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러 >
“그런데 골드가 많이 팔리면 나중에 1티어 아이템이 너무 풀려서···”
티키타카로 주고받던 패스가 살짝 어긋났다.
심진호 부장인 눈살을 찌푸렸다.
“정경민이. 장사 하루 이틀 해?”
“네?”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대처하면 되잖아.”
융통성 있게 대처하면 된다.
“아이템이 너무 많이 풀리는 기미가 보여? 그러면 풀지 마.”
“혹시, 상황에 따라서 확률을 조작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정답이야.”
“그건······.”
“왜? 안 돼? 못하겠어?”
확률이라는 건 참 얄궂은 시스템이다. 99%의 성공 확률이라고 해도 당사자가 1%에 걸리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게 된다. 상위 아이템이 안 풀리더라도 게이머는 자신이 99%에 해당했는지 1%에 들어간 건지 모른다.
즉, 게임사가 장난질한 건지 증명할 수 없었다. 정경민 대리가 생각하기에도 확률 조작이 들킬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그리고 한국에는 세계에 감히 말하기 부끄러운 명언이 존재하지 않던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는 세상 모든 범죄의 면죄부와 자기합리화를 이루게 해주는 마법의 언어였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 따위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거니까. 힘을 거머쥐면 문제시된 요소들은 얼마든지 덮어버릴 수 있다.
여기에서 요체는 성공하는 것과 들키지 않는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정경민이.”
“네.”
“우리 잘하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2007년 3월 22일.
정령의 숨결의 약진을 막아서기 위한 푸른 보석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푸른 보석 신규 시스템 숨겨진 던전!
안녕하세요. 푸른 보석입니다. 이번 업데이트로 숨겨진 던전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 되면서 그 세부내역을 안내드립니다.』
- 오! 푸른 보석도 인스턴트 던전 생겼네?
- 이제 여기 들어가려고 사람들 박 터지겠구나.
- 애초에 PVP가 재미있는 게임이 아닌데 이러다가 PVP만 흥해서 망하는 거 아닌가 몰라?
- 어이~ 어이~ 푸른 보석은 초식초식해서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다고~
깜짝 선물과도 같은 공지!
본래 푸른 보석은 인스턴트 던전의 개념이 없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번 유료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 심진호 부장의 요구로 추가되었고 클라이언트의 한계로 태생적인 한계점이 있는 콘텐츠였다.
바로 제한적인 인스턴트 던전이라는 점이다. 내부에 숨겨진 던전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랜덤하게 생겨나는데 이곳에 게이머가 들어가면 그 통로는 사라져 버렸다. 무한하게 생성할 수 없기에 만든 궁여지책의 산물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의외의 장점으로 어필이 되었다.
- 이거 하루에 2번만 입장 가능이네?
- 입장 횟수 제한이라니?
첫째는 희소성이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과금 시스템을 추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입장 횟수 제한은 랜덤 박스에서 입장권 획득하면 추가 입장할 수 있다네요.
- 푸른 보석도 랜덤 박스 생김? 어디 볼까?
- 오오! 쩌··· 쩐다! 푸른 보석은 최고급 아이템도 나와!
- 진짜로?
- 잘 뽑으면 이거로 템 세팅 완전 해결!
플레이해 본 후일담은 아니었다. 유저들이 읽고 게시판에서 대화중인 내용은 공지의 세부 내용이다. 일본의 꼼꼼한 게이머들은 지금 업데이트된 파일을 다운 받으며 홈페이지에서 게임사가 공개한 자료들을 열심히 확인하는 중이었다.
- 다운 받는 동안 랜덤 박스나 좀 열어볼까?
- 와~! 정령의 숨결보다 저렴해!
푸른 보석은 인 게임 내에서가 아니라 홈페이지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는 지금처럼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클라이언트 버전이 낮아서 접속을 못 하는 것일 뿐. 서버 자체는 잘 열려있기에 가능
한 일이기도 하다.
브론즈 등급의 랜덤 박스는 한국 돈으로 개당 300원이다. 이는 정령의 숨결과 비교하자면 10%가 저렴했다.
- 근데 얘들은 확률 공개를 안 해주네.
- 어차피 확률이면 다 거기서 거기겠지. 불필요하니까 생략한 듯.
- 하긴. 운 좋은 게 최고야.
- 맞아. 확률이 얼마든 나올 놈은 나오고 안 나올 놈은 안 나와.
일본의 느린 인터넷의 특성상 패치를 다운받는 시간이 상당했기에, 유저들은 여유롭게 홈페이지를 둘러보면서 랜덤 박스들을 구경했다.
- 얘들은 등급별로 나뉘어져 있네. 차이가 있나?
- 브론즈에서는 1티어가 안 나온데.
- 어? 아! 젠장! 진작 제대로 읽어볼걸! 브론즈만 지금 1,000개 샀는데!
- 원래 이런 건 제일 비싼 거만 사는 거야. 비싼 게 가성비도 좋다고~
안타까운 사연에 이어서 많은 유저가 박스들을 구매하고 개봉하면서 게시판에 더더욱 빠르게 글들이 쌓여갔다.
그리고 오성전자는 기적적인 결과물과 조우했다.
“팀장님! 완전 대박입니다!”
아직 패치 다운로드 때문에 본 서버에는 접속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푸른 보석의 랜덤 박스는 엄청난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봐. 내 말대로 따라오니까. 바로 이렇게 반응 오잖아.”
이미 정령의 숨결에서 랜덤 박스가 괜찮은 이미지로 씨앗을 뿌렸다. 또한, 일본의 게이머는 한국과 달리 이런 시스템이 익숙했다. 그 결과, 아주 자연스럽게 푸른 보석의 랜덤 박스들을 구매했으며 고작 10분 만에 1,000만원이라는 매출을
올렸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게시판을 보니까 아이템 단품 판매를 안 한 것이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GF를 밑거름 삼아서 심진호 부장은 랜덤 박스를 더욱 진화시켰다.
“확률로 아이템을 뽑게 만들면 그 도박성에 중독된 유저들이 돈다발을 들고 찾아와. 그런데 굳이 그걸 왜 따로 팔아?”
“맞습니다. 이렇게 돈다발만 받으면 되는데 말이죠.”
정령의 숨결과 달리 1티어의 아이템이 랜덤 박스 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느린 게임 문화를 가진 일본 유저들에게도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박스의 단가는 개당 5,000원으로 상당히 비싸지만 뽑기만 하면 꽤 오랜 시간을 아이템 걱정 없이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도 빠르면서도 우월해지는데 이는 아주 작은 투자에 불과했다.
*
정령의 숨결을 업데이트하고 정확히 2주째의 일.
‘민첩한 새끼들 같으니.’
푸른 보석이 다시금 치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알맹이만 잘도 가져갔군.”
예상했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고작 2주 만에 빅 데이터를 모으는 등 각종 고생을 해서 개발한 시스템을 후다닥 카피해 버렸다. 직접 긴긴 시간을 머리 싸매면서 연구한 개발자들에게는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르고 맞은 것도 아니고 넋 놓고서 당한 일도 아니다. 어차피 일어날 줄 알았고 사업 중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경우의 수에 불과했다. 그저 확률 공개와 넉넉한 아이템 제공 등의 기준점을 잡았으니 꿈속 미래와는 다른 미래
가 만들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점유율은 어떻습니까?”
어림짐작으로 사업을 할 수는 없다. 직원에게 조사를 시켜서 확인해보았다.
“이번 업데이트 때문에 푸른 보석은 엄청난 트래픽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입소문을 내는 정황과 매출의 급격한 상승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정령의 숨결과 점유율이 벌어진 건 아닙니다.”
엄청난 업데이트인 양 소문을 냈지만, 막상 그 잔치에는 랜덤 박스를 제외하면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없었다.
“애당초 정령의 숨결은 정액제에서 부분 유료화로 과금 체계를 바꾸며 인기 성우들을 기용함으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게임 속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푸른 보석은 인스턴트 던전 시스템이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과금 체계는 게임
내의 구성 외이니 인스턴트 던전의 평가를 봐야 하는데, 이조차도 급작스럽게 추가한 티가 납니다. 수명은 짧을 것으로 봅니다.”
“결과적으로는 버림받을 시스템이군요.”
“네, 회장님.”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여전히 우리가 웃돌고 있으며 이 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뒷맛이 씁쓸했다.
‘이제부터 랜덤 박스의 시대가 열렸구나.’
정령의 숨결에서 만들어진 시스템!
이는 대박을 냈다. 또, 그걸 따라한 푸른 보석이 점유율이 고정된 채로 금전적인 성과를 얻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모방은 모방을 낳는다. 한국은 돈 냄새를 맡으면 너도나도 따라한다. 이는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 앞선 사례를 최대한 따라하면서 발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소비자에게 똑
같은 맛의 치킨집 100개로 완성된다.
게임계에서의 랜덤 박스가 이와 같다.
‘게임 내부의 시스템과 질적 보완보다는 랜덤 박스에 주목하겠지.’
푸른 보석이 버젓하게 보여주었다.
조악한 콘텐츠의 추가라도 상관없다. 랜덤 박스만 있으면 대박을 낼 수 있다!
한국 게임계는 이를 확신하며 자신들도 랜덤 박스만 넣으면 굉장한 성공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꿈속 미래가 알려주듯 대단히 잘 먹히는 전략이었다.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어.”
내 손으로 연 랜덤 박스 천하를 안주 삼아 위로주를 마셔야겠다.
140. 질러
시간은 항상 그런 것 같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크게 다가온다.
어느덧, 4월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게임 업계에는 대대적인 랜덤 박스의 돌입이 이루어졌다. 푸른 보석에서 랜덤 박스를 공개했던 때가 3월이고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두 개의 실적을 보았으니 마땅한 흐름이었다.
더는 자책하지 않는다. 일어날 일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성대현 팀장의 한 가지 보고가 내 심기를 건드렸다.
“오성 전자 측에서 지난 한 달간의 실적을 공개했습니다.”
본래 기업은 자신들의 실적을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린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부분만 거론하면 실적 공개는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남의 자랑을 보고 칭찬하기보다는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 인간 대부분의 심리니까.
그런데도 이를 감수한 채 실적을 공개하는 이유는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실보다는 득이 크다고 판단했을 경우였다.
“푸른 보석은 다른 게임사들이 혹할 만큼의 실적이 있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13페이지 중간에 해당 내용이 있습니다.”
“‘오성 전자는 이번 개편을 통해 한 달간 무려 120억이라는 엄청난 매출을 올렸음을 강조했다.’라··· 잠깐. 120억? 지금 우리와 비교하면 점유율이 어떻습니까?”
“정령의 숨결이 36%, 푸른 보석이 24%입니다.”
“우리 매출이 123억이었지요?”
“네. 공개내용에 따르면 무려 12%의 점유율 차이인데도 매출은 비슷한 실정입니다. 오성전자에서 일부러 부풀려서 말한 것일 수 있어서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성전자쯤 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들 위주로 공개를 하기는 해도, 이런 것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120억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면 그건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즉, 삼분의 일밖에 안 되는 이용자를 통해서 저러한 성과를 얻기는 했다는 뜻!
‘설마라기보다는 역시인가?’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간다.
“게이머스 포럼에 푸른 보석의 페이지도 있지요?”
“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이머스 포럼은 워낙 빠르게 해외에 진출 했다보니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는 압도적인 인지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 탓에 오성전자 측에서도 게임의 홍보를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에게 광고비를 내며 페이지를 개설할 수밖에 없
었다.
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요긴한 무기로 쓰인다.
“게이머스 포럼 게시판에 랜덤 박스와 관련한 내용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내용 등등을 모조리 긁어오세요. 이건 푸른 보석뿐만이 아닙니다. 랜덤 박스 시스템을 도입한 다른 국산 게임들도 포함하시고.”
“일본에 출시된 게임은 1,000개가 넘습니다만, 저희가 페이지를 개설한 게임은 5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우리 사이트에 페이지도 없는 수준이라면 애당초 인지도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네, 회장님.”
부분 유료화 게임이기 때문에 유저의 숫자와 매출액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유저가 많아도 수익성이 부족하면 매출이 떨어지는 것이고, 유저가 적어도 수익성이 높다면 매출이 올라가게 된다.
12%의 차이. 그런데도 매출액이 비슷하다면 두 가지다. 우리 게임이 떨어지는 수익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푸른 보석이 높은 수익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성대현 팀장이 나간 뒤 나는 추측을 더욱 구체화했다.
‘우리 게임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어.’
정령의 숨결은 합리적인 선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저놈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벌인다는 뜻이다.
“관행으로 자리 잡기 전에 잡아야 해.”
기업이 마땅하게 사회적인 책임과 도의를 지리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이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니까. 그렇기에 적절한 방향 지시등을 켜주고 소비자들을 만만하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 질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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