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04화 (404/577)

< 삶의 목적 >

145. 삶의 목적

두 달 전.

올렉을 필두로, 보르타 게임즈의 핵심 개발자들이 한국으로 떠날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에 나와 김유천 실장은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를 떠올리면 한국은 바로 미인을 연상한다. 그렇다면 폴란드라는 국가명을 들었을 때는 무엇을 떠올릴까?

일반적으로 폴란드에서는 3C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3C는 C로 시작하는 세 사람을 의미하는데 코페르니쿠스, 쇼팽, 퀴리 부인을 의미한다. 이들 3C

는 심지어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의 국제공항에도 쓰였다.

바로 공항의 이름이 ‘프레데릭 쇼팽 국제공항’이었던 것이다. 이토록 폴란드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나온 3C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나 같은 게이머한테는 너무나도 먼 얘기지.’

과학과 클래식이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이 제아무리 클지라도 그건 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게이머에게 폴란드를 물어보면

이들은 무슨 대답을 할까?

‘라비아의 게랄드지.’

바로 이 이름이다. 워쳐 시리즈의 주인공!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소설을 베이스로 게임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이 인물은 당연하게도 현실 역사에는 없는 가상의 존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 폴란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나는 그를 GF의 품에 두고자 이 나라까지 날아왔다.

“비행기에서 볼 때도 그랬는데 폴란드는 정말 참 산이 없네요.”

한국은 도시는 물론이고 나라의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산이 있다. 반면에 폴란드는 애초에 그 이름부터가 평원을 상징하는 Pole과 땅을 상징하는 Land

의 합성어일 만큼, 국토의 90%가 평지로 이루어진 국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가졌는데 그 탓으로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한 역사를 보유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

듯이 폴란드는 러시아의 식민지로 적잖은 기간을 보냈다. 바로 긴 지배의 이유 중 하나가 평원이었다.

‘끝내주는 넓이가 정말 평탄하네.’

동유럽의 정신 놓은 이 평원은 너무나도 방대해서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구릉 하나 없는 평지로 이어진다. 그 탓에 고속도로 한 큐에 모스크바까지 뻥

뚫린 이 평원은 러시아의 침공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식민과 항쟁이라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신기하게도 70년대의 소득 수준이 한국과 매우 비슷했던 이 나라는

현재 동유럽에서 손에 꼽히는 경제 국가로 나아가는 중이니 묘하게 닮은꼴이 많은 국가였다.

“회장님.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안 된다고 하면 안 하시려고요?”

“네? 어어··· 그건······.”

유머랍시고 해본 말인데, 김유천 실장에 말문이 막힌 모양이다.

“장난입니다. 하세요.”

“네. 그게··· 제가 GFI의 입주 개발사들에 투자하실 때 ‘굳이 여기에 투자하느니 해외에 투자하시는 게 더 효율이 높지 않겠느냐’라고 질문을 드리지 않

았습니까?”

“그랬지요.”

“당시 제게는 국내 게임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국내에 투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유럽에 투자하시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단 말씀에 오류가 있군요.”

“네?”

“그때 김유천 실장님은 해외가 아니라 북미라고 말했었습니다.”

“아······.”

“저는 당장 북미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한 거지 해외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한 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색하고 탓하는 상황이 아니다. 나는 폴란드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한국의 게임 산업을 키우고 시장을 키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만약에 한국에 4조원이라는 돈을 투자해서 전부 게임을 만든다고 칩시

다. 그럼, 한국의 게임 산업이 4조원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요?”

“안 되겠죠.”

“그래서 해외에도 투자하는 겁니다.”

국내의 게임 산업이 돈을 쏟아붓는 만큼 성장할 수 있다면 유럽에 투자하는 것보다 효율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충분히 그럴 용의는 있다. 그런데 창작과

개발이 예산만큼의 확실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이렇듯 산업의 성장에 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마냥 돈만 때려 붓는다고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럼 폴란드에까지 굳이 오셔서 투자하시려는 이유는 뭔가요?”

“잠재력이 뛰어난 나라니까요.”

폴란드의 임금은 우크라이나만큼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하면 굉장히 저렴했다. 폴란드에서도 가장 임금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바르샤

바에서 대졸 신입의 평균 월 급여가 93만원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값싼 임금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해서 높은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고 특히 공학에

핵심인 수학에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상당하다.

‘정리하면 저렴한 돈으로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는 곳이지.’

워쳐라는 걸출한 게임이 없더라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 나라인데 심지어 워쳐까지 있다. 이러니 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게 멍청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번엔 CDPRed로 가는 겁니까?”

저작권의 인식이 낮은 것.

이건 경제 수준이 높지 않은 국가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폴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그랬듯 90년대의 폴란드도 ‘게임은 돈을 주고 사서 하

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상식이고 어딘가에서 다운받거나 불법 CD를 구매하는 게 당연했던 나라였다.

그랬던 폴란드 게이머들에게 게임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잡아준 기업이 있으니 바로 CDPJ다. 발데스 게이트를 유통하면서 정품 패키지라는 개념을 폴란

드에 확실히 인식시켰고 그 경험과 자본을 토대로 자신들만의 상품을 만드는 것에 도전하게 된다.

‘폴란드 게임계의 전설인 워쳐 시리즈가 이렇게 시작하지.’

출발 인원은 고작 열다섯 명의 개발자.

친구의 아파트 그것도 아파트 전체가 아닌 방 한 칸에서 출발한 전설의 게임은 전 세계에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CDPRed는 알아보니 돈을 꽤 벌었다고 하던데요.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텐데 투자를 받을까요?”

“글쎄요.”

김유천 실장의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되묻자 그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되짚는 모양새다. 그러나 꿈속 미래의 정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데 현재를 사는 그가 아무리 떠올려보려 한들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우리는 CDPRed로 바로 가지 않습니다.”

“네?”

먼저 들를 곳이 있다.

*

암담함을 담은 깊은 한숨이 나왔다.

[계속 이렇게 버틸 수는 없을 거야 마빈.]

[나도 알아!]

폴란드의 자랑스러운 게임 기업, CDPRed.

그들의 시작은 바르샤바의 전자상가 앞 거리였다. 이들은 그곳에서 게임 CD를 판매하면서 게임 유통에 대한 가능성을 찾았고 고작 100만 달러로 시작

한 사업으로 100만장 이상이 팔린 게임인 워쳐를 만들어냈다.

1780만 달러라는 매출을 안겨주었으니 이보다 멋진 스타트가 또 어디 있겠는가. 고등학교 동창인 마빈 이비스키와 가브리엘 카치스키는 웅대한 미래를

꿈꿨다. 이 큰돈을 활용하여 게임을 개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최소한 지금 이상의 성공일 것이라고 말이다.

강한 확신은 공격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새로운 게임 유통사를 추가로 설립하고 워쳐 2의 개발은 물론이며 이후 3에 활용될 엔진을 개

발함과 동시에 콘솔용 워쳐까지 한 번에 모조리 진행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만다.

직원도 확충했다. 처음에는 15명, 일이 많아지는 만큼 80명, 더 늘린 만큼 이제는 150명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큰돈과 많은 인력이 더해졌는데도 착

착 이뤄져야 할 업무가 원하는 만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제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우리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일까? 인건비 때문에?]

[150명의 직원은 상관없어. 우린 이미 예전의 작았던 CD가 아니니까. 그런데 게임 엔진이랑 콘솔을 개발하려고 계약한 개발사들이 문제야.]

[그 150명이 아무것도 그냥 숨만 내쉬고 있어도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지 알고는 있냐?]

[그러니까 우리 직원 말고 다른 쪽에서 이유가 있다고.]

[젠장. 말이 안 통하는군! 그 150명이 효율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 결과가 필요해. 무엇 하나라도 매듭을 지어야 한단 말이야.]

[나야말로 답답하네. 잘 아는 녀석이 오히려 왜 그래?]

마빈과 가브리엘은 공동 창업자이면서 공동 사장으로 있었지만 둘의 업무 분담은 확실하게 나뉘어 있었다. 마빈은 게임 개발을 담당하는 사장이고, 가브

리엘은 유통 및 경영 관련을 책임지는 식이다.

사람들이 즐거워할 게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마빈은 현실보다 가상 세계를 더욱 중요시했다. 그 탓에 빠져나가는 수많은 돈을 관리해야하는

가브리엘은 자기 혼자만이 두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결국 짜증이 터져 나왔다.

당연하지만 동업의 문제는 이렇게 불거진다. 형편이 잘 풀릴 때는 상관없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균열이 가고 만다.

[우리가 욕하던 그 빌어먹을 사장들처럼 굴지 마. 우리는 문제가 없어. 금융위기 때문이라고!]

[젠장. 말이 안 통하니 미치겠네. 지금 중요한 건 남 탓이니 빌어먹을 분석 따위가 아니야. 이 고비를 못 넘기면 우리가 부도나게 생겼으니 그걸 막아야

한다는 거야. 이게 아직도 이해가 안 가냐?]

CDPRed가 워쳐라는 게임 하나로 올린 매출액은 한국 돈으로 무려 200억이 넘는 돈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무리 지금 벌린 사업들이 크다고 한들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만한 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불행은 성공한 시기가 미국의 금융위기와 겹쳤다는 것에 있었다.

[젠장! 돈! 망할 놈의 돈! 분명히 우리 돈인데!]

돈만 제대로 입금되면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없었다.

지금의 사업은 200억의 자금을 예정하고 잡았다. 그런데 무려 150억이 미국에서 아직 폴란드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위기를

느낀 미국의 유통사들이 입금을 미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시기까지 최대한 버티다가 입금을 할 것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이들이 그 몇 달을 버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의와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처음에는 미국을 탓하다가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만만하고 가까운 이들로 바뀌었다.

촉박하게 앞당겨진 시기, 예상치 못한 불행이더라도 성과를 내기만 했으면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한테 들어가는 월급이 너무나도 많

다. 그냥 먹고 똥이나 싸대는 것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아까울 지경으로까지 바뀌었다.

왜?

‘내가 망하게 생겼다고!’

스트레스가 빚어낸 균열이었다. 한편, 돈의 압박에서 한걸음 물러선 마빈의 입장으로는 변해가고 괴물처럼 남 탓만 하고 있는 친구가 점점 이질적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그의 스트레스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저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심정의 문제일 뿐, 지금은 같은 공동운명체이다.

[가브리엘. 그럼 이런 건 어때? 투자를 받는 거 말이야.]

[뭐? 투자?]

[그치. 투자를 받아서 돈이 입금될 때까지 버티자. 지금은 도저히 나올 구멍이 없잖아?]

듣는 가브리엘로서는 현실을 모르니 저렇게 조언을 쉽게 하는 걸로만 보였다.

[그 돈이 입금될 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지는 아냐? 그리고 만약에 그런 큰돈을 투자할 회사를 찾았다고 치자. 우리는 당장 모레까지 150

만 즈워티(약 5억원)를 입금해야만 해. 그런데 그런 돈을 바로 쏴줄 회사가 이 근방에 어디 있겠냐고!]

고등학생 시절이나 함께 게임 CD를 판매하던 시절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게임 개발에 한창 몰두하고부터 자꾸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는 마빈의 모

습에 가브리엘은 또다시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모습에 마빈도 입을 다물어버렸고 결국, 사무실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그즈음이었다.

[-사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 삶의 목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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