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떠나와 >
142. 집 떠나와
【BES PC방 점유율 19.7%】
【GF 그룹. 전국 PC방을 점령하다】
【게임계의 살아 있는 전설 윤태식 회장. 이번에도 대성공】
【누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망겜이라고 불렀는가?】
우리 게임이 얼마큼 잘나가는지는 통계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PC방 점유율 1위 20.3% LON 온라인, 2위 19.7% BES 온라인, 3위 스타 드래프트 6.1%
‘아직도 3위가 스드라니.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민속놀이다워.’
새로운 게임이 죽어라 나오고 있음에도 저놈의 스드라는 게임은 도무지 순위에서 사라질 생각을 않는다. 하기야, 대한민국 이스포츠 역사상 최대의 병크가 터지기 직전까지 불사조처럼 살아남는 종목이기 때문에 순위에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는 했다.
“원래라면 서든 택티스가 3위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베스가 FPS다 보니 서든 택티스의 이용자들을 많이 끌어왔습니다. 그 탓에 서든 택티스는 순위가 5위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럼 4위는 뭐지요?”
“다이너스티입니다.”
결론인즉, 1위와 2위도 모자라서 4위도 우리의 게임이었다.
“남들이 보면 그냥 혼자 다 해 처먹고 있는 욕심쟁이 같겠군요.”
“에이 뭐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세요.”
“네?”
김강철 실장의 장난기 넘치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의문을 표했다.
“지금 전 세계 최고 매출 게임 TOP5 중에 세 개가 우리 게임입니다. 그 뿐인가요? 중국에서는 다섯 개 중 네 개가 우리 게임이죠.”
나머지 한 개의 게임은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뻔하다.
‘월드 오브 워 드래프트겠지.’
훗날 자본의 논리로 망가지는 게임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난공불락의 인기를 자랑하는 명작이다.
‘너희들 폰 없냐부터였던가.’
게이머로서 잠시 아이스 스톰의 속상해지는 미래를 애도할 즈음, 김강철 실장이 내게 질문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베스는 프로게임단을 안 만드십니까?”
“프로게임단?”
“네, 회장님. LON은 오픈과 동시에 프로게임단을 만드신다고 엄청 공들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베스에도 그 못잖은 공을 들이셨는데 막상 게임단 이야기가 전혀 없으시니 의아해서요. 혹시 생각이 없으신 건가 싶기도 합니다.”
김강철 실장은 초기 LON 온라인을 개발했던 성주환 팀장의 시절부터 전부 지켜봐 온 사람이다. 그만큼 프로게임단이 게임의 수명과 인기에 얼마나 큰 효과를 가지고 있느냐를 잘 알고 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그 때와 다르니, 나름대로 초조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애착을 가지면 시야가 좁아지는건 어쩔 수 없나보네.’
하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는 물음이었다.
“실장님. 지금 BES에 캐릭터가 몇 개입니까?”
“일곱 개 입니다.”
“그렇지요. 고를 수 있는 캐릭터의 숫자가 일곱 개입니다. 그리고 베스는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뤄서 서로 경쟁하는 게임이죠.”
“네······.”
처음 캐릭터가 몇 개냐는 질문을 했을 때, 김강철 실장의 표정에서 깨달음을 느꼈지만 그래도 설명을 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고작 일곱 개의 캐릭터를 가지고 열 명이 플레이해야 합니다. 여기서 전략이 나오면 몇 가지나 나오겠습니까?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들은 매번 같은 경기장에서 플레이합니다. 아주 많은 경기에서 같은 선수들이 출전하죠. 그런데 왜 늘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경기를 볼
까요?”
“같은 장소, 같은 선수라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매 경기가 전부 새롭거든요. 그런데 지금 BES를 프로 경기로 만들면 어떨 거 같습니까?”
이스포츠와 실제 스포츠는 체감에서 오는 차이가 분명히 있다. 실존하지 않는 데이터상의 존재를 이용한 경기는 실제 스포츠에 비해서 역동성이 떨어진다. 그만큼 팬들은 선수들의 직접적인 압박감이나 긴장감을 체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선수 입장에서 스포츠에 비해 공감을 얻기 어려운 종목이다. 이런 이스포츠가 그렇게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현실 스포츠보다 훨씬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이었다.
경기장이라는 공간의 제약이 없는 만큼 다양한 맵이 등장할 수 있고 선수는 고정되지만 그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는 바뀔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이 이스포츠의 매력을 만들어 낸다.
이런 상식적인 지점을 이해하면 고작 일곱 개의 캐릭터만 나온 게임으로 프로게임단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생각 없는 질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크게 시작할 것 없이 작게 시작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작게 시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습니까? 아니면 인력이 없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경기를 내보낼 방송사와 선수와 경기를 주관하는 KPGA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이 프로 종목을 만들 테니 지원하세요.’ 이러면 어쩔 수 없이 ‘네.’ 하고 따라가야 하나요? 이
중에 우리에게 해당 되는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다른 게임사와 달라요. 그들처럼 불안전하게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원할 때, 가장 좋은 때, 한 번에 큰 돈 들여서 아주 화려하게 프로게임단을 창단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시작하면 되는 겁니다.”
원래 국내 이스포츠라는 종목은 한 번 만들어지려면 여러 기업들에게 굽실굽실하면서 광고 하나 넣어달라고 영업하고 그렇게 자금이 마련되면 아마추어든 뭐든 어떻게든 팀이 올 수 있도록 꾸려서 시작하게 되는 게 프로 게임 종목이다.
게다가 무릎 관절이 닳도록 꿇어봤자 한 대회에 받을 수 있는 투자금은 고작 2억 이내에 불과했다. 물론, 2억은 내 기준으로 고작인 수준이지 다른 이들이나 스타트 게임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잘 받은 투자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뭐하랴, 내 마음에는 한없이 부족한데 말이다.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첫 시즌 예산은 300억 정도로 하죠. 프로게임단과 대회는 캐릭터가 열여섯 개가 되면 대대적으로 열겠습니다. 그러니 사력을 다해 열여섯 개의 캐릭터를 찍어내세요. 어때요,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만족이요? 만족이라니요! 회장님. 이런 어마어마한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면서 만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
“그럼 충분한 거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의를 불태우며 김강철 실장이 업무 수행하고자 돌아갔다.
‘쉽지 않지.’
아무리 게임 개발이 빠르다고 하더라도, 신규 캐릭터를 찍어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이유는 밸런스 때문이다. 처음 일곱 개까지야 어떻게든 할 만했지만 이제는 기존 캐릭터를 기준으로 밸런스가 맞춰진 캐릭터를 등장시켜야 한다.
“남은 캐릭터는 아홉 개. 완료까지는 대략 반년은 걸리겠어.”
회사가 개발만 해서 어찌 굴러가랴, 당장 운영도 해야 하고 다른 업데이트는 물론이며 패치도 딱딱 감당해야 한다. 그 와중에 버그도 잡아야 하니 족히 그 정도는 걸리리라.
즉,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반년 후의 정식 오픈이 마케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너무 늦는 것 같은데 정식 오픈을 먼저하고 대회를 개최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정식 오픈과 대회 개최를 전부 반년 후에 몰아서 할까? 근데 이런 고민은 나 말고 그냥 김강철 실장한테 맡겨도 될 것 같은데?’
LON 때야 우리가 게임만 가지고 있던 때니까 이리저리 치이고 했던 거지. 이제는 언제든 게임만 준비 되면 막대한 자본금을 때려 박아서라도 대회를 흥행시킬 준비가 됐다. 그러니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쯤이면 스타트를 잘 끊었으니 나는 손을 떼도 될 것 같은데.”
내가 할 일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다가 깨달음이 번뜩였다.
맞다. 내게는 베스보다 중요하면서도 오직 나만이 할 수 잇는 중요한 안건이 있었다.
‘요즘 너무 열심히 살고 있었어.’
뭔 놈의 회사가 직원들 복지 챙겨준답시고 이리저리 쉴 수 있는 시스템은 다 만들었는데 정작 오너인 나는 쉴 틈이 없다. 필시 내가 한국에 있어서 그런 거다.
“나에게 휴식을 주자.”
당분간 한국을 떠나야 겠다.
*
짙은 선글라스를 쓴 훤칠한 남자가 손을 크게 흔들며 소리쳤다.
[여~! 우리 회장님! 잘 지냈어?]
[알버트!]
내가 미국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가 직접 픽업하겠다고 굳이 공항에서 기다린 거다.
‘아무리 요즘 이미지가 다 망가졌다곤 하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막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게다가 알버트의 집은 뉴욕이 아니었던가?’
머릿속에 여러 의문이 떠돌았지만 어쨌거나 그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인간은 곁에 있는 사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유쾌한 알버트와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아져서 나 역시 즐겁다.
[영화배우가 이렇게 편하게 하고 돌아다녀도 돼?]
[뭐 어때?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데.]
팬들이 들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지도 모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떠든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모자도 없이 고작 선글라스 하나만 쓰고 있을 뿐인데, 그 흔한 파파라치조차 없다.
‘원래 이 정도였나?’
원래의 나는 라이언 맨 이전의 알버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냥 한창 잘 나가던 스타가 마약으로 인해서 나락까지 떨어지고 이후 영화를 통해서 다시 전성기를 되찾았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영화를 찍었고 어떠한 평가를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꿈속 미래의 내가 그런 취미를 가졌을 리 없었으니까. 그래서 요즘 알버트의 과거를 더 많이 알게 됐고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인정받던 연기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냉정한 표현이지만 성공한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라면 괜찮은 구경거리일 텐데.’
군부 독재와 민주화 항쟁 때의 기억 때문인지 한국인은 언론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가진 점들이 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언론은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정부와 재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건 아니다. 기자 역시 노동자고 월급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며 언론사 역시 돈을 벌고자 이전투구를 벌이는 보통의 회사일 뿐이다. 저들이 정의로움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필수이지는 않다.
그래서 국민의 알 권리라는 나팔을 불어대며 당사자 입장에서는 아주 불쾌한 구경거리를 연신 찍어대어 팔아먹을 때가 아주 많다.
[기자가 따라 붙고 그러면 곤란한 거 아냐?]
[나 따위한테 기자는 무슨. 파파라치가 고작이지. 게다가 걔들도 사진 찍고 돈이 돼야 쫓아다니는 거야.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다 끝났어. 이젠 아무런 똥파리도 붙지 않는다고.]
‘맙소사.’
이 주제로 더 이야기 했다가는 반가운 재회가 허접한 신파로 변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다. 다른 주제로 대화를 환기했다.
[그런데 바쁜 거 아니야? 아떻게 여기에 있어? 촬영 다 끝났으면 뉴욕에 있어야 할 텐데?]
[이사 했거든. 나 이제 LA에 살아.]
원래 알버트는 LA에 사무실을 내긴 해도, 거주지는 계속 뉴욕이다. 사실 바벨 필름스가 LA에 있기는 하지만 알버트가 LA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회사가 LA일 뿐 영화 촬영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을 차린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해보려고 해도 내게 제대로 손을 내미는 사람은 단둘 뿐이었어.]
‘다른 한 사람은 아마도 벨 깁슨이겠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니까.’
[그거랑 여기에 이사 온 게 무슨 상관인데?]
[사라가 그러더··· 에이! 그냥. 바벨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다 왜? 이 쩨쩨한 회장아!]
툴툴대는 모습이 흡사 속마음이 들키면 어색해하는 소년 같아 보였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라이언 맨에 투자한 돈이 얼만데 쩨쩨한 회장이라니!]
[돈도 많은 굉장한 부자가 그걸 일일이 따지는 게 쩨쩨하단 증거야!]
[아. 네. 그래서 나 계속 여기 세워두려고?]
[가자! 오늘은 특별히 우리 집으로 널 초대하는 영광스런 기회를 주겠다!]
알버트의 엉뚱한 행동 덕분에 미국에서의 첫날은 알버트가 새로 이사한 그의 LA 자택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차피 딱히 할 일이 있어서 미국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으면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도피하듯이 온 것이기에 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일정이 생긴 셈이
다.
다만, 이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오래간만에 자각했다.
‘진짜 멀어. 이 빌어먹게 넓은 땅덩이 같으니라고.’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거리가 대략 33마일 정도 된다. 한국식으로 약 53㎞다.
‘이게 슈퍼스타들이 많이 사는 베벌리 힐스와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고.’
알버트의 새로운 집은 내가 상상한 슈퍼스타들의 집들과는 꽤 달랐다.
관용적 표현으로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집은 여기까지도 LA가 맞나? 싶은 LA 최북단 국립 공원 근처에 위치한 아주 작은 농장이 있는 개인주택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새집 장만한 신혼부부가 보이는 뿌듯함을 자랑했다. 그러며 괜찮은 정보라며 알려준다.
[너도 이번 기회에 집 한 채 사두는 게 어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요즘 아주 난리도 보통 난리도 아니거든. 우리가 이 집을 고작 90만 달러에 샀어! 대단하지?]
‘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이건 굳이 미국에만 난리 난 건 아니다. 세계 경제가 흔들려도 미국은 크게 타격을 받지 않지만, 미국이 흔들리면 전 세계의 경제가 휘청인다.
미국은 그런 나라다. 심지어 한국은 태생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나라인 만큼 이번 사태로 한국의 기업들까지 빨간 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근데 원래 살던 집은?]
[······.]
[오! 알버트.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정확한 설명이었어.]
표정에서 물씬 드러나는 감정이라니. 완전 망한 얼굴의 표상과도 같았다.
그래. 여기서 싸게 산만큼 거기서도 헐값에 팔고 왔겠지.
[상관없어! 난 여기서 우리 사라랑 말도 키우고! 다른 동물들도 키우면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며 살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라이언 맨을 개봉할 거고. 그 이후에는 이전 집을 팔 때 손해 본 거는 기억도 안 나게 될 거야.]
[그래! 그럴 거야!]
[물론!]
[아아··· 그랬으면 좋겠어······.]
‘아이고.’
이 집도 나쁘지는 않지만, 천재이자 슈퍼 리치인 라이언 맨이 살 집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이 집부터 이사하게 해줘야겠다.
< 집 떠나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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