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착착 >
배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내게 다른 인물을 알려주었다.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내가 볼 때 여론 생성 마케팅은 김정규 사장이 적격이라고 봐.”
“왜?”
“우리가 뭐 이용자처럼 보이는 계정을 따로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이제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1렙 흰딱으로 글을 올리면 누가 봐도 직접 조작하는 거라고 의심부터 할 테고.”
녀석은 시선을 모니터에 둔 채 내게 말했다.
“서버 데이터를 조작해서 20레벨, 30레벨의 계정을 만들어야 그나마 감출 수 있는데, 그래 버리면 진짜로 날조에다가 사기가 돼. 하지만 정규를 부르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의도치 않은 듯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양심을 콕콕 찔렀다.
“어떻게?”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걔를 GF 서비스 사장으로 보낸 거야? 야, 정규가 예전부터 게이머스 포럼 죽돌이 중 하나였잖아. 걔가 인천에서 사무실 운영할 때부터 게이머스 포럼의 부계정만 여섯 개였어.”
김정규 사장의 호칭이 어느새 ‘걔’로 바뀌었다.
하긴, 오랜 시간 같이 일했는데 개인적으로 친분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정규가 초창기부터 게이머스 포럼의 유저들 반응은 기똥차게 알았었잖아? 그게 다 커뮤니티 사이트 마니아라서 그래. 네가 지금 찾는 영향력 있는 이용자로 딱 맞지. 그러니까 김정규 사장의 부계정을 사용하는 게 최고라고 봐.”
아주 가까운 곳에 이번 마케팅 활용으로 적합한 인재가 있었는데,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굿 아이디어야. 그렇게 하자. 김정규 사장한테는 내가 전화해둘게.”
“회장님 체면에 이런 지시를 내리기는 좀 그렇잖아. 그냥 내가 알아서 전화할게.”
“좋았어. 그럼 배추 너만 믿는다!”
그렇게 홍보 전략을 위한 우리의 물밑 작업이 이루어졌다.
*
사이버 여론 생성 작전이라 이름 지은 이번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모든 지적 생명체를 옭아매는 강력한 감정이지.’
특히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은 개인보다 집단을 더욱 신경쓰고 남들 하는 거라면 덩달아서 하고 싶은 욕구역시도 더욱 강한 편이다. 이 특색은 한국인 역시 강했는데 문화적 유대감이 있을 때는 입소문 마케팅은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홍보 없이 출시한 GF의 신작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초라한 시작.】
【GF의 꿍꿍이? 전략적 노림수? 그 결과는 접속자 500명!】
‘멋진 게임이 나왔으니 즐겨보시라!’는 신문기사가 아니었다. 씹기 딱 좋은 소스인 볼품없는 성적을 던져주자 자극적으로 잘 뽑힌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다.
- GF 망함? 지금 신작 게임 홍보할 돈이 없어서 마케팅을 포기한 거?
└ 노노. 지금 중국에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게임이 몇 개인데, GF가 망했겠음?
- 근데 왜 이 모양이래?
- 이거 대충 보니까 망겜의 스멜이 풍김. 그래픽 빻았음 ㅋㅋㅋ
- GF도 그거 아니까 조용히 출시한 듯?
그리고 이때, 정보 없이 주장만 가득한 빈약한 기사를 대신하여 커뮤니티에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 GF의 신작 게임.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 후기 올린다.
- 일단 여기저기서 망겜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그래픽만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거 같음. 근데 막상 해보면 GF에서 허접하게 만든 게 아니라 애초에 이 게임 컨셉이 클래식한 그래픽을 추구하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됨.
- 대충 설명을 보면 바벨의 영웅이랑 악당들 피규어들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 거 같은데···ㅋㅋㅋ 솔직하게 말하면 스파이더 가이랑 헐커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음.
- 근데 잼써.
- 존잼. 개잼. 꿀잼. 허니잼.
- 유연하고 스피디한 게임 진행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전투! 기존의 FPS와 달리 명확한 포지션이 잡혀서 전략성이 강화됨!
└ GF도 이제는 알바 푸나 보다. 이거 너무 알바 냄새 강하게 나는 거 아냐?
└ 윤태식 회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윤 회장님 이제 보니까 글빨이 영 별로시네.
└ 대기업 회장이 뭐 할 일없어서 여기에 글이나 쓰고 있겠냐?
└ 진지충 납셨네. 쟤들이 정말 저 글을 윤태식이 썼다고 생각하고 쓴 거겠음?
알바라는 단어에 움찔하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글이 전부 우리가 올린 것만 있지는 않았다. 시발점이 되었을 뿐, 500명 중에서 충분히 만족한 고객들이 하나씩 긍정적인 소문을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 GF에서 홍보도 안 하고 출시했길래 망겜인줄 알았더니, 그냥 GF에서 자신감이 쩔어서 홍보를 안 한 거였음.
- 믿고 다운받는 GF시다!!!
- 큰일임. LON 온라인 하나로도 감당이 안 되는데, 또 감당 안 되는 게임이 나왔음. 내 성적 어떡?
└ 울 엄마도 이 게임을 싫어합니다.
- 광고나 홍보 하나도 없는 게임인데, 접속자 개 많음. 빠른 대전 시작하면 그냥 20초 안에 픽 잡힌다.
└ ㅁㅊㅁㅊ ㅋㅋㅋㅋ
- GF보면 돈 졸라 쉽게 버는 거 같음. 300억을 들였네, 400억을 들였네. 역대급 투자가 이뤄진 블록버스터네 하는 게임 졸라 많은데 얘네는 허접하게 만들어도 대박이잖음.
└ ㄴㄴㄴ 돈은 안 써도 공돌이도 갈아넣었을 걸?
└ 암튼 싸게 만든 건 맞지. 애니같은 그래픽 봐, 이거. 걍 피지컬로 겜성을 넣은 거지 솔직히 구린 건 구린거임.
- ㅇㅈ 유아틱하긴 함. 그래도 몇백억보다도 얘들은 ‘게임이 재미있으면 장땡이다’라고 말해주는 거 같아서 개쩐닼
└ 개공감. GF 저예산 겜이 백억 게임보다 훨씬 재미있음.
- 그러고 보니까 LON도 개발비 얼마 안 들지 않았나?
└ 게임 개발비 30억 미만일걸?
- 와······ 남들 300억 들일 때 그 10%로 수익은 열배 이상 벌어가네.
└ 졸라 부럽뜨아············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는 글 중에는 오해인 내용도 상당했다.
‘뇌피셜로 마음대로 떠들기는. 방구석 전문가님들아. 30억으로 이런 게임을 무슨 수로 만드냐?’
TF팀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300명 이상의 인력이 붙어서 개발하고 있는 게임이다. 빠르게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개발 비용이 많이 세이브되기는 했으나 30억으로는 어림도 없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오류가 어마어마하게 있을 거라고.’
LON도 마찬가지다. 그게 막상 LON 온라인으로 만들어 낼 때야 돈이 많이 안 들었지만, 그건 꽤 오랜 시간 유즈맵으로 공을 들여서 개발한 게임이다.
그 시간 동안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개발팀을 운영했으니 여기서 매몰된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진실들을 굳이 대중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다.
‘여러분들의 착각이 우리 이미지를 더 뛰어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요. 얼마든지 상상해주세요!’
활활 잘 타오르는 여론의 불길!
덕분에 본래였다면 빨라도 일주일은 걸려야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났을 성과를 확 앞당겼다. 셋째 날이 되었을 때 500명의 설움은 동시접속자가 5,000명을 넘기며 극복하게 됐다.
‘여기에는 게임 판의 파이 전체가 커진 덕분도 있어.’
초창기에 뉴 온라인을 오픈할 때만 해도 한국 내의 온라인 게임 동시접속자는 최대치를 다 합쳐도 60만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클로버 스팅 내부의 게임만 합쳐도 60만을 넘기는 실정이다.
이런 규모의 증가가 없었다면 5,000명이 바벨에 유입된 순간 여타의 게임에서 반대급부로 접속자 감소의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그런데 이런 여파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관련없계 종사자로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전체 과정을 지켜본 배추도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닌 모양이다.
한편, 곁에서 도와주고 지켜본 입장인 배추가 내게 의문을 제기했다.
“군대에서 날벼락이라도 맞았냐? 아니면 원자로 구경이라도 하고 왔어?”
“갑자기 무슨 히어로물 주인공 탄생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이상하잖아.”
“뭐가?”
“너 사업하는 거 보면 진짜 신기해. 분명히 사업계획서 하나도 제대로 쓸 줄 몰랐었잖아. 그런데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이런 게임을 기획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하게 계획해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어.”
기술적인 부분은 재능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심리를 읽어내고 여론을 만들어내는 일에도 능숙한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보이니까.”
“보이다니?”
대수롭지 않은 의혹이었다. 구차하게 둘러칠 필요도 없이 어지간한 일은 장난으로 쉽게 넘길 수 있는 사이가 죽마고우이기도 하다. 나는 변명 따위 하지 않고 진실의 한 토막을 알려주었다.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가 시대에 맞지 않게 일찍 나온 것. 지금의 고객들 수준에 맞춰서 개량할 필요가 있다는 것. 맞춤용의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것. 이 모두를 이미 봤거든. 결과물이라는 답안지를 봤으니 역으로 응용하는 건 쉬운 일이지.”
“어디서 봤는데?”
“바로 빡!”
“빡? 바로? 무슨 뜻이야?”
“넌 그게 안 보이냐? 딱 보면 문제점이랑 결과물이 어렴풋이 보이는 거. 난 너도 나 같은 과인 줄 알았는데? 이 당연한 걸 못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설마 넌 아니지?”
“···우와. 나 이따가 송진호 선수 만나볼 거야.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놀랍도록 공감됐어.”
배추는 입꼬리를 내리고 재수 없는 뭔가를 봤다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다 이내 혀를 내둘렀다.
“윤태식. 너 진짜··· 우와··· 이 미친놈.”
“다짜고짜 왜 욕이냐?”
“너. 이거 성우도 처음부터 다 계획적으로 준비한 거였냐?”
‘응? 성우?’
배추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이건 대체 무슨 말인가?
녀석이 보는 모니터를 보았다. 그곳에는 연예인이라기에는 다소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부족한 보통의 중년과 젊은 남녀들의 사진이 있었다. 차이점은 낯선 외모와는 달리 익숙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이들 곁에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네 덕분에 성우들도 팬덤이 있다는 거 이번에 처음 알았어.”
2016년 이후로 성우들의 팬층이나 관심도가 급격하게 커지긴 하지만, 이미 한참 오래전부터 팬덤이 존재하기는 했다. 말 그대로 관심도가 그리 크지 않았던 덕분에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근데 성우를 계획한 거라는 말은··· 아!’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바벨의 성우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거구나.’
꿈속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다. 폭발적인 게임의 인기와 더불어 ‘해머 나가신다!’ ‘노을이 진다.’ ‘비트를 올려!’ 등의 궁극기 대사가 유행한 현상.
게이머들의 관심은 게임을 넘어서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지?’라는 지점에 이르렀고 월드컵처럼 ‘한국 성우가 멋있어.’ ‘일본 성우가 더 멋있어.’라는 비교까지 했다는 거였다.
‘이게 원래는 아이스 스톰에서 개발한 하이퍼 FPS를 본 딴 거니까 우리 역시도 비슷한 유행을 만들어내는 건가?’
뒤늦은 내 예상은 딱 맞아 떨어졌다.
“사람들이 지금 각 캐릭터 성우가 누구냐, LON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맡았었냐, 이런 거로 엄청 시끄러워.”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빠르네.”
“생각보다 빠르다는 건. 어쨌거나 원래부터 노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맞네?”
“노렸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어. 원래는 바벨보다 LON 온라인에서부터 기대했었는데 그때는 이러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빵 터지네?”
역동성과 몰입의 차이인 걸까 싶다. 아무래도 게임 장르의 영향을 꽤 받긴 하는 것도 같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성우들로 재조명받는 히어로 중에서 라이언 맨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니. 캐릭터도 다른 애들보다 훨씬 강력하게 만들어줬는데, 왜 이래? 목소리랑 대사 빨 인가?’
이 게임을 빨리 출시하려고 노력했던 이유.
이 게임을 어떻게든 높은 인지도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
그 모든 것이 지금 준비 중인 라이언 맨 때문인데 정작 엉뚱한 캐릭터인 헐커와 스파이더 가이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또한, 이 둘을 제외하면 헤드샷이 가능한 이글 아이의 인기가 아주 높았다.
“이러다 이글충 나오는 건 아닌지 몰라.”
“그게 뭔데?”
“평화주의자라서 헤드샷 근처만 명중시키는 슬픈 고집쟁이들이지. 과녁은 단지 놓여있을 뿐, 맞출 수는 없어. 이건 그들에게 유니콘 과도 같아. 상상속의 동물이거든. 승패에도 연연하지 않아서 팀의 패배에도 초월한 사람들이기도 해.”
“···그게 뭔 소리야?”
어쨌거나 성우들이 인기를 얻었을 때의 전략은 정말로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단발성의 이슈로서 날려버리기에는 아쉬웠다.
< 착착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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