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66화 (366/577)

< 경쟁 >

“걱정을 하고 말고는 제가 합니다. 우선 상황을 알아야 판단을 하겠지요?”

잠시 머뭇했던 그가 다시금 몸가짐을 바로 한 뒤 대답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2007년 현재 일본 내에서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사는 122개이며 서비스 중인 게임은 263개입니다. 현재 최상위 3개의 게임이 온라인 시

장에서 80%를 점유하고 있으며, 그 중 1위는 푸른 보석입니다.”

“점유율은?”

“4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시장의 40%를 차지했다?”

“네, 회장님.”

“그동안 우리는 뭘 했습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게이머들의 총 점유율 자체를 의미하는 거라서 21%의 우리 게임과 사실상 매출 부분에서는 그렇게 차이가 벌어지진 않습니다.”

정령의 숨결은 정액제로 운영되는 서비스다. 그리고 김유천 사장의 설명으로 보자면 푸른 보석은 부분 유료화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유저는 2배 차이인데 매출액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급히 오느라 자료를 챙기질 못해서···”

“대충은 아실 거 아닙니까?”

“그럼 자세한 내용은 직원에게 지금 보고서를 가져오라하고, 간단하게 설명드릴 수 있는 것 위주로 먼저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유천 사장은 인터폰보다 문자 메시지가 편한지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고는 입을 열었다.

“정령의 숨결은 지난 달 112억의 매출을 올렸고 이 중 65억이 일본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달은 이전보다 10억 정도 감소한 55억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푸른 보석은 어떻습니까?”

“그건 그쪽에서도 내용을 감추고 있어서···”

“대략 예상하는 수치조차도 없나 보군요.”

“아닙니다. 60억에서 70억 사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지금 이게 고작 한 달 사이에 이루어진 거다?”

“그렇습니다.”

돌아가는 판이 아주 우습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걸 준비하고 있습니까?”

“외람되지만, 푸른 보석은 오성전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덕분에 저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하여 이벤

트로 맞대응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돈 지랄로 싸움을 걸었으니 우리도 돈 지랄도 맞서자는 건데.’

아무 생각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렇게 치킨싸움을 해서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식의 퍼주기 싸움은 결국 그릇된 선례를 남긴다. 이긴 후에도 마찬가지

로 계속 퍼주면서 유저들을 유지해야만 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유저들은 이런 것들을 이벤트로 받는 게 당연한 줄 알게 될 테니까.

‘사람은 편하고 자기에게 이로운 일에는 쉽게 적응하거든.’

퍼 주는 건 어렵지 않다. 아무리 상대가 국내 최대 기업이라는 오성 전자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게임이 메인이고 그들은 부가 사업에 불과하다. 오히려 치킨싸움으로 번질 경

우 오성전자가 먼저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상처뿐인 승리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이건 뒷맛도 엉망이야. 어떤 모양새가 될지 뻔해.’

오성전자가 패하자마자 언론에서는 아주 난리를 칠 것이다. 내수차별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가 ‘일본에는 이벤트로 엄청 퍼 주지만, 국내에는 소홀하다.’이딴 소리나 지껄일

터다. 그렇다고 해서 큰 타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쁘고 그룹의 이미지에도 썩 좋지 않았다.

“이벤트는 곤란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게임에서는 계속해서 이탈자들이 생겨날 겁니다. 지금도 빠르게 접속자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야지. 그냥 돈 써서 막는 편한 방법 말고. 진짜 게임사다운 방법으로.’

게임사는 게임사답게 게임 내의 이벤트로 그들과 승부를 겨루는 것이 옳다.

카메라?

물론 비싼 선물이기는 하다. 그러나 결국 게이머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말 것이다. 내가 막 이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때였다.

- 회장님. GF글로벌의 성대현 부장이라고 합니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김유천 사장이 자료를 가져오라 부른 인물인가보다.

『2007년 상반기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의 변화

작성자 : 성대현』

그는 조용히 자료만 김유천 사장에게 넘겨주고 나가려했는데, 자료의 맨 앞 페이지에 있는 이름이 호기심을 불렀다.

“이 자료를 작성하신 분이 본인 맞으십니까?”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자신을 부를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멀뚱히 나를 보았다가 시선이 마주친 뒤에 놀라서는 냉큼 대답했다.

“부장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 저는···”

“회장님. 성대현 부장이 회장님을 마주하는 건 처음인데, 이렇게 준비 없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를 보며 동병상련의 감정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없이 마냥 낙관하고 있는 두 사람이 문제라는 사실을 자기들은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성대현 부장을 두둔하는 김유천 사장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쉬우면 어떻고 어려우면 어떻습니까? 대답을 못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죠. 그냥 생각이 궁금할 뿐입니다.”

혹시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보면 이렇게 엉뚱한 상황에 등장한 인물이 사건을 극복할 실마리를 던져주거나 그러지 않던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일어나겠냐

마는 기대를 해보는 건 괜찮을 성싶다.

잠시 후 성대현 부장이 대답했다.

“정령의 숨결의 점유율은 꾸준히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요?”

앞서 두 사람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다. 좋지도, 싫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큰 감정 표현 없이 가만히 맞장구만 쳐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간단합니다. 일본의 게임 시장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액제에서 부분 유료화로 바뀌었으니까요.”

이건 동의하기가 어렵다. 일본은 애초에 콘솔 문화다. 게임 자체를 돈을 주고 구매해서 즐기는 문화가 익숙한 곳이다. 게다가 부분 유료화 게임 시장의 경우 한국은 2004년

부터 지금까지 4배 이상의 성장을 이루었지만 일본은 별다른 성장이 없었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었다니?

“일본의 게임 시장과 한국의 게임 시장은 그 시작부터 큰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당연히 알고 있다. 일본은 콘솔로 시작해서 게임 문화가 발전했고, 한국은 그런 문화가 자리 잡기 전에 온라인 게임이 게임 시장을 선점했다. 당연히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콘솔이 중심인 일본의 경우는 한국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이 빠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온라인 게임 시장이 더 성장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건 맞아.’’

“이런 일본의 분위기 덕분에 거실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콘솔 게임과 비교하면 온라인 게임은 건전하지 못한 게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휴대

용 게임기 역시 나날이 발전을 해나가고 있는 상황이죠.”

“어차피 콘솔 게임과 온라인 게임은 이용자층이 다르니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게임이라도 결국 게임은 게임입니다. 게이머는 온라인에서 콘솔로, 콘솔에서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다. 지금까지 일본 게임 시장에 대해서 이 정도로 생각을 하고 분석해서 내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계속해보세요.”

“결국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게임. 휴대용처럼 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도 없는 게임. 이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일본에서도 방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될 겁니다.”

‘이를테면 히키코모리의 게임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쳐도 이게 부분유료화나 정액제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온라인 게임의 장점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입니다. 현실에서의 소통을 포기한 사람들이지만, 온라인에서만큼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다수의 게이머가 온

라인 게임 시장을 떠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은 시장이 축소가 된다고 쳐도 일본의 게임 시장 자체가 커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더 축소된다면 결국 사람이 가장 많은 게임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오호라. 이거 봐라?’

성대현 부장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이해됐다.

뭐가 어떻게 되더라도 전체 유저의 숫자는 정액제보다 부분 유료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액제는 반드시 돈을 내야만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부분 유료화는 무과금으로도

어쨌든 즐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계속 숫자가 줄어들다 보면 결국 살아남는 건 부분 유료화만이 살아남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원했던 오성전자와의 해결에 대한 답변은 아니지만, 이 역시도 지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맞지.’

이런 말이 있다.

구관이 명관이다!

하지만 이건 자기 자리를 내놓기 싫어하는 선배들의 합리화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틀렸다. 후발주자들은 항시 있어왔고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능력 있는 후

배 역시 존재한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성취를 이룬 선임자에 비해 성공에 대한 절박함이 달라서다. 그리고 이건 내게도 해당된다.

“오성전자에서 지금 푸른 보석에 전력투구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이라고 생각됩니다. 조만간에 온라인 게임 시장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고 결국에는 살아남은 게임사가 온라

인 시장을 독점하는 셈이 될 겁니다.”

‘다른 사람들만 추궁할 게 아니야. 명백하게 이건 내 실수다.’

나는 부분 유료화가 게임 밸런스를 망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정액제로 가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애당초 정액제의 게임들이 외면받는 건 그것이 정액제라서가 아니라 게임성이 떨어져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명작이라 불리는 수많은 정액제 게임들은 잘만 살아남아 있지

않던가!

하지만 여기에는 이런 맹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 상황의 극복방법을 정령의 숨결의 부분 유료화 정책이라고 보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겪어온 바, 저런 사람은 뭔가 일을 낸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 간에 말이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긍정적인 결과가 될 것 같다.

“김유천 사장님.”

“네, 회장님.”

“성대현 부장이 하는 일은 많습니까?”

“그게··· 꽤 있습니다.”

하긴. 이 정도 능력을 갖췄는데 하는 일이 적으면 김유천 사장에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리라. 그래도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

“성대현 부장은 한동안 제가 좀 빌려야겠습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사람을 더 뽑는 게 좋겠군요. 괜찮겠지요?”

“네. 물론 괜찮습니다.”

원래 회사라는 게 그렇다. 표정은 하나도 안 괜찮지만 입으로는 그렇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임학규 사장님.”

“네.”

“크라비티의 기획팀과 사업팀에서 사람들을 뽑고 우리 회의실로 모일 수 있도록 구성하세요.”

“바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크라비티에서 보내줄 사람들은 다음 주부터 제 사무실 앞 회의실로 출근하도록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액제에서 부분 유료화로 변경한다는 것은 그냥 과금 체계만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정액제는 패키지 게임처럼 그냥 이용권을 판매하고 서버를 유지하면 끝이지만 부분 유

료화는 더욱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것들을 얼마에 팔 것인가?

그렇게 팔았을 때 게임 내의 시장은 어떠한 형태로 흘러갈 것인가?

과연 유저들은 그것들에 흔쾌히 지갑을 열어줄 것인가?

이외에도 다양한 판단이 필요하다.

‘김지애 사장에게서도 사람을 몇 명 빼달라고 해야겠어.’

GF의 게임에서 부분 유료화 정책에 대해 가장 빠삭한 곳은 누가 뭐래도 클로버 스팅이다. MMORPG는 부분 유료화 정책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한 정보력

이 부족하지만, 클로버 스팅에서 서비스하는 FPS나 기타 장르 게임들은 부분 유료화가 대세다.

그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튿날.

아직 새로운 팀의 구성이 만들어지기도 전, 나는 성대현 부장에게 새로이 만들어질 특별팀의 팀장 직함을 주고 새로운 업무를 위해 능력자를 찾아갔다.

‘정보 하면 배추지.’

부분 유료화 정책에서 필수로 필요한 것은 ‘어떤 이벤트가 유저들의 구미를 가장 당기게 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분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데이터를

긁어오는 일이고 이건 내 친구 배추가 최고 권위자다.

“태식··· 회장님?”

녀석은 편하게 나를 불렀다가 옆에 있는 성대현 팀장을 보고 조심스럽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원망스럽게 나를 보았다.

“빅 데이터 만들라면서요? 안 그래도 바쁜데 또 일거리라니···”

“바쁜 거야 잘 압니다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람을 더 뽑으세요.”

“뽑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뽑지!”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녀석이 역정을 냈다. 이런거 보면 참 신기할 뿐이다. 지금 한국에는 청년 실업자가 무려 50만이다. 그런데 막상 회사는 인력난이다.

“부족하면 들어와서 배우면 되잖아요. 가르친다 생각하고···”

키워서 써먹으라는 말은 채 끝내지도 못했다.

“그 가르칠 시간이라도 좀 주시면서 부리시라고요. 여기 눈 밑에 다크 서클 안 보이십니까? 클라이언트 개발자들은 맨날 자택 근무니 뭐니 이러면서 여유 롭게 개발하도록 다

해주면서 왜 우리 서버 쪽 인력은 머슴 부리듯이 그러십니까?”

“미안해요. 이번 일 끝나면 진짜 보너스랑 휴가 제대로 챙겨주겠습니다.”

“진짜죠?”

“진짜고 말고요.”

“보너스 얼마?”

“200%”

“연봉의 200%?”

“야. 너 미쳤냐?”

“회장님?”

배추가 경악한 성대현 팀장을 가리켰다.

“음. 잠깐 흥분했군요.”

우리는 서로 타협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드려야 할 게 뭐라고요?”

여기서 나는 바통을 성대현 팀장에게 넘겼다.

“GF 이용자들의 주요 소비 패턴을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떠한 아이템을 어떠한 금액으로 내놓았을 때 가장 많은 매출이 일어났는가, 어떤 시기에 1인당 매출이 가장

높았는가, 가장 매출액이 높은 금액은 얼마인가, 등등 소비 패턴에 관한 자료들은 전부 필요합니다.”

“이거 진짜 방대하네. 한동안 잠자기는 또 글렀군. 아무튼, 알겠습니다.”

배추는 망할 회장이라며 연신 구시렁대며 자리를 나섰다.

< 경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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