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07화 (407/577)

< 삶의 목적 >

[저는 게임 산업을 위해 돈을 법니다.]

[산업을 위해서? 게임 산업의 무엇을 위한다는 거죠?]

[발전입니다. 그냥 돈을 버는 산업이 아니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산업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고 할까요?]

물론 가장 원하는 것은 그렇게 되었을 때, 세계 게임 산업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고 정점으로는 GF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 이미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군요.]

[그러는 빌은 무슨 목표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처음에는 와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 다음에는 거드름 피우는 LBM이 깜짝 놀라도록 해주고 싶었지요. 나중에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소프트의 주인 같은··· 그런 시답잖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지금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맞힐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게 시답잖은 목표야?’ 같은 생각을 한 거죠?]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윤 회장님.]

[네. 말씀하시지요.]

[제가 왜 은퇴하는지 아십니까?]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아직 은퇴를 고려하기에는 젊은 나이인데 말입니다.]

그렇다. 빌 게이트는 지금 한국 나이로 54세였다. 아직 5년은 더 버틸 수 있는 나이이고 실제로 그보다 열 살은 더 많은 프로핏의 CEO 앨리 래리슨은 앞

으로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CEO를 계속해나간다.

그 이유에 대해 빌이 직접 말했다.

[세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저는 돈이 많아요. 아주 많죠.]

과장이 아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돈이 많으니까 더 많은 사람을 또 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더군요.]

당연한 이야기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남을 돕기 좋은 것이고, 돈이 많을수록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법이다. 돈이라는 건 움직이는 데

에도 돈이 드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돈이 많으니까 불편한 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많아서 불편할 게 있습니까?]

타인의 질투와 세간의 불평 같은 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구설에 흔들릴 정신 상태라면 부자가 될 수도 없고 자신의 부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

하다.

‘과거처럼 집에 엽전을 몇 궤짝씩 보관해야 한다면 또 모를까. 지금은 전산화 되어서 모든 게 편리한 세상이지.’

100조 정도 되는 현금을 집에 쌓아둔다면 돈이 많을수록 정말 불편하기는 할 것이다. 이런 내게 빌 게이트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누군가를 도우려면 가진 재산을 현금화 시켜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응?’

[그러다 보니 남을 돕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재산이 매우 많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을 다 활용해도 다 쓸 수 있을지

모를 만큼이죠. 정말 불편한 부분입니다.]

‘이게 뭔 개소리··· 아! 맞다. 이 사람, 청년기랑은 달리 말년에는 기부왕이었지?’

1년에 자그마치 5조씩을 기부하던 인간이다.

무려 5조!

원래 역사에서 대한민국 최고 부자였던 이회진 회장의 전 재산이 8조다. 2년만 기부해도 그의 전 재산을 초월하는 금액인데 빌 게이트는 재산을 전부 기

부하는 데만도 20년이 걸린다. 터무니없는 건, 그렇게 쓰는 와중에도 재산이 더 늘어나서 기부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은퇴의 목적이 여느 사람이랑은 정말 달라.’

기부를 위한 은퇴.

어떤 마음가짐인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훗날 노년이 되면 이해하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한창나이인 현재로서는 정말 모르겠다.

다만, 이런 부자들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재단을 하나 새로 세웠습니다.]

[그러시군요······?]

고개를 끄덕이다가 느닷없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천하의 빌 게이트가 영업하러 왔을 리가 있겠어?’

자기처럼 돈 쓰기 어려워할 만한 부자를 상대로 조 단위를 뱉어내라는 인류애적인 압박이 들어온다면 어찌 대응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승낙하면 피눈물

나고 거절하면 개자식이 되어버리는 살벌한 제안이었다. 그렇게 긴장하는 내게 빌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 회장님은 이미 충분히 훌륭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니 지금은 함께하시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 목적을 다 이룬 후에는 함께 세상을 위한 걸

음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고. 같은 급으로 봐줘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려나.’

나는 정말로 미국의 슈퍼 리치들의 기부 행위를 존경한다. 그리고 존경한다는 건 내가 하기에는 어렵다는 감정이 있다는 이야기다. 빌 게이트의 취지가

멋지다는 건 진심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전 재산의 90%를 기부하면······.

‘나 울 거야. 진짜로 울 거라고.’

미래 정보의 알맹이를 다 먹어치우고 그다음에 펑펑 쓴 후, 놀 만큼 논 다음에 기부하고 싶다. 이런 내 계획을 벌써부터 실버 라이프로 만드는 건 미안하

지만 사절한다.

나는 소인배다. 그냥 1조를 내놓으라면 시원하게 줄 수 있는데 재산의 90%씩을 뱉어내기란 어렵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죠. 그 전에 제가 망해서 알거지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GF의 지금까지 행보를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은 못 할 겁니다.]

‘아냐. 일러. 이르다고!’

위대한 가치관으로 무장한 저 눈빛. 나는 맞서 싸울 수 없었다. 슬쩍 회피하며 대화의 방향을 돌리고자 노력했다.

[ZBox 쪽에선 저희 GF의 신규 콘솔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ZBox의 가장 큰 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게임 개발사에서 직접 콘솔을 개발한다는데, 굉장히 말이 많죠. GF에서 ZBox에 더 이상 게

임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ZBox의 판매량이 15%가량 줄어들 거라고 판단하더군요.]

15%.

연간 600만대의 판매를 한다고 쳤을 때, 90만대 정도는 우리 GF의 게임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배신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죠. 말이 나온 김에 질문을 드려보도록 할까요?]

[그러세요.]

좋다. 기부 얘기보다 훨씬 낫다.

[GF에서는 정말로 이번 콘솔에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이 있겠습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은 사실 예의가 없는 대화법이다. 그러나 지금 내 질문에서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대부분이 그렇게 출시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바로 무너졌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나중에 기부할 재산

이 전부 사라질지도 모르겠군요. 음···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이를 어쩐다······.]

‘그렇게 걱정해주지 마요. 내 돈이지 세계 인류의 돈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GF가 보여준 행보라면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네요.]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서 그럽니다. 저희가 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게임 스테이션 하나만 상대하면 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죠? 닌텐두도 다

시 강력한 위세를 보이고 있고 우리 ZBox는 과거의 드림 퀘스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강자였던 게임스테이션은 다시 한번 그 과

거의 자리를 노리며, 바짝 추격하는 중이지요.]

이런 이 시장에 GF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 보느냐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다들 착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착각이라니요?]

[마이크루의 빌이니까 말해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비밀이에요. 아시겠죠?]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이곳에서 당신이 인수한 개발사가 수작을 개발했더군요.]

그는 내가 단순히 게임사를 인수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죠.]

[그게 아닙니까?]

[폴란드는 3,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좋아하죠.]

한 조사에 따르면 폴란드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구는 1,200만 명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의 1/3이 게임을 즐긴다는 이야기이니 이 비율은 어마어마하다.

[우리도 그런 조사는 이미 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의미가 없어요. 이 나라는 구매력이 형편없거든요.]

[당연히 형편없죠. ZBox는 비싸니까.]

[그럼. GF의 콘솔은 저렴하기라도··· 잠깐. 설마··· 귀사의 콘솔은 처음부터 우리를 경쟁상대로 두지 않았던 겁니까?]

[정답입니다.]

전후관계를 파악한 빌이 헛웃음을 흘렸다.

[일을 맡겨놓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허공에 삽질을 시작한 셈이 됐군요. 기사를 보면서 혼자 많이 웃으셨겠어요.]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가격 인하 소식으로 매우 기뻐한다니 저도 유쾌했습니다.]

[이거 참. 제대로 당했군요. 그럼, 사양은 어느 정도나 되는 거죠?]

[ZBox 보다는 좋고 ZBox 360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지금 시기에 그 정도 성능이면 30~70달러 사이에서 판매가 가능하도록 개발 중이겠군요.]

‘대단하군.’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계산이 끝난 모양이다. 목표 금액이 69달러였으니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예측이기도 했다.

[신흥 시장을 목표로 한 콘솔이라. 이것도 아까 말씀하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사업입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히 게임을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하는 많은 나라가 있었겠어요. 그런 건 생각하지 못했군요. 오늘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인심을 제대로 쓰도록 하죠.]

[인심이요?]

[북미의 개발사들 중에 친 ZBox 개발사들은 GF의 이번 콘솔에 한해서는 손을 들어줄 겁니다.]

조금 전에 배민호 사장이 영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 부분이 순식간에 해결됐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다.

[좋은 결정을 하신 겁니다. 그 덕분에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윤 회장님의 성공이 우리 재단의 기쁨이지 않겠습니까.]

[네?]

[행복을 공유하는 것만큼 뜻깊은 일은 없죠.]

채 쓰지도 못한 내 말년의 재산이 벌써부터 차압당하는 기분이다.

‘선의라서 거절하기도··· 아이고! 환장하겠네.’

울고 싶다.

*

산뜻하게 일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런데 국내가 어째 시끌시끌했다.

【한국판 닌텐두를 만들겠다고 호언 장담하던 GF. 실상은 해외 게임사에만 대규모 투자?】

【GF그룹 우크라이나에 1,500억 폴란드에 1,000억 투자. 사실상 GF의 콘솔은 한국과 상관없는 콘솔이 될 예정.】

【국내에 투자하지 않는 국내 최대 게임 기업.】

돌아오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부정적인 기사들이 올라온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이놈의 게임 업계는 바람 잘 날이 없는 모양이다. 어지간히 만만하게 보

이는 모양일까, 이놈이 와서 물고 저놈이 뜯으니 번거로울 지경이다.

“이 기사를 올려보낸 언론사들은 어딥니까?”

“대부분이 신규 인터넷 언론사들입니다. 아직 제대로 자리조차 못 잡은 곳들이죠.”

“주류 언론이 되기는 평생 글러 먹은 놈들이군요.”

언론사들은 어떻게든 매일 같이 새로운 기사를 올려보내야 한다. 그런데 게임 업계라는 것이 매일 신작이 출시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대규모 업데이트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이러다 보니 게임 관련 분야의 기자들은 e-Sports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GF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게임 대회인 LON 온라인 챌린저십을 보유한 회사다. 우리를 거스르면 해당 대회와 관련된

정보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국내 기사를 경험해보질 못했다.

‘명텐두에 관련 된 기사들도 댓글에서 우리를 공격한 거지 기사 자체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런 놈들이 새삼스럽게 나오네?’

세상 어디에나 일정한 비율로 멍청이는 있다는 말은 진리였다.

한편, 은퇴했다는 말을 지키려는 것인지 폴란드에서 한국에까지 따라온 인물이 내 옆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흥미롭군요.]

한국의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읽은 빌 게이트가 내게 물었다.

[GF 그룹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기사 내용인데 웃고 있군요. 잘 몰랐었는데, 이런 상황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나요?]

< 삶의 목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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