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62화 (362/577)

< 단칼 >

다음 날, 나는 GF홀딩스의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 TF팀에 선물 보따리를 안고 들어갔다. 이곳은 여유와 정적이 흐르며 여느 개발실과는 분위기부터 풍경마저 확연하게 다

름을 알려주는 장소였다. 아무것도 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개발실의 문을 내가 열었고 뒤따라온 직원들이 들고 온 박스를 턱턱 내려놓았다.

“어?”

“이게 뭐야?”

잘 포장된 박스들을 보며 의아해하는 팀원들.

곧 이들을 대표하여 이종만 과장이 내게 물었다.

“회장님. 이게 다 뭡니까?”

“보니까 할 일없는 시간이 대충 2주 이상은 될 것 같던데, 맞습니까?”

대답이 아닌 새로운 질문. 이종만 과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군요. 그럼 지금부터 개발파트와 기획파트의 인원을 나눠서 2팀으로 만들겠습니다.”

생뚱맞게 둘을 섞어서 팀을 만들겠다는 말에 직원들 전부가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저들에게 내가 말을 이었다.

“이제 두 팀은 지금부터 들어오는 모든 게임을 업무 시간 내내 플레이하고 클리어한 게임을 가지고 스토리, 조작감 등등 다양한 부분을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그 이유에 관

해 토론도 할 겁니다.”

이 세상의 직업들은 전부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새로운 공부를 이어가야만 한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게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프로그래밍을 위한 전문적인 공부?

물론 그런 것들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실력이 좋지 못한 개발자가 개발해도 좋은 게임은 나온다. 그 이유는 게임의 핵심이 바로 재미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

리고 재미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면 화두가 옮겨진다.

어떻게 만들어야 재미있는 게임이 될까?

어떤 게임이 재미있는 걸까?

게이머들은 도대체 무엇에서 재미를 느끼는가?

재미라는 이 요소를 더욱 깊이 알아내는 방법! 이 공부법으로 나는 경험해보라며 게임을 안겨준 것이다.

“어? 게임스테이션이네요?”

“이건 ZBox인데?”

GF는 게임 회사다. 당연히 회사 휴게실에는 ZBox와 게임스테이션이 모두 구비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개발실로 들어오는 이 기기들은 휴게실에 있는 것이 아닌 온전히 새

것들이다.

ZBox 360 10대, 게임스테이션 2 10대로 총 20대의 콘솔.

여기에 20개의 TV가 더해지니 개발실은 어느덧 박스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게임이···”

“대체 이게 다 몇 가지야?”

여기에 인기 있다는 게임과 참신하다는 평을 받는 게임은 몽땅 구매했다. 2주라는 시간을 켠김에 보스까지 볼 각오로 제아무리 플레이해봐야 이 전부를 클리어하는 것은 물

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여러분은 즐길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각 팀당 콘솔을 5대씩 배정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전투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게임 개발사의 직원들이니만큼 개발자들도 기획자들도 대부분이 게임을 즐긴다. 그러나 한국 게이머 출신인 한국의 개발자들에게는 심각한 함정이 한 가지 있었다.

‘특정한 게임 말고는 정보가 없어.’

한국은 게임 강국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만 사실 개발하는 게임들을 보면 정말 몇 가지 없다. 또한, 이 몇 개 되지 않는 게임만으로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성과를 내다보

니 그거 말고는 관심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희의 말을 통해서 깨달은 점은 더욱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우리의 문제점과 해결점이 명확하게 보였다.

왜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게임은 죄다 뉴 온라인이나 플레지를 표방한 게임일까?

무조건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만 여기면 그건 절반의 대답이다.

‘기획자들이 해본 게임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이것도 포함된다.

간단한 예로 이종만 과장 역시 ‘본토행티켓’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전적이 있을 만큼. 플레지에 열정적인 유저였다. 하지만 그 외의 게임 경험은 매우 적다. 그나마 기획능

력이 좋았던 덕분에 내가 내어준 자료를 가지고 멋진 기획을 뽑아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만 할 수는 없는 노릇!

‘내 미래의 정보가 바닥나면 GF는 자생력이 없는 거대 집단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지금부터 인재를 적극적으로 키워놓아야 해.’

미다스의 손, 완벽한 투자자, 게임의 천재라며 추켜세우지만 내 본질은 결국 남이 만든 게임을 따라서 기획을 하고 오더를 내릴 뿐이다. 이런 나에게 물들어서 직원들은 잘 만

들 뿐, 창의력이 없는 현실에 젖어 들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문제가 지금 당장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에서 생긴 일이다. 즉, 이건 직원들 스스로가 새로운 개념을 제대로 개발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지시를 내린다.

미친 듯이 게임하라고.

“뭣들 하십니까?”

콘솔이 전부 세팅이 되었음에도 김강철 실장과 이종만 과장 둘 다 어벙한 표정으로 나와 콘솔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을 뿐이다.

“두 분이 각 팀의 대표가 되셔야죠. 그럼 뭘 해야겠습니까?”

“팀원을 뽑습니까?”

“맞습니다. 잘 알면서 왜 그렇게 계십니까?”

“그게··· 어떻게 뽑아야 할지···”

“가위 바위 보를 하건, 그냥 ‘나를 따를 사람은 여기 붙어라’라고 하건 알아서 인원만 맞추세요.”

물론, ‘나를 따를 사람은 여기 붙어라.’같은 소리로 팀원을 모았다간 이종만 과장에게는 기획실의 직원들만, 김강철 실장에게는 개발팀 직원들만 들러붙을 테니 인원이 맞을

리 없다.

“그럼 가위 바위 보로 뽑겠습니다.”

자고로 채찍 다음에는 당근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는 모두가 탐 낼 미션을 제안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 모든 토론은 한 팀이라도 게임을 클리어해야 시작 할 것이고 토론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팀은 인센티브가 주어집니다. 남은 시간동안 더 많은 인

센티브를 받으시려면 더 많은 게임을 클리어 해야겠지요?”

검지와 중지를 들었다.

“인센티브는 각 게임당 200만원입니다.”

1인이 아니라 팀에서 받게 되는 돈이니 개개인으로 따지면 큰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고 그 성과로 받는 인센티브로는 절대로 작지 않은 돈이었다.

“알겠습니다.”

역시나 회사가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돈보다 쉬운 방법이 없다. 어리벙벙하게 있던 직원들의 눈에 전투적인 의욕이 타올랐다.

“그럼. 파이팅 하세요.”

토론을 해보면 알게 되겠지만, 이 대결은 단순히 게임을 클리어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게임을 하면서 ‘이 게임이 어떠한 부분 때문에 유저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는가?’ 이

것을 스스로 알아내게 하는 과정이었다.

*

일주일째에 접어들었다.

‘박진감 있어.’

요즘 개발실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치열한 논쟁이 상시 일어난다.

“에이~ 아니지!”

“아니지는 반말이구요. 김대리님.”

“아. 죄송합니다. 몰입하느라.”

“네. 그럼 반론해 보시죠.”

“RPG의 핵심이 스토리라는 거야 당연한 이야기고 킹스하츠가 훌륭한 스토리를 기반한 게임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단순히 스토리 하나에 국한할 수 없습

니다. 캐릭터와 영상미가 워낙 압도적이라 스토리가 숟가락만 얹었음에도 이런 엄청난 게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TF팀은 게임 개발자들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기 위함인지 일주일 만에 벌써 5개의 게임을 클리어했다. 벌써 1,000만원의 인센티브를 세이브한 셈이다. 게다가 점점 클

리어 속도도 빨라져서 2주면 못해도 2,400만원 수준의 추가 인센티브를 챙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독려하는 데는 독이 짱짱맨이라니까.’

성과도 도드라졌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게임에 대해서 이해하는 속도 또한 일주일 새에 엄청나게 달라졌다. 덕분에 요즘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에 비하면 진짜 장족의 발전이지.’

초창기를 생각하면 끔찍할 뿐이다. 당시의 회의 내용은 지금이랑 전혀 달랐으니까.

- 이 게임은 LOD의 값을 아주 깔끔하게 잘 처리하여, 각 객체가 딱 필요한 만큼만 보이게 됨으로 훌륭한 최적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텍스쳐 매핑이 지형과 캐릭터의

구분은 물론이거니와···

개발 파트가 이런 식으로 토론 때 말하면.

- 저는 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 먼저 게임의 바운스 레이트에 집중을 해 보았습니다. 이 게임의 첫 보스를 클리어한 유저는 88%. 2번째 보스의 클리어가 84%입니다. 이는 바

운스 레이트의 비율이 매우 적다는 증거로···

기획 파트의 직원은 이렇게 응수했다. 게임을 분석하기를 바라며 내준 숙제에 저런 방식의 분석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지켜보기로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초창기에는 무진장 뜯어고쳤다.

덕분에 지금은 들을만해졌다.

‘역시 창의성은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없겠지만.’

남의 창의성을 토대로 한 응용능력은 충분히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138. 단칼

턱!

“여기 보고서.”

오랜만에 내 사무실에 찾아온 배추는 책으로 의심될 정도의 서류를 내려놓았다.

가볍게 내려놓는다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도 둔탁한 소리가 날 정도의 묵직함이다.

“이게 뭐야?”

“뭐긴. 김강철 실장한테 유저들 데이터 수집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라고 했다며. 그거에 관련 된 보고서야.”

“벌써 완성된 거야?”

관련된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말하고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시스템이 구축되었단 말인가? ‘이 녀석 세기의 천재인가.’라며 우러러볼 때 녀석이 덤덤히 대

꾸했다.

“우리 직원들 다 말려 죽이려고 환장한 거 아니면 너무 급하게 쪼지 마.”

설레발이 너무 일렀나 보다.

‘그나저나 이 자식, 요즘은 알게 모르게 카리스마도 생긴 거 같아.’

이런 녀석이 꿈속 미래에서는 별 볼 일 없게 살았다는 것을 보면 역시 능력만큼이나 이를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보고서가 참 으리으리할 정도네. 뭐가 이렇게 두꺼운 거래?”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할게.”

그래. 나는 저 말을 기대했다.

다 읽을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거든.

“우선 네가 그런 주문을 했다는 거로 봐서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을 염두하고 지시를 내린 거 같은데, 맞아?”

“정답.”

역시. 게임 개발자들이나 기획자들과는 달리 배추는 한 다리를 거쳐서 들었음에도 바로 빅 데이터를 염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런 거면 차라리 나한테 먼저 오더를 내리지 그랬냐. 김강철 실장이나 그 밑의 직원들이나 뭘 모르니까 추상적인 이야기만 나열하더라. 그 탓에 괜히 시간만 손해 봤어.”

‘쏘리. 그런데 이러는 편이 낫더라고.’

효율을 생각하면 당연히 배추가 사장으로 있는 GF 테크랜드에 직접 이야기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김강철 실장에게 지시했다. 그 이유는 내가 다 오더를 내리는 운

영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어떤 일이든지 첫삽은 무조건 내가 푸면서 잘 굴러가는 시스템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됐어.’

잘 아니까 내가 도맡아서 하다보면 내 일거리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개발 파트는 빅 데이터라는 것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게 되니 단기적인 비효

율은 장기적인 효율로 이어질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그 시간 손해는 금전적 손해로 계산 될 거고 이를 감당하는 건 나니까. 손해는 예상하고 지시한 거니까 그건 넘어가자.”

감수할 만한 패널티였다.

“그래서. 간단하게 뭘 설명하겠다는 건데?”

“지금 네가 요구하는 프로세싱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어떤 거?”

“서버. 필요에 따라서 꾸준히 늘려갈 수 있는 거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환경에서는 한계가 너무 명확해. 이런 곳에서 빅 데이터를? 금방 감당할 수 없게 될 거야.”

이 말은 시설과 설비에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소리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미래가 증명한다. 빅 데이터는 점점 더 중요해지게 된다. 즉, 이런 곳에 돈을 아끼

는 건 멍청한 짓이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자금은 충분히 있어. 그런 걱정은 넣어둬도 돼.”

“오케이. 그럼 두 번째. 지금의 GF 테크랜드 직원들로는 개발이 불가능해.”

“왜?”

빅 데이터를 깊게 들어가면 어렵다는 건 알고 있다. 원래 대부분의 분야가 깊게 들어가면 갈수록 전문분야가 생기고 어려워지지 않던가. 심지어 이것은 빅 데이터만 전문적

으로 관리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해당 전문가가 존재하게 될 분야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내 의문은 이거다.

“지금 내가 요구하는 수준은 그렇게까지는 필요가 없잖아?”

“아니야. 불가능해. 애당초 우리 회사의 개발자들은 이런 분야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거든.”

‘하긴, 우리는 포털사이트도 아니고 데이터에 대해 전문적으로 파고들었던 회사는 아니었으니까.’

잘 모르는 영역에서 괜히 아는 척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전문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를 갖자.

“네 해법은?”

“넷플렉스의 도움을 좀 받았으면 좋겠어.”

< 단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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