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92화 (392/577)

< 부자 >

*

쉬링의 횡령액이 고작 4억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저 많은 돈은 전부 어디로 간 것일까? 하나도 찾지 못한 걸까?

‘상어 떼들이 덥석덥석 나눠서 뜯어갔지.’

탈 없이 집어삼키기 위해 이번 횡령 사건에 대한 공로를 상하이방으로 다 돌리고 그 이름을 이용한 압박을 걸었다. 이후, 그 압박을 이용해서 쉬링이 빼돌렸으나 그 행방을 찾지 못한 숨겨진 재산들을 모조리 확보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찾아낸 재산 중 2억 위안은 공안부가 알 수 없게 쑤전팽과 우리가 따로 챙겼으며 나머지 3억 위안 중 1억은 공안부, 1억은 중앙위원회, 나머지 1억은 상하이방으로 들어가도록 조치하였다.

참으로 전근대적인 처리이며 21세기에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가까이에서 같이 경험한 마화슈의 소감이 나를 더욱 황당하게 했다.

[쉬링 서기의 재산이 고작 5억 위안이었다니, 그동안 제가 잘못 생각했었네요. 그가 이토록 청렴한 정치를 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청렴하다고? 5억 원도 아니고 위안인데?’

대체 이 나라에서 말하는 청렴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이 헬조선이면 여긴 대체 뭘까?’

농담인지 진심인지 궁금해졌다.

[5억 위안이 청렴한 겁니까?]

[그럼요. 쉬링 전 당위서기쯤 되는 고위 공직자 중에서 저 정도의 비리도 안 저지른 공직자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들의 진짜 재산이 밝혀지면 중국 부호의 순위는 엄청나게 출렁일 겁니다.]

[마 회장님 순위도 꽤나 내려가시겠군요.]

내 말에 마화슈가 빙그레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많은 재산을 몰래 숨기는 건 불가능하죠. 대충 70억 위안 정도가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맞다. 이 사람도 중국인이었지.’

나쁘다라는 행위의 기준선이 다른 곳임을 새삼 자각했다.

‘참 신기한 나라야. 어떤 건 경악스럽지만 어떤 건 또 기막히게 무자비해.’

엄청난 부정부패가 벌어지는 놀라운 국가인 중국. 하지만 강자에게 솜방망이만 휘두르는 한국의 법과는 달리 대륙의 형량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되게 강력했다. 여기는 심신미약이나 휠체어에 앉아서 사진 몇 번 찍으면 석방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진짜로 죽여 버리는 국가다. 쉬링의 횡령액이 250만 위안으로 설정된 것도 그보다 더 큰 금액이라면 사형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250만으로 설정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여기가 정의롭다는 건 아니고.’

쉬링의 사례를 보았듯이 이런 식, 저런 방식으로 다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데도 사형을 선고받는 사람들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증명해주는 셈이다. 누군가는 55만 위안을 횡령했다고 공개 처형을 당하지만 다른 누구는 5억 위안을 횡령하고도 사형을 면하고 있으니까.

즉, 고위 공직자가 사형을 선고받는다면 이는 금액이나 죄질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오직 정적에 의한 숙청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번 일도 따지고 보면 장차 쑤전팽의 정적이 될 인물을 미리 숙청한 셈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상하이방의 정의구현에 있었기 때문에 큰 사건이 되지 않도록 덮은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보히타시가 충징의 시장으로 있으면서 다롄에 많은 비리를 지냈다고 하기에 다롄이 충징 안에 있는 줄 알았거든.’

혹, 예상이 어긋났어도 최소한 붙어 있는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혀 달랐다. 충징과 다례의 거리가 무려 직선으로만 1,700Km, 자동차 도로로는 2800Km였던 것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거리 계산법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으로 3.5회,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한 자동차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찍고 다시 프랑스 파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였다.

‘다롄이 비자금을 모으기 좋은 곳인가? 아니면 그냥 멀리 두어야 잘 걸리지 않기 때문인 것인가?’

아직까지는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다. 언젠가는 알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상하이에서의 사업은 잘 준비되어가고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쑤전팽 서기께서 얼마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시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해줘도 믿어주질 않을 정도거든요.]

[좋네요.]

정치 구도란 참으로 복잡하고 위험하다. 꿈속 미래지식이 없었다면 이런 줄타기를 내까 어찌 실행이냐 했으랴 싶다.

선전 시의 당위서기인 쉬링은 상하이방에서 지원하고 있는 보히타시의 한쪽 손과 마찬가지의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를 쑤전팽이 직접 공격하는 일은 이득보다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쑤전팽에게 아직까지는 주인공보다 조연으로 자신의 위치를 단단하게 만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쑤전팽은 이 조언대로 직접 나서지 않고 상하이방을 움직였으며 이번 비리 척결에 대한 공로는 상하이방의 인물들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덕분에 쑤전팽은 직접적인 공로의 수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상하이방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곧 그가 국가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추가로 챙긴 2억 위안의 비자금은 자연스럽게 상하이에 새로이 세워질 Q플렉스의 자금으로 둔갑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돈 한 푼을 안 들이고, 자본금 430억 규모의 회사가 생긴 셈이다.

‘이 정도 해줬으면 발 벗고 나서서 일을 해줘야 하는 게 맞지. 그나저나 정치판이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 보히타시는 상하이방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인물이고 쉬링은 그 보히타시의 손과 발인데 정작 상하이방은 그걸 모르고 있었잖아.’

결국 자기들끼리도 음흉하게 다 숨기고 지내다 보니까 피아식별이 똑바로 되지 않아서 자기들끼리 칼을 휘두른 꼴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히타시는 자신을 지지하는 상하이방에 대놓고 불만을 표출할 수는 없겠지만, 알게 모르게 속으로는 적대감을 키우게 됐을지도 모르겠어.’

만약에 이렇게 돼서 상하이방과 보히타시가 싸움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내게는 베스트인 결과물이 된다.

[윤 회장님께 꼭 좀 듣고 싶은 물음이 있습니다. 쑤전팽 당위서기님을 어떻게 구워삶으신 겁니까? 그 분은 진짜 얼굴 뵙기도 힘든 분들 중에 하나인데요?]

[그냥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자그마한 단서라도 주시지요.]

[운이 좋기도 했죠. 선물을 하나 드렸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하셨거든요.]

[선물이요? 그게 어떤 선물이었습니까?

사업가가 무기로 쓸만한 꼼수를 듣는데 어찌 망설이랴. 마화슈가 내 대답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금수저입니다.]

그리고 수저 계급론에 대한 잡설이 있었지만, 그에게 이것까지 말해줄 이유는 없다.

[금수저라··· 그렇군요.]

그러나 마화슈는 엄청난 정보를 알았다는 듯이 깊이 금수저를 기억했다.

[그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가야죠. 전에는 미국에 오래 있었는데 이번에는 중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니 이제는 고국의 기억이 아련해질 정도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행가는 기분이 드니 할 말 다 한 셈이지요.]

[그만큼 친숙하게 되었다는 의미지 않겠습니까. 윤 회장님을 항상 기다릴 테니 한국이 내 나라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중국으로 오시면 됩니다.]

[하하하···]

정치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기업을 썰어버리는 나라로 이민이라니.

‘절대 사양이다.’

나는 중국의 돈만 사랑하겠다.

그렇게 큰 인맥과 사업을 잘 해결하고 기분 좋게 귀국하려던 때였다.

화끈한 사나이, 쑤전팽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에 깜짝 방문을 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번에 상하이에 새로이 창립되는 회사 Q플렉스에 대한 회의를 핑계로 하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내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얼굴 보고 인사나 하자는 의도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윤 회장님 덕분에 제가 얻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습니다.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갚을 시간도 없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신다니 많이 아쉽습니다.]

입바른 칭찬이 아니다. 쑤전팽은 정말로 얻은 게 많았다. 일단 태자당 출신인 그가 상하이방의 지지를 추가로 받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의 중앙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 확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아직까지야 아무도 그가 주석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나 그래도 이제부터는 간간히 그가 주석으로의 자격이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절대가치 그 자체였다.

[아쉽지만 별수 없지요. 저는 한국의 사업가이고, 제 사업체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앞으로 중국에 오시면 상하이에는 꼭 들려주십시오.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Q플렉스의 최대 주주이시지 않습니까?]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고마움의 보답인 걸까, 나라는 인맥이 그에게도 썩 괜찮게 여겨진 탓이려나. 우리의 쿵푸 팬더, 쑤전팽이 내게 멋진 선물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내게 건넸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색 바탕에 금박으로 용이 새겨져 있는 카드였다.

[이게 뭐죠?]

[신용카드나 통장 카드 같은 카드가 절대로 아닙니다. 일종의 명함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지요.]

‘절대’라는 단어를 쓰며 금전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한 이유는 한국과는 다른 중국인들의 문화 때문이다. 썩 이해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인데, 중국의 꽌시는 서로에게 이익을 위한 관계가 중심이다.

그런데 정작 고마움을 금전적으로 표현하면 그건 또 자신의 진심을 싸구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뒤틀린 체면치레인 셈이라서 이런 걸 보면 굳이 일본인들에게만 ‘겉으론 예의 바르지만 속으론 음흉하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름도 연락처도 아무것도 새겨진 것이 없는데 이걸 명함으로 생각하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선물에 대해 곧 쑤전팽이 알려주었다.

[제가 아직 중국 전역을 아우를 정도의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장, 베이징, 선진, 텐진, 산시 이곳에서는 그 명함을 가지고 공안에 가면 언제든지 공안의 경호를 요청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내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중국 어디에서든 공안의 불시 검문에 그걸 보여주시면 모든 불편함을 면제받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뒷면의 번호로 연락하시면 전 세계 어디에 계시든 중국으로 향하는 전세기를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오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선물이다.

[경호라는 건 실질적으로는 별 거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국에서 사업을 하시다보면 비즈니스로 얽히는 기업이 많아지실 테지요. 그때 공안들의 경호를 받으면서 자리에 나가면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실 겁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비합리적인 권력. 그 힘의 일부가 확실하게 내게 들어왔다.

‘사업하기 정말 편해지겠어.’

경호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공안의 경호를 받으면서 미팅 자리에 나가게 된다면, 상대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함으로 시작부터 유리한 위치에서 대화가 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예의상 한 번쯤은 거절하는 겸양 따위, 나하고는 전혀 관계없다.

[좋은 선물. 염치없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염치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냉큼 받았다.

[제 용건은 여기까지입니다. 바쁘신 분의 시간을 제가 너무 오래 빼앗은 것 같군요. 모쪼록 몸조심하시고 다음에 방문하실 때는 그 명함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높아져 있도록 할 테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아니지. 아직은 당신 스스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높아져선 안 되지. 당신은 조금 더 내 케어를 받으면서 성장할 필요가 있어.’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기대하겠다’는 표정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와의 마지막 인사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정말로 중국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 부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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