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10화 (410/577)

< 삶의 목적 >

한껏 기대감이 올랐던 이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비쳤다. GF 그룹의 비서실장이 결코 만만한 직위는 아니지만, 지금은 윤태식 회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가.

“회장님은 많이 바쁘신가 봐.”

“실장이면 그래도 엄청 높은 거 맞지?”

“그럼요. 원래 이런 기업에서 실장이라고 하면 임원급이거나 임원의 바로 아래? 뭐 그런 거일걸요?”

자기들끼리 조용히 몰래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비서실의 직원들의 귀에 그 말이 들렸던 모양이다. 이들에게 다행인 것은 이 비서실의 직원의 귀에 이들

의 대화가 실망감에 의한 대화라기보다는 실장이라는 직위가 주는 그 위치에 대한 순수함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알려주었다.

“일반적인 실장님들이랑은 다른 위치십니다. 실제로 비서실장으로 발령받기 전에는 GF그룹의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GF 글로벌의 대표이사로 계셨고

요.”

그 말을 끝으로 응접실을 나갔고, 팀 켈베로스들은 마지막에 들은 대표이사라는 단어만이 계속 맴돌았다.

“실장이라는 게 그렇게 높은 거였어?”

“아까 하는 말 못 들으셨어요? 일반적인 실장이 다 그렇게 높은 건 아니고. 비서실장만 높은 건가 봐요.”

“비서면 회장님 보필하고 뭐 그런 거 아니야? 그게 그렇게 높은 거야?”

“에이. 형. 영화 같은 거 안 보셨어요? 왜 있잖아요. 원래 높은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그 높으신 분의 치부나 이런 걸 다 보니까. 원래 더 쳐

주고 그러잖아요.”

“아! 그거구나.”

그들끼리 나름의 결론이 만족스러웠는지, 더 이상 엉뚱한 대화로 시끌벅적하지 않아질 즈음. 응접실의 문이 노크 소리에 이어서 열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GF그룹의 비서실장. 김유천입니다.”

팀원들 전부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영업 출신답게 친절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입에 맺혀 있는 김유천 실장이었지만, 일개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이 상

대하기에는 무거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는 팀 켈베로스라고 합니다

괜스레 손을 바지에 쓱쓱 닦으며 김선홍이 대표로 악수했다. 이미 대표이사까지 역임하고 현재는 회장님의 최측근으로 높으신 분의 치부를 담당하는 인

물이라는 인식 탓일까, 눈빛도 살벌하고 더욱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눌리고만 있으면 안 돼.’

손에 땀까지 차기 시작하자 김선홍 팀장은 이 긴장감을 누르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김유천 비서실장님··· 이라고 하셨죠?”

“그냥 김 실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김 실장님. 그냥 터놓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대체 GF라는 거대 기업에서 우리를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원하는지를 모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이상하네요. 이미 여기 직원분 중 한 분과 회장님이 직접 만났고 이유를 밝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순간 팀장의 눈빛이 막내 이명우를 향했고, 이내 그 표정을 받은 명우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얼굴로 입 모양만 겨우 움직였다.

‘레인보우 스토리? 진짜로 그것 때문이었어?’

더더욱 이상했다.

“그 게임은 고작해야 이제 1장만 겨우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그것 때문에 저희를 영입하려 하신다는 게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는데, 우리 회장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틀로 이해하려고 들면 안 됩니다.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신 분이시죠.”

손가락을 드는 제스처로 김선홍의 말을 끊은 뒤 김유천이 말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면, 뉴 온라인 아시죠?”

그걸 모를 수가 있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3D 온라인 RPG. 대한민국에서 절대 등장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엄청난 그래픽의 게임에 대한민국 게이

머 전체가 환호했던 게임이다.

“처음 그 게임에 투자할 때, 당시 개발자들은 게임 콘셉트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못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회장님은 투자하셨죠. 심지어 처음부

터 중국에서 대박을 낼 거라는 확신까지 가지고 말입니다.”

일반인들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이들은 알고 있다. 뉴 온라인의 초기 개발자들은 나름의 명성을 쌓아가고는 있었지만 그래봤자. 비주류 개발자들일 뿐이

었다. 개발자들의 명성을 보고 투자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콘셉트도 명확하지 않은 비주류 개발자들이 개발 중인 게임.

투자가치를 조금도 증명하지 못한 게임.

이 상품에 윤태식 회장은 과감하게 투자했다.

“그 이유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어요. 회장님 같은 분은 우리와 다른 감각을 가진 저기 저편의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런 분이십니다.”

김유천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저는 당신들의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아요. 회장님께 선택받았으니 영입하는 것. 오직 그겁니다.”

“그럼 저희는 이대로 GF의 개발부서에 편입되는 건가요?”

“저야 그러기를 바라는데 회장님의 의중은 다르시더군요. GF에 흡수하고 원하는 게임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면 여러모로 편할 텐데······.”

그는 ‘왜 이런 어중이떠중이한테 이토록 큰 기회를 주지?’라는 내려다보는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 겁니다.”

“새로운 계열사요?”

“인디게임만 개발하는 스튜디오들을 묶어서 관리하는 계열사죠.”

각각의 개발사들이 GF 그룹과는 별개의 회사로 운영되는 GFI와는 또 다른 개념이다. 말 그대로 GF 그룹에 소속이 된 상태로 여전히 인디게임을 개발하

며 수익성보다는 인디게임들의 독창성에 투자하고 추후, 괜찮은 아이템을 선발한다.

그리고 선발된 아이템은 상업적인 게임을 개발하는 시스템이었다.

“여러분은 이 계열사에서 지금처럼 자유롭게 게임을 개발하면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디게임을 개발한다는 부분만 다를 뿐 엄연히 GF 그룹의 정

식 계열사이고 여러분도 GF의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겁니다.”

“그럼. 저희 게임은 팀 켈베로스가 아니라 GF의 게임이 되는 거겠네요.”

깊이 고민하는 김선홍을 보며 지금까지 순순히 지켜보고 있던 팀원들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팀장님. GF라고요. GF!”

“이게 지금 고민이 될 만한 일이에요?”

“월급이 나오는 정규직인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으로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걸까.

이명우를 비롯하여 답답해하는 일행에게 김선홍이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여기 GF와 같은 대기업은 철저히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집단이야. 이런 곳에서 우리에게 투자한다? 만약에 우

리가 그만한 이익을 못 내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내면 되죠!”

“그리고 그냥 우리 팀에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거잖아요.”

“지금 있는 개발 파트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계열사에 들어가는 거야. 이러면··· 그냥 그 스튜디오만 문 닫으면 해결되는 문제지.”

처음에는 소곤소곤하는 흉내라도 내더니 이제는 대놓고 대화하는 중이다. 김유천 실장은 자신이 들리는 이 자리에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어처구

니가 없었지만, 일단은 겉으로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팀장님 의견은 뭔데요? 우리 이대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끼리 개발해요?”

“솔직히 그렇게 하는 것도···”

김유천 실장은 이들이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GF에 들어온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거라면 잠자코 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이어진다

면 팀장의 의견대로 결론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팀 켈베로스라는 말만 들었을 뿐, 팀장님의 소개를 받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김선홍이라고 합니다.”

“네. 김선홍 팀장님. 듣고 있다 보니 의문이 생기던데요. 켈베로스라는 팀은 계속 아마추어로 동호회처럼 운영하려고 모인 팀입니까?”

“아닙니다. 본업 개발자가 되려고 모였죠.”

“그런데 왜 아마추어로 행동합니까?”

김유천이 정말 궁금하다는 투로 말했다.

“생각해봅시다. 아마추어가 아니고 취미생활도 아니며 여러분은 본업 개발자가 되려고 모인 분들입니다. 어딘가로의 취업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게임사

를 만드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맞습니까?”

“네.”

“시간을 당겨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만드는 툴로 게임을 만들었고 최고의 성과를 얻었다고 칩시다. 과연 얼마나 벌었을까요?”

괜찮아 보이는 것을 보고 들으면 흉내내기 마련이다. 김유천은 가까이에서 윤태식을 지켜보았고 그의 어투를 자신의 경험에 녹여서 사용하고 있었다.

“얼마나 벌 수 있겠습니까? 1억? 그만큼이라도 벌 수 있을까요?”

고작해야 게임 개발 툴로 개발한 게임이다. 진짜 비싸게 팔아서 만 원에 팔았다고 친다면 1억을 벌기 위해서 1만 카피를 팔아야 한다.

1만 카피는 기적의 숫자다.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 없으나, 맥시멈으로 잡아봅시다.”

‘1억을 벌었다고 쳐본다, 라며 말을 이었다.

“개발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 역시도 1년이라고 쳐봅시다. 즉, 다섯 명의 팀원이 1년간 일해서 얻는 수입은 1억인 겁니다. 개인으로 나누면 연

봉 2,000만 원이 되는군요. 하지만 잘 아시겠지요? 이건 대박을 터트려야만 얻을 수 있는 꿈의 수익이라는 점을?”

김유천의 앞에서 윤태식과 대기업의 욕망을 토로하던 김선홍의 입이 다물어졌다. 개고생해서 만든 게임이 대박을 쳐도 GF에 와서 따박따박 월급 받는

것보다 적게 받는다는 말은 두말할 나위 없는 진실이었다.

“여러분의 목표는 본업 개발자 또는 회사를 차리는 겁니다. 이런 수입으로 과연 어떻게 회사 차릴 수 있을까요? 노력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성실함과 결과물은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다.

“매년 1억씩 번다고 쳐 봅시다. 그 돈이면 충분할까요? 회사를 차리려면 사무실이 있어야 합니다. 유지비도 들어가요. 연 1억으로 과연 회사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스케일 좀 키우려면 사람이 더 필요한데 인건비가 추가되지요. 이러면 더 벌어야 하군요.”

김유천의 날카로운 말이 김선홍에게 파고들었다.

“안타깝습니다. 기회가 기회인지 모르고 지나면 얼마나 후회가 크겠습니까? 우리 회장님이 당신들에게 마음 편히 게임을 개발하도록 해주신다고 하셨

습니다. 그냥 와서 하던 대로 하고 지금 버는 것보다 더 벌어가라고요.”

그렇게 여유로워진 지갑과 마음으로 좋은 게임을 개발하고 넉넉히 통장에 잔고 좀 쌓이면 독립을 하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우리 회사에는 독립 스튜디오 지원 제도도 있습니다. 기획과 아이디어만 훌륭하면 투자받고 스튜디오를 따로 설립도 됩니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모르

겠습니까? 당신들이 지금 무슨 행운을 잡은 건지? 그리고 김선홍 팀장님이 이명우 팀원이 붙잡은 기회를 차버리고 있다는 것도?”

“그··· 그건···”

입술이 바짝 마르는 걸까, 대답을 못 하고 주저주저하는 기색이다.

“분위기를 보니 다른 팀원들이랑 다르게 김선홍 팀장님은 업계에서 물 좀 먹은 거 같은데, 당신도 당신 나름의 사정이 있기야 할 테지. 대기업에 대한 불

신? 이해해. 뭐, 여기에도 그런 불신 가득 가지고 찾아온 개발자들은 많거든.”

냉소적이던 김유천의 말이 짧아졌다. 그러나 이를 지적할 정신이 켈베로스 팀원들에게는 없었다.

“그 사람들? 지금 다들 너무 만족하면서 게임 개발하고 있어. 왜? GF 같은 회사가 없으니까. 물 건너 미국에 가도 없고 우리 회장님 같은 분은 세계 어디

에서도 못 찾아. 아까 기업은 철저히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다 뭐 그런 이야기 했었지?”

“네.”

생각 같아서는 ‘GF가 욕심을 부릴 만큼의 상품이 있기는 하냐?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멸감을 주지 않도록 참았다.

“맞는 말이야. 기업은 당연히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 맞지. 그런데 그 이익이라는 게 개인의 이익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

김유천 실장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으니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GF그룹은 지금 미국 영화계의 큰손 중 하나야. 우리 회장님이 또 이런 투자에 귀신이시거든. 투자만 했다 하면 월척이야. 그런데 그렇게 돈 벌어서 독

립영화에 투자하셔. 그리고 투자만 했다하면 월척인 회장님이 여기는 그냥 밑 빠진 독에 그냥 물만 쏟아내는 거야.”

“······.”

“그런데 왜 계속 투자하실까?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라 실패를 용납 못 해서? 전혀 아니야. 투자받고 영화를 만든 감독, 배우, 작가들이 성장해서 상업 영

화에 올라오거든. 당신들에게 투자하는 것도 똑같아.”

팀 켈베로스는 밑 빠진 독이다.

“GF 그룹의 누구도 당신들로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지.”

김유천 실장이 본 윤태식이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뭣도 모르는 저들이 알량하게 GF와 윤태식을 평가하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역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거였어.’

이명우가 가루가 되도록 박살나는 김선홍의 모습을 보며 내심 안도하고 있을 즈음, 불편한 침묵의 끝에서 김선홍이 대답했다.

“제가 너무 스스로의 고집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팀 켈베로스는 김유천 실장이 내밀은 서류에 전원 사인을 했다.

그렇게 이들을 시작으로 인디게임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스튜디오인 GF 인디게임 스페이스가 출발했다. 이를 줄여서 ‘GF 이즈’라고 했는데 이 이름은

윤태식 회장이 강력하게 발언해서 만들었다.

측근인 김유천 비서실장의 말에 따르면 ‘IS라고 하면 나중에 곤란해진다.’라거나 ‘테러는 무조건 조심!’과 같은 혼잣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삶의 목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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