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82화 (382/577)

< 집 떠나와 >

*

패션과 청결함은 독립될 수 있다. 이를 알버트가 잘 보여주었다.

알버트는 참으로 끔찍한 패션 센스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의 집은 엉망진창인 옷과는 달리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특히나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목장 예정지와 발코니의 사이에 위치한 바비큐 파티장이다.

‘미국 개인 주택의 바비큐 파티장이라기보다는 한국 펜션의 바비큐 존 같아.’

교묘하게 잘 어우러져서 친근감이 들었다.

[짜잔~!]

자신의 집으로 초대만 했을 뿐 딱히 다양한 계획은 없었다는 알버트. 그러나 딱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준비했었던 모양이다.

그게 바로 바비큐 파티였다.

[윤 회장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지. 나로서는 첫 도전이자 모험이라고.]

[뭐야? 그건?]

서프라이즈 이벤트라며 오늘의 바비큐를 기대하라는 말을 수십 번이나 했는데 정작 그가 내놓은 것은 지나치게 익숙한 고깃덩어리였다.

[응? 이 고기 몰라? 돼지 뱃살! 한국식 바비큐는 돼지 뱃살이 최고라며?]

그렇다. 그가 내 앞에 꺼낸 고기는 삼겹살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삼겹살은 두 가지 용도다. 한 가지는 유리에게도 유명한 베이컨. 그리고 다른 용도는 라드라는 서양식 동물성 기름을 만들기 위한 용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생각하는 삼겹살의 살코기보다 지방 부분이 훨씬 많다는 의미이며 그걸 미숙한 초보가 왕창 구워버릴 경우에는 처음 겪는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으악! 이거 뭐야!?]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불판에 삼겹살을 올리고 굽던 알버트는 겁먹은 얼굴로 재빨리 불판에서 멀리 떨어졌다.

불판에서는 엄청난 화마가 분노하는 중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거센 불길에 놀란 알버트를 그의 아내, 사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괜찮아?]

[무··· 물론! 괜찮지.]

그러자 알버트는 금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연기를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썩 괜찮아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지방이 진짜 많기는 하네.’

뚝뚝 떨어지는 기름만큼 불이 넘실넘실 거렸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삼겹살까지 준비한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보니 고마우면서도 우스웠다.

[이것도 동양의 신비인가? 한국에서는 이런 걸 바비큐로 해서 먹는단 말이지?]

[그럴 리가 있겠냐! 당연히 아니지. 한국식 삼겹살은 이렇게 지방이 많지 않아.]

[아! 그렇구나.]

역시 배우는 다르다. 대단치도 않은데 리액션이 좋았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 이걸 어쩐다······.’

동양에는 나름대로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들이 꽤나 존재한다. 한국은 주로 불판에 상추를 올려서 불을 잡으며 고기를 굽곤 하는데 알버트의 집에는 삼겹살은 구비했을지언정 상추까지는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이 화력은 상추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고.’

대체재를 찾아야겠다.

[알버트. 집에 얼음 있지?]

[얼음? 있지. 그건 왜?]

[몇 개만 가져 와.]

[알았어!]

재빨리 냉장고에서 꺼내온 얼음을 받아서 불판의 네 귀퉁이에 올렸다.

[얼음을 거기에 왜 올려?]

[구워 먹으려고. 몰랐어? 동양에선 원래 바비큐 먹을 때 얼음도 구워 먹어.]

[오오! 진짜?]

[아니. 가짜.]

아주 잠깐이지만, 동양에서는 얼음도 구워 먹는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던 모양이다.

[그럼 불판에 그걸 왜 올리는데?]

[잠자코 봐봐.]

[조··· 조심해. 그 불. 그거 아주 악독한 놈이야.]

기름을 먹은 불길이 위로 치솟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탓에 아주 소극적으로 변한 알버트는 차마 화로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걱정을 표했다.

그가 그렇게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불판에 자연스럽게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다.

[어? 어!? 뭐야? 왜 불길 안 올라와!?]

[그러라고 얼음을 올리고 하는 거니까.]

[응?]

불판에 얼음을 올리는 방법은 일본식 화로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고기를 구우면서 떨어지는 기름을 불이 먹으면서 갑자기 화력이 세지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게 불이 거세지면 여기 있는 얼음을 만나게 되는 거야. 불이랑 얼음이랑 만나면 어떻게 될까?]

[꺼지려나?]

[맞아. 얼음이 녹으면서 불을 약하게 만드는 거야.]

불이 강할수록 얼음은 빠르게 녹고, 불이 약하면 얼음도 천천히 녹는다. 그렇게 화력 조절이 되는 것이다.

[역시. 동양의 신비는 위대해.]

‘그보다는 네가 과학 시간에 엄청 졸았지 않나 싶은데.’

미국의 교과과정이 어떻게 차이가 날지는 모르지만, 라이언 맨의 주인공과는 달리 그는 썩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건 틀림없어 보였다.

[다 됐어. 먹어 봐.]

LA이다보니 한인마트 같은 곳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은 동네라서 그럴까, 알버트는 김치와 고추장까지 식탁위에 구비를 해두고 있었다. 그런데 왜 상추는 없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먹으면 되는 건가? 오! 맛있어! 고기 진짜 잘 굽는데?]

손님을 초대한 호스트는 테이블에 앉아서 편하게 고기를 먹고 게스트는 화로 앞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 묘한 장면 연출이다.

뭐든 어떠랴. 알버트도 그의 아내 사라도 연신 아주 맛있다는 말을 하면서 삼겹살을 먹고 있는 게 중요하지.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진짜 엄청나게 맛있는지, 그의 수염에 고추장과 돼지 기름이 번들거릴 지경이다.

[알버트.]

[응? 왜?]

[만약에 다음에 또 초대해서 바비큐를 한다면 그냥 소고기를 준비해.]

[아니야. 오늘 동양의 신비도 배웠으니까. 다음에는 진짜 잘할 수 있어. 순서도 잘 외웠거든. 우선 불을 키운다음에 얼음으로 식히는 것!]

[한국인에게 삼겹살이 인기가 많고 맛있는 건 맞는데, 대부분 소고기를 더 맛있어 해.]

솔직히 소는 비싸서 못 먹는 거지 누가 뭐래도 돼지보다는 소가 좋다. 취향의 문제가 존재할 테지만 적어도 나는 그리 믿는다.

[알았어. 그때는 내가 꼭 구워줄게.]

그렇게 식사 마무리까지 내가 구워주는 식의 마무리가 되었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지 삼일 후, 나는 알버트를 초대하며 함께 베벌리 힐스에 속한 벨 에어로 향했다.

[이야~ 우리 회장님은 역시 스케일이 달라도 다르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별장처럼 쓸 거면서 벨 에어에 위치한 저택이라니!]

한국의 강남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또 땅값이 다르듯이 베벌리 힐스도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또 베벌리 힐스 최고의 주택이라 불리는 그레이 멘션이 있는 도심지는 그레이 멘션이 유명할 뿐, 가장 기본에 해당한다.

정말로 비싼 곳은 바로 이곳!

벨 에어처럼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자신의 집에서 캘리포니아 바다를 지켜볼 수 있는 집이었다. 내가 알버트를 데리고 온 곳이기도 하다.

대략 70평 정도의 대지 위에 총 2층의 건물이 올라가 있었고, 약 8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그리고 넓진 않지만, 나름대로 잘 꾸며진 정원이 존재하는 고급 주택이다.

[이런 집은 잘 나가는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들 중에서도 진짜 최고의 스타들이나 구할 수 있을 법한 집인데.]

[마음에 들어?]

[장난해? 세상천지에 이런 집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도 빌 게이트급은 되어야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걸?]

면적만으로 따지면 바비큐 파티를 벌였던 알버트의 집보다 좁았다. 그곳은 허허벌판 같은 농장을 포함하고 있었으니 절반도 안 되는 넓이니까. 그러나 가격은 몇십 배나 더 나간다.

[내가 지난번에 삼겹살 먹으면서 이야기 안 했나? 내 소원 중 하나가. 우리 사라랑 저기 바다가 보이는 이런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그래? 잘 됐네.]

[응?]

[여기 서류에 사인 해.]

알버트가 나를 위해 준비한 삼겹살처럼 나 역시 그에게 종이를 건넸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다.

[뭐라고?]

[여기 서류에 사인하라고. 그럼 바로 그 순간부터 이 저택은 네 것이 되는 거야.]

[아니. 그게 대체 지금 무슨 소리야?]

그냥 문장 자체로 이해하자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소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워낙에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알버트는 한동안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어버버 거리고만 있었다.

[지금이야. 마약 스캔들 때문에 네가 이렇게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지만 너는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될 거야. 이제부터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그런데 그런 보안도 제대로 안 된 동네에서 사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까 사인하고 이사 와.]

[그건······.]

[이런 집에서 사라랑 오붓하게 살 거라며? 서류에 사인하고 앞으로 그렇게 살면 돼.]

[···여기는 네가 살려고 산 집 아니야?]

[아닌데?]

[응?]

얼떨떨해하는 그에게 나는 손가락을 뻗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샀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훑으며 말했다.

[전부 내거라고.]

알버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손가락이 가리킨 범위를 열심히 고개를 휘저으면서 재차 확인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전부를··· 다 산 거라고?]

[그렇지.]

[···오오. 맙소사.]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금융기업들을 말아먹을 정도로 아주 거대한 사건이다.

미국의 서민층 주택은 물론이고 중산층 주택까지 한 방에 개박살이 났고 상류층의 주택의 경우는 아래의 두 계층의 주택과 비교해서 그 피해가 적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비교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덕분에 본래라면 이렇게 많은 매물이 한 번에 나올 일 자체가 없는 벨 에어에 대량의 매물이 올라왔고 나는 그 기회를 아주 잘 잡았다.

[여기에 있는 화원, 수영장, 음악 감상실, 영화관을 전부 자유롭게 이용해도 돼. 어차피 공용으로 사용하려고 구매한 거니까.]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불편함이 생길 수 있는 문제였지만 또 반대로 그 덕분에 더 가까운 관계가 된다. 그래서 일부러 수영장이나 영화관까지 딸린 집을 사줄 수 있었음에도 굳이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구색을 갖추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가 많고 너도 촬영하다 보면 집에 없을 때가 많잖아? 공용으로 사용한다고 쳐도 어차피 둘 다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관리가 쉽지 않을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됐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받아. 내가 제대로 투자해서 실패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인 거 알지?]

[알지.]

[그런 내가 지금 너한테 투자한 거야. 즉, 네가 무조건 성공한다는 이야기와 같지. 그러니 시간 끌지 말고 사인 해.]

결국 애처가인 그는 사라와 전화 통화를 마친 후에야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의 전화를 받고 급히 이곳으로 차를 끌고 온 사라는 내게 연신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알버트가 성공할 거라고 이렇게 확신을 가져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알버트를 믿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녀는 고가의 주택을 주었다는 것에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버트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그가 투자할 가치가 있고 그를 믿어준다는 것에 감격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가치를 존중해준다는 경험은 귀하니까.

‘사실 사라의 집도 부자라던데.’

애초에 베벌리 힐스의 저택이라고 해도, 사라의 능력이면 충분히 사고도 남았다. 그런데도 LA 북부 구석의 동네로 이사한 것은 그저 알버트를 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명한 여성이었다.

[됐고. 빨리빨리 이사하고, 쉴 수 있을 때 많이 쉬고 즐기는 게 좋을 거야.]

[당연하지. 이런 저택이 생겼는데, 더 생각할 게 뭐 있어? 빨리 이사해야지~!]

그게 아니다. 이제 곧 월드 투어를 시작하면 둘이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바빠질 테니 그 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파파라치 없는 생활을 마음껏 즐기는 게 좋다는 소리였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산다는 건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처신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인기일 테지만 나 같은 녀석한테는 스트레스에 불과하니 연예인은 성격에 맞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직종이 분명할 것이다.

< 집 떠나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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