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75화 (375/577)

< 착착착 >

141. 착착착

“이럴 수가!”

“맙소사!”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출시 당일.

김강철 실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충격적인 결과물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망했어요. 우린 망했다고요!”

조용히 클로버 스팅에 출시한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반응조차 남기지 못했다.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는 오픈 베타 테스트였음에도 접속자는 고작 500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암담한 숫자였고 성공 가도만을 달려온 GF였기에 더욱 처참한 숫자이기도 했다.

참담한 팀원들의 시선이 김강철 실장에게 향했다.

“저희 게임··· 어떻게 하죠?”

“이건 망했습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말이 이렇게 실감될 줄이야!”

“홍보도 없이 너무 빨리 내놓았습니다.”

“해보면 재미있는데! 하면 재미있는데! 아무도 우리 게임이 있는 줄 모릅니다.”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다.

이를 김강철 실장이 짧게 끊었다.

“다들 조용!”

여타 회사였으면 심폐 소생한답시고 백방으로 움직이고 암담함에 좌불안석이 된 사람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하지만 GF에는 듬직한 구심점이 있었고 김강철 실장은 그의 이름으로 불안감을 잠재웠다.

“다들 속단하지 마. 이거 회장님 지시 사항이었다는 거 몰라? 지금까지 회장님이 직접 지시한 게임 중에 실패한 게임이 단 하나라도 있었어?”

불패의 성공 신화!

그것은 아직 진행형의 칭호였다.

“아닙니다.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

“넵!”

비록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기는 했으나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그저 스타트를 잘못 끊은 대다수의 게임이 회생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현실이 가슴을 짓누를 따름이다.

‘뭔가 복안이 있으시겠지.’

하지만 사실 말만 그리 했을 뿐, 김강철 실장 역시 심장이 쫄깃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극복하더라도 500명이라는 성적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겠어.’

김강철 실장이 GF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개발했던 게임 중 첫날 동시접속자가 1만 명 아래였던 게임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무려 바벨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이 하루 총 접속자 500명에 불과하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안한 속내는 홀로 다스려야 할 뿐, 하급자들에게 비쳐서는 곤란했다. 짐짓 냉정한 척 하는 그의 시선은 윤태식이 있는 회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

질 좋은 원두를 내려서 만든 따뜻한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높은 건물에서 넓은 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품위 있게 마시는 이 순간은 가히 CF의 한 장면과도 같을 것이다.

물론,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듯 나한테 그런 멋짐이 폭발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기분만큼은 낼 수 있다. 꼴랑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런 이미지, 저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기반은 뭘까?

바로 광고의 힘이다. 볼 게 있어야 평소의 나보다도 훨씬 멋진 이미지를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아리따운 연예인을 제아무리 상상해도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이게 현실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상상과 현실의 거리가 멀수록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우리 게임도 그 꼴이 날 수 있었단 말이야. 그것에 비하면 500명은 아주 값싼 예방접종이지.”

초라한 실적에 실망하는 직원들은 아직 이걸 모른다.

물론, 접속자 500명은 부끄러운 결과가 맞다. 하지만 뼈아플 정도는 아니다. 다들 내가 나서면 ‘미다스의 손이 닿았으니 무조건 될 거야!’와 같은 기대를 하는 모양인데, 실상 상품 판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건 홍보다.

괜히 몸값 높은 연예인한테 커피 마시게 하며 광고를 찍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필수인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팅 없이 작품성만으로 성공한다는 건 얼간이의 낭만이며 멍청이의 모자란 짓거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성적은 마땅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감행한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타이밍이 중요했어.’

클로즈 베타를 과감히 포기한 이유는 멀티 온라인 FPS 게임의 특성 때문이다.

솔로로 즐기는 콘솔류가 아니기에 이 장르는 함께 싸워 줄 유저가 없으면 대기 시간에만 한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시점으로 보면 제법 파격적으로 보였을 오픈 베타 테스트부터 진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울러, 광고를 포함한 다양한 홍보를 생략한 것 역시도 전략적인 선택이다.

‘캐주얼은 그 방식으로 가려질 단점이 아니야. 괜스레 홍보만 제대로 때렸다가는 역풍 맞기 십상이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분명히 재미있는 게임이다. 완성도도 좋다. 그러나 여타 게임과 비교하였을 때 때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게임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래픽!

우리 게임은 지금까지 겪은 합리적인 이유로 다운그레이드하며 캐주얼 버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속사정과 뒷이야기는 제작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네 노력 따위는 필요 없어. 결과를 가져와!’라고 하는 야속한 상사처럼 소비자는 오직 결과물을 보고 판단한다.

그리고 지금 시장에 산적한 여러 FPS 게임들의 그래픽은 어떻던가?

‘여타 게임 장르에 비해서 이 분야의 그래픽 경쟁은 정말 치열해.’

2005년 2월.

스페셜 코어라는 게임이 14.9%라는 점유율로 대한민국에서 FPS도 PC방 점유율 1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고 그 이후로 대한민국에는 우후죽순 FPS 게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성공을 맛본 작품은 매우 적다. 이유는 다른 경쟁작들과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팀전을 베이스로 하는 밀리터리 FPS 장르는 자신의 게임을 대변할 수 있는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결국, 게임의 장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해봐야 하는데 성격 급한 한국의 게이머들은 그렇게 여유롭게 게임을 파악해주지 않는다.

한두 판에 확실한 무언가를 찾길 원한다는 거다.

그래서 개발사들은 첫인상을 강렬하게 주기 위한 자구책으로 그래픽을 선택했고 이들의 경쟁은 FPS를 그래픽 싸움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만들고 말았다.

‘레이싱도 그렇고 이쪽 분야가 괜히 미친 그래픽을 보여주는 게 아니야.’

여기에는 장르적인 이점도 있다. 애초에 RPG처럼 만들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고 맵이 굉장히 넓은 것도 아니다. 또한 매 게임 로딩을 하면 된다는 기술적인 유리함도 있었기에 여러모로 그래픽의 부담감이 적다.

그래서 소규모 개발사에서 제작한 게임마저도 엄청난 그래픽으로 무장하고 출시를 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FPS였다.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소비자들에게 캐주얼한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떡하니 내놓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GF는 현재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게임사다. 고 퀄리티를 자랑해왔고 지금까지 입증해 온 기업이다. 그런 GF가 야심 차게 내놓은 게임이 그래픽부터 깨진 느낌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장난감이라는 컨셉으로 그래픽 하향을 꽤 많이 덮었지만, 엄연히 한계는 있는데 GF가 내놓은 신규 게임! 바벨의 영웅들을 직접 플레이해본다! 같은 광고를 때리면 내 수명은 100년이 늘어날 거야.’

욕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비하할 것까지는 없다. 우리 게임은 장담하건대 아주 잘 빠졌다.

게임성? 좋다!

서너 판을 해보면 어떤 똥 멍청이라도 재밌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핵심 포인트는 서너 판이라는 데 있다.

재미있다는 인상을 받는 시점은 3~4번의 플레이.

그래픽 떨어지는 대충 만든 게임이라는 인상을 받는 시점은 달랑 1번의 플레이.

‘즉, 바벨을 흥하게 만들려면 게이머들이 세 판 이상 게임을 하도록 만들어야 해. 이걸 위한 홍보 전략을 펼쳐야 하지.’

이를 위해서 쓸 아주 효과적인 도구가 내게는 있다.

바로 게이머스 포럼과 리뷰어 포럼이다. 좋은 작품은 언제고 입소문이 나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유입된 사람들은 팬층으로 확보되며 활활 타오르게 된다.

“하지만 저리들 흔들리고 있으니 이번에는 불씨는 좀 당겨봐야겠군.”

노심초사중인 직원들을 위해 마케팅에 돌입하기로 했다.

*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여론을 조작하라는 거야?”

“조작이라기보다는 생성이지. 없는 사실을 날조하는 게 아니니까.”

재미없는 게임을 재미있다고 공갈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서너판을 할 만큼의 이유를 알려주기 위한 알림판의 역할이자 입소문이었다.

그런데 배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 녀석이 법 없이도 살 사람에 들어갔었나? 그러면 잘못 부른 건데.’

터럭만큼이라도 양심을 건드렸으면 크게 후회할 일을 한 것이다. 내 딴에는 ‘어차피 좋은 게임인데 이쯤이야 당연히 괜찮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수법을 쓴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 만화에서는 해이해진 정의라는 말을 쓰던데, 나 같은 경우는 타협하는 정의라고 둘러대야 하려나? 이럴 줄 알았으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날 때까지 조금 더 지켜볼 걸 그랬어. 아주 당당하게.’

동요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시간을 단축하려고 무리수를 쓴 것 같았다. 크게 실수했다고 여기는 그때, 배추가 버럭 소리쳤다.

“야! 내가 이래 봬도 고급 인력이야. 그런데 불러놓고 겨우 그걸 시키려고 또 부른 거냐!”

‘화가 난 지점이 다르구나.’

철렁했던 가슴이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배추에게 말했다.

“인마. 너 짬짬이 여기 자주 오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좀 중요하고 거대한 거! 그런 일이라면 또 몰라. 겨우 댓글 다는 일을 시키냐? 자꾸 쪼잔한 일에 부를래?”

“어쩔 수가 없는 걸 어쩌냐. 믿을 친구를 생각하면 딱 너밖에 없던데 말이야.”

“너한테는 믿는 거랑 허드렛일이랑 동급인가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름대로 비밀엄수가 필요한 일인데 배추 말고 비밀을 잘 지켜줄 믿음직한 인물을 나는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이윽고 한참 분노했던 배추의 노기가 한 김 식었다. 녀석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내게 물었다.

“알았어. 아까는 흥분해서 잘 못 들은 거 같으니까 한 번 더 얘기해줘. 그러니까, 사이버··· 뭐라고?”

“사이버 여론 생성. 그리고 이건 들키면 진짜 안 돼.”

재차 주의를 주는 이유는 ‘여론생성’이라는 표현을 했을 뿐, 실제는 온당치 못한 방법이 맞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사이버 여론 조작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에는 정치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일명 댓글알바라는 표현으로 익숙한 마케팅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걸리지 않는다면 굉장히 효율 좋은 수법이지만 발각당하면 흑역사로 거센 폭탄을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 엄수가 필수조건이었다.

‘내로남불은 진짜 조심해야 할 명언이야. 나부터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사이버 여론 조작은 대부분 좋지 않은 예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도 효과적이라는 이유과 ‘나는 완전히 구라를 치는 게 아니야.’라는 자위로 흘려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반성에도 때가 있고 돌이키는 일도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배추를 불렀고 설명해준 데다가 녀석 역시 거부감 없이 듣는 상태였다. 이 판국에 갑자기 정색하고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어. 우리 앞으로는 이러지 말자’라고 하기는 곤란했다.

대신 한 번 더 반성할 뿐이었다.

“중요도는 이해했어.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여기를 봐봐.”

우선 배추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개발자들에게서 받은 플레이 감상문이었다.

“이걸 게이머스 포럼이랑 리뷰어 포럼에 올렸으면 해.”

“설마 게시판에 글 올리는 방법을 몰라서 나를 부려먹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냐?”

“그럼? 관계자가 올린 글이라는 점을 숨기는 거 말고 또 뭐가 있어?”

“당연히 있지. 게이머스 포럼을 보면 가장 많은 이용자가 모이는 시간이랑 각 포럼마다 가장 영향력이 큰 이용자가 접속하는 시간 등등의 정보들이 있을 거잖아.”

“이용자가 많은 시간이야 있지만, 네임드의 접속시간 같은 건 없어.”

“없어? 왜?”

“그게 필요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거든. 게다가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전부 수집하려면 자료가 훨씬 방대해져.”

“그래도 누가 영향력이 강한지 아닌지 정도는 알지?”

배추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몰라. 하지만 김정규 사장은 알 거야.”

생각해보니 맞는 이야기였다. 김정규 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GF서비스는 GF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관리하는 곳이니 배추보다 오히려 실질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오케이. 알았어. 일단은 유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대에 이 글들을 하나씩 업로드 해줘.”

< 착착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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