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69화 (369/577)

< 퍼블리싱 >

*

희비가 엇갈렸다. 같은 업계에서 파이를 나눠 먹고 있지 않던가. 이런 판국에서 GF의 성공은 곧 오성의 실패를 의미했다.

‘이렇게까지 순식간에 반전될 줄이야.’

실질적인 지표를 마주한 심진호 부장.

오성전자의 게임 사업부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괜스레 명치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보고를 받고서 게임사업부의 총괄이사인 이충현이 그를 호출한 마당이다.

격려와 더 힘을 내보라는 파이팅의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피하고 싶은 자리라고 마냥 피할 수 있다면 그건 꿈이고 소꿉장난에 불과하리라. 사회의 직장생활에서 그런 관용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심

호흡하고 맷집으로 이겨내고자 정신을 무장할 뿐이었다.

“이사님. 부르셨습니까?”

물었으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겁게 침묵이 어깨를 짓누르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따름이다. 이충현 이사는 잠시간 더 압박한 뒤에 비로소 말했다.

“심 부장.”

“예.”

“자네가 우리 게임 사업부에 얼마나 있었지?”

심진호 부장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3년 됐습니다.”

“3년. 그래. 3년이지.”

이충현 이사는 천천히 3년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심진호 부장에게는 그 숫자가 자신의 남아있는 명줄이고 잘려나갈 직장생활의 책임처럼 들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 이충현 이사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네가 약속했던 그 3년은 놓쳐서는 안 되는 마지막 기회였지.”

LZ에서 게임유통을 포기한 후에 여러 게임사를 떠돌다 마침내 경력직으로 입사한 곳이 바로 오성전자였다. 그때 심진호 부장은 ‘3년 안에 게임계를 뒤흔들어 보이겠습니다.’라

며 장담했었다.

“그 시간이 어느덧 이제 끝을 보고 있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심진호 부장은 등 뒤로 싸늘한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음을 느꼈다.

“우리 오성전자에서의 지원이 부족했나?”

“아닙니다.”

오성 전자는 재계의 거목답게 크게 힘을 실어주었었다. 게임 개발을 위해 연간 100억 이상의 예산을 지원했으며 이번에 성과를 보이자마자 수백억의 예산을 집행해주기까지

했다. LZ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 이런 지원을 감히 부족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자네의 생각보다 팀원들의 역량이 부족했나?”

“아닙니다.”

이번에도 부정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잇는 곳이 오성전자다. 출중한 학벌과 엄선된 인재들이 즐비한 곳이다. 평범한 이를 능력있는 직원으로 키울 필요가 없이 인재들이 수두룩

하게 모이면 이들을 경쟁시키고 선별해서 진짜배기만을 취득하면 그만인 기업이 오성이다.

세계로 본다면 혹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오성의 팀원들이 부족한 수준일 리는 없었다. 그러니 이충현 이사의 물음은 실패 요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핑계 삼을

수 있는 잔가지를 쳐내고 심진호 부장을 벌거벗게 만들어 그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지적하기 위한 전초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모르겠군. 부디 알려주게. 대관절 매번 보고서 속의 숫자가 내려가는 이유가 뭐지?”

지금 하는 모든 말은 핑계로 들릴 것이다. 심진호 부장은 숙였던 고개를 더욱 깊이 수그려 보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있으면 상무 진급자 명단이 나올 시기야. 그런 시기에 내가 이런 일로 부사장실에 불려가서야 되겠나?”

“죄송합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하는군. 달리 준비해둔 말은 없는 건가?”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 또, 죄송! 이봐, 심 부장. 죄송하지만 말고 성과를 가져와. 숫자를 높여오라고!”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말만 하는 그에게 이충현 이사의 목소리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심 부장. 정령의 숨결이랑 우리의 차이가 이번 업데이트 이전에 얼마였어?”

“35%였습니다.”

“그래. 35%야. 점유율의 차이가 무려 35%였다고.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따라잡혔단 말이야. 심 부장의 보고서에는 그 원인이 하나 때문이었다고 했지? 그게 뭐더라?”

“랜덤 박스입니다.”

“그래, 랜덤 박스. 달랑 그거 하나. 그깟 상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했지. 이러니 자네의 지적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나. 무슨 상황이건 총체적으로 보고

각각의 요소를 제대로 분석해서 구체적인 자료를 찾아야지, 딱 하나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 애도 아니고 그게 지금 그 직급에서 나올 소리라고 생각하나?”

‘진짜였는데.’

마음으로는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지금 반론하는 건 긁어 부스럼이고 한 대 맞을 것을 열 대로 늘리는 멍청한 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억울한 심정은 여전했다. 정령의 숨결이 이전과 바뀐 거라고는 딱 세 가지에 불과하다.

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로의 전환.

랜덤박스.

성우.

이 중에서 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겠는가?

‘부분유료화 전환으로 점유율을 빼앗길 수는 있어. 그렇지만 이건 일부이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애초부터 정령의 숨결은 출시도 안 했는데, 기대작으로 타 게임의 유저들

이 이동할 준비를 하던 게임이었으니까.’

정액제 형태의 게임이었으니까 그렇게 누를 수 있었던 거지 처음부터 부분유료화 정책으로 나온 게임이었으면 처음부터 경쟁 자체가 안 됐을 정도다. 상대가 부분 유료화 정

책으로 전환하면 결과적으로 밀리게 될 거라는 건 심진호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지금보다는 한참 늦을 줄 알았었다.

‘공사다망하다는 회장이 움직여버릴 줄은 몰랐고.’

심진호 부장이 윤태식을 원망하는 데는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GF는 운영중인 RPG중에 부분 유료화로 운영하는 게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유료화에 대한 데이터도 한참이나 부족했을 테고 그간의 방침과도 맞지 않았다.

대기업이라는 시스템은 기차나 큰 배와도 같다. 움직이는데 까지 절차와 논의라는 단계가 필요하고 한번 움직이기 시작했으면 관성이 붙어서 쉽사리 방향을 바꾸거나 멈추

지 않는다. 그런데 GF는 대기업이면서 중소기업처럼 신속하고 변화를 추구했다.

심지어 시기상으로는 급조한 게 틀림없는 부분 유료화 시스템조차 완전히 갖췄다. 이는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뜻이며 이런 수단을 부릴 자는 윤태식 회장밖에 없었다.

‘라이트급 대회에 헤비급이 나오면 반칙이잖아. 할리우드에서 투자하고 배우랑 연애나 한다더니 왜 갑자기 등판하는 거냐고.’

자신을 왜 이리도 못살게 구는지 모를 지경이다.

“야! 이 새끼가 지금 내 말을 무시해?!”

생각이 길었나 보다. 대답의 타이밍을 놓친 순간 이충현 이사가 든 보고서가 심진호 부장의 머리에 날아들었다. 머리에 부딪힌 A4용지가 사방에 흩날렸다.

각오했던 폭언과 비난의 시간들. 이는 이충현 이사가 지칠 때까지 이어졌다. 때리는 대로 맞고 있던 그는 대응책을 만들어 오라는 지시에 조심스럽게 이사실의 문을 열고 나

왔다.

딸칵.

문이 완전히 닫히고 한참을 벗어났다. 그제야 이를 악문 심진호 부장의 입에서 부글부글 끓는 욕설이 새어 나왔다.

“그놈의 상무, 상무, 상무!”

직장에서 직급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상급자에게 하급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처는 그저 대부분이 뒷담일 뿐이다.

“그나저나 일단 알겠다고는 했는데······.”

이사에 대한 불만을 짓씹다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심진호 부장 역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닌 결과이며 노력은 그것만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

을 말이다.

자리로 돌아온 그가 손톱을 잘근잘근 물었다.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받았을 때 나오는 습관이다.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흐트러진 셔츠. 찌푸려진 얼굴.

심진호 부장의 심기가 상당히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낀 팀원들의 분위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네 눈에는 내가 괜찮아 보이냐?”

그는 어금니를 꽉 문채로 웃었다.

짧은 시간동안 아주 지옥을 경험하고 온 심진호.

그가 자신의 팀원들에게 금방 험악한 기세를 풍겼다. 이충현 이사의 앞에서는 꼬리 말린 강아지였으나 여기는 그가 호랑이다.

“내 눈치 볼 시간이 있으면 정령의 숨결을 끌어내릴 방법이나 찾아!”

그의 호통소리에 팀원들 전체가 뭐라도 일단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태도로 돌변했다. 뒤이어 자신의 자리에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두통을 억누를 때였다.

“저기, 부장님.”

“뭐야? 왜? 아이디어라도 있어?”

“정령의 숨결과 저희 푸른 보석의 차이는 그저 랜덤박스 한 가지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랜덤박스를 넣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테니 그걸 조사하는 게···”

조심스레 말하는 정경민을 그가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서슬에 반사적으로 팀원이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뭐가 죄송해? 다들 지금부터 바로 정령의 숨결에 접속하도록 한다.”

“네? 지금이요?”

“그럼 지금이지 집에 가서 할까? 급한 건 나밖에 없나보지?”

“아닙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조사해야 해. 알겠지?”

“네!”

개발자든 기획자든 게임계의 직원들은 자사의 게임은 물론이고 타사의 게임도 많이 해야만 한다. 뭐든 경험이 새로움의 밑거름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도 팀원들이 이렇

게 놀라는 건 업무를 위한 자리에서 타사의 게임을 접속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한시가 바쁘다는 의미이리라.

“한국 서버로 접속할까요?”

“뭐?”

“죄송합니다!”

조심스러운 질문에도 눈에서 불을 뿜는 심진호의 모습에 팀원들 전체가 움츠리며 급히 한국 서버로 향했던 커서를 일본 서버로 옮겨서 실행했다.

“일전에 지급받은 카드로 1인당 200만원씩 랜덤 박스를 구매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푸른 보석을 담당하는 심진호의 팀원은 총 25명이다.

일인당 200만원이면 5,000만원이라는 엄청난 거금! 그런 큰돈을 경쟁사에 뿌려야 한다는 건 속이 쓰릴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쩌겠나?

적군의 핵심 콘텐츠인 랜덤 박스가 대략 어떤 수준의 확률로 아이템이 배치되는지, 공개된 확률과 실제 획득률이 비슷한지, 게임 내의 밸런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준

인지, 플레이 타임에 지장은 얼마만큼 주는지, 게이머가 느끼는 감각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얻으려면 속이 쓰린 정도가 아니라 뼈가 아프더라도 일단 그에 맞는 돈을 쓰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런 방법도 오성전자니까 할 수 있어.’

오성이 아니라 다른 기업이었으면 5,000만원은커녕 1인에게 배정된 200만원으로도 벌벌 떨면서 써야 했을 거다.

“대충대충 하지 말고, 랜덤 박스를 개봉할 때마다 정확히 어떤 아이템이 나왔는지 다 기재하도록 해! 나중에 취합해서 전체 확률을 확인하려면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 알

았어?”

“알겠습니다.”

게임머니를 결제하고 그걸로 다시 아이템을 구매하고, 마지막으로 박스는 여는 과정은 생각보다 길다. 특히나 랜덤박스는 1개에 330원이니 200만원이면 6,060개나 되는 박

스를 하나하나 열어봐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각 획득품을 엑셀에 작업해야하니 아무리 빨라도 최소 두 시간은 걸릴 일거리다.

‘나는 다른 요소를 분석해볼까.’

심진호는 팀장답게 랜덤박스를 뜯기보다 정령의 숨결의 과금 요소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어떠한 아이템이 단품을 구매하게 하고 랜덤박스를 구매하게 하는지 여부를 집

중적으로 파헤쳤다.

“망할 놈들 같으니. 이걸 진짜 256색으로 구현했다고?”

오성전자의 내부 스튜디오에서 준비하고 있는 여타의 게임들 중에 256색이 아닌 16비트 컬러로 준비하는 게임들이 즐비했다. 그런데도 고작 256색인 정령의 숨결이 훨씬

풍성한 느낌을 주고 있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이놈들은 마법사들인가? 기술력의 차이가 이정도나 나는 거였어?’

정답은 경험의 차이였다. GF는 액트러스부터 같은 엔진을 사용하고 256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색의 조합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마냥 ‘그렇구나’하고 쉽게 납

득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정령의 숨결은 참 아름다운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푸른 보석과 정말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분석이나 할 겸 들어온 나조차도 이쪽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이니 게이머들이라면 오죽할까.’

상대의 장점이 기대 이상으로 빼어났다. 속이 쓰릴 정도다.

‘혈압 오를라. 그냥 아이템이나 보자.’

여기서 심진호 부장은 두 번째 차이점을 알았다.

게임 내의 아이템을 구매하려면 각 마을에 있는 상점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유료 아이템은 언제 어디서나 상점창을 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언제든 돈을 쓸 수 있도록 하

는 배려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인 게임에서 유료 아이템을 보는 중이었지.’

이건 정말 사소하면서도 대단히 큰 지점이다.

“정대리.”

“네. 부장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둔 채다. 심진호 부장은 정경민 대리의 기척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푸른 보석은 유료 아이템을 어떻게 구매하지?”

“당연히 홈페이지에서 결제하죠.”

“그치?”

“왜 그러십니까?”

그가 정경민 대리에게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켜 보였다.

“지금 엄청 자연스럽게 게임 내에서 결제하고 구매하는 중이잖아. 우리와는 다르지?”

“어? 그러네요?”

푸른 보석은 현금 결제를 하려면 접속을 종료하고 홈페이지에서 아이템을 구매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게임에 접속하면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방식이다. 한편, 정

령의 숨결은 이러한 편의성이 깔끔하게 해결되어 있었다.

“이거 골 때리네. 왜 이런 당연한 걸 생각 못 했을까?”

게임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게임에서 나가야만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정말 황당한 건 이토록 마땅한 것을 자신을 비롯한 25명의 팀원들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도 쉬운데 이걸 아직까지 몰랐었다.

“푸른 보석 쪽에 알아봐. 인게임 내에서 아이템 구매하는 시스템을 못 넣는 건지, 안 넣는 건지를.”

“알겠습니다.”

RPG는 사냥을 하다보면 당연히 소모품을 모두 소모하게 되기 마련이다. 정령은 숨결에서는 이럴 때 유료 이용자들은 사냥터에서 바로 소모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반대로 푸

른 보석은 그게 불가능하다.

‘물론, 굳이 비싼 현금을 주고 구매할 유저들이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이게 누적되면 엄청난 차이가 날 테지.’

차곡차곡 쌓이면 한 달에 족히 1,000만원은 될 것이다. 굳이 더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리부터 부분유료화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디테일한 기발함이 순식간에 나올 리 없어.’

그렇게 캐쉬 아이템 상점을 열어놓고 고민할 즈음, 심진호 부장의 화면으로 커다란 팝업 창 하나가 올라왔다.

『잠시만요! 창을 닫지 말아주세요!

여명의 검 + 여명의 갑옷 + 여명의 방패

총금액 110,000 Elco

19,000 Elco

지금 바로 구매하셔야만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

특가 상품이다. 그것도 엄청난 할인율이 눈을 사로잡았다.

‘11만원짜리가 1만 9천원?!’

이건 사지 않는 게 손해 보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건 사야지!’라고 생각한 그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그리고 결제를 완료한 뒤 3초가 지나고서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반올림하면 2만원이라는 돈이 쑥 빠져나갔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때 살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돈이 아닌 회삿돈을 쓰는 거라는 심리적인 무장해제도 한몫했을 터다. 그러나 이를 고려해도 구렁이 담 넘듯 스멀스멀 넘어와 돈을 가로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타이밍이 미쳤다. 이건 명백하게 노리고 들어온 거야.’

< 퍼블리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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