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떠나와 >
*
영화 라이언 맨의 광고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영화와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는 라이언 맨 실사 영화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아니. 스파이더 가이, 헐커, 캡틴 실드 같은 캐릭터를 두고 왜 하필 라이언 맨이야?
- 어쩐지 BES에서 라이언 맨을 밀어준다 했더니만, 결국 영화 때문이었네?
- 안 봐도 뻔함. 이런 영화를 누가 봄?
└ 냄새가 나. 망삘의 냄새~
└ ㅇㅈ 딱 봐도 망한 영화
└ ㅋㅋㅋ GF그룹 윤 회장이 투자의 귀재라더니 드디어 실패하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글들을 보며 나 역시 웃고 있는데 바벨의 임시 의장직을 맡은 최종인이 내게 말했다.
“커뮤니티에서 하는 글들은 보지 않으시는 편이 어떨까요?”
“왜죠?”
“저야 나중을 위해서 미리 반응을 보려고 계속 찾아보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글이 부정적이지 않습니까. 회장님에 대해서도 ‘드디어 실패했네.’라며 떠드는 글들이 많고요.”
최종인 바벨 임시 의장은···
‘아. 직함 참 길기도 하다.’
이게 여기도 회장, 저기도 회장이다 보니 불편해서 임시 의장으로 부르기로 한 건데 아무래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회사가 커지니까 진짜 별에 별 게 다 불편해.’
사실 라드 헤이스터스 역시 이쪽 미디어 콘텐츠를 총괄하는 의장이라서 최종인과 겹치긴 하는데, 나랑 겹치는 것보단 거기랑 겹치게 하는 게 편했다.
이토록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과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뭐 어때요. 이 글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보는 건데.”
“네?”
최종인 의장은 ‘그게 무슨 변태 같은 소리입니까?’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었다.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 줄 아십니까?”
“고생 하신 거야 잘 알고 있습니다만······.”
뭔가 애매한 표정으로 이런 대답을 하니까. 괜히 ‘고생을 너무 하셔서 변태가 되셨습니까?’이런 뉘앙스로 들린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바는 그가 추측하는 것과 달랐다.
성공이 아닌 대성공을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애를 써왔던가!
“라이언 맨의 인지도를 올리겠답시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게임도 만들었으며 이 두가지를 다 흥행시키겠다고 그야말로 생 쇼를 다 했습니다.”
“아··· 네.”
“그리고 지금 보시는 이 글들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요. 정말 감개무량입니다.”
“예?”
“이 글들을 보시면서도 모르겠어요? 다들 엄청 부정적인 소리를 쏟아내고 있잖습니까.”
“네. 저도 그래서 보시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건데··· 아!”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드디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댓글 그 어디에도 라이언 맨이 무슨 캐릭터냐는 물음은 하나도 없었군요.”
바로 그거다.
욕을 하는 건 좋다. 애초에 이 영화가 제대로 나올 거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려우니까.
팬이 없어도 좋다. 게임 덕분에 인지도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라이언 맨의 코믹스 판매량은 슈퍼 히어로들 사이에서는 저 바닥을 깔아주는 매니악한 수준이니까!
‘내가 바라는 건 바로 딱 이 정도였어.’
‘라이언 맨은 이런 슈퍼 히어로입니다.’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라이언 맨!’이라고 하면 ‘그 쇳덩이 두르고 날아다니는 애?’라고 이해해주기를 원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 그들을 보면 내 목표는 100% 달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이런 반응이 크게 나쁠 것도 없는 게 영화만 확실히 재미있다면 기대감이 없는 만큼 더 좋은 반응을 만들게 된다는 겁니다.”
반면 최종인 의장은 우려의 뜻을 보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당장은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이유가 뭐지요?”
“회장님이 원하시는 거대 프로젝트인 리벤져를 위해서는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자금 문제가 있어서 저희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는 원래 투자받아서 제작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게 여의치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가 짚이는 바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요즘 미국 금융업계의 상황이 많이 안 좋기는 했었지요.”
아직 미국 금융계를 대혼란에 빠트리는 대형 사건이 터지기 전 이기는 하다. 그러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인해서 금융계의 자금이 슬슬 얼어붙는 중이었다.
투자할 자금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과 같은 때에 바벨 같은 경험이 적은 기업이 투자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때에 투자를 받으려면 투자사들이 혹할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당장은 저희가 보여줄 패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두 편 정도는 제작할 여유가 있지요?”
“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종인 의장이야 우리의 영화가 얼마나 반응을 이끌어낼지 모르니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VIP 시사회만 끝나면 확실하게 반응이 올 테니까 걱정할 게 전혀 없는 문제다.
‘이건 뭐 따로 내가 뭘 할 필요도 없지. 알아서 반응이 올 테니까.’
축배를 들 시간이 멀지 않았다.
***
뉴욕 ABC 센트럴 영화관.
이곳에서 라이언 맨의 개봉에 앞서 VIP시사회가 오늘 진행 된다. 세계 어디를 가나 기자들은 특별한 기삿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마냥 이곳저곳을 들쑤시기 마련이다.
사진 기자들은 물론이고 여러 방송사의 VJ들 역시 뭐 하나라도 더 건져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혹시라도 스타를 눈에 담을 수 있을까 기웃댄다. 그 바람에 행사장을 통제하는 경호원들이 여기저기서 고생스런 움직임을 보였다.
극장의 앞에 위치한 포토월.
그 근처에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이곳에 방문할 스타들을 보기 위한 인파와 그들이 내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본래 이런 행사가 열릴 때는 들리는 함성만으로도 어느 수준의 배우가 등장했느냐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테렌스다. 극 중에서 라이언 맨의 친구 대령 역할을 맡은 배우였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썩 대단치 않았다. 이 시기에 한창 주가를 올리는 배우이기는 했으나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흑인 남성 배우였기에 대단한 함성은 없었다.
한편.
[우와아! 와아아!]
앞선 배우와 비교해서 꽤 함성이 커졌다.
영화의 악역을 담당하는 제크 브리기스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함성의 끝판왕은 바로 여주인공의 등장 때 이루어졌다.
[꺄아악!]
[와아아아아!]
폭탄 같은 아우성이었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고 팬들은 어떻게든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여주인공이 포토월을 지나 인터뷰까지 끝마치고 지나간 그때, 우리의 주인공인 알버트가 아내 사라와 함께 행사장에 도착했다.
[······.]
마법 같았다.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환호성이 사라졌다.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주인공인데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미움 받고 있나 보네.’
그럴만한 게 알버트는 마약 스캔들로 가장 마지막에 끌려갔던 시기가 미국인들에게 크게 사랑받고 있던 드라마 촬영 중이었었다. 그뿐이랴, 그의 갑작스러운 스캔들로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이어져야 했을 여주인공은 결국 드라마의 끝까지 결혼을 못 하게 되어버렸다.
이러니 해당 드라마로 알버트의 팬이 되었던 사람들은 더욱 극렬한 안티로 변하고 말았다. 애정만큼 원망의 크기가 더해진 팬들의 반응은 이렇듯 싸늘했다.
‘나하고는 정말 맞지 않는 직업이야. 저런 시선 속에서도 웃다니.’’
조금 전과 후의 온도차가 극심하다.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얼굴이 굳어질 법도 한데 알버트는 그 부류가 아니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레드카펫을 지나 포토월에 서서 몇 장 되지도 않는 사진을 촬영했고 사소한 질문 하나하나에 전부 대답을 해주었
다.
친분은 물론 애착마저 가진 한명의 팬으로서 나는 숙연함마저 느꼈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어.’
장담한다. 이 시사회만 지나면 그를 외면한 기자들이 전부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몇 안 되는 알버트를 향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영화로 떠나다’의 찰리입니다. 마약 중독치료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받았던 거로 알고 있는데, 이번 치료 이후로는 마약에 절대 손을 안 대셨습니까?]
[네. 전혀. 조금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골적인 기자의 질문에 지금까지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알버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질문은 대놓고 ‘지금까지야 잘 버텼나 본데, 어차피 넌 또 마약에 손댈 거잖아?’라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직이 직원에게 지시했다.
“지금 질문한 저 기자의 소속이 어딘지 알아 오십시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적대적인 정도가 매우 지나쳤다. 지금 저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하고는 싶었지만, 차마 첫 질문으로 총대를 메고 싶지 않아서 참았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첫 질문 이후로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쓰레기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기자들 막고 알버트에게 굳이 저런 거에 일일이 대답해주지 말고 들어가라고 전하세요.”
“네, 회장님.”
곧 내 오더에 따라 막무가내로 알버트에게 달려들던 기자들이 경호원에 의해서 떠밀려졌다. 그러자 저들이 불쾌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하! 시사회 전에 기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해놓고 좋은 기사가 나가길 바라는 거야?]
[어디 얼마나 잘 뽑아낸 영화인지 지켜보자고!]
[깔만한 구석이 어디 조금이라도 있기만 해봐라! 내가 온 커뮤니티에 도배가 될 정도로 기사를 써댈 테니까!]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인물이 팬들에게도 외면당하고 기자들에게도 타깃으로 잡힌 모습이다. 이를 지켜보던 투자사들과 영화관의 CEO들이 굳어진 표정이 되었다.
내가 저들을 다독였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윤 회장님. 제가 윤 회장님이 투자 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건 꽤 걱정을 하셔야 할 상황입니다.]
투자 은행 담당자들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메릴리치의 담당자가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말을 아는 작품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거듭 강조합니다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들어가셔서 영화를 보시면 제가 왜 이렇게 당당히 말씀드리는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당당하면 걱정과 의심도 일단은 넣어두게 되는 법.
다들 우선은 영화를 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으로 일단 불편한 기색을 잠시 감추고 안내에 따라서 VIP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상영을 마친 후, 분위기는 백팔십도로 전환됐다.
『새로운 슈퍼 히어로의 깔끔한 출발』
『바벨의 슈퍼 히어로에도 해가 떠오른다.』
『알버트 다우니 주니어. 악마의 재능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영웅으로 태어날 것인가? 영웅을 만들어낼 것인가?』
『초 사실적 슈퍼 히어로의 탄생! 창문을 열어 보세요! 라이언 맨이 날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뻔뻔한 자식들. 사람을 약쟁이로 몰아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세를 바꾸네.”
라이언 맨의 언론 보도를 위한 초청 시사회가 끝난 후, 시사회 평이 쏟아져 나온다. 평가의 93%가 칭찬일색이었으며 평작 혹은 혹평을 모두 합친 것이 7%정도였다.
그 7%의 지적 중에는 ‘스토리가 엉성하다’, ‘악역은 그냥 별다른 이야기 없이 악역에 불과했다’, ‘액션 영화임에도 액션이 볼 것 없다’등의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꿈속 미래의 라이언 맨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받은 내용이라서 내가 굳이 손대지 않은 부분이다.
‘처음부터 그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지.’
나도 이런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알고 있는 단점들을 전부 보완해서 아주 완벽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와 같은 고민을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단점 점들을 다 보완하고 나니 스토리가 너무나도 재미없고 지루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라이언 맨 1편은 처음부터 라이언 맨이라는 슈퍼 히어로가 세상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앞으로 나올 거대한 스토리를 위해 라이언 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지. 그런데 여기에 악당의 이야기를 담고, 액션을 위한 것들을 담으면 초점이
흔들려.’
결국, 다른 것들을 보완하느라 정작 중요한 라이언 맨이라는 캐릭터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전부 없던 것으로 하고 원점으로 돌렸다.
“그래서 이런 혹평은 그냥 당연하게 나올 줄 알았지.”
어차피 93%가 호평이다. 굳이 얼마 되지도 않는 혹평에 감정 소모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한 대박의 조짐이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반응이 오고 있습니다. 시사회에 참여했던 투자은행에서 너나 할 거 없이 다음 영화는 언제 할 것이고 투자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종인 의장의 말에는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영화 한 편. 단 한 번의 시사회였음에도 우리가 먼저 투자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은행에서 먼저 투자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투자만이 아닙니다. 극장 쪽에서도 이제 곧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습니다.”
이게 중요한 거다.
투자야 정 안 되면 사내 자금으로 어떻게든 끌어내면 영화를 만들거나 제작을 조금 천천히 하면 된다. 그러나 극장의 개봉관을 더 확보하지 못하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우선 ABC에서 개봉관을 300개 더 추가해주겠답니다.”
“이건 끝난 게임이군요.”
ABC는 미국의 최대 극장 체인이다. 이 회사는 미국에만 600개 이상의 극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극장들의 스크린을 합치면 무려 6,000개가 넘는다. ABC에서 300개를 추가한다면 다른 극장들도 이 선택을 뒤따라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잘 됐네요.”
잘하면, 첫날 개봉관의 숫자가 3.000개까지는 무리 없이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집 떠나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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