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79화 (379/577)

< 착착착 >

*

커뮤니티 사이트 순위에서 게임 분야는 게이머스 포럼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어디가 유명할까?

바로 디카 인사이드였다.

이름처럼 디지털카메라를 중심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던 이 커뮤니티가 한국 최대의 사이트로 확장한 계기는 우연함이 겹쳐 있었다.

이른바 짤의 시초가 된 것!

디카 인사이드에는 글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사진을 업로드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었다. 하지만 글은 쓰고 싶은데 올릴 만한 사진이 없는 이들이 많았고 그들은 ‘그냥 아무거나 올리자.’라며 내용이랑 상관없는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훗날 짤방의 시초가 되면서 디카 인사이드는 수많은 폐인의 놀이터로 완성이 되었고 결국 폐인들이 가진 다양한 취미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각 취향에 맞는 갤러리로 나뉘게 된다.

워낙에 다양한 갤러리로 나뉘어진 만큼 인원이 많은 대형 갤러리와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소형 갤러리들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성우 갤러리는 글도 적고 사람도 적은 무인도 급 소수 갤러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그곳이 뜻밖의 방문자와 넘쳐나는 게시글로 요동치는 중이다.

[오늘 무슨 일 있음? 갑자기 글이 왜 이리 많이 올라옴?]

[뭐지? 원래 하루에 한 페이지도 안 올라오고 그랬는데 무슨 일 있었음?]

[GGT에서 새로운 코너 만들었는데, 한진호 성우님 출연하심.]

[한진호 성우님?!?!?! 아니. 그걸 왜 몰랐지?]

[아직 안 끝났어. 지금 방송하는 중이니까 볼 사람 빨리빨리 와.]

성우라는 직업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하위 카테고리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른 직업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보여 지는 것이 없어서 소위 팬이라는 사람들에게도 성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보면 훨씬 갈증을 남기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방송에 출연했다는 것은 갤러리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 지금 GGT에 나오는 성우님. 유명하신 분인가요?

- 와아. 이글아이 목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매일 이글아이 하는 사람인데, 방송에서 봐도 목소리 진짜 멋있으시네.

- 인상은 푸근한데 목소리 카리스마 개쩔어.

- ㅋㅋㅋ 처음엔 동네 슈퍼 아저씨였는데 듣다보니 잘생겨 보인다.

└ 그 동네 슈퍼 어디임?

└ 걍 눈감고 쳐 듣기나 해.

- 여러분! 이글아이를 하실 거면 에임을 잘 잡을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목소리 좋다고 고르고 그러지 마세요!

- ㅇㅈ 너네 명중률 7% 이글아이 본 적 있냐? 같이 해봐. 이건 AI만도 못해.

└ 네가 아직 0%를 못봤구나?

└ 듣기만 해도 혈압이···

└ 듣기x 읽기o

└ 개새꺄.

한진호 성우의 방송 출연. 그것은 비단 디카 갤러리에서만 파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이머스 포럼에서도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즐기는 유저들이 자신이 즐겨하는 캐릭터의 목소리가 방송에 나오는 것에 신기하다는 반응과 함께 꾸준히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이는 성우 갤러리에 신규 유입을 만들어내고 성우 갤러리에서는 다시 게이머스 포

럼으로 넘어오는 순환을 끌어냈다.

- 말 잘하네 ㅋㅋ 성우라는 직업이 이렇게 재미있는 직업이었나?

- 지금 할 거 없으신 분들 GGT 켜보셈. 만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 연기를 하는 게 진짜 신기함.

- 성우라는 직업이 그냥 단순히 더빙이나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력이 상당해야 하는 거였네요.

- 목소리로만 연기할 뿐. 여기도 분명한 연기자입니다.

- 근데 GF는 뭐하는 기업인가요? 다른 방송사들은 유명 연예인 데려와서도 관짝에 집어넣는데 여긴 성우를 데리고도 흥하네?

- 아는 사람이 GGT에서 일하는데 이 코너를 윤태식 회장님이 지목해서 만든 거라고 함.

- 캬~ 회장님이 지목한 코너면 성공 보장이네.

- 이 방송 볼 마음 없었는데 회장님이 지목했다니까 보고 싶어짐. 괜히 갑자기 꿀잼 느낌?

└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으면 후덜덜 하겄다 @@;;

└ 회장님 게임 한판 해줘염

└ 이건 못하겠지. 못해야 해. 못할 거야. 그래! 못하는 거다!

└ 여기 병신 추가~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덕분에 처음에는 ‘시키니까 한다’는 감정이 아주 조금은 보였던 김선일 국장역시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한참 동시 접속자 수가 얼마만큼 늘었고 기대 수익과 성우 7명과의 계약에 대해 보고받았다.

희소식은 또 있었다.

요즘 PC방 게임 점유율을 보자면 25.5%로 LON이 여전히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18.4%로 LON을 바짝 쫓고 있던 서든 택티스가 요 며칠 새 9.61%로 급격하게 쪼그라들면서 그 자리에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가 13.3%로 자리잡았다.

동시접속자는 무려 15만!

그야말로 게임 업계에서는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런데 딱 하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BES가 뭐야. 하필이면 BES냐고.’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길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니셜을 따서 줄인 게 BES인데 이건 딱 알파벳으로 이렇게 적을 때만 괜찮았다. 그저 어느 한국인도 이걸 ‘비이에스’라고 발음하지 않고 ‘베스’라고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입 큰 물고기 같잖아.’

하지만 이건 내가 날고 방방 뛰어도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혼재 속에서 김선일 사장에게 보고를 받았다.

“오픈 베타에 참여한 일곱 명의 성우 모두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만, 메인 프로는 이들을 전부 활용한 이후에 개편할 예정입니다. 고정 멤버를 만드는 시점은 게임의 흥행에 주목하며 시기를 조율하겠습니다.”

뒤이어서 성우들과의 계약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즈음, 내가 툭 던지듯이 지시했다.

“그냥 성우 기획사를 하나 만듭시다.”

“네?”

성우들이 연예인의 한 카테고리라고는 하지만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이들은 기획사가 없다. 공채로 방송사에 소속된 상태로 3년 정도 일하고 나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데 마땅한 소속사 없이 그냥 활동만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직종이 코미디언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 역시 성우와 비슷하게 일을 해왔는데 이들을 케어할 수 있는 단체가 없다 보니 그만큼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회장님. 만든다 해도 협회에서 압력을 가할 겁니다. 성우들 역시 기획사를 만들고자 여러 번 시도 했지만, 그때마다 일할 수 없게 되어서 결국 포기하게 되었었고요.”

“성우 협회 말입니까?”

“네.”

“그걸 왜 신경 쓰지요?”

“네?”

일거리라는 돈줄을 움켜쥐고 압박을 가하는 행위는 과거의 생태계에서만 가능한 치졸한 수에 지나지 않는다. 바야흐로 지금은 21세기이며 다른 패러다임이 펼쳐지는 세계다. 그리고 GF는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다.

“일이 없다? 앞으로 넷플렉스에서 쏟아질 외화가 몇 편이나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마이코닉스에서 만든 영화가 몇 편이나 개봉될 거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우리는 성우들을 얼마나 필요로 할까요?”

“···아!”

일거리가 없다?

지금은 아니지만 장차 GF의 콘텐츠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를 웃돌만큼이 된다. 자연스레 성우가 필요하고 고작 대한민국의 성우 단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기획사를 만드는 편이 나은 이유다.

“또한, 우리는 바벨에 고정 목소리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성우들이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도록 확실하게 묶어두십시오.”

실력 있는 성우라면 얼마를 원하든 주면 된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 벌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목소리만 내어주면 된다.

“네, 회장님.”

그렇게 한 계단을 잘 밟고 올라섰다. 이제 다음 스텝을 내디딜 차례다.

‘이번 화제를 국내에서 잘 활용했지. 그 뜻은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같은 방식을 써도 된다는 뜻이야.’

일찍이 내가 구상했던 마케팅의 기본 순서는 이랬었다.

첫째, 라이언 맨의 인지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무료로 푼다.

둘째,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통해 라이언 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캐릭터가 친숙해 지도록 유도한다.

반면에 지금은 애니메이션 이전에 게임부터 주목 받았다.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이 역시도 바람직한 흐름이다.

‘라이언 맨 애니메이션은 5부작 중 2편까지 완료했고 영어,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까지 준비됐어. 반면에 게임은 고작 한국어 버전이 전부야.’

최고의 효율을 보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까?

‘일단 한국판만 먼저 공개하는 방법?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네 개 버전을 전부 공개한 다음에 게임을 공개하는 방법?’

고민하다가 나는 김강철 실장과 최종인 대표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강철 실장님은 이 둘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면 어느 쪽을 고르시겠습니까?”

“저라면 일단 지금 이대로 애니메이션을 먼저 공개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목표가 인지도 확장이잖습니까? 게다가 어차피 무료로 공개하는 애니메이션이고요.”

“게임이 인기 있어지면 나중에라도 애니메이션을 찾아서 볼 테니 우선은 밑바탕이 되는 자료가 널리 퍼져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곧 게임의 스토리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있고 일부는 시네마틱 트레일러와 같은 인상도 줍니다. 그러니 게임의 흥행이 지속한다면 충분히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타당한 이야기였다.

다음으로 최종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였다.

타이밍 좋게 벨 소리가 울리더니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회장님. 최종인입니다. 원래 애니메이션이랑 함께 나가려고 했던 게임이 출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드렸습니다.

딱히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으나 마이코닉스의 성우들이 GF에서 출시하는 게임의 영미 판에서도 성우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최종인 대표의 귀에도 이야기가 들어갔을 법했다.

게다가 지금의 그는 임시이기는 해도 바벨을 맡고 있었다. 그러니 라이언 맨의 성공과 실패가 자신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주리라 보고 더욱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마침 잘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애니메이션과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었거든요.”

나는 김강철 실장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그에게 던져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대답했다.

- 저는 라이언 맨 애니메이션의 1편을 지금 공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풀어서 좋을 게 있습니까?”

- 현재 라이언 맨 영화의 후 작업이 본격적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CG가 많은 영화이니만큼 후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는 있지만, 그래도 1년 안에는 개봉할 예정입니다.

“오! 좋은 소식이네요.”

- 총 다섯 편의 애니메이션을 지금부터 2개월 단위로 공개하면 적당히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서 모두 공개된 상태로 팬들이 영화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우 타당한 이야기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라이언 맨은 1편부터 공개하고 이외의 국가들에도 공개할 수 있도록 빠르게 준비해 주십시오. 특히, 중국은 꼭 제작하셔야 합니다.”

- 중국에요?! 그곳에 영상을 보내라는 말씀이십니까?

같은 극동아시아라서 그런 게 아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는 나라는 대부분 비슷한 발전 순서를 보인다. 그렇기에 현재 시점으로는 후발주자인 중국이 과거의 한국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물론, 땅덩이로 보나 인구와 천연자원의 양 등등 비교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선택적이면서도 집약적인 선발전 후 분배의 발전계획을 실행 중인 건 매한가지였다. 그 탓에 한국의 지역 간 불균형과 부의 독점 문제가 중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는 짝퉁의 이미지 역시도 같았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가 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짝퉁의 나라였다.

상당수의 정신 나간 한국 사업가들이 대놓고 ‘우리나라는 짝퉁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짝퉁이라도 믿고 맡겨도 될 만큼의 퀄리티를 자랑합니다.’라는 마케팅을 버젓이 해버린 결과, 이미지가 아주 빠르게 자리 잡고 만 것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씻어낸 상태다. 그리고 후발주자인 중국이 지금 고스란히 그 칭호를 물려받았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국의 이미지는 최악이야. 지저분하고 짝퉁이 판치는 나라에 불과해.’

최종인 대표가 ‘중국에요?!’라고 반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들만 아는 목소리 큰 이기적인 아시아인! 대국이라면서 삥만 뜯는 폭력배! 세상의 모든 상품은 중국을 거치는 순간 그곳에서 짝퉁이 생겨난다!

대한민국의 불법복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불법복제를 자랑하는 나라이자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업가들이 부지기수인 국가가 중국이다.

즉, 중국에 라이언 맨 디지털 영상을 보내면 불법복제로 대륙 전체에 공짜로 뿌리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소리였다.

‘게다가 아직은 영화 시장이 무지막지하게 크거나 그런 것도 아니니까.’

최종인 대표로서는 황당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모른다. 중국의 성장세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고작 2년 만에 중국의 영화시장은 전 세계가 긴장해야할 만큼 거대해진다. 그러니 그때 가서 뭘 하려면 늦으니 지금부터 미리미리 우리 영화에 익숙해지도록 씨

앗을 잘 뿌려둬야 했다.

“중국 게임 시장이 엄청 커진 거 아시죠?”

- 네. 알고 있습니다.

“영화 시장도 그만큼 커질 겁니다. 그러니 일단 준비해서 보내세요. 게다가 중국은 영웅물을 아주 좋아하는 국가입니다. 바벨의 영화는 뭘 가져다줘도 대박이 보장된 셈이지요.

- 알겠습니다.

< 착착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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