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65화 (365/577)

< 경쟁 >

-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네?”

- 알버트가···

난처해하는 최종인 회장의 말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 태식~! 나야 알버트! 영화 촬영 시작했는데, 안 궁금해? 미국 안 올 거야? 네가 제작하는 첫 영화인데, 관심을 좀 가져야 하는 거 아냐?

유쾌한 만큼이나 말이 많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촬영 현장이었구나.’

알버트는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스타일이다. 예의상 대꾸하다 보면 언제까지 통화가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대충 ‘알았다’는 대답 정도만 하고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아무튼 촬영장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가 보네.’

현장이 즐겁다는 건 문제가 생기지 않고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덕분에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 역시도 한국에서 보

조를 맞춰야겠다.

“우리나라에도 특별한 디즈니랜드가 있어 줄 때가 됐어.”

하나 만들어보자.

139. 경쟁

리얼팜 테마파크를 보고 있자면 딱 이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격세지감이야.”

이곳은 벌써 5년이나 된 게임을 활용해서 구상했던 테마파크다. 초기에는 제법 성공적으로 시작했었으나 지금은 매출이 없다시피 한 곳이기도 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어마어마한 적자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제는 원작 게임조차도 유저들이 엄청나게 줄어든 실정이다. 이토록 게임에도 사람이 없는데 그 게임의 테마파크에서 농장체험을 하겠다고 오는 사람

이 얼마나 있겠는가?

‘유행도 그렇거니와 심지어 너무 외딴곳에 있고 교통도 불편하지.’

그런데도 이곳이 실패한 사업으로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땅값이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까.

“초창기에는 하나라도 놓치면 손해다 싶을 만큼 미래 정보를 활용했었는데. 맹지네, 경매네 하면서 말이야.”

웃음만 나왔다. 막상 크게 성공하니 이런 이익은 자잘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어서다. 본래 내가 리얼팜 테마파크를 만들 때는 부동산 가치 상승 이후 팔아서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어버렸다.

이토록 잊고 지내도 아무런 탈이 없었던 리얼팜 테마파크를 오늘 언급하는 이유는 오늘 부로 간판을 교체하게 되어서다. 땅값이 올랐으니 이익보고 팔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제부터 이곳은 GF 테마파크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기 위한 과정에 들어간다.

두 가지 테마로 나눌 계획이다.

한 쪽에서는 GF의 게임을 테마로 한 곳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넷플렉스의 콘텐츠를 테마로 나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준 게임과 영화의 콘텐츠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테마파크!

이를 지금부터 준비해서 라이언 맨이 개봉할 시기에 함께 오픈할 수 있도록 만들 요량이다.

‘우리도 이제 어디 가서 콘텐츠로 꿀리지 않으니까.’

당장은 무리겠지만 5년 정도 후가 되면 한국의 디즈니랜드가 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콘텐츠가 가지는 힘은 이토록 무궁

무진하다.

그렇게 앞으로의 큰 그림을 스케치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 회장님. 크라비티의 임학규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신호음과 동시에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딱히 스케줄을 잡아둔 것은 없다. 그렇다는 것은 그 외에 보고할 사항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 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임학규 대표의 얼굴.

보아하니 보고할 내용은 썩 긍정적이지 못한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대표님이 이렇게 오실 정도면 오실만 하니까. 오신 거겠죠. 무슨 일입니까?”

“그것이······.”

우물쭈물하는 기색이다. 이럴 때면 내 얼굴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갖게 된다. 직원 친화적이고 더불어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나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무장했다고

자부하는데 왜 저리들 어렵게 여기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말로 하기 어렵다면 제가 혼자 보고서를 읽을까요?”

“아···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서 그가 말했다.

“올 1분기 매출이 역대 가장 바닥을 찍을 것 같습니다.”

‘바닥?’

크라비티에서 신작을 내보내고 일본에서는 새로운 열풍을 일으킨 지 얼마나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 벌써 바닥을 찍는다고 울상을 짓는다니?

이럴만한 일이 생길 이유는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된다.

“정령의 숨결에 무슨 문제라도 발생했습니까?”

“아닙니다.”

‘뭐야? 그럼 왜?’

신작이 호평받고 좋은 평가만큼이나 멋진 성적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매출 하락이 대체 어디서 발생하게 된 거란 말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저희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 게임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밀리는 바람에 그리 되었습니다.”

‘경쟁 게임이라니?’

모르겠다.

꿈속 미래의 지식을 토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형태다보니 가끔씩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 부분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때 곤란함을 느끼곤 한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일본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크라비티와 경쟁할만한 업체가 있었습니까?”

“그것이··· 상대는 일본 기업이 아닙니다. 저희 한국의 오성전자라서요.”

“오성이요?”

엉뚱한 기업이 나왔다.

사실 작금의 오성전자는 우리를 눈엣가시로 여길 것이다.

그들 GF가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면서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한국의 대기업은 신생업체가 돈이 되는 시장을 개척하면 그 이후, 시장을 먹기 위해서 움

직여 왔다.

오성전자 역시 마찬가지!

국내의 게임을 해외에서 팔아먹을 경우 큰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오성전자는 자신들의 유통 경험을 살려서 온라인 게임을 유통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한참 전에 포기하고

버렸던 게임 유통을 다시 시작했다.

문제는 해외에 팔아먹을만한 국내 게임들은 죄다 직접 해외에 유통할 능력이 되는 대형 개발사가 개발했거나 우리가 개발한 것들. 또는, GF가 선점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덩치와 막대한 자금 운용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무기로 사용할 게임을 가지지 못했으니 신통한 성과를 볼 리 만무하다.

‘그런데 여기서 최근에 퍼블리싱한 게임이 있었던가?’

아직도 모르겠다. 다른 게임사도 아니고 오성전자라는 게 도통 이해되질 않는다.

“오성에서 새로 게임을 출시했습니까?”

“신규 게임이 아니라 푸른 보석입니다.”

황당하다. 푸른 보석은 신작이 아닌 수준을 떠나서 2004년 게임이지 않던가.

쟁쟁한 게임이 많던 시기라 국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임이기도 하고 워낙 일본에서 인기를 누렸던 게임이라서 내가 놓친 게임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우리를 밀어낼 정도라는 건 기이한 현상이다. 처음 런칭할 때도 나그네로크를 못 잡았던 게임이 지금 와서 정령의 숨결을 잡아먹는다는 소리니

까.

“오성에서 정말 공격적으로 마케팅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게임 외적인 것이었다.

“신규 유저들을 위한 이벤트로 아이템들을 뿌려서 끌어들이고는 중견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유저들에게는 추첨하여 오성의 디지털카메라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벤트를 연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란다.

“그래봤자. 카메라를 받는 사람은 몇 안 될 거 아닌가요?”

“500명입니다.”

‘이런 미친!’

일본은 한국보다 카메라 시장이 몇 배나 크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카메라에 관심이 많다. 하물며 디지털카메라 정도가 되면 상품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고

작해야 1명에서 많아도 10명 안팎의 당첨 비율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무려 500명라니!

‘머니 싸움이군. 대놓고 우리보고 힘겨루기를 해보자는 거지?’

경제논리가 아닌 자존심 싸움이다.

MP3P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껏 우리가 키운 이 시장을 잡아먹어 보겠다고 덤벼들었는데, 완패.

이후, 게임에서도 꾸준히 완패!

‘자회사에 노조를 만들지 않겠다고 수십배나 되는 비용을 들이면서 사찰까지 하는 이들이 우리나라의 대기업이니까.’

나 같은 자수성가형 부자에게 몇 번 물 먹은 것이 오성전자의 성미를 건드린 것 같았다.

그러나 상대가 오성전자라고 해도 우리가 깨갱하고 접고 들어가 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유가 있어도 그럴 생각은 없어.’

그래.

어디 한 번 누가 포기하나 붙어보자.

치열하게 고민한 뒤 한 사람을 호출했다.

“김유천 사장님 지금 한국에 있지요? 제 방으로 좀 오시라고 전해주세요.”

정령의 숨결을 개발한 회사는 임학규 사장의 크라비티다. 그러나 그것을 해외에 유통하는 회사는 김유천 사장의 GF글로벌이다.

일본에서의 문제라면 임학규 사장하고만 이야기해서 될 것이 아니었기에 우선 김유천 사장을 함께 불렀다.

“임학규 사장님. 오성전자에서 밀어주고 있는 게임이 푸른보석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이번 이벤트를 진행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이벤트를 진행하기 전에도 상당히 인기가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나그네로크를 밀어내고 2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돌아온 답변이 미적지근하다.

“그러니까 점유율이 어떻게 됐냐고요.”

“네. 온라인 게임 시장 점유율이 2위였습니다.”

‘···장난하냐?’

짜증이 나서 한숨이 나왔다.

GF 홀딩스 내부는 주먹구구 형식이었던 시스템을 상당히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크라비티나 넷젠은 여전히 과거의 업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무려 오성에서 자존심 싸움을 걸어오는데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아서야 쓰겠냐고.’

나는 눈을 잠시 감고는 관자놀이를 꾹꾹 지압했다. 언성이 높아져서는 좋지 않으니 마음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임학규 사장님.”

“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면 자세한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15%의 점유율에서 25%로 뛰었습니다.’ 와 같은 식의 대답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게···”

“초창기 나그네로크를 오픈할 때에도 이러셨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안 그러셨던 것 같던데?”

임학규 대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를 보면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앞으로의 발전성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꾸준하게 노력하여 성장해나가고 어떤 이들은 성공에 취하여 안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GF가 국내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경쟁기업이 각축전을 벌이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터줏대감처럼 내부에서 엉덩이 깔고 있는 자세라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도태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전문가는 변화를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문성을 유지하려고 공부하기 때문에 전문가지.’

향후 아이스 스톰에서 만들 스타 드래프트를 보라. 명작이기는 하지만 출시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작품성을 가다듬었다고 여기

기에는 지나치게 오랜 텀이 필요했다.

필시 장인정신 이외에 성공한 이의 나태와 게으름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임학규 대표가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었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는 않았

다.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지.’

부모는 자식이 잘 되라고 기다려주고 북돋아준다. 하지만 사회는 다르다. 마찰 없이 잘 다루는 것을 용인술이라 하고 도태될 때는 웃으면서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만약 내 목

숨 같고 우리 그룹의 기둥 같은 이라면 다른 수를 썼을 테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말할 수 있다.

그가 아니어도 대체재는 많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았다.

“그때는 어떻게든 시장 형성을 하겠다고 다들 직접 발로 뛰던 식이었으니 지금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없었던 GF글로벌이 유통을 다 해주니 자세히 알아

볼 필요도 없었겠지요. 맞습니까?”

“네.”

불 같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부드러운 내 말투에 굳어졌던 임학규 사장의 표정이 풀어진다.

“그럼 어차피 사업적 영역은 GF글로벌이 다 하니까. 크라비티에는 대표 자리가 필요 없겠네요.”

“회··· 회장님?”

“괜찮습니다. 한국에 있는 개발사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게임을 관리하기 힘드니 그걸 대신해주려고 GF글로벌이 존재하는 거니까요.”

임학규 사장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만 숙인다.

해외 서비스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내 서비스도 클로버스팅에서 하고 있고, 게임 개발을 위한 자금에 대한 것은 GF 홀딩스에서 책임지고 있다. 이런 상

황에서 회사의 사장이 하는 역할이 뭘까?

감독하는 거다.

회사의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면 여러 역할을 병행해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발과 사업의 영역 분리가 필요해졌다.

‘그런데 변하지 못했다는 건 영세한 회사만을 운영할 그릇이라는 소리지.’

이는 비단 크라비티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착 가라앉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김유천 사장.

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는 조용히 임학규 사장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김유천 사장님.”

“네.”

“정령의 숨결의 일본 내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고요?”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비한 멘트가 있다는 듯이 장광설을 풀어놓으려 했다.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그의 말을 멈추었다.

< 경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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