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칼 >
‘중국은 사실 무법천지니까. 오죽하면 핵 쓰기 좋은 노트북을 나중에는 대놓고 광고까지 하겠어.’
저작권을 비롯해서 거긴 그냥 혼돈의 도가니다. 한국의 게임 개발자 숫자를 다 합쳐도 아마 중국의 핵 개발자보다 숫자가 적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수많은 핵이 난무하는
곳이다.
중국 내의 퍼블리싱을 텐션에 맡겼으니 망정이지 우리가 직접 했다면 인력 부족으로 큰 문제가 생겨도 진즉에 생겼을 거라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유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 유저의 움직임이 ‘핵을 사용하는 핵쟁이의 움직임이다.’ 이런 것들을 구분해내고 벤을 시킬 수 있도록 하는 쪽을 먼저 추진해봐.”
“그게 가능해? 그 정도면 빅 데이터라기보다는 인공지능 분야··· 어라? 아니, 빅 데이터가 맞나?”
본인이 말하면서도 헷갈리나 보다. 저 방식 때문에 인공지능의 개발이 한참 난항을 겪었었다고 했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인간의 사고력과 알고리즘 방식을 인공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정말 고생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데이터의 방대한 축적을 통한 답안 찾기로 해결했으니 말이다.
‘생명체는 뭔가 다르고 특별해··· 같은 생각이 막아낸 한계라고 봐도 좋고.’
이 역시 꿈속 기억으로 설피 본 인터넷 내용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저 노동자에 불과한 윤태식이 깊은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나도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조건 값에 따라서 대응하는 방식을 만들고 점차 데이터가 쌓이는 만큼 정교해지면 그만이니까. 우선은 그냥 유저 데이터들 중에 특정 데이터만 몇
가지 추려내고 해당 데이터에 부합하는 유저들을 자동으로 벤 시키는 방식이면 돼.”
“아, 그런 거?”
엄청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인공지능을 상상했는지 부담감을 가졌던 배추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핵쟁이들만 잡을 수 있도록 하면 돼?”
“우선 1차로는 그러고 그 다음에는 RPG쪽 오토도 잡아봐.”
GF는 오토가 없는 클린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집요한 존재들이 있고 다 잡았다 생각하면 스리슬적 나타나는 오토들이
골치를 여간 썩게 만드는 게 아니니까.
이건 생각보다 운영진들이 금방 지치게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였다.
“오케이. 그쯤이야 가능해.”
“시간은?”
“2월.”
그렇게 우리는 시대를 한참 앞당긴 잘 드는 칼을 얻었다.
이윽고, 2007년 2월.
LON 온라인에 공지가 올라왔다.
『불법 프로그램 사용 계정에 대한 조치 안내』
안녕하세요. LON 온라인 GM 포푸리입니다.
LON 온라인은 소환사님들의 건전한 게임 환경을 제공하고 불법 프로그램 근절을 위해 운영적 조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게임 내 모든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를 추출하여 확인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조사를 통해 불법 프로그램 사용으로 확인된 계정에 대해서는 영구 이용제한 조치를 실시하였습
니다.
영구 이용 제한 조치된 이용자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00000000
···
xxxxxxxx
LON 온라인은 지속적인 조사와 패치를 통해 비정상 이용자 확인 및 불법 프로그램 차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상적으로 이용해주시는 소환사님들께 안정적인 서비스
를 제공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호기심으로라도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주시기 바라며, 해당 부분 확인 시 1:1 문의를 통해 제보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려 5,000개가 넘는 영구 이용 제한 이용자의 명단으로 쭉 길어진 공지사항.
이는 GF에서 퍼블리싱하는 모든 게임에 동시에 올라왔다.
배추는 정말로 내가 딱 원하는 서버 관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서 온 것이다. 그 결과, 이날 이용정지를 받은 계정의 숫자가 실로 압도적이다. 그뿐이랴, 아직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계정이 10,000개 정도 더 있다.
여기서 절반이 불법프로그램 사용자로 잡힌다면 총 1만 개의 계정인 것이다.
‘양심도 없는 새끼들. 이 좁은 나라에서 뭐가 이렇게 많아?’
아무튼 그 덕분에 게이머스 포럼은 물론이고, 클로버 스팅에 하여간 GF에서 관리하는 모든 게시판은 터져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 내가 왜? 불법프로그램 사용자라는 거야?
- 아니. 돈 낼 거 다 내면서 게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정지를 시키나?
- 와. 증거 있어? 내가 불법 프로그램을 썼다는 증거 있냐고?
- 씨발. 고소할 거야!
분노, 욕설, 비난 등이 버무려져 무수한 글들로 도배가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글들이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GF의 게임들은 갓 게임으로 불리게 될 거다.
대대적인 이용제한!
그것에 놀란 사람들은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없음에도 혹여나 자신이 그 제한 대상이 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게임에 접속을 하고는 문제없이 접속이 되었다는 사
실에 안심을 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일단 게임을 켜면.’
몸소 느낄 것이다.
- 와···! 여기 도배글 때문에 혹시나 나도 정지당한 건 아닐까? 그런 마음에 켰는데··· 우와!
- 쾌적해! 이렇게 쾌적한 게임이었나?
- 공감! LON 온라인에 핵쟁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 맞아. 이래야 실버 구간이지! 그동안 게임 이해도는 딱 브론즈인데, 피지컬만 플레티넘 급인 애들이 자꾸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다니까?
- 미친··· 핵을 쓰고;;; 실버라니;;;
- 핵을 써도 실버······(삼가 조의를 __)
역시나 칼 같은 제재 이후 2시간이 지나자 슬슬 게시판에도 입질이 왔다. 대체적으로 게임을 플레이 해 본 유저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GF의 운영진들은 이때를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LON 온라인 GM 포푸리입니다.
갑작스러운 이용자 제재로 인해 많은 혼란을 느끼셨을 소환사 여러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금일 건전한 게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시행 되었고 그로 인해 정
말로 억울하신 분들이 생겨나셨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자신은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이용제한 대상에 포함되셨다면 아래의 메일로 이의신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데이터를 확인한 후에, 정말 억
울하신 경우만 이용제한을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
다른 상황에 이런 태도였다면 욕을 먹어도 단단히 먹었을 태도였지만, 이번만큼은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찬양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 다른 게임들은 지들 밥줄 날아간다고 불법 이용자들 신고해도 멀쩡히 게임 하던데 GF는 신고를 안 해도 직접 찾아서 정지를 먹이네.
- 역시 국내 최고 게임사는 달라도 다르다.
- 국내 최고라뇨. GF는 세계 최곱니다.
- 윗님아. 국뽕 자제 좀···
- 아. 그놈의 국뽕. 국뽕.
만족스러운 결과다. 이것만 봐도 내가 원한 하수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어때? 괜찮지?”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펴는 배추.
흐뭇한 결과가 아닐 수 없으나 요즘은 저 녀석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려온다.
“여기에 들어간 돈이 200억이 넘어! 그래놓고 뭐가 그리 자랑스럽냐?”
“으악!”
결과가 만족스러운 건 만족스러운 거고, 이건 이거다.
*
2007년 2월.
드디어 라이언 맨의 사전 준비가 끝나고 촬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소품 등을 보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착실하게 잘 준비가 되어 가고는 있습니다.
‘가고는 있다.’
최종인 회장의 뉘앙스에는 거치적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벨의 모든 것은 최종인 바벨 임시 회장에게 보고가 되고 그것은 다시 한 번 내게 보고가 되는 형식이다. 즉, 최종인 회장은 한국에 있는 나에게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사람
인 것이다.
그런 그가 의문을 가진다면 그건 꼭 들어봐야 하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나 보군요.”
- 크게 신경 쓰실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감독은 이 영화를 고작 3개월 만에 촬영 완료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데, 그게 걱정 됩니다.
라이언 맨의 제작비는 9,000만 달러다. 1억 달러에 근접한 비용이며 촬영 일자가 하루만 늘어나도 제작비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 최종인 회장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괜찮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3개월이면 충분히 찍어요.”
한국의 주먹구구식 촬영과 달리 할리우드는 상당히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한국과 비교하면 영화 촬영기간이 짧은 편이다. 특히 라이언 맨과 같은 CG효
과의 비중이 크고 중요한 영화는 촬영자체보다는 촬영 후의 작업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모든 촬영을 캘리포니아에서 진행하는 거로 결정 내려진 부분은 변동된 것 없죠?”
- 그렇습니다.
“그럼 더더욱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예정대로이니 잘 마무리될 겁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무기의 시연 장소이자 라이언 맨의 최초 버전이 탄생하게 되는 장소.
그곳의 영화 속 배경은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촬영하지는 않았다. 실제 촬영 장소는 캘리포니아의 외딴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촬영 기간의 단축과 제작비의 절감이지.’
이번에는 내가 맡아놓고 후원하는 만큼 직접 중동에 가서 촬영하도록 지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패한 작품이라면 모를까, 짱짱하게 성공한 초대박 영화가 아니겠는가. 불
필요하게 바꿀 필요가 없으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하기를 오히려 부추겼다.
‘게다가 비하인드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인기 있는 작품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그런 내용 하나하나를 천천히 풀어내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것들을 들으면서 더더욱 팬심을 가지게 된다.
영화 속 배경인 아프가니스탄이 사실은 캘리포니아였다는 이야기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는 감독의 센스로 포장될 것이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로서 라이언 맨을 지속적으로
꾸며줄 것이다.
“제가 말씀드린 부분도 잘 준비가 되신 거죠?”
-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서 보관 중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시겠습니까?
“있죠. 아주 큰 효과를 얻게 될 겁니다.”
라이언 맨을 꾸미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노림수.
그건 ‘바벨에서 만든 어처구니없는 각본과 이를 직접 수정하며 열정적으로 제작에 참여한 배우들’이라는 이미지다. 이건 꿈속 미래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지만 지금은 나
의 참여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 에피소드는 똑같이 알려질 것이다. 의도적으로 직접 만들어냈으니까.
‘작정하고 하는 거짓 이슈지.’
수화기로 우려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저는 괜히 바벨의 직원들이 능력 없다는 이미지로 굳어질까봐···
나는 그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최종인 회장님. 영화가 영화관에 걸려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 짧으면 2주. 길면 2개월 정도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길면 3개월까지도 갈 수 있겠죠. 그렇다면 다음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관객들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요?”
- 2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겁니다.”
- 네? 그거라니요?
“관객들은 영화관에 영화가 걸려 있는 시간과 비교해서 한참이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다음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즉, 후속작이 영화관에 걸릴 때쯤이면 관객들은 전작을
잊어버린 후가 됩니다.”
속편을 이어가야 하는 영화.
그러나 그 속편이 매년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몇 년이라는 공백기를 거쳐서 나오는 영화.
‘즐길 거리가 많은 세상이야. 뜨거운 이슈도 금방 식어버리는 건 그만큼 다른 보고 즐길 거리들이 많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잊고 또 빠르게 다른 것에 몰두한다. 그런 사람들을 계속해서 팬으로 남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우리의 작품을 붙잡고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떡밥
이 필요하다.
“제작자의 무능력을 욕해도 됩니다. 회사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됩니다. 어차피 관객들의 관심은 영화와 배우에 있지 제작사에 있지 않아요.”
물론, 이건 전부 영화가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다. 영화가 폭삭 망한 상황에서 이런 것이 터지면 그때는 완전 회생불가의 상태가 된다.
‘괜찮아. 이건 애초에 우리가 의도하고 만든 거잖아. 만약···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 만약에라도 라이언 맨이 망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이 거짓 이슈 작전은 폐기해버리면
그만이지.’
당연하겠지만, 영화가 망하는 일은 없다.
라이언 맨의 성공을 위해서 나는 스토리를 내가 알고 있는 영화와 흡사하도록 유도했고 배우들 역시 별다른 변화가 없도록 인도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지난 게임들과 달
리 꿈속의 작품과 90% 수준으로 비슷한 영화가 탄생할 것이다.
‘그 이상일 수도 있고.’
< 단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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