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91화 (391/577)

< 부자 >

[그런데 마 회장은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마화슈가 껄끄러웠는지 그를 걸고넘어졌다. 나는 그를 대신하여 먼저 대답했다.

[제가 함께 오자고 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었나?]

[제가 이곳 지리를 잘 모르고 또, 저와 함께 사업하기로 한 파트너이다 보니 아무래도 함께 오는 게 맞는 거 같았습니다.]

[사업 파트너?]

쉬링 서기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뒤이어 그는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번 사업은 그 방향이 이미 다 정해져 있네. 아무래도 마 회장은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군.]

[글쎄요. 오해는 서기님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음에도 쉬링 서기는 대놓고 불쾌한 감정까지 내비친다.

‘이렇게 쉽게 불쾌감을 보일 정도로 내가 얕보이고 있었던 건가?’

이제 확실히 알았다. 저들의 눈에 나는 돈 많고 살코기가 넉넉하게 나오는 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복주머니를 안겨다 주고 설설 기어야 하는 축생이 어깃장을 놓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였다.

나는 실망시켜서 대단히 죄송하다는 투로 말했다.

[저는 마화슈 회장과 이번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즉, 여러분이랑은 사업을 같이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 말을 전화로 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했고 공사가 다망하신 분들이기도 하니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뭐?]

저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분노도 아닌 철저한 무표정으로 냉담하게 나를 보았다.

[후회할 짓을 스스로 하고 있군. 자네는 지금 그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도 하는 소리인가? 그리고 마 회장. 윤 회장은 중국 실정을 잘 몰라서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자네까지 이러면 되겠어?]

쉬링 서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놓고 아랫사람들 대하는 태도였다. 마치 ‘내가 너희의 인사권을 지니고 있는 상사다. 그러니까 내 말을 안 들으면 너희의 밥줄이 끊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그런 태도다.

당장 자신의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있는 그의 태도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내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이군. 윤 회장. 자네는 지금 웃음이 나와?]

[물론입니다.]

더욱 짙은 미소를 보이며 느긋하게 대꾸했다.

[당위서기님께 감히 조언을 드리지요.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남은 시간은 얼마 없을 테지만 말이지요.]

이건 경솔하게 내뱉는 예고 살인 같은 게 아니었다. 상대방이 뒤늦게나마 준비하고 대응하면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나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월이 끝나갈 무렵이다.

쑤전팽 서기를 만나고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일주일은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말 많은 역사가 뒤집히기에 넉넉한 시간이기도 했다.

‘작정하고 캐보니 아주 고구마 줄기처럼 연거푸 나오더라.’

중국에서 공산당이 갖는 권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겠는가. 고위직이면 문자 그대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이며 으맨歐藪? 치밀한 안전망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주일 만에 충분한 증거자료들을 확보했다. 그중 하나가 차명 부동산이다.

‘다롄에 보유한 집만 200채.’

선전 시의 서기라는 놈이 다롄 시에 엄청난 부동산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마 다음 달이면 쉬링 서기는 더 이상 공산당의 당원이 아니게 될 것이다.

[거기 뒤의 두 분. 줄 잘 서세요. 썩은 줄 잘못 잡고 계시다가 함께 떨어집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쉬링은 그저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고, 이 말에서 무언가 싸한 기운을 받은 렌칭파이는 다음 스케줄이 늦었다며,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쉬맹은 불안한 눈으로 마네킹처럼 서있는 쉬링과 뒷모습만 보이는 렌칭파이를 번갈아 볼 따름이다.

*

윤태식 회장이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고 간지 딱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서기님. 그냥 쉽게 가면 서로 좋은 거 아시죠?”

대응은커녕 돌아가는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서로서로 편하게 다 터놓고 빨리 끝냅시다. 이번에 저기 대련에서 넘어온 자료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무려 열차 한 칸 전체가 우리 서기님의 자료라고 합니다.”

쉬링에게 공안이 찾아들었다.

“무려 열차 한 칸입니다. 이 넓은 중국 땅에 우리 인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에 비하면 우리 공안은 너무너무 인력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맙소사! 이런 와중에 열차 한 칸 분량의 자료라니요. 서기님의 유능하심에 저희는 과로사로 다 쓰러질 지경입니다.”

하늘이 뒤집힌 격이다. 쉬링 당위서기에 비하면 지금 빈정거리고 있는 이 공안부의 녀석은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신분 차이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쉬링의 권력 중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던 애송이가 지금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 인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엄청난 부정축재를 벌이신 서기님에게야 별로 감흥도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선전 시의 공안부 전체가 지금 서기님 자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세근 낭비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여기서 또 실랑이하지 말고 편하게 갑시다.”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다. 하지만 반대로 차갑게 감정이 식기도 했다.

“이건 너무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내가 부정축재로 그 돈들을 모았다는 증거가 있나? 그냥 일단 구속부터 하고 이제부터 내 죄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지금은 일생일대의 위기다. 시간을 벌고 빠져나갈 틈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누가 사주했지? 그를 알려주게. 이건 정의를 판가름하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지금 나를 음모에 빠트리려고 계획을 짠 걸세.”

“아이고. 우리 서기님께서는 음모를 좋아하시군요. 그래요. 좋습니다. 그래서 불륜도 꽤 하신 거 같던데 이건 정의로운 불방망이로 때찌때찌 해주는 그런 거였나요? 맞는 아이는 좋아하고?”

이어지는 공안의 빈정거림은 실로 모멸스러울 정도였다. 쉬링 당위 서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러나 날개 잃은 새이고 이빨과 발톱을 잃은 맹수를 그 누가 무서워하랴.

“게다가 증거를 좋아하시니까 말씀드립죠. 그게 부정축재가 아니면 왜 당신 명의가 아니라 온 일가친척들 명의로 되어 있는 겁니까? 뭐가 구리니까 차명으로 재산들을 모아둔 거잖아요.”

그는 문자 그대로 가득하게 쌓인 서류 중 아무거나 한 장을 들어서 읽었다.

“이거 보쇼. 당신 손자 이름으로 되어 있는 집이 30채라고 나왔거든. 생후 13개월 된 손자가 30채의 집을 어떻게 산 걸까? 관중이나 공명, 태공망의 후손이라도 되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고 상재를 발휘해서 재산들을 수십 배로 불릴 수 있는 그런 인물?”

“나는 모르는 일일세. 치밀하기 그지없는 함정일 뿐이야.”

쉬링 서기를 심문하는 공안의 눈이 날카롭게 찢어진다. 그러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쉬링 서기의 모습을 잠시간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래. 모르시겠지. 근데 그거 알아? 내가 그 모르는 사람들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전문가거든. 특히 당신이 나를 그런 전문가로 키웠는데··· 이것도 몰랐지?”

평화로운 심문은 여기기까지로 끝이 났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공안의 무한한 힘을 보여줄 차례였다.

쉬링을 심문하는 공안은 그의 머리채를 잡아서는 벽 끝의 으슥한 곳으로 끌고 이동한다.

“뭐? 너 이 새끼. 이제 아주 눈에 보이는 게 없지? 내가 지금 이렇게 내려앉았다고 해도 엄연히 서기였··· 컥!”

“나는 어설픈 복싱선수와는 달리 처맞는 정도로 안 끝나.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지. 누구나 다 계획은 있다. 병신이 되기 전까지는.”

“이··· 이 새끼가··· 아··· 안 돼!···”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시작하여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고문도구들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그의 눈빛은 자신을 같은 인간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 한낯 축생을 도축해도 저보다는 따뜻한 시선일 것이다.

‘내가 저런 놈을 키운 거라고?’

믿을 수 없었다. 굴종하면서 싹싹 기고 다니던 놈이 저런 녀석이었다니!

“인체의 놀라움을 몸소 이해하게 될 겁니다. ‘이 지경이 되도 죽지 않는구나.’라고 감탄하게도 만들어드리지요.”

히쭉 웃은 그가 거침없이 쉬링의 살을 찢으려 할 때였다.

“팽저우리안!”

덜커덩 소리를 내며 심문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이분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나가 새끼야!”

상급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막 고문을 시작하려는 공안에게 큰소리를 쳤다. 팽저우리안은 말없이 허리를 숙이고는 재빨리 심문실을 벗어났고 악귀 같던 그를 막아낸 인물이 쉬링 서기에게 다가갔다.

“텐일천··· 오오. 자네는 텐일천인가?”

잠깐 사이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던 쉬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얼굴과 고마운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는 눈앞의 텐일천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찰나에 겪은 두려움은 실로 엄청났다.

“일천이··· 나··· 나 좀 살려주게. 내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네. 내가 누군가? 자네가 날 한 번만 도와주면 자네 미래를 승승장구가 아니겠나?”

“우선은 일단 편하게 앉아서 대화해보도록 하시지요.”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텐일천의 목소리에 쉬링 서기는 긴장감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애써 숨을 가다듬으려고 해도 그의 손과 발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불필요한 대화는 일단 넣어두고, 본론 위주로만 대화했으면 합니다.”

“그래, 그래! 그래야겠지.”

텐일천의 말에서 희망을 느낀 것인지. 쉬링 서기의 눈에 빛이 살아났다.

“서기님이 이번 사건에 연루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많은 자료를 최대한 확인하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고맙네. 역시 자네로구먼.”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윤 회장이라는 인물과 사업의 문제로 얽힌 게 있으시다지요?”

참담한 현실에 억눌렸던 쉬링의 분노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맞아. 바로 그놈일세! 무조건 그놈! 마지막으로 봤을 때 내게 이상한 소리를 한 것도 있고! 그래! 그놈이구나! 그놈이 나를 함정에 빠트린 게야!”

쩐주에 불과한 반도의 핏덩이!

놈에게 이 원한을 천배, 만 배로 갚아주면 된다. 쉬링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그리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런 쉬링에게 텐일천이 말했다.

“서기님. 지금은 누가 서기님을 함정에 빠트렸느냐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가? 위대한 중국의 공안이 저 동쪽 오랑캐 놈들에게 이렇게 휘둘리는데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가?”

쉬링은 일부러 공안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보려 애를 썼다.

“맞습니다. 윤 회장은 한낱 오랑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고작 소국의 일개 사업가 때문에 일사천리로 구속수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 걸까요?”

“···설마?”

“네. 상하이방이 움직였습니다.”

“도대체 왜!”

상하이방. 쉬링 서기가 직접 속하지는 못했으나 그가 모시는 분이 그곳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하이방에서 자신을 치다니 이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윤태식의 사주를 받아서? 그럴 리가 있나?’

알 수 없다. 단지 하나는 분명하게 알았다. 복수 이전에 생존부터 시급하게 달렸다는 것을.

쉬링은 정치계에서 살아온 지 올해로 17년째가 된다.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다 합쳐서 5억 위안이 조금 못 된다. 한국 돈으로 860억에 달하는 돈인데 이 재산 중 10%만 발각되어도 중국에서는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아시다시피 확실한 증거 같은 건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가 상하이방이에요. 그냥 그들이 서기님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면 그냥 범인이 되시는 겁니다. 이건 저희가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습니다.”

“알려주게.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쉬링은 교섭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텐일천이 자신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을 테니까.

예상대로의 답변이 돌아왔다.

“윗선에서 조만간에 사람을 보내올 거라고 합니다.”

“그럼 살 방법이 생기는 거겠지?”

“살려는 주신답니다. 대신 부정한 방법으로 챙긴 것들은 전부 토해내셔야 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과 목숨의 교환이란 말인가······.”

긴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흘 후.

중국 언론에는 선전 시의 서기, 쉬링의 비리 혐의에 대한 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언론에 공개된 쉬링의 횡령액은 250만 위안으로서 한국 돈으로 약 4억 원 수준이었다.

< 부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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