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63화 (363/577)

< 단칼 >

‘아하. 그게 있었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윤태식이 아닌 꿈속 세상에서 살고 있던 윤태식.

그는 그저 인천의 남동공단에서 쇠를 깎는 그냥 공돌이였을 뿐이다. 그냥저냥 게임이나 즐기던 소시민에 불과하다. 그런 윤태식이 빅 데이터를 어떻게 알았을까?

‘넷플렉스 때문이었어.’

넷플렉스는 방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 플랫폼이다. 우리가 인수할 때에도 1만 7천여 개의 콘텐츠를 제공했고, 지금은 훨씬 더 커져서 3만여 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블랙버스터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지만, 처음 접속한 유저의 입장에서는 방대한 도서관에 들어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3만여 가지의 콘텐츠!

이 중에서 이용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직접 찾아내야 한다.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바로 이때 넷플렉스는 빅 데이터를 활용해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콘

텐츠들을 추천해주었고, 그것이 대박이 났다.

‘특히 하우스 오브 더 키드가 대박이었지.’

그들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인 하우스 오브 더 키드는 넷플렉스의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감독, 배우, 장르 등의 다양한 정보들을 한데 묶어서 만들어 낸 작품이다. 넷플렉스에

서 처음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였고 바로 홈런을 친다.

바로 이때 꿈속 미래의 공돌이, 윤태식은 빅 데이터를 알게 됐다.

물론, 생판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아니다. 빅 데이터라는 말 자체는 온갖 매체에서 다뤘기 때문에 그 이전부터 여러모로 들어왔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막연하게 ‘이름 그대로

대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저장 공간이나 서버인가봐.’라는 정도로만 여겼다.

‘인식의 전환점이었어.’

넷플렉스의 최초 오리지널 시리즈의 대성공은 빅 데이터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고 꿈속 윤태식이 의미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배추의 말을 통해서

이를 다시 떠올리고 있으니 정말 스스로 우스울 따름이다.

‘내가 이러니 꿈속 미래에서는 그냥저냥 살았지. 알면서도 써먹지 못하는 정보가 아직도 수두룩하잖아.’

나름 과거보다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자꾸만 나온다.

“넷플렉스가 구축한 걸 가져와서 여기에 맞게 변형하려는 거야?”

“당장 필요하다 싶은 소소한 것들은 그렇게 해서 임시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가지고 크게 키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봐. 넷플렉스가 지금의 데이터를 수집하게 된 그

경험. 그리고 활용하고 있는 모듈이 필요해.”

“모듈?”

“빅 데이터는 이름 그대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고객들의 패턴을 분석하려는 거잖아.”

“그렇지.”

“생각해봐. 고작 5기가도 안 하는 게임을 로딩하는데 3분에서 5분씩 걸려. 그런데 100기가··· 아니, 테라 단위의 데이터를 읽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

“컴퓨터가 엄청 좋아야겠네.”

“물론 슈퍼컴퓨터로 연산하면 모듈이 부족해도 커버는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어지는 배추의 말을 듣다 보니 대충 개념적으로 따라가던 내 머릿속이 점차 아득해져만 갔다. 녀석의 기준으로 간단한 설명이 내 기준으로는 전혀 간단하지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게다가 잘은 몰라도 은근히 배추의 말이 길어지는 낌새가 느껴졌다.

자기 분야를 최대한 어필하려고 계속 말을 하는 게 분명하다. 저러지 않아도 ‘너님 대단해’라고 생각하는데 왜 저러는지 골치가 아플 따름이다.

결국, 말을 중간에 끊었다.

“빅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스톱. 나 컴퓨터 전문가 아니거든? 이건 그냥 보고서로 받자. 어차피 쉽게 설명을 들어도 내가 공부를 해야 할 거 같아.”

세상에는 왜 이토록 배워야 할 게 넘치는지 화가 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게 정말 옳은 말인 것이, 이럴 때면 쓸 일 없는 육체능력 대신 아이큐가 높아졌으면 사업하

는 데 훨씬 도움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오케이. 그냥 허락할 테니까. 나중에 관련 자료나 만들어서 보내줘.”

“그래? 그래도 될까?”

“제발 그래줘라.”

분위기로 보아선 설명에만 한 세월 쏟을 거 같은데 언제 그걸 다 들어주고 앉았나.

이런 건 내가 따로 혼자 공부하는 게 낫다.

‘공부하다가 모르면 그 때가서 물어보는 게 빨라.’

그러면 차라리 내가 알아야하는 게 뭔지 딱 그것만 듣고 이해할 수 있으니까.

“다 된 거지?”

“아니.”

‘젠장.’

또 뭐가 있냐는 투로 째려보자 배추가 반문했다.

“이거, 게임에만 사용하려는 게 아니지? 빅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시스템까지 생각을 했으면, 훨씬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생각까지 하고 오더를 내린 거잖아?”

맞다. 뭔가 확실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빅 데이터가 어떤 식으로 응용되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추상적으로 여러 가지 분야에 접목시킬 걸 생각하고 주문했다.

‘당장 레이폰이 등장하면 마켓의 게이머들에게 취향에 맞는 게임을 추천할 필요가 있으니까.’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로 모바일 콘텐츠는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지게 된다. 게임에서만 한 달에만 1만여 개의 게임이 출시될 정도다.

이 지점에서 게이머로서 불만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정말 내게 어울리는 게임이 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냥 가장 인기가 많은 게임이나

조금 하다가 질리면 다른 게임을 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착하는 게임은 없고 늘 철새처럼 오가는 신세였다.

‘여기에 빅 데이터의 추천시스템을 접목한다면 유저의 만족도도 올라가고 만족도만큼 매출도 올라갈 거야.’

게다가 잘 만들어 놓고도 대형 게임사에게 밀려서 빛을 못 보는 게임들도 살릴 수 있게 되는 희망찬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뿐이랴.

‘굳이 모바일만이 아니라도 당장 클로버 스팅에도 필요해.’

점점 보유한 게임이 많아지게 되면서 게임 추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이토록 빅 데이터는 우리 회사 하나만 보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

진하다.

“어? ···아니었어?”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배추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진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니, 맞아.”

“진짜 맞는 거 맞지?”

“어.”

기다렸다는 듯이 배추가 말했다.

“그럼, 회사 하나 인수하자.”

“뭐?”

“말했듯이 우리는 지금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직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그래서 넷플렉스의 도움을 받겠다며?”

“그것만으로는 안 되니까 이러는 거지.”

예전에 생각했던 부분이지만, 과거의 소심한 배추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정말 번듯한 사장의 모습으로 큰 제안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건데?”

“10억이면 인수할 수 있어.”

“오케이. 대신 조금은 시간이 걸려. 10억 달러면···”

“으힉. 노노노! 우리 회장님 통 큰 거 봐라. 달러면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말로 할 수나 있겠냐? 10억 달러 아니고 10억 원!”

녀석이 호들갑스럽게 단위를 정정했다. 나 역시 예산집행에 대한 고민을 가볍게 던지고 대답해 주었다.

“10억 원이면 바로 집행해줄 수 있지. 알아서 해. 대신, 돈 들어가는 만큼 성과도 내야 한다. 알지?”

“당연하지.”

“그래. 기대할게.”

이후, 배추는 내게 말한 대로 어디 자그마한 단칸방 같은 사무실에 5명이 모여서 작업을 하던 소프트웨어 회사 하나를 5억에 인수했다. 그리고 이 5억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빅 데이터 구축을 위한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진짜 돈을 들이 붓는구나, 들이 부어.’

우선 배추는 내가 원하는 사업이 본사 사옥에서는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로 인해 GF 테크랜드는 이사를 강행했다.

그 이사 비용으로만  250억이 들었다.

건물을 사서 이사한 게 아니다. 임대다. 거대한 공간은 물론이고 그 큰 공간을 채울 서버부터 설비까지 굉장한 자금이 빨려 들어갔다.

문제는 이게 그냥 일단 필요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후에 추가 설비로 300억 정도의 투자를 대비해야 해.’

그야말로 일반적인 계산으로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무지막지한 돈이 필요하다. 이런 지출이었으니 꿈속 미래에서도 굴지의 대기업들만이 빅 데이터를 구축했을 것이다.

“이래서 게임사들이 그토록 설비에 투자를 안 한 거였구나.”

게이머일 때는 회사가 그저 멍청한 악의 축으로만 여겨졌다. 유저들의 돈만 빨아먹지 유저들의 편의를 위한 서버나 기타 부분들에 투자를 안 하는 모습으로만 여겨져서다. 그

런데 막상 기업을 운영해보니 저들의 처지도 이해되었다.

투자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야 이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가능하지 대다수는 앞날을 모르는 상태잖아.’

예측은 예측에 불과하다. 맞아떨어지면 좋지만 그러지 않을 확률도 높다.

투자하고 당장 그것으로 얻는 이익에 대한 것들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으며 혹 기대대로 앞날이 흘러간다 해도 언제쯤부터 본격적으로 이익을 누리게 될지는 미지수다.

보라. 미래를 확신하는 나조차도 몇백억 단위로 쓸려 내려가는 돈 줄기에 놀라는 마당인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성공한 이들이 마냥 운만 좋아서 거대한 금자탑을 이룩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이사 현장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즈음, 배추가 내게 물었다.

“건물은 그냥 사는 편이 낫지 않아?”

“뭐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임대료를 내면서 있으려는 이유가 뭔가 해서.”

“어차피 또 이사 해야 하니까.”

“또?”

녀석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너 지금 이사해봐서 알잖아. 이거 한번 할 때마다 비용이 장난 아니야. 나중에 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든다고. 그런데 왜? 돈을 그냥 허공에 붓고 싶어졌어?”

“내가 미쳤냐. 그게 나으니까 하는 거지.”

“대체 왜?”

“판교에서 우리를 부르거든.”

“아··· 맞다······.”

판교 테크노 밸리.

이곳은 원래 꿈속에서 보았던 역사와 꽤나 달라졌다. 본래의 역사에서는 1지구, 2지구, 3지구로 나뉘어서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개발이 되었는데, 지금은 1지구와 2지구가 한

번에 풀린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1지구의 30%를 혼자서 차지하는 우리 GF 때문이다.

“어차피 그것도 내가 감수할 부분이니까 됐고.”

이번에 배추를 보는 시선은 제법 싸늘하다.

“오늘은 왜 왔어?”

“눈에 힘 좀 풀어줘.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잖아.”

녀석이 어색하게 웃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다. 빅 데이터와 관련해서 배추가 찾아올 때마다 돈이 뭉텅뭉텅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소 단위가 10억부터 시작이니 나름대로 부

자를 자부하는 나도 이제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이번에 예산 집행이 더 필요··· 아. 장난이야. 눈빛 봐. 심장 멎는 줄 알았네.”

헛기침하고는 배추가 말했다.

“지금 깅강철 실장이 원하는 건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에 필요한 시스템이잖아?”

“그래.”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다 싶더라고. 게다가 사실 지금까지 투자한 설비나 모듈 같은 게 없는 상황에서 그걸 만들어내는 게 어려운 거지 지금은 그게

어렵지 않게 됐거든.”

오늘은 희소식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래서 우리가 급히 그것부터 개발할 필요가 있나 싶더라.”

“뭐?”

그나마 당장은 그거에라도 쓰겠다는 생각에 돈을 쓴 건데, 그것부터 개발할 필요가 있냐니?

분야가 다르다 보니 배추의 말을 들으면서 계획을 여러모로 수정하게 된다.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곳들이 더 많아.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개발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효율적이고.”

“이를테면?”

“클로버 스팅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게임 추천하기?”

‘이건 이미 내가 활용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던 건데. 먼저 이야기를 하네.’

슬며시 내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그걸 본 배추 역시 긴장이 조금 완화되는 모양이다.

“넷플렉스를 보고 얼추 비슷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봤거든. 물론, 우리는 데이터 수집을 많이 안 해서 처음에는 이상한 추천이 꽤 많을 거야.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질 테니······.”

“오케이. 그건 좋은 생각 같네.”

“그치?”

“맞아. 그런데 그것도 당장 필요한 건 아냐.”

클로버 스팅의 게임에서 인기가 많은 게임은 어차피 AAA 타이틀이다. 굳이 추천을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정보를 가지고 구매자가 나선다. 그나마 추천 시스템이 필요한 것

들은 고전이나 인디게임인데, 이건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다.

“당장 도움이 되는 건 핵쟁이들이지.”

“핵쟁이?”

게임과 핵은 정말 창과 방패 같은 관계다. 영화 속 명언으로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게임사에서 핵을 방어할 시스템을 만들면, 핵쟁이들

은 또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오곤 한다.

‘보안 프로그램이나 리포팅 시스템 정도로 그들을 막아내는 건 한계가 있어.’

GF의 게임 역시 핵으로 인해 홍역을 겪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중국에까지 나가 있는 게임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 단칼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