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84화 (384/577)

< 집 떠나와 >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를 향한 넷플렉스의 첫 실사 영화인 라이언 맨은 2008년 1월 25일에 전 세계 동시 개봉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이는 꿈속 미래보다 3개월 정도 더 빠른 시점이다. 그 덕분에 경쟁할만한 작품이 없는 시기에 자리를 잡으면서 순식간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장을 독점하게 되거든.’

초기에는 3,000개의 개봉관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쟁할 작품이 없다는 시장의 판단이 나오자 극장 주인들은 대거 라이언 맨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 결과, 1,500개의 스크린을 추가로 배정받으며 우리는 북미 개봉 영화 사상 여덟 번째로 많은 개봉관을 보유하며 포문을

열었다.

압도적인 물량 공세는 그만한 성과를 이루기 마련이다.

개봉관 숫자에 어울리게 라이언 맨은 3일 만에 1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역대급의 흥행 돌풍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슈는 더 큰 이슈를 재생산하는 법이다. 라이언 맨은 본래의 역사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보여주며 열풍을 넘어선 태풍을 불러 일으켰다.

“열심히 애쓴 보람이 있어.”

가을 추수의 기쁨은 봄철 파종에 구슬땀을 흘린 농부의 특권이다.

나는 기분 좋게 수확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

중국 광둥성 선전시.

마화슈는 대륙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인터넷 기업인 텐션의 주인이다. 그는 자신들의 최대 주주이자 텐션을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GF에게 예의를 차리고자 전 직원에게 라이언 맨의 영화 관람권을 돌렸다.

그 숫자는 무려 2만 3천 매.

중국 내에서도 이제 수위에 꼽힐 만큼 거대해진 텐션인 만큼 직원의 숫자가 많았고 마화슈는 영화 상영 시간도 면밀하게 분산 배치하여 관람권을 구매하라고 지시했다. 퇴근하고 이 직원들이 한 번에 영화관으로 몰려갔다가는 시장 통이 될 것이 뻔해서였다.

그리고 오늘, 마화슈 본인 역시 라이언 맨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의 심정은 좋은 영화를 봤다는 감정과 씁쓸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은 벌써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앞서나가고 있구나.]

계단을 내려오며 탄식과도 같은 소감이 나왔다. 그러자 함께 한 드웨이 실장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회장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조금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일본 기업인 소닉에서 영화에 관여했다고 해도 할리우드 제작사에서 영화를 만들면 그건 일본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알고 있다. 라이언 맨 역시 순수하게 한국 영화라고 할 수 없지. 그러나 이 영화의 기획자가 누구였는지 잊었나? 이건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야.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던 영화가 윤태식 회장님이 나서자마자 나왔네. 이게 무슨 의미겠나?]

미국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중국에서의 최초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서 그저 은인이 만든 영화이고 뒤떨어지는 중국 극장의 예매율을 높여주고자 구매했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난 그의 심정은 그저 충격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이 굳이 지금 시점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는 곧 대성공을 이룰 작품이었다.

[이렇게 놀란 것은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라는 것을 경험했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네.]

[그렇다면 우리도 영화 제작이나 배급을 하면 어떨지요?]

[자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마화슈 회장의 목소리는 어이없음으로 시작해서 분노에 가깝게 변해갔다.

[우리가 지금 중국에 영화를 배급하려고 하면 어디까지 선이 닿아야 할 것 같은가? 당장 게임과 인터넷 방송에 관한 것들만으로도 우리를 견제하는 세력이 도처에 산적했는데 여기서 사업을 더 늘리자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경험이 있어서 바로 배급을 할 수 있나? 돈만 그냥 쏟아 부으면 그게 사업인가?]

작금의 텐션은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위치에 거의 도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경험도 없이 사업 분야를 마구잡이로 늘리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자칫 과욕을 부렸다가는 앞서서 사라진 수많은 기업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마화슈는 그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애초에 텐션도 처음에 개발했던 메신저의 서버 규모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었고, 그때 GF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미 망해서 사라질 운명까지 겪질 않았던가.

‘하지만 윤태식 회장은 손대는 모든 분야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 참으로 예리한 판단력에 무시무시한 예측력을 갖고 있어. 역량의 차이인 것인가?’

부럽다. 한 수 배우고 싶고 자신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마화슈는 자신의 역량을 잘 알았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부분은 아쉬워도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 차에 올라 회사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비서실? 무슨 내용이지?]

[GF의 윤태식 회장님이 텐션에 방문하길 원하신답니다. 가급적이면 빠르게 만나볼 수 있는 때로 스케줄을 잡아서 알려달라고 연락이 왔었답니다.]

[윤태식 회장님이?]

?曹操·曹操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라고 하더니 딱 그 모양새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보통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과 연락을 하게 될 경우 대주주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회사를 움직이려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윤태식 회장에게서 먼저 연락을 취해 왔던 때들은 전부 텐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들이었다.

동반성장!

이 말을 몸소 실천하고 선견지명을 보여준 큰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 탓에 마화슈는 윤태식 회장을 몇 번이나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업하는 자신과 달리 윤태식 회장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이라서 기회가 없었다.

‘윤태식 회장님이 직접 찾아온다니.’

결코 놓칠 수 없고 늦추고 싶지도 않았다.

[드웨이 실장. 빨리 내 스케줄들 알아보게. 기왕이면 뺄 수 있는 스케줄들은 다 빼고 최대한 빠르게 회장님과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는 지금부터 윤태식 회장님이 이곳에 오셔서 최대한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하게나.]

[알겠습니다.]

그의 재촉에 비서실장이 서둘러 움직였다.

*

“회장님. 텐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중국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텐션은 이제 시가 총액이 130조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우리의 게임을 받아서 성장한 기업이 GF의 게임 부문을 전부 다 합쳐봤자 그 반의반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해진 셈이었다.

‘역시나 대륙은 대륙이야.’

사실상 최근 레이폰 덕분에 레이컴과 카이닉스의 덩치가 커지지 않았다면 GF그룹 전체를 다 합쳐도 텐션 하나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 알고 있었음에도 무시무시한 중국의 성장속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토록 덩치가 커진 만큼 이제는 우리의 의견에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지분을 상당수 가졌기는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독하게 폐쇄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러니 지분만 있을 뿐 권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나름 장단을 맞춰줘서 고맙기는 한데, 얘네가 커도 지나치게 크니 여간 부담스러워야지.’

덕분에 텐션과 연락할 때는 나도 적잖이 신경 쓰고 조심하게 된다.

“일정은 언제가 괜찮다고 합니까?”

“아무 때나 회장님이 원하시는 때라면 바로 다 맞추겠다고 합니다. 당장 오늘 출발하셔도 괜찮답니다.”

대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만 지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건 굉장히 파격적인 예우였다.

“오늘이요? 텐션 정도 기업의 회장이면 상당히 바쁠 텐데 그게 가능다고 합니까?”

비슷한 규모의 기업 회장이면서 정작 게임 할 거 다 하면서 지내는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텐션과 우리 회사는 그 입장이 또 다르지 않은가.

“알아본 바로, 텐션에서는 회장님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장님이 선전에 계시는 동안에는 그 어떤 일정에도 맞출 수 있도록 조율하라는 공문이 떨어졌답니다.”

“고맙긴 하네요.”

나쁘지 않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상대가 알아서 맞춰주겠다는데 거기다대고 무슨 말을 할까.

“그럼. 언제쯤 출발하시는 거로 답장을···”

“바로 갑시다.”

“네? 지금이요?”

깜짝 놀라는 그에게 나는 웃으며 정정해주었다.

“ 오늘이라고는 했지만 정말 그리 해버리면 무례한 일이지요. 내일 출발 하겠다고 전하고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LA다. 이곳에서 홍콩까지는 열여섯 시간을 비행해야 하고 홍콩에서 선전시까지는 페리를 타고 약 30분 정도를 더 이동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의 방문 목적은 GF 미디어 네트워크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발을 뻗기 위함이다. 그런만큼 나는 선전시에 최종인 의장과 함께 왔다.

그리고 페리 터미널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는 세 명의 남성을 발견했다.

『환영합니다. 윤태식 회장님.

텐션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내 눈이 일순간 커지고 말았다.

[반갑습니다. 윤태식입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마화슈입니다.]

텐션의 회장 마화슈가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냥 차만 보내주셔도 됐을 텐데,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 굳이 이렇게 나오셨습니까?]

[회장님이 친히 방문을 하시니 제가 나오는 것이 예의 아니겠습니까?]

나는 한국어와 영어가 가능하고, 최종인 의장은 한국어, 영어에 일본어가 가능하다. 우리 두 사람 다 중국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굳이 중국어 통역사와 함께 자리를 했는데 막상 대화에는 전혀 필요가 없는 느낌이다.

슬며시 통역사 쪽을 바라보니 중국인 통역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괜찮아. 돈 안 떼먹어.’

상대방이 중국어를 해야 통역을 할 텐데. 양쪽이 다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는 할 일이 없어져서 불안한 듯 보였다. 통역을 하든 말든 어차피 기간으로 계약을 하고 함께 온 것이니까 돈은 받겠지만, 사람이 할 일을 받아서 왔는데 일을 못하면 그게 더 불안한 법이니까.

준비 된 차량은 총 세 대. 편한 이동을 위한 배려로 마화슈는 나와 최종인 의장 둘이 따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중국에 계시는 동안 윤 회장님을 모시기로 한 파이종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우선 긴 이동으로 출출하실 테니 식사부터 하시지요. 그동안 짐들은 저희가 숙소에 옮겨두도록 하겠습니다.]

‘땡큐.’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요. 갑시다.]

국외를 다니면 정말 나라마다 개성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특히 선전시는 경제특구 관리 구역으로서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은 아무런 제재가 없는데 정작 내국인은 출입을 통제 받는 것이다. 마치 외국인이 입국할 때 심사를 받듯이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공산당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불과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이었다는데 2008년인 현재는 서울과 비교해도 세련 된 도시라는 느낌이 물씬 날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이곳에서 마화슈가 우리를 이끈 식당은 선전시에서 가장 잘나가는 호텔 중에 하나라는 선전 시티즌 호텔이었다.

[이 식당에는 특급 요리사가 무려 두 명이나 있습니다.]

[특급요리사요?]

[중국 요리사들에게는 꿈의 자격이죠.]

‘그게 만화에 보면 ‘미미!’ ‘우오오!’ 막 이러는 그 요리사 아닌가?’

고대 중국. 혹은 만화에서나 존재하는 설정인 줄 알았는데 이게 지금도 존재하는 그런 개념이었나 보다. 대륙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마화슈가 자신있게 말했다.

[특급 요리사는 오르기 힘든 만큼 다들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곧 중화요리다운 다채로운 요리가 식탁 위에 끊임없이 올라왔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중국답게 올라오는 요리의 면면이 전부 굉장한 화려함으로 무장을 한 상태라 이게 요리인지 장식품인지 고민을 해야 할 음식들도 상당했다.

‘맛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애니메이션에서 왜 ‘미미!’를 왜쳐대는지 이해하게 되는 요리들이었다.

‘엄청 새롭고 기상천외한 맛은 아니야. 그런데 이 재료가 이보다 더 맛있어지기는 어려운 느낌이 들어.’

일례로 무슨 공작새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새우튀김이 있었는데, 확실히 특급요리사가 만든 음식이라서 그런가. 평생에 먹어본 새우튀김 중에 가장 맛있는 튀김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맛이다.

단지 두 가지가 아쉬웠다.

‘뭔 놈의 음식이 대부분 튀김이 아니면 볶음이냐?’

중식 하면 느끼함. 뭐 이런 이미지가 있는데, 중국 본토에서 잘나가는 음식을 먹어보니 확실히 중국 전체에 베인 음식 문화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아쉬운 점!

[입에는 맞으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굉장히 맛있군요.]

[이 요리는 어떻습니까?]

[오감이 행복할 정도입니다. 만족스럽네요.]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 요리는···]

‘이 자식아. 말 좀 그만하고 음식에 집중하자!’

나보다 더 큰 회사의 회장인 마화슈.

혹,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지 않아?’라며 무시하는 투면 어떨까 조금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사람은 자기가 식사하는 것보다 내가 먹고 웃는지 표정이 어색한지를 더욱 신경 쓰고 있었다.

‘이래서야 편하게 식사가 되겠냐?’

덕분에 정말 맛있는 음식을 아주 불편하게 먹는 중이다!

< 집 떠나와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