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1화 (411/577)

< 드림팀 >

147. 드림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를 돌며 수많은 게임사와 협의했다. 그 결과, 많은 타이틀을 확보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X에 어울리도록 만들

어야 할 때가 왔다.

“그 첫 번째는 더 워쳐로 하겠습니다.”

워쳐의 최초 타이틀인 더 워쳐.

나야 시리즈들을 모두 알고 있으니 그냥 ‘워쳐1’이라고 부르지만, 결과적으로 현재까지는 단 하나의 작품만이 나온 상태이다. 그래서 ‘더 워쳐’

혹은 ‘워쳐’라고 부르는 것이 맞았다.

향후 대단한 명작으로 손꼽힐 이 게임에 대한 GF의 평가는 골칫덩어리라는 것이었다.

“회장님. 지금 개발팀에서 상당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게임 자체의 스토리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버그가 심각해도 너무 심각해서 이걸 수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무도 관심 없던 폴란드. 그곳에서 등장한 엄청난 성공작!

그러나 GF의 숙련된 개발자들의 눈에는 빈틈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환장할 지경이다. 사실,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다. 애

당초 그것 때문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개발자들을 한국에 불러들여서 교육까지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이걸 수정할 바에는 저희 엔진으로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렇습니까?”

모두가 원한다면 응당 들어주는 것이 대표의 인지상정!

“그럼 우리 엔진으로 다시 만듭시다.”

사실 워쳐의 엔진이 허접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애시당초 워쳐를 개발할 때 사용한 엔진은 우크라이나처럼 이들끼리 자체 제작한 것이 아

니라 북미 최고의 게임 개발사 중 하나인 바이어웨어의 엔진을 활용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더 워쳐가 가진 수많은 버그를 비롯한 문제는 엔진에서 나오는 고질적인 문제라기보다 폴란드 개발자들의 역량 부족으로 말미암은 일이

었다. 오죽하면 PC게임으로는 멀쩡히 잘 만들어서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게임 수익을 다 쏟아붓고도 콘솔로의 컨버팅을 못 했겠는가.

“하지만 그리되면 시간과 예산이···”

“그런 사소한 것에 구애받을 필요 없다는 건 이미 잘 알잖습니까.”

내 말에 회의실에 개발자들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맞다. 완성품의 퀄리티가 중요하지 시간과 예산은 우리 회사에서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소수의 정예를 갈아 넣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인원을

확충하여 최대의 성과를 얻으면 된다.

“어차피 아직 기한은 넉넉합니다. 수정할 것들을 확실히 수정하고 이전보다 더 재미있게 뽑아내서 출시합시다.”

“네, 회장님.”

이로부터 근간부터 싹 엎어버리는 리뉴얼 작업이 시작됐다.

꿈속 미래로 보건데, 워쳐 시리즈는 팬들에게 갓겜이니 명작이니하는 소리들을 듣는 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게임만큼 지나치리만큼 확실하

게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도 드물다. 만인이 좋아하는 반열에 들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극도로 적은 아이템이다.

“무기는 고작 열 개. 방어구는 달랑 셋. RPG가 이렇게 파밍 하는 재미가 없어서야 곤란합니다.”

심지어 메인 퀘스트에서 획득할 수 있는 방어구가 두 종류이니 파밍이랍시고 할 만한 방어구가 고작 한 개다.

“이것부터 팍팍 늘려봅시다.”

소규모 개발사에서 흔하게 나오는 한계다. 아이템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냥 해당 아이템에 대한 그래픽이 추가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각 아이

템에 따른 액션과 그에 맞는 특성이 추가되어야 했다.

즉, 아이템 한 가지가 늘어나려면 소수의 개발자는 밤샘하며 엄청나게 갈려 나갈 수밖에 없다. 그 탓에 워쳐 시리즈를 옹호하는 팬들도 이 부분

에서만큼은 호불호가 갈리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그건 정해졌던 미래의 일일 뿐.

내가 관심 두고 GF가 손을 대면 완벽하게 환골탈태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여기에 NPC의 디자인을 추가합시다.”

일이 무한정 커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막상 따지고 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게임 NPC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은 마이코닉스에게 맡기면 그

들이 게임 개발자들보다 월등하게 잘 해내 준다. 그러니 개발 파트의 일거리가 줄어든다.

뿐만이랴. 내가 짚어주기도 전에 답답해서 내가 뛴다는 심정으로 우리 개발자들이 먼저 손대는 영역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전투 액션이다.

“이런 세계관의 게임을 왜 이딴 식으로 만든 거래? 폴란드 감성은 싸움을 리듬으로 하나?”

“타격감도 구리고 이건 뭐··· 한숨 나오는군.”

더 워쳐의 세계관은 본래 엘프와 드워프 등의 비인간들이 살던 세계에 천구의 결합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악마와 인간이 침범해 오는 것으로 시

작한다.

인간은 고작 수백 년 만에 엘프들의 특기라 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고 이내 특유의 호전성과 번식력을 앞세워서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하플링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세계를 정복했다.

그렇게 세계를 정복한 호전적인 인간들이 같은 인간이라고 평화롭게 지냈을까?

인간들은 이제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고, 결국 대륙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세상은 전염병과 기근으로 더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그렇게 기나긴 대전쟁이 끝난 5년 후. 세상의 불길한 기운이 대륙의 인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어느 날, 와일드 울프라 불리는 주인공. 라비아

의 게랄트로서 서사시가 펼쳐지게 된다.

대충 정리한 이 내용만으로도 더 워쳐의 스토리가 얼마나 장엄한지를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더 워쳐를 플레이하면 맹숭맹숭

하기가 그지없었다.

“액션 RPG도 아니고···”

“SRPG도 아니고···”

“오오! 리듬 액션 RPG라니. 이건 진짜 스토리 때문에 하는 게임입니다.”

“폴란드 개발자들에게 편견 생기려고 그래. 몰입 안 되는 참혹한 전투 액션을 보면··· 오오. 맙소사.”

음악 차트만 역주행하는 게 아니다. 훗날 워쳐3가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 인기 때문에 접한 게이머들은 시리즈의 최초 작품인

워쳐1을 플레이하려는 강한 열망을 느낀다. 그리고 경험하며 굉장한 실망을 감추지 못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전투 시스템이다.

- 워쳐1 해보신 분! 칼질이 안 되는데 이거 버그인가요?

- 워쳐1 이거 뭐야? 칼질이 안 됨?

- 이거 뭐냐?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이와 같은 수많은 의문을 남긴 전투 시스템은 사실 버그가 아니었다. 상황에 맞는 공격을 선택해야 공격이 가능한 리듬 게임의 형태를 가졌기에

아무렇게나 자신이 원하는 공격을 시도한다고 해도 칼질이 나가지 않는 게임이었다.

‘애초부터 리듬 액션과 같은 형태의 전투를 할 거라는 뉘앙스를 보여주고 있었다면 이런 혼란이 생겨나지도 않았겠지.’

전투에 돌입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액션 RPG와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데 실상 전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흥미를 잃고 떨어

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폴란드 개발자들이라고 해서 발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후에 개발하는 워쳐2 부터는 이런 결함들을 수정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확신할

수 있는 건, 더 워쳐를 개발할 당시에는 지금의 퀄리티가 그들의 실력이자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즉, 더 워쳐의 개발자들보다 월등한 환경과 실력, 경험과 자원을 가진 GF의 개발자들에게 이 허접한 전투 시스템은 단 일주일 만에 수정할 사안

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물론 사람들이 열광할 정도의 타격감과 액션성을 넣으려면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그거야 차근차근 보완하면 그만이지.’

더 워쳐의 액션 파트는 김대익 실장에게 믿고 맡겼다.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통해 국내 개발자들 사이에서 스타덤에 오른 인물. 작금에는 전 세계에서도 액션 장르를 일컬을 때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

에 꼽히는 개발자가 됐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더 워쳐의 망할 액션성을 100% 살려줄 수 있다.

여기에 합이 맞는 인력을 추가했다.

“김대익 실장이 추구하는 액션성은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장비 아이템이 필수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방정식 실장과 다시 한번 손을 잡으라

고 하세요.”

방정식 AD는 상당한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다. 이 사람은 인체는 물론이고 몬스터들마저도각각 디자인에 맞는 현실적인 근육의 활동량과 움직

임에 대해 디자인하는 천재적인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만큼 빠르게 장비에 맞는 움직임들을 재현해낼 수 있었다.

끝으로 한 사람을 더 추가하여 더 워쳐를 위한 드림팀을 완성한다.

“팬더그램에 있는 김현섭 실장이 파견을 와야겠습니다.”

일찍이 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샤이닝 로드를 수정하고 총 책임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대라 불리는 키이스트의 박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게임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버그들을 파악하고 이를 안정화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가뜩이나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우리 개발자들인데 원년 멤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정예가 더해진다면?

단언컨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는 개발팀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내 지시를 전달해야 하는 김유천 비서실장의 표정은 난처함으

로 가득했다.

“저기··· 회장님. 그 사람들은 전부 회사의 핵심 개발자들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이미 담당하고 있는 게 엄청난 사람들을 어떻게 한 팀으로 묶어야 할는지······.”

“괜찮습니다. 전달하는 건 제가 아니거든요.”

우스개를 섞자 그의 표정이 더욱 난감해졌다.

“회장님. 그 사람들을 다 빼내 왔다가는 제가 사장단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허! 지금 보고 받은 내용에는 이 사람들이 꼭 있어야 하는 프로젝트가 없는데 무슨 걱정이 그리도 많습니까? 가서 일 보세요.”

“······네.”

축 늘어진 어깨로 김유천 실장이 나갔다.

내가 내린 오더를 이행하기 위해 각 개발팀을 찾아다니며 그가 어떤 대화를 했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틀 후.

GF 홀딩스 내부에 「프로젝트 X - 더 워쳐 : 와일드 울프」를 위한 새로운 드림팀이 만들어졌다는 결과였다.

그리고 김유천 실장은 회사에 병가를 냈다고 한다.

*

최정예 드림팀의 업무가 어찌 진행되는지 슬쩍 방문했을 무렵.

[회장님. 나오셨습니까?]

폴란드의 개발사 CDPRed의 공동사장이자 핵심 개발자인 마빈이 얼른 내게 인사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바뀐 느낌인데?’

그는 워쳐1이 콘솔판으로 재개발되는 과정에 함께 하기 위해서 새로운 드림팀에 합류했다. 정확히는 그만이 아니라 워쳐1의 핵심 개발자들이

모두 다 이 팀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재미난 점은 내가 와도 일단은 하고 있던 작업에 집중하라는 GF식 문화에 익숙한 기존 개발자들은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폴란드

의 개발자들은 전부 마빈을 따라 벌떡 일어나서 인사했다는 것이다.

[개발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저기··· 그게···]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질문을 한 건가?’

별 것 아닌 질문에 마빈의 고개가 푹하고 떨어졌다.

[워쳐1의 성공으로 사실 저희들끼리는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개발자들을 보니 저희가 얼마나 형편없는 실력으로 자

만하고 있었던 것인지를 느꼈습니다.]

통렬한 자기반성이지만, 사실 이건 경력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은 폴란드보다 게임 개발에 있어서 더 오랜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GF는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개발자들을 보유한 그룹이다.

이 자리에 있는 개발자들은 그 최고 중에서도 단연코 뛰어난 베스트를 엄선했으니 한국 최고의 개발자들이라 하겠다. 그러니 경험이 부족한 폴

란드의 개발자들과 큰 격차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당신들 역시 대단한 포텐을 갖고 있고.’

꿈속 미래의 워쳐 시리즈를 어중이떠중이들이 어찌 만들겠는가.

‘하지만 나도 실수하고 있었네. 더 나은 게임을 만드는 건 좋은 일이지만, 기존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겠지.’

개발자들에게 게임이라는 것은 자신이 직접 품은 자식과도 같다. 그런데 그 자식이 불량품이라는 판정을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의

참담함은 어느 정도일까.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수정 당한다면 말이다.

< 드림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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