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90화 (390/577)

< 부자 >

[투자라 함은 얻고자 하는 이득이 있다는 의미일 터.]

[저는 서기님과 달리 장사치에 불과합니다.]

[좋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가 더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더욱더 끈끈해질 수 있는 법이지요.]

그는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선은 이곳에 회사를 하나 세울까 합니다. 제가 세우는 것은 아니고 회사는 텐션에서 세울 겁니다.]

[텐션이라면 선전 시의 기업이 아닙니까?]

[선전의 기업이라고 해서 모든 계열사를 선전에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새로 세워질 기업의 지분 10%는 서기님의 이름으로 될 겁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한창 유행하는 넷플렉스를 중국에 도입하는 거지요.]

중국은 미국에 굉장히 큰 반감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미국에는 이미 유행하는데, 중국에는 그런 기업이 없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를 받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나는 이를 자극하며 그를 설득할 만한 또 다른 키워드를 꺼냈다.

[그리고 선전의 쉬링 서기가 이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쑤전팽은 처음에 받지 않았던 상자를 가리켰다.

[선물을 지금 풀어보고 싶군요.]

그가 나의 황금을 선선히 받았다.

‘됐다.’

중국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꽌시를 얻는 순간이었다.

143. 부자

선전 노인건강증진센터.

이곳은 이름만 들으면 실버타운 같은 곳에 있는 체력 단련장을 떠올리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실상은 선전 시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 클럽의 이름이었다.

- 球累~! (qiulei : 어려운 공. 한국식으로 나이스 샷.)

지금 이곳 필드에는 세 명의 남자가 골프를 즐기는 중이다.

짝짝짝.

렌칭파이 회장이 손뼉을 치며 아낌없이 찬사의 말을 퍼부었다.

“당위서기님 뉴질랜드에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출장가신다고 하시더니, 가셔서 골프레슨만 받고 오신 거 아닙니까?”

쉬링 당위서기의 골프 실력을 칭찬하기 무섭게 이에 질세라, 옆에 있던 쉬맹도 한 마디를 얹었다.

“뉴질랜드에 다녀오셨습니까? 어쩐지 지난번이랑은 타격의 급이 달라지셨는데요?”

그는 세이더 그룹의 오너이자 중국 청년 부자들의 순위 중 8위, 모든 부자를 총망라해도 15위 안에는 들어가는 갑부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가 콧대를 내세우고 잘난 척을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늘기는 했지요.”

쉬링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딱히 배우려고 한 건 아닙니다. 뉴질랜드에 있는 거라곤 풀밭 아니면 소나 양 뿐이지 않더이까. 시간 나면 골프 말고는 도저히 할 게 없다 보니 이리 되더군요.”

“일취월장하시는 서기님이 그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혹시 그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건지?”

“윤태식 회장 말입니다. 벌써 2주도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무소식이고 지난주에는 조용히 선전 시를 벗어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렌칭파이가 의미심장한 행보를 경계했으나 쉬링은 태연자약했다.

“신중하게 보기에는 궁색하군요. 제법 배포가 있는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담이 부족한 소인이었나 봅니다.”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윤태식 회장의 콘텐츠를 중국 전역에 공급하는 사업.

나름대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는 주제에 이들에게는 신규 사업을 차리고 진행할 자본이 없는 상태였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돈은 사업을 차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있었다. 문제는 이 자금이 전부 불법적인 수단으로 쌓은 재산이라는 것이다.

쉬링이 렌칭파이와 함께 이번 사업에 열의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번 사업을 통해서 음지에 있는 돈을 양지로 꺼내려는 수작이다. 문제는 이 계획을 진행하려면 결국 초기 자본이 윤태식 회장에게서 나와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왜요? 그놈이 다른 생각이라도 할까 싶습니까?”

“혹시라도 우리 말고 다른 사람과 손이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얌전히 돈이나 가져올 일이지 그러기는커녕 다른 꿍꿍이를 보인다?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쉬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선전을 어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제법 걸리겠으나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돌아와서 자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건 오만한 자부심이 아니라 확실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회장님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쉬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렌칭파이에게 물었다.

“대략 70억 위안 정도 될 겁니다.”

그 대답에 함께 듣던 쉬맹이 깜짝 놀랐다. 한화로는 1조 2천억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돈!

쉬맹 역시 중국 내의 재산 랭킹 순위로 따지고 들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수준인 부자다. 그러나 이런 그의 재산도 고작 24억 위안에 불과했으니 70억이면 정말이지 엄청난 액수였다.

“그 70억 중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30억 위안이 공중분해 될 수 있다면, 회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따를 겁니다. 그리고 서기님.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한 배를 타고 있습니다.”

납작 엎드리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렌칭파이에게 쉬링은 ‘그런 의도로 한 물음이 아닙니다.’라며 웃었다.

“지금의 상황이 이와 같아요. 윤태식의 재산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자가 보유한 텐션의 지분만 해도 그 가치가 816억 위안입니다.”

‘800억!’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쉬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윤태식에게는 비상장 기업들도 많으니 다른 재산 역시도 그 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적게 잡아도 1,630억 위안 정도라고 보면 되겠지요.”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돈이군요. 하지만 서기님이 힘을 쓰면 텐션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쉬링이 마음만 먹으면 윤태식의 재산은 가볍게 반 토막을 내버릴 수 있다는 것.

그가 처음 렌칭파이에게 물었던 대답이 여기에 있었다.

재산이 1,600억이나 있으니 800억쯤은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부자가 과연 있겠는가?

답은 없다는 것이다.

원래 돈이라는 것은 쓸 곳이 없어도 일단 보유하고 싶은 가치를 지녔다. 돈이 늘어나서 당장은 좋을 게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건 말건 절대 다수의 인간은 일단 돈을 늘리는 욕망에 흠뻑 취하고 큰 사업가일수록 이런 성향을 도드라진다.

‘괜찮아. 내게는 아직 돈이 절반이나 남았어.’가 아니라 ‘내 돈 10조원이 공중분해 되다니!’라는 억울함이 치밀 것이다. 이는 밤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할 거액이리라.

윤태식이 쉬링을 외면한다는 건 바로 이와 같았다.

“당장의 행보는 갈팡질팡할 테지요. 그러나 이내 큰 선물을 들고 정중하게 찾아올 겁니다. 만에 하나로 자존심을 부리더라도 곁에 있는 마화슈가 뜯어말릴 테고요.”

“그럼, 우리끼리 앞으로의 일만 준비하면 되겠군요.”

이들의 말에 쉬맹은 탄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두 분만 믿겠습니다.”

일행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들 셋은 이번 사업을 함께하는 파트너나 마찬가지인 사이다. 쉬링은 고위 지도층으로 이들의 비리를 감추고 알게 모르게 이미 회사가 들어설 지역의 부동산을 선점해둔 상태다.

한편, 쉬맹은 이미 쉬링보다 더 높은 위치에의 공산당원과도 연락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관리하고 사업하는 인물이다. 사실, 그의 기업 규모는 이미 중웨이를 한참 뛰어넘었다. 그런데도 그의 재산이 렌칭파이 회장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렌칭파이 회장의 중웨이는 이들의 사업에 들어가는 모든 네트워크 시스템을 담당할 예정이다.

“당위서기님. 윤태식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쉬링 당위서기는 물론, 두 사람 역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뜯어먹을 고기가 넘쳐나는 매머드급 고깃덩어리가 먹기 좋게 찾아와 주었다.

“연락해서 뭐라고 했지?”

“한 번 만나 뵙고 싶다고 합니다.”

“소박한 바람이군. 그럼 만나줘야지. 앞으로 함께 큰 사업을 진행할 사람인데, 그거 한 번 만나주는 게 대수겠나?”

“네, 당위서기님.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언제가 좋으려나?”

비서와 대화하던 쉬링이 쉬맹과 렌칭파이를 슬쩍 보았다.

“이곳으로 오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기로?”

“당위서기님은 아주 바쁘신 분이십니다. 서기님을 뵈려면 그 자가 이곳으로 오는 것이 당연한 법이지요.”

할 일 없이 평일 대낮부터 골프나 치고 있는 인간들이 할 대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셋은 그 것이 세상의 진리만큼이나 옳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는 이 질서가 지배한다는 식이었다.

“그렇지. 그래. 확실히 우리 쉬맹 조카가 뭘 좀 아는군. 들었지? 당장 이리로 오라고 전해.”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럼. 지금 당장이지. 아니면 나더러 내일까지 여기서 골프만 치고 있으라는 거야? 라운드를 다 돌기 전까지 시간을 맞추라고 전해.”

“당장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가 봐.”

혹시라도 쉬링의 심기가 불편해졌을까 식은땀을 흘리던 비서는 쉬링의 축객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색이 돌고 웃음이 끊이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과연 윤태식이 언제쯤 도착할지 가볍게 내기도 했다.

그리고 약 30분 후.

골프 클럽 주차장에 새로운 고급 차들이 들어섰다. 마화슈 회장과 윤태식 회장이었다.

*

땅덩이 큰 나라를 오갈 때마다 질릴 만큼 느끼는 바지만, 정말 이 녀석들은 자원이 넘친다고 아낌없이 팍팍 쓴다. 조막만 한 땅을 금싸라기로 여기고 다목적으로 활용하는 한국과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

보라!

‘뭔 노인건강증진센터가 이래? 내 살다 살다 피트니스 센터를 이렇게 웅장하게 짓는 건 처음 보는군.’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자기들 돈을 땅에 묻건 허공에 뿌리건 내 알바는 아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대륙의 스케일이 좀 지나친 거 아닌가?

[이 피트니스 센터를 몇 명이나 쓴다고 이렇게 지어?]

혼잣말을 듣고 마화슈가 고개를 갸웃했다.

[피트니스 센터라니요?]

[건강증진센터잖습니까.]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여기는 골프를 통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곳입니다.]

[그랬군요.]

대답은 했지만, 속에서는 실소가 나왔다. ‘골프를 통해서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긴 말은 간단하게 줄이면 ‘골프장’이라는 소리에 불과해서다.

‘하여간 대륙의 스케일이 사람을 여럿 버려놓는다니까.’

한국에서라면 이런 오해를 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이런 규모의 건강증진센터가 있다면 단순 스포츠 센터 같은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대비한 종합운동이 가능한 장소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기상천외한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중국이다 보니 이런 정신 나간 헬스장도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나 보다.

‘저게 재밌나? 한 번 치고 엄청 걸어 다니는 게 운동은 되고?’

타인의 취향을 무시할 마음은 없지만 골프라는 스포츠는 내 성격과는 썩 맞지 않았다. 귀족적인 상류층에 비해서 내가 근본 없는 소시민이었기 때문일까, 몸을 쓸 거면 확실하게 쓰는 편이 낫다는 주의였다.

다른 사장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몇 번 가보긴 했는데 그냥 차를 타고 이동한 뒤 클럽 한 번 휘두르고 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에 반복이었다. 너무 시간이 남아돌아서 어쩔 수 없이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되기는 하더라.

그런데 회의를 할 거면 회의실에서 보고 잡담을 나눌 거면 맛있는 음식을 두고 대화하는 게 낫다고 본다. 그래서 때때로 취향과 가치관은 평행선을 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나를 사장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저런 사장들은 내가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골프 클럽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많이들 짓습니다.]

나라마다의 문화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 윤 회장!]

골프 클럽에 들어서자 쉬링 서기가 크게 반겨주었다.

[일정이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우리야 늘 공사가 다망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 회장이 직접 온다는데 하던 일을 멈추고라도 기다려야지 않겠나. 앞으로 함께할 사업 파트너인데 이쯤은 배려해 줘야지.]

‘낯짝도 두껍네.’

중국 고위직 인사들의 핵심 업무 중에는 ‘대낮부터 골프 하면서 놀기’가 있나 보다. 저 직장은 골퍼들이 선망하는 축복받은 직장일 것이다.

< 부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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