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88화 (388/577)

< 집 떠나와 >

*

미래의 최고 권력자, 쑤전팽.

‘호언장담하기는 했다만, 그를 어떻게 만나야 할까?’

마화슈의 앞에서는 호기롭게 상하이로 가자고 말했지만, 사실 쉬링이나 쑤전팽 정도 되는 중국 정치계의 거물들은 제아무리 내가 잘 나가는 사업가라고 해도 쉽사리 만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었다.

“만만했으면 이렇게 머리 굴릴 필요도 없었을 테지.‘

쉬링만 해도 중국 내의 정치 서열이 무려 44위인 인물이다. ‘8,000명의 공산당원’이니, ‘2,154명의 전국 대표’니 하는 말 속에서 44위는 썩 크게 와 닿지 않는 숫자지만 이렇게 바꿔 표현하면 정치인으로서의 무게감이 확 느껴진다.

쉬링은 과거 유럽의 백작과 비슷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권력자이며 인구 16억의 중국에서 44위의 인물이다.

‘조막만 한 대한민국에서도 300명뿐인 국회의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거든.’

하물며 내가 만나려고 하는 쑤전팽은 중국 공산당 내의 서열이 11위인 인물이다. 후작으로 볼 수 있는 거물로서 나뿐만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에게 줄을 대려고 애걸복걸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보면 된다.

마화슈나 내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사업가지만, 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와 비슷한 사업체들을 몇 년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찾아가서 ‘우리에게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니 우리와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제가 함께하면 대박을 낼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무슨 답변이 돌아올까?

장담컨대 예전 빌 게이트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움직이면 쫓겨날 확률이 100%에 수렴한다. 이렇듯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제안조차 할 수 없다.

‘물론, 그라고 욕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권력욕이 어마어마하니까. 그런데 이것도 처음의 질문이랑 똑같은 문제가 있지. 무당처럼 당신이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겁니다. 미래가 그리 나와 있습니다,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

잘해봐야 미친놈 취급이고 잘못되면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 모른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마냥 골머리만 싸매고 있을 필요 역시도 없었다. 적어도 쉬링이라는 권력자를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 나는 그 방법이라도 알고 있지 않던가. 세상에는 노력 이전에 어떤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를 모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꿈속 미래의 지식은 내가 좋은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우선 첫째 목표는 쑤전팽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최선책은 직접 쑤전팽에게 만나자는 말을 전달하는 건데, 이건 불가능하다.

차선책은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장소. 마화슈와의 만찬회 같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쑤전팽이 꼭 참여해야만 하는 모임’을 콕 짚어서 찾아가는 건데, 애석하게도 이건 불가능했다.

제국의 후작급 인사의 일정을 내가 알아낼 수가 없고, 공식적인 자리라면 만나봐야 아무 소득도 이룰 수 없다. 잘해봐야 10만 명 콘서트에 티켓 끊고 참여한 팬의 입장 정도가 고작이리라. 손 흔들며 얼굴 한번 보면 감동하는 딱 그만큼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만찬회 같은 모임뿐이며 한 발의 화살이 아닌, 맞출 때까지 화살을 쏘는 방식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쑤전팽 당위서기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모임을 모조리 알아 오세요.”

“예, 회장님.”

최종인 의장에게 그리 지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두툼한 서류를 내게 주었다.

2008년 2월, 쑤전팽이 참여할 가능성이 보이는 행사나 모임의 목록이었는데 보고서 나는 기함하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음에도 행사와 모임의 숫자는 상하이에서만 무려 3백여 개였다.

“중국은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상하이 정도의 대도시라면 이곳저곳에서 많은 행사가 매일 진행 되고 당위서기가 굉장히 바쁜 곳이죠.”

“무작정 참여하는 방식은 기각해야겠군요. 이래서는 얼굴조차 볼 수 없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화슈 회장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의 장벽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쉬링과 틀어질 조짐이 보인 순간, 선전에서는 모든 사업에 난항이 생길 것은 너무나도 뻔했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권력의 맛에 빠진 놈들만큼 진상 피우는 놈들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그와 사업을 한다면, 부정부패로 나랑 마화슈까지 모조리 쓸려가 버리지.’

참 우스운 일이다. 몇 년 후에 터질 다롄의 비리 사건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알아서 찌그러질 인간인데, 그런 쉬링이 지금 당장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가 몰락하기 전에 선전시에서 우리의 중국 사업이 먼저 몰락할 수 있을 만큼이다.

‘어쩐다······.’

그렇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로 사흘이 지났다.

2008년 2월 12일.

쉬링을 피할 겸. 쑤전팽을 직접 만나볼 겸 도착한 상하이에서 여전히 고민과 회의를 반복하던 때였다.

“회장님. 쑤전팽이 어디에 올지 알아냈습니다만, 이 방법도 틀린 것 같습니다.”

“하나가 해결되면 장애물이 또 생기네요.”

“중국은 정말 기가 막힌 나라입니다.”

혀를 내두르며 반어법을 쓸 만큼 놀라운 일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활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쑤전팽이 오늘 참여할 모임이 어디인가?’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쑤전팽이 오늘 어디에 올 것인가?’를 찾아내는 건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건 중국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버젓이 일으키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도 정치계의 고위인사들이 이동하면 보안을 위해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그 정도가 얼마만큼일까?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였어.’

이들은 정치계의 고위 인물이 어딘 가에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순간, 그날 아침부터 공안들이 해당 장소에 들이닥치고 거리를 통제하여 흉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압수한다.

즉, 우리는 ‘공안들이 먼서 설레발을 치는 곳이 어디인가?’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쑤전팽의 일정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동경로를 알아내니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곳에 가서 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막아.’

쑤전팽이 나타나는 곳에는 공안이 모든 출입을 통제한다. 이는 곧 ‘쑤전팽이 어디에 갈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저기 있는데 말조차 걸 수가 없네요. 이쯤 되니 자존심이 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자주 언급하셨듯이 중국은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시장입니다.”

“그렇죠. 아이스 스톰에서 자기 프라이드를 다 내던지고 노릴 정도니까요. 아참, 의장님은 휴대폰 있으시죠?”

“네. 그런데 갑자기 폰이라니요? 아이스 스톰의 신작이 중국에서 출시라도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냥 답답해서 아무 생각이나 했나봅니다.”

“······.”

이렇듯, 지금 우리는 쑤전팽이 출현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상하이의 한 시장에 와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쑤전팽이 시장 상인과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그 주변에 갈 수가 없고 이럴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통역도 두고 온 채 오늘은 틈이 있는지, 방법으로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쑤전팽 저 사람은 시장 상인과 무슨 대화를 저렇게 심각하게 할까요?”

“알아듣지는 못해도 왠지 알 것 같습니다. ‘힘드시죠? 경제를 제가 곧 살려보겠습니다.’ 같은 것일 테니까요.”

“그 앞에 기호 몇 번 누구입니다, 라고만 하면 대선 공약 아닙니까?”

“맞습니다, 회장님. 정치인이 하는 말이야 다 뻔합니다..”

아무튼, 그를 찾는 첫 번째의 발자국은 걸었다.

이제 쑤전팽과 어찌 대화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면 된다.

*

언제 어느 장소, 어떤 각도에서도 부드럽게 보이는 미소.

쑤전팽은 새겨 넣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정육점 주인에게 물었다.

“장사는 잘 되십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과 표정은 시큰둥했다.

“평소에는 엄청 잘 되는 편인데. 오늘은 한 근도 못 팔았습니다.”

“아니. 왜죠?”

“그야. 당신이 온다고 시장에 아무도 접근을 못하게 만들었으니 고기를 팔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정육점의 주인은 차마 대놓고 못 마땅한 표정을 짓지는 못하고 그저 뚱한 정도의 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자신의 불만사항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웃으며 그와 대화를 하던 쑤전팽은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와 있는 이때에만 사람이 못 오는 게 아니라 오기 전까지 아무도 못 오게 막은 거였나?’

지금은 오후 1시.

이른 아침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시장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방문 탓으로 시장 전체의 상인들은 오늘 하루 장사를 모조리 망친 것과 같았다.

“이런, 미안합니다. 불편하게 했으니 제가 넉넉하게 고기를 구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못 팝니다.”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던 쑤전팽마저도 이때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기분이 상하셨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장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래 보여도 딸린 식구들이 꽤 많습니다. 그 인원들 전부를 배불리 먹일 정도로 구매하면 오늘 장사 공친 것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는 될 겁니다.”

“그게 아니라 당신이 오늘 이 시장에 방문한다는 것 때문에 시장 내의 날붙이란 날붙이는 전부 수거해서 압수당했습니다. 고기를 팔려면 손질을 해야 하는데, 손질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육점 주인의 대답을 들으니 웃는 낯 속에서 감정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부도 적당히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지.’

중앙위원회의 총 서기도 아니고, 고작해야 상하이 시위원회의 서기 수준에서 취할 조치치고는 상당히 과한 대처다. 이는 공안부장이 시키지도 않은 충성심을 발휘한 것이 분명했다.

쑤전팽은 이제 상하이에서 줄을 잡고 좀 탄탄한 세력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처지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 이미지가 잡혀서는 매우 곤란했다.

‘내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친숙하고 겸손한 이미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늘!’

그는 속으로는 화가 치솟았지만 겸연쩍고 민망한 표정과 말투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보이지 않았다. 시장 상인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메시지를 연신 전달한 뒤 최대한 자중하며 돌아나왔다. 그리고 복화술을 하듯 미소 지은 채 보좌관에게 으르렁 거렸다.

“타오창. 오늘은 물론, 내일까지 있는 일정을 모두 취소해.”

이런 식으로는 좋은 이미지를 쌓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와버린다. 내우 방침부터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져야 했다.

“당위서기님. 오늘 일정은···”

“내가 가지 않으면 곤란해 질만 한 게 있었나? 난 그런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는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더 지껄여보라는 듯 서늘하게 보고 걸음을 재촉하던 쑤전팽이 멈칫했다.

“잠깐만. 오늘 내가 방문하기로 한 모든 곳이 이 시장과 같은 상황이냐?”

“아마도 그럴 겁니다.”

“···젠장.”

쑤전팽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었으나 지금만큼은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일정을 취소하면 기껏 내가 온다고 다 비우게 해놓고는 불참하는 격이군.”

진퇴양난이다. 가지 않으면 ‘이 난리를 피워놓고 왜 안 와?’라는 소리를 듣고 가면 정육점 주인에게서처럼 ‘너 때문에 오늘 장사 망했다.’ 같은 욕을 먹게 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일단, 오늘 일정은 다 참석한다. 하지만 내일 일정은 확실하게 취소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정을 마치는 대로 공안 부장 새끼를 불러. 내가 좀 보자고 전달해.”

“네, 당위서기님. 행사 주최측에는 뭐라고 전달할까요?”

“그것까지 내가 다 알려줘야 하나?”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다. 하지만 눈동자는 서릿발처럼 한기를 내뿜었다.

“···죄송합니다! 문제없도록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창백해진 낯의 보좌관에게 어깨를 두드려준 쑤전팽은 이내 시선을 돌려 시장 이곳저곳을 살폈다.

*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엄청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뭘까요? 쑤전팽 서기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단 오늘은 기회가 생겨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느낌이 영··· 좋지 않습니다.”

내 생각도 최종인 의장의 생각과 같았다. 저건 칼만 안 들었지 누군가의 목을 곧 잘라내기 직전의 분위기였다. 우리는 ‘제발 내 눈을 바라봐! 이쪽으로 와줘!’라는 눈빛을 몽땅 거두고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죽은 듯이 고요하게 빠져나갈 심산이다.

그런데 그 행동이 더 어색했던 걸까?

- !

또렷한 중국어가 우리를 향해 들렸다.

“어어? 회장님. 지금 저희 보고 말 거는 거 맞죠?”

슬그머니 보자 쑤전팽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맙소사. 지금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회장님! 이쪽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는 속삭이듯 비명을 지르듯 다급한 목소리인데 볼륨을 줄이는 놀라운 재주를 보였다.

“우리 이러다가 잡혀가는 건 아닐까요?”

“기사에 나오면 재미있기는 하겠네요. GF그룹과 마블그룹의 회장들. 나란히 중국에서 잡혀가다. 팔에서 주삿바늘 같은게 찍히면 마약사범이 될 테고.”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십니까?”

“그렇다고 공안을 때려눕히고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무거나 변명거리를 찾아내 봅시다’라고 하고 싶은데··· 이조차도 난감하네요.”

“그냥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요?”

“의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중국어를 모르거든요.”

“···앞으로는 화장실을 갈 때도 통역을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고, 평소라면 이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최종인 의장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필시 쑤전팽의 보좌진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을 점령한 수많은 공안들에게 이목을 집중 받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덜컥 겁이 나면서 이성에 마비가 온 것 같다.

그렇게 최종인 의장의 새로운 모습을 봤을 즈음, 쑤전팽은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우리가 중국 사람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우리 인민이 아니십니까? 혹시 외국인이면 영어는 가능하신지요?]

“아!”

활로가 열렸다. 화색이 돈 최종인 의장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외국인 맞습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누가 들어도 어색한 단 문장의 나열. 그런데도 최종인 의장은 자신이 그렇게 대답한 것도 못 느낄 정도로 당황하고 있어 보였다.

[시장에 장을 보러 오셨다가 지금 못 들어오고 계신 것 맞습니까?]

[아닙니다! 저희는 쑤전··· 읍!]

재빨리 그의 발을 밟아서 입을 다물게 했다.

사람이니까 당황하는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이 이상은 곤란하다. 그가 더 대답하도록 뒀다가는 진짜 쑤전팽을 암살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로 나서며 말했다.

[중국 여행 중에 이렇게 통제가 되어 있는 게 보여서 그냥 신기한 마음에 기웃거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던 쑤전팽 당위 서기님이 딱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이 상황까지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오기만 호면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시뮬레이션을 여럿 마련해 둔 상태다.

[이런 날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건데 이렇게 신경 쓰이게 만들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미래의 지식이지만, 주석이 된 후 쑤전팽의 행보를 보면, 그는 대놓고 하는 아부나 칭찬 같은 것들을 꽤 좋아했다. 그랬기에 내 입으로 뱉으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아무런 걱정 없이 질러볼 수 있었다.

[저를 아십니까?]

[그럼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국외에서도 저를 알고 있다니 조금은 놀랍군요.]

‘중국을 벗어나면 그냥 듣보잡의 인지도인 거는 맞습니다만.’

그의 앞에서 그런 소리를 했다가 나중에 알게 모르게 뒤에서 보복을 당했다고 추정되는 인물이 한 트럭이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안을 뵌 것처럼 감격의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사실 상하이도 쑤전팽 당위서기님이 계신 도시라서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정말로 그래서 온 거니까.

그런데 쑤전팽이 뜻밖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국외에서 저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오셨다고요? 혹시, 며칠 정도 이곳에 더 머무십니까?]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내일 함께 점심식사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짜로? 이렇게?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드라마 1편에서 클라이맥스가 나오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게 진짜라면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쑤전팽 서기님과의 식사라니 정말 평생의 영광일 겁니다.]

나는 LA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슈퍼스타를 만나서 함께 식사할 기회를 얻은 팬 마냥 감격스러운 표정을 연출했고 그 모습을 본 쑤전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보좌관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

“타오창.”

“예. 서기님.”

“행사에 무슨 핑계를 대야 하냐고 물었지?”

“아닙니다. 그건 제가 깔끔하게 해결을···”

“나무라려는 게 아니야. 내가 내일까지 국외에서 중요한 손님이 찾아오시는 바람에 자리를 못 뺀다고 전해. 이 빌어먹을 일정들을 취소하란 말이야.”

“네!”

남겨야 할 중요한 이미지는 겸손함과 친숙함.

오직 그것만이 중요할 뿐, 저 외국인들의 정체 따위는 그에게 조금도 알 바가 아니었다.

< 집 떠나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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