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06화 (406/577)

< 삶의 목적 >

[그럼, 계약에 대한 세부 논의는 추후에 다시 시간을 잡도록 하지요. 그때는 여기 있는 김유천 실장님이 서류를 준비해서 찾아올 겁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로써 내 장바구니의 구매목록으로 워쳐가 들어왔다.

‘너도 본래보다 초대박으로 만들어주마.’

꿈속 미래에서는 1, 2 모두 굉장한 성공을 한 시리즈이긴 하지만 그래도 3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

이다.

‘그때는 콘솔로 발매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발매될 거거든.’

GF의 신형 콘솔로 말이다.

*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얻고 싶은 것을 다 얻었다. 이제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면 끝이었다. 이를 위해 귀국 준비를 호텔에

서 하고 있을 때였다.

“회장님. 이 기사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사요?”

김유천 실장이 태블릿을 내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한국에서 올라온 인터넷 기사가 담겨 있었다.

【ZBox 360 신규 기종 팔콘 출시!】

【ZBox 기존 프리미엄보다 용량이 무려 40GB 더 많은 60GB짜리 팔콘 프리미엄을 249달러로 인하! GF의 신규 콘솔에 대한 경고일까?】

【게임스테이션3. 279달러로 가격 인하! 소미와 마이크루의 연이은 가격인하 정책은 서로에 대한 견제인가? 아니면 신규 콘솔에 대한 견제인가?】

팀워크가 맞아도 시원치 않을 정부의 멍청한 행동이 직접적인 타격으로 다가왔다. 게임계의 더 거물 기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닌텐두

의 뷔가 빠진 이유는 우리끼리 싸우거나 말거나 자기들은 독자노선 걷겠다는 의미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좋게 봅시다. 바로 견제가 들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저 기업들이 우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웃는다는 것이 조금 이상할지 모른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하룻강아지가 설친다고 호랑이가 진심으로 으르렁거릴 리가 있으랴.

대중은 물론이고 게이머들 상당수가 잘 모르지만, 신규 콘솔이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동안 참 다양한 콘솔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 두 기업이 반응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GF의 콘솔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들어갈 만큼 긴장하고 진지하게 대응하는 중이다. 상대가 나를 이토록 인정해주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하지만, 회장님. 무려 마이크루와 소미입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견제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생길 겁니다.”

“그런데 걱정이 안 되십니까?”

“이미 이야기했잖습니까. 우리는 저 두 기업과 정면 대결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격 할인을 한다? 심지어 우리는 올 해도 아니고 빨라도

내년 말, 혹은 내후년 초에 출시할 계획인데?”

“일찍 할인하게 되면 그만큼 판매량이 더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자리를 잡아버리면 후에 나올 콘솔 판매량에 직접적인 타격이 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

는 것 아닐까요?”

“정확한 지적입니다만.”

흥미로운 점은 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와는 딱히 상관없다는 사실이다. 장담하건데 이런 식의 출혈 경쟁을 감행한 것을 마이크루와 소미는 훗날 땅

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진짜 문제는 가격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게 문제일까요?”

“GF 글로벌의 배민호 사장에게 연락해보세요.”

배민호 사장은 김유천 실장의 후임자다. 내가 이렇게 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는 북미와 일본의 게임사들에게 써드 파티 제안을 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게 연락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파악한 김유천 실장은 말없이 바로 배민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 사장님. 접니다. 김유천.”

잠시 후, 그는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신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빠르게 소미와 마이크루에서 견제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면서 북미의 많은 게임사가 GF의 신규 콘솔에 게임 발매에 거절 의사를 표하고 있다

는 것이다. 자칫 했다가는 내가 투자한 게임들만 발매될 수도 있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환상적인 대통령의 어시스트 같으니라고.’

콘솔은 결국 게임이 있어야 팔리는 건데 이렇게 되면 게임이 부족해진다. 이 문제를 타파해야 하리라.

그리고 이 해결법을 논의해보려는 즈음, 호텔 방의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프론트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일단 CDPRed나 CL게임즈의 직원들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한국행을 위한 준비에 한창일 테니까.

‘우크라이나도 아니겠지. 그들은 이미 한국에 도착했을 테니까.

짐작 가는 인물이 없었다.

[누구라고 합니까?]

[그게···]

조심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뜻밖의 이름이 들렸다.

[마이크루 소프트의 CEO이신 빌 게이트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왜 여기에 있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를 자리에서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일단 올려보내라고 말하고는 인터폰을 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엄청난 사람이라도 방문했답니까?”

“유명하기는 한데 엄청난 사람은 아닙니다.”

“폴란드의 연예인인가요?”

“빌 게이트 회장이더군요.”

“그렇던··· 네?!”

김유천 실장이 깜작 놀라서 되물었다.

“엄청난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잖아요.”

그가 말문을 잃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빌 게이트가 아니면 도대체 회장님 기준으로는 누가 엄청난 인물입니까?”

“러시아의 대통령이나 중국의 국가주석 정도지요. 적어도 독재 정치의 1인자 정도는 되어야 엄청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아··· 네··· 뭐··· 그렇군요.”

미국이 최강대국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도 명분이 필요한 깡패다. 뒤에서 공작을 벌이기는 할지라도 적어도 앞에서는 가장 정의로

운 가면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반면에 막장인 독재 국가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그들의 권력은 개인의 감정으로 좌지우지되기에 결코 상식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똑똑-

초인종이 있었음에도 굳이 문에 노크한다.

“열어주세요.”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나와 달리 빌 게이트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기 위해 움직이는 김유천 실장의 발걸음은 상당히 뻣뻣해져 있었다. 명성의 힘이

다.

단순히 재산만을 비교하면 빌 게이트는 약 100조이고 나는 31조 정도가 된다. 테이크 북 20%의 지분이 현재 약 2조이고 텐션의 지분이 14조 정도, GF

그룹에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가치가 15조 즈음이라서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기업의 지분까지 인정받을 경우 더 올라가지만, 이건 배제하도록 하자. 나만 비공개 기업을 가진 건 아니니까. 단지, 내가 빌 게이

트와 비벼볼 정도의 급이 되었는데도 김유천 실장은 필요 이상으로 그에게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짚고 싶었다.

‘졸부와 갑부를 나누는 건 시간이려나?’

벼락부자를 벗어나서 저 정도의 아우라를 가지려면 아직도 적잖은 세월이 필요한 것 같다.

[오랜만입니다.]

문이 열렸고 빌 게이트가 들어왔다.

[이거 참. 윤 회장님은 알아볼 때마다 새로운 곳에 가 있으니까. 어디 있는지 알아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마이크루라는 세계 최대의 기업을 이끄시는 분이라 어마어마하게 바쁘실 텐데. 뭐 하러 이런 곳까지 오시고 그럽니까?]

[바빠요? 제가?]

[아닌가요?]

[저는 윤 회장님과 비교하면 반의 반 정도만 일할 겁니다. 아직 마이크루의 CEO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사실상 내부적으로는 은퇴한 상태거

든요.]

‘아!’

맞다. 기억을 되짚으니 빌 게이트 회장은 3개월 후, 마이크루의 CEO의 자리에서 은퇴하는 게 떠올랐다. 공식적으로는 그때 가서야 은퇴였지만, 내부적

으로는 이미 인수인계를 모두 끝낸 모양이다.

[그럼 폴란드에는 은퇴 전에 일탈을 위해 오신 겁니까?]

최근에 발표한 마이크루의 ZBox 360인하 소식을 접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굳이 나를 찾아서 여기까지 방문했다고 보기란 어렵다. 무려 마이크루

이지 않던가.

ZBox 360이 빌 게이트의 자존심을 건 사업이기는 하지만 ZBox 360가 마이크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간이 남아돈다

고 해서 발품 팔아 저 거물이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이런 내 물음에 그가 주름진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은퇴 전에 해보는 일탈. 공식적으로는 GF 윤 회장의 앞으로 행보에 대한 정보 수집입니다.]

GF그룹이나 신규 콘솔이 아니다.

윤 회장.

그러니까 나의 행보에 대한 정보수집이라고 표현했다. 굳이 그렇게 말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쎄요. 저는 우리 신규 콘솔에 대한 문제로 오셨나 했는데요?]

[말했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은퇴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진심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이 말이 진심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살짝 당황스럽긴 하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믿도록 하죠.]

[그래도 GF의 콘솔에 대한 것도 알려주면 고맙긴 하겠군요. 뒷방 늙은이 신세라서 이렇게 돌아다녀도 뭐라 할 사람은 없는데, 그래도 기왕이면 가서 할

말이 있으면 좋긴 하니까.]

사람을 능숙하게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런데도 미운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빌 게이트라는 사람이 가진 매력이 저것이리라.

[식사는 하셨습니까?]

[한국인은 식사를 하면서 친해진다면서요? 당연히 아직 식전입니다.]

[가시죠. 제가 요 며칠 여기 바르샤바에 있으면서 맛있는 레스토랑을 많이 알아뒀습니다.]

[오호. 그거 기대가 되네요. 갑시다.]

빌 게이트와 함께 들어간 레스토랑은 대단한 호텔이나 미슐랭 가이드에 나온 곳이 아니었다. 왕궁 근처에 있는 아이올리라는 식당이다. 이곳은 아침 식

사와 점심식사를 판매하는데 바르샤바에서도 아주 유명한 식당이라고 한다.

보통은 때를 놓치면 식사하기가 어려운데 지금은 오전 11시 50분이니 딱 좋은 시간이다. 여기서 조금만 일찍 오면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서 식사를 못 하

고 늦으면 이미 손님이 가득 차서 식사할 수 없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빌 게이트의 표정을 봤는데, 꽤나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걱정했는데, 이런 식당이 익숙하신가 봅니다?]

[시애틀에서는 신경 쓸 것들이 많아서 이런 식당에서 식사하기가 힘들지만, 유럽에서는 다르죠.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으니 일부러 이런 식당에 오고 싶

어서 유럽에 오는 일도 많습니다.]

이걸 서민적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절반만 알아듣는 거다.

‘그러니까 편한 식사를 위해 비행기를 탄다는 소리잖아.’

파리에서 시애틀까지 비행으로 10시간이다. 오가는 동안에만 네 끼는 먹게 생겼는데, 식사하려고 그 이동을 한다는 걸 보면 괴짜가 부자일 때 어떤 사치

를 부리는지 가히 짐작된다.

[가장 기본적인 요리가 그 가게의 실력을 보기 좋은 법이죠. 저는 클래식 스테이크로 하겠습니다.]

빌 게이트는 클래식 스테이크, 나도 일전의 메뉴를 선택하려고 메뉴판을 봤는데 뜻밖의 이름이 보였다.

‘김치에 쏘야 소스라고?’

원래 처음 가는 가게에서 실패하지 않는 메뉴를 고르는 방법은 간판 메뉴를 선택하는 거다. 폴란드에서도 나는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뒤적뒤적 해봐야

맛있는 게 뭔지 모르니 그냥 피자와 스테이크만 골라서 먹었었다.

그런데 이런 게 있었을 줄이야.

‘한국어 통역가는 정작 찾기 힘들었는데 김치라니.’

이름하여 아시안 터프 스테이크다. 묘한 이름의 메뉴에 쏘야 소스와 김치, 생강 젤리마저 나온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저는 이거로 해야겠네요.]

그렇게 메뉴를 주문하고 진짜 대화가 시작되었다.

[윤 회장님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습니까?]

빌 게이트의 첫 질문은 사업이 아닌 철학적인 물음이었다.

[무엇을 위해···라고요?]

[돈을 벌고 있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처음에야 돈이 목적이지만,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돈 그 자체는 이미 목적이 될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요.]

맞는 말이다. 하긴, 나보다 더 많은 돈을 그리고 훨씬 오래전부터 그 부를 누려온 사람이니 나보다 훨씬 더 느끼는 바가 깊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심도 높

게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아직 활용할 꿈속 미래의 정보들이 남아있고 그걸 몽땅 이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의 목적이라······.’

많으면 행복하고 편리하다. 가족 간의 불화도 없고 삶이 윤택해진다. 그러나 이런 대답을 들으려는 건 아닐 터.

적당한 진심을 담아서 대답했다.

< 삶의 목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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