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2화 (412/577)

< 드림팀 >

마빈의 심정을 뒤늦게 짐작하고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자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스스로 자책하고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없는 말을 지어낼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자괴감을 느낄지 모르나 이들에게는 포텐셜이 있다. 향후 5년이면 이곳에서 이들이 존경스럽게 마주

보고 있는 한국인 개발자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니 이렇게 주눅 들지 않아도 됐다.

[우리 GF가 게임사들 사이에서 굉장한 명성을 얻고 있는 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개발자들 대다수가 이미 실패했던 게임

들만 연거푸 개발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시지요?]

[네?]

[겉으로 드러난 유명세 이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겁니다. 지금이야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지만 이들도 오래전에 개발했던 게임들에는 버그가

난무하고 게임 진행이 불가능하기도 했으며 결국 엔딩까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했던 유저가 10%도 안 되는 그런 게임을 개발했던 이력

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느냐다.

[그에 반해 워쳐는 첫 작품임에도 100만 장이나 팔리고 어찌 됐든 30% 이상의 유저가 엔딩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도록

하세요. 여러분은 경험이 부족할 뿐입니다. 10년쯤 후에는 워쳐 시리즈가 폴란드를 상징하는 게임이 되어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타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는 없으니 충분한 위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마빈의 표정과 폴란드 개발자들의 분위기가 가벼워진 것을 통

해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으리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그제야 나는 이들에게서 김대익 실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워쳐가 얼마나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어디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김대익 실장이 일어나서 자신의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당장은 뭐 보여드릴 만한 것들이 없긴 합니다. 게임 자체를 플레이하기는 어렵고 그냥 전투만 가능하도록 해두었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볼까요?”

본래의 더 워쳐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인터페이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반면, 새로운 워쳐는 콘솔용 게임이다. 기존의 인터페이스로는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 없었기에 가장 먼저 수정한 것이 바로 인터페이스였다.

‘이 부분은 팬더그램과 김대익 실장이 다양한 경험을 미리 쌓아뒀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우리도 꽤 낭패를 볼 뻔했어.’

패드를 직접 들고 플레이해보았다.

아직 새로운 아이템이 개발되지 않았고 기존의 아이템으로 액션 RPG로의 전환만 된 상태였다. 그런만큼 내 평가는 매우 간결했다.

“굉장히 심심합니다.”

김대익 실장이 참여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단조롭다.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애당초 디자인 자체가 타격점이라거나 동작에 별다른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보니 현재는 타격감이나 액션성

을 추가하기보다는 당장 필요한 시스템을 먼저 추가하는 중입니다.”

‘하긴.’

처음부터 액션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게임을 액션 게임으로 수정하는 중이다. 그러니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많았을 텐데 내가 너무 성급했다.

‘드림팀을 구성했다고 내가 너무 빨리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나 보네.’

하지만 지나친 기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대익, 방정식, 김현섭.

GF의 최정예인 세 실장이 하나의 게임에 붙어서 개발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런 인력을 투입하면 최소한 100만 장은 팔려야 수입이 남

는다고 보면 된다. 전설이 될 작품에 전설급 직원들을 붙였으니 기대심리가 작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다음은 방정식 AD의 업무를 확인했다.

‘이건 애니메이션을 위한 콘셉트 아트라고 불러도 되겠어.’

그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콘솔용 워쳐에 추가될 아이템과 그 아이템에 맞는 동작을 하나하나 맞춰서 표현했

는데 작업 순서는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방정식 AD가 그림들을 마이코닉스로 보내면 그것을 토대로 마이코닉스에서 워쳐의 시스템에 맞는 그래픽으로 아이템을 탄생시킨다. 그러면 김

대익 실장이 그것에 맞게 액션을 창조해 내는 식이었다.

즉,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이 방정식 AD의 그림에 있다고 보면 된다.

‘이건 무조건 된다. 느낌부터가 확 와.’

그만큼 단순한 그의 그림에는 게임에 필요한 시스템은 물론이고 시대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액션에 녹아드는 근육의 활용법까지 완벽하게 묘사

되어 있었다.

‘김현섭 실장이야 언제나처럼 세상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딥러닝 머신마냥 일하고 있는 그에게 혹여, 내 기척이 집중을 방해하기라고 할까 싶어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렇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병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김유천 실장을 불렀다.

“콘솔판 워쳐 개발팀은 당분간 크런치 모드를 피할 수 없겠지요?”

“그럴 겁니다. 폴란드의 개발자들이 합류한 덕분에 기대 이상의 인력을 가동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작업이 방대하다고 들었습니

다.”

“당분간 워쳐 개발팀에는 저녁 식사비용과 간식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십시오.”

“이미 우리 회사는 야근 수당에 식비와 간식비는 물론이고, 교통비까지 지급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원래 자신들의 게임이 아니라 남의 게임을 도와주기 위해서 야근하는 중입니다. 더 워쳐가 대성공을 이루었을

때 가장 메인에 오르는 이름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김대익 실장? 방정식 실장? 김현섭 실장?”

둘 다 아니다.

“마빈이 오르게 될 겁니다.”

물론, 워낙 원본과 다른 게임으로 재탄생할 게임인 만큼 세 실장의 이름과 GF가 한동안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이후에는 어

떨까?

원 개발자들의 이름만이 기억에 남게 된다.

그런 만큼 이들에게는 추가의 보상을 더 해주어야 마땅하다.

“아무리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라곤 하지만 개발자들은 자신의 게임이 전 세계에 내걸리는 것. 그 자부심으로 다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 일을 하는 동안에 약간의 보상을 추가하고 이후, 게임이 성공하면 인센티브로 그 보상을 확실하게 해줄 예

정입니다.”

돈으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비록 명예와 정신적인 만족감까지 100% 만족시킬 수는 없으나 스스로 느끼는 보상심리를 넘어설 정도의 돈이

면 상실감을 쉽게 이겨내는 것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꿈속 미래의 한 그림이 두고두고 재사용되었겠는가.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라는 말로 타협하는 한 컷이 말이다.

‘내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뿐이니까.’

인색하게 굴지 말자.

“네,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

콘솔판 더 워쳐의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지금과 같은 속도면 2008년 E3에서 충분히 게임을 시연해 보일 수 있을 예정이다.

‘콘솔이 시연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서 콘솔 자체로 시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시기까지 초기 테스트 버전 정도는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E3에서 시연하기에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먼저 안겨줄 수 있기에 이번에는 기기

자체를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덕분에 콘솔보다 게임이 먼저 완성되는 특이한 사례로 남을지도 모른다.

한편, 김유천 실장이 재밌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우크라이나 보르타의 개발진들이 더 워쳐의 진행도를 보고는 자신들도 본사의 지원을 받고 싶다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올렉 야포르스키가 요청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GF의 정예가 총동원된 덕분에 순식간에 높은 진행률을 보이는 더 워쳐에 대해 계열사 직원들이 모두 기대하는 중이다.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소

원함을 느낀 모양이고 실제로도 그들만의 역량으로는 여러모로 게임 개발에 애로사항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폴란드보다 숫자만 많지 포텐셜은 우크라이나가 좀 떨어지기는 해.’

확실히 고려할만한 문제이기는 하다.

이미 완성되어 발매까지 다 된 워쳐와 달리 서브웨이 2033은 이제 개발을 시작해야 하는 단계다. 이를 참작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한 뒤 나는 김유천 실장에게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스틸 프로젝트에게 서브웨이 2033을 지원하도록 이르세요.”

“스틸 프로젝트가요?”

일단 서브웨이 2033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FPS다. 그리고 우리 GF에서 이 FPS에 가장 특화된 개발자는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성공으로 스

틸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스튜디오의 사장이 된 김강철 사장이다.

“거기는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신규 업데이트 개발 때문에 여유가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은데요.”

김강철 사장의 스틸 프로젝트는 월매출 400억의 배틀 오브 발러와 최근 월매출 100억 이상을 꾸준히 내면서도 계속 성장해주고 있는 바벨 이터

널 스트라이프. 이 두 개의 인기 게임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만큼 스튜디오의 규모보다 거대 게임사로서의 포스를 풍기는 곳이다.

고작 두 개의 게임이지만 월매출이 무려 500억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 틀어도 연 매출 6,0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사가 그

리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스틸 프로젝트는 이제 당당히 GF를 대표하는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었다.

‘다들 그러니까 당연히 엄청나게 바쁠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 아니거든.’

나는 안다.

김강철 사장은 요즘 한가하다.

‘배틀 오브 발러야 이미 콘셉트가 완성된 게임이고 중국의 유저들이 현질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구성해서 그에 맞춰진 업데이트를 해주는 게 관

건이지. 그런데 이건 이쪽 업무가 아니야.’

중국 게이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이벤트를 계획하는 것은 스틸 프로젝트가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텐션의 업무

다.

즉, 배틀 오브 발러에서 김강철 사장이 할 일은 별로 없다.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도 마찬가지지.’

미완의 상태에서 출시했고 이후, 꾸준한 업데이트로 부족한 콘텐츠를 채워나가는 중이라서 김강철 사장의 손이 많이 가고 있을 거라고 여기는데

이 역시도 착각이다. 여기도 향후 2년간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어 있다.

김강철 사장은 그냥 잘 되어가나 한 번씩 확인만 해주면 되는 거다. 그러니 일을 시켜도 된다.

“그러니 김강철 사장이 서브웨이 2033을 지원하도록 하고 추가로 폴란드의 CL게임즈의 인력도 서브웨이 2033의 개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

세요.”

“CL 게임즈 말씀이십니까?”

“네.”

1년에 5개나 되는 타이틀을 발매하는 굉장한 개발력을 자랑하는 CL 게임즈.

‘비록 99%가 쓰레기 타이틀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CL 게임즈 개발진이 특화된 분야가 바로 FPS다. 그러니 이들에게 서브웨이 2033을 지원토록 하고 서브웨이 2033의 경험과 그 틀을 활

용해서 비슷한 게임을 양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인력에 관해서는 김강철 사장에게 전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김강철 사장이 한량처럼 지낸다는 것을 모르는 김유천 실장은 ‘또 설득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겠구나.’ 하며 참담한 표정이었다.

“···이번에도 잘 전달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수고해주시고 저는 워쳐의 진행 과정을 보러 갈 테니 그렇게 알고 계세요.”

“네······.”

빙긋이 웃고 나는 다시 더 워쳐의 개발실을 보름 만에 찾아갔다.

‘이번에는 많이 진전됐겠지?’

내가 자주 들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명작 게임이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빨리 게임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덕업일치 아니겠는가!

나 같은 게이머에게 이보다 행복한 직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회장님 나오셨습니까?]

여전히 내가 오더라도 개발이 먼저라는 GF의 스타일에 익숙해지지 못한 폴란드의 개발진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인사를 해온다.

[괜찮으니까 하던 일 하세요.]

그리고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를 가장 잘 이해하는 김대익 실장이 워쳐의 테스트 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 자신 있는 모양이군요?”

“제 기대보다는 꽤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회장님이 직접 해보셔야 판단이 가능하겠지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직 개발이 한창인 워쳐는 여전히 스토리 모드 그 자체로의 실행은 불가능하다. 프롤로그 정도야 구현이 완료된 상태지만

그걸 지금 기대하는 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무리다.

그러니 현재는 액션 담당인 김대익 실장을 통해 더 워쳐 최대의 문제점이던 전투 부분을 바로 추출해서 테스트하는 중이었다.

‘박진감 제로였던 게임을 내 기대 이상으로 잘 바꿨을까?’

게이머로서 기대되고 흥분된다.

“대부분의 보스가 다 구현되어 있군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인 보스의 특징이라거나 레벨 같은 건 자료가 확실하다 보니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한 번 볼까요? 일단 기본적인 장검으로 세팅을 하고 장비는··· 오호라. 이거 느낌이 바이킹 같기도 하고···”

워쳐라는 특별한 존재들을 콘셉트로 잡아서일까?

장비들에는 일반적인 RPG에서 볼 수 없었던 북유럽의 감성이 물씬 담겨 있었다.

< 드림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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