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85화 (385/577)

< 집 떠나와 >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중국에서의 일정을 얼마나 생각하고 오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선전이 아니고 중국이요?]

[그렇습니다.]

선전에서의 일정이라면 텐션과의 일정이 전부겠지만, 중국에서의 일정은 텐션과는 상관없는 스케줄이 된다. 굳이 텐션에서 알려고 할 이유가 없는 일정이라는 이야기다.

‘과도한 친절에는 무슨 목적이 있던 거였나.’

의심을 늦추지 않은 채 되물었다.

[왜 굳이 중국에서의 일정이 궁금하신 거죠?]

[그 전에 저희 집으로 먼저 초대를 하고 싶습니다.]

‘초대?’

기대 이상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확하게 보자면 단순히 좋은 정도를 넘어서서 최상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가 중에서 중국의 꽌시 문화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튼튼하게 인맥을 다져놓으면 세상 편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아무리 답답해도 하소연조차 할 곳이 없어진다.

그만큼 꽌시는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면 아주 편해진다. 1, 2, 3, 4, 5에서 과정을 건너뛰고 단숨에 1이 5에 도달한 셈이니까.

‘다만, 너무 좋게 봐주니 오히려 걱정된단 말이야. 누가 뭐래도 여기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중국이거든.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마화슈와 처음으로 만났는데 대뜸 초대를 받았다. 마냥 ‘아싸!’하며 좋게 여기다가 뒤통수 맞으면 그 아픔이 얼마나 크겠는가.

노림수가 있지는 않은지 짧게나마 고민에 빠져들었다.

‘마화슈의 심리는 어떨까? 그가 보는 나의 이미지는?’

망해가고 있던 회사에 천사처럼 나타나서 투자를 해주었다. 수익화 아이템이 없던 회사가 수익화를 할 수 있도록 아이템 개발까지 나서서 도왔다.

‘그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겠지. 그러면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호감으로 봐도 괜찮을 거야. 굳이 꽌시를 만들 필요 없이, 일찍부터 형성이 되어 있다고 봐도 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릴 즈음, 마화슈가 말했다.

[윤 회장님을 불편하게 해드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답 없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의 초대에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고 생각했는지, 마화슈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건 오해를 풀어줘야겠네.’

나는 아니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제 스케줄을 잠시 생각하느라 그랬습니다. 오해를 드린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윤 회장님께서 사과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사실 사과드릴 부분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네?]

[아무쪼록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 회장님을 이용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사과하려고 하기에 서두부터 이리 거창할까.

[사실. 저희 집에서 이틀 후에 만찬회가 열립니다.]

[만찬회요?]

[그렇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주관하는 만찬회인데 윤 회장님께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이어지는 말을 듣자 살짝 긴장했던 것을 풀 수 있었다.

중국의 꽌시 문화는 과거, 봉건사회의 미덕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인맥 문화다. 이런 국가에서 만찬회가 열린다는 건 ‘그 만찬회에 내가 어떠한 인물들과 인맥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점들을 보여주는 의미다. 즉, 만찬회를 빛내고 자신을 빛내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다.

‘유럽이 배경인 판타지 영화를 봐도 이와 비슷한 파티가 있지. 남작이 주최한 연회에 공작이 오면 아싸의 연회가 급 인싸의 연회로 분위기 전환되는 그런 거.’

그런데 마화슈를 보면 놀라운 지점이 있다.

그가 나를 초대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면서도 존중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윤태식이라는 인물이 자랑할 만하고 가치 있는 인맥이라는 의미였다. 중국이라는 거대하면서도 폐쇄된 이 대륙에서 말이다.

이 점이 의아해서 확인차 물어보았다.

[마 회장님께서 초대해주신다면 저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간다고 자리가 빛이 나겠습니까?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숱하게 많을 텐데요.]

[겸손이 과하십니다. 윤 회장님은 지금 중국 전역의 공산당원들은 물론이며 고위 경영인들까지 다들 알고 있을 만큼 유명인사이십니다.]

‘진짜? 중국에서? 내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최종인 의장의 얼굴을 보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셨습니까?”

“금시초문입니다만?”

그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회장님. 지금 자산이 얼마 정도 되시죠?”

‘꽤 되기는 하는데 잘은 모르지.’

내 자산을 정확히 알려면 보고서를 봐야 하는데, 요즘 그런 보고서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는 데 지장 없고 사업을 운영하며 투자할 돈만 넉넉하면 내 자산 따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이고 지켜보는 남들의 입장은 달랐나 보다.

“저희 GF 홀딩스가 아니라 회장님이 지금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계신 텐션의 지분이 11.3퍼센트입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그것만 해도 자산이 지금 14조라는 겁니다. 즉, GF 그룹의 지분을 제외하고서도 회장님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갑부이십니다. 회장님께서는 무관심하셨을 테지만 이 부분에 대한 경제지에 대문짝만하게 난 지 오래였고요.”

‘난 나한테 필요한 기사 부분만 딱 잡아서 보니까 경제인 분야는 관심이 없었지.’

세계적인 경제인이라면 모를까 국내의 경제인 정도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어서 말이다.

“거기에 회장님께서 과거 LON에서 엄청난 고수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것들이 중국에서 꽤나 유명세를 탔던 모양입니다. 돈도 많고 게임에 대한 열정도 있으신 거죠. 그러니까 이 분야에서는 가장 성공한 사례하고 할까요?”

“덕업일치. 성공한 덕후. 뭐 그런 거로 유명한 모양이네요.”

“덕업? 그게 뭡니까?”

“별거 아닙니다. 모르셔도 돼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니까 됐다. 아무튼 지금 마화슈가 말하는 내가 초대에 응했을 때, 자리가 빛난다는 말은 없는 소리를 지어낸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초대에는 응하는 게 좋다.

‘중국에 괜히 꽌시 문화가 있는 게 아니거든.’

이 사람들과의 관계는 일정 이상으로 발전해 나가기가 쉽지 않지만, 한 번 은혜든 원수든 관계를 만들면 그 은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도와주면 나도 나중에 도움받기 좋아진다.’

사업차 마화슈 회장과는 친분이 쌓일수록 긍정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그게 아니더라도 인맥은 일종의 거미줄과 같다. 그물망처럼 연결이 되어 있는 인맥 네크워크는 사람을 타고 저 높은 누군가에게 까지 닿게 해줄수 있다.

[손님들끼리 한국어 대화가 너무 길어졌네요.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이틀 후라고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이틀 후. 저녁 만찬입니다.]

[만찬회에는 저 혼자 가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여기 우리 최 의장님이 같이 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는 지금까지 최종인 의장이 내 비서나 뭐 그와 관련된 인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단어가 의장이었으니 마화슈는 의외라는 표정을 잠시 드러냈다.

[윤 회장님과 동행이시라면 당연히 환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 저녁에 뵙지요.]

그렇게 마화슈와의 식사를 마치고 이틀간은 그냥 마음 편하게 자유 시간을 보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라이언 맨의 상당하군요.”

현재, 한국에서 천만 달러. 영국은 이천만 달러, 중국이 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이건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중국이라는 시장의 크기를 보면 기대 이하의 성과였다. 이는 중국의 불균형 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중국 매출의 절반이 선전시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의장님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콘셉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이언 맨의 컨셉이 하이테크 슈퍼 히어로인데 중국에서 하이테크라고 하면 바로 이곳 선전이니 이곳 사람들은 하이테크 영화에 관심이 많지는 않나, 그리 봅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중국은 아직 소득이 적은 노동자 계층이 많습니다. 반면에 선전시에서는 소득이 높은 노동자가 많지요.”

문화생활에 돈 쓸 여유가 많은 동네라는 이야기다.

이 역시도 타당한 근거였다.

“그렇군요.”

선전시 탐방 중에 극장 분석은 이만하면 됐다. 나야 그냥 딱 이 정도가 궁금해서 확인차 온 것뿐이고 진짜 사업적으로 세부적인 분석은 직원들이 할 일이다.

그럼 회장은 무슨 일을 할까?

‘꽌시지.’

만찬회에서 인맥을 잘 쌓는게 내 업무였다.

“최종인 의장님. 지난번에 보니 꽤 대식가이던데, 그날만 무리한 겁니까, 아니면 본래 식사량이 많은 편인 겁니까?”

“제가 제법 위대한 편입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체력은 국력이다. 잘 먹어야 복이 온다. 그리고 또···”

“하하하! 대식가가 되신 이유가 다양하게 있나 보군요. 아무튼, 다행입니다. 많이 드시는 일에는 자신 있다 하시니까요.”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이제부터는 엄청나게 많이 식사하게 될 거니까요.”

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

만찬회 약속이 있는 오후 6시.

호텔의 입구에 마화슈가 보낸 차량이 도착했고 우리는 수행원들의 안내를 받아 마화슈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확히는 마화슈의 집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마천소의 집이라고 한다. 이 저택은 넓은 정원은 물론이고 내부에 멋들어진 정자를 품고 있는 큰 연못까지 보유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장소였다.

“꽤 전통적인 느낌이 살아있군요.”

“아무래도 유서 깊은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저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는 그대로의 소감이다.

“마화슈의 집안이 그렇게 유서 깊은 가문은 아니지 않던가요?”

“원래 동양의 문화는 터라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화슈의 부친도 나름 공산당에서는 고위 당원이니 아마도 선전으로 오면서 이곳에서 가장 터를 좋은 집을 구매하려고 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유서 깊은 가문의 집을 구매해서 자신들의 터로 삼았다?”

“그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으로 역사도 살 수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자본주의는 황금 만능시대가 맞다.

[윤 회장님. 오셨습니까?]

조금 전까지 다른 손님을 먼저 맞이하고 있었던 마화슈는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손님을 넘기고 재빨리 우리에게 달려와 마중했다.

[마 회장님의 초청을 직접 받았지 않습니까?]

이미 오겠다고 확답을 주었던 상황임에도 그는 내 말에 굉장히 감격한 것 같은 모습을 취했다. 식사자리에서 봤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태도였다. 연기나 가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나를 굉장한 은인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야 성공할 게 분명한 사람이라서 아낌없이 투자했을 뿐인데.’

꿩 먹고 알도 먹는 상황이니 기쁘기 한량없을 따름이다.

[회장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마화슈의 안내를 직접 받아서 들어간 저택 내부에는 이미 만찬회를 위한 준비로 떠들썩하다. 넓은 대리석 탁자 위에는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음식들이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조금만 눈치 보지 않고 놀면 정말로 주지육림을 재현할 수 있겠군요.”

“굉장히 사치스럽고 지나치도록 풍족하네요. 대륙의 스케일이 이런 건가 봅니다.”

나는 물론이고, 최종인 의장 역시 음식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는 상태다.

마화슈 회장은 그런 우리는 좌측의 한쪽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이 자리 배치와 비어있는 좌석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자리를 빛내주면 좋겠다’고 초대했는데 정작 내 위치는 상석에서 거리가 조금 있어. 그렇다면 둘 중 하나지. 겉으로는 웃는 척 실제로는 나쁜 대우를 하면서 망신을 주는 것. 혹은, 이 만찬회가 중국에서의 내 가치보다도 훨씬 중요한 인물들이 제법 모이는 자리라는 것.’

마천소가 여는 만찬회이니 아들 손님인 우리가 상석에 가까울 수 없는 걸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렇게 감탄하는 한편 상황을 관찰할 즈음, 마화슈와 마천소는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하고 또다시 밖으로 나가서 다른 손님들을 마중했다.

‘지금 입장하는 사람도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는 상당히 고위층의 느낌이야.’

CG 연출이 아닌 바에야 다른 사람의 아우라 같은 것을 볼 수는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외형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여기에는 자세와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당당한가, 눈치를 보는가. 이는 제아무리 고급스러운 옷을 입어도 허리가 굽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는지 등등 다양한 자세의 요소와 언행의 태도들을 통해 드러난다. 지금 마화슈가 안내해 주는 이 역시 충분할 만큼 고위층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였다.

그런데 그 손님 역시도 상석이 아니었다.

‘뭐지? 도대체 누가 오길래?’

이 모임.

확실히 뭔가 있다.

< 집 떠나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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