데 내부에서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더라.]

[그래?]

그렇게 마빈을 따라서 워쳐의 개발실에 견학을 간 올리.

그는 마빈과 마찬가지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기계야, 사람이야?’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방정식 AD라고 불리는 책임 개발자급의 디자이너였다. 그는 인간의 형태로 만든 프린터처럼 엄청난 속도로 그림

을 그렸는데 직접 원화로 완성시키고 있는 다양한 아이템은 워쳐라는 게임색에 완벽하게 맞아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몬스터에 대한 설계였다. 방정식 AD는 해당 몬스터가 등장하는 배경 그리고 몬스터의 설정 스토리 등을 활용해서 그에 어울

리는 기술을 빠르게 만들어내고, 그것에 맞는 동작과 움직임까지 그림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이런 디자인이면 게임으로 개발하는 건 완전 조각 케이크 먹기일 거 같은데.’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코딩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개발할 때 꼭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해당 게임을 플레

이할 기기의 성능, 인터페이스의 한계, 그리고 해당 몬스터의 특징 같은 것들이다.

바로 그 작업을 방정식 AD는 짧은 시간에 모조리 파악하고 최적화된 몬스터를 그려내니 가히 괴물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우리보다 역사도 짧은 GF가 어떻게 이 정도 기업이 됐나 했더니, 저 사람 때문이었구나.’

천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GF의 엄청난 개발 속도는 바로 저 천재가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리 여길 즈음, 또 다른 인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미친! 괴물이 또 있어!’

김대익 실장이라는 한국인이 워쳐에 등장하는 다양한 액션씬을 한데 모아서 확인하고 그것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었는데, GF의 돌아가는

시스템이 실로 기막혔다.

방정식 AD의 원화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기업, 마이코닉스에서 그래픽을 완성했고 이를 김대익 실장이 받아 실제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하나하나의 과정이 막힘없었고 부분의 완성도는 감탄이 나올 만큼 완벽했다.

‘꿈의 팀이네.’

각자가 맡은 역할이 서로 달랐으나 그것들이 아주 조화롭게 맞물려 있다. 게다가 그 전부가 엄청난 실력자들이라 서로의 역할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가 몇 배의 시너지로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마빈의 심정을 느꼈다.

‘단순히 좋은 게임을 구상하는 그런 차이가 아니야. 이건 압도적이다.’

이토록 조화로운 게임 개발팀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던 그의 시선이 김현섭 실장에게 닿았을 때, 올리는 진정

한 기계 인간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게이머들이야 완성된 게임을 경험하니 그냥 그래픽적인 요소들만 보게 된다. 하지만 게임은 복잡한 코드와 수치로 이루어진 산물이고 이 과정에

는 다들 각자의 방식을 쓰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간단하게 1에서 9까지의 숫자 중 3개의 숫자를 활용해서 10을 만들어야 할 때, 누군가는 1+3+6=10이라는 방법을 쓸 수 있다. 또 다

른 누군가는 2+5+3=10을 택할 수 있고 누군가는 3x2+4=10이라는 형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게임 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존재는 하지만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방법은 각자의 스타일에 따른 명령어로 이루어지기에

직접 개발한 개발자가 아니라면 버그가 발생하는 규칙을 찾아내기 매우 어렵다.

1,988번째 줄의 오류를 찾기 위해서 그 기본 틀을 제작한 30번째 줄의 규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봐야 하는 엄청난 대작업이 반복될 수 있다.

그런데 김현섭 실장이라는 인간은 본래 개발자보다 더 빠르게 버그가 되는 요소를 잡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상상을 넘어서는 팀워크. 꿈의 직장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만 같은 환경. 그곳에서 일하는 엄청난 엘리트!

있을 수 없는 조합이 GF에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마빈의 심정이 100%로 이해됐다. 이런 환경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면 올리 역시 자

기비하에 빠질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했다. 어설픈 자신감과 경쟁심을 가졌을 때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막상 ‘우리랑 다른 곳이야.’라며 체

념하고 인정하니 스멀스멀 전혀 다른 심정으로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개발하면 우리 게임도 어마어마해지는 거 아닐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올리는 그대로 워쳐의 개발실을 나와 올렉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전달했다.

[기술을 배우는 정도로는 안 돼. 우리 손으로 만들기보다 GF의 지원을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격이 다른 게임을 만들 수 있어!]

[에이. 그래도 시도는 하다가 막히면 도움을 청해야 하는 거 아냐?]

[맞아. 회장님은 우리가 직접 개발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맡겨주셨는데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러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그게 아니라니까!]

충격을 받고 온 올리의 심정을 동료들이 어찌 쉽게 이해하랴. 하지만 체험시켜준다고 우르르 데리고 워쳐의 개발 현장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만약 그렇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더 실망을 드린다면 그때는 어떡할 거야? GF에 비하면 떨어지니까 그냥 인정하고 처음부터 도와달라고 하자.

그렇게 게임을 완성하고 나면 이후에는 GF의 지원이 없어도 어떻게든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거야.]

올리는 올렉에게 떼쓰듯 강경하게 말했다.

[경력은 우리가 더 길어. 우리는 GF가 있기 전부터 게임을 개발했다고. 그런데 왜 수준 차이가 이렇게 벌어질까? 나는 환경 때문이라고 봐. 이들

의 기업 시스템을 제대로 체험해봐야 우리도 달라진다고.]

[거참······.]

[이 기회를 무조건 살려야 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강직하게 말하는 올리의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올렉은 조심스레 자신들의 의사를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윤태식은 김강철이라는 인물을 자신들에게 보내주었다.

< 드림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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