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7화 (357/577)

< 최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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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게임 기획파트에서 파트 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종만 과장은 계속되는 기획안 반려에 참다 참다 폭발해 버렸다.

“김강철 실장님! 이거 진짜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을 거 같습니다!”

“종만아. 일단 좀 진정하고 다시 들어봐. 많은 건 아니고 우선 짚은 것들만 빼면···”

“아니! 아니요! 제가 이걸 이렇게 하자고 하면 ‘그건 이래서 안 된다.’ 그럼 ‘그걸 저렇게 바꾸자’하면 ‘그건 또 저래서 안 된다.’는 죄다 안 된다는 말씀만 하시는데 이러면 게

임을 어떻게 기획합니까?”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 개발실에서도 그렇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런 거 아니겠냐. 아닌 말로 상상하는 대로 다 구현할 수 있으

면 그게 마법이지 기술이게?”

“하지만 이러면 키 포인트들이 죽어버린단 말입니다!”

“되게끔 잘 기획해줘.”

“으아아아아!”

기획, 아트, 개발.

이 세 가지가 바로 게임을 개발하는 핵심 인력이다. 그리고 이 각각의 권력 구도는 ‘개발 > 기획 > 아트’의 순서가 된다.

‘어떠한 게임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것은 기획부서에서 열심히 구상한다. 이후 게임 개발이 시작되는데 개발 파트에서 종종 기획을 반려하는 일이 일어난다. 현실적으로 구

현 불가능한 요구라는 이유다.

즉, 개발팀에서 ‘이 정도는 가능해.’라는 허락이 떨어질만한 기획을 이른바 읍소하며 맞춰야만 한다.

그렇다면 가장 권력이 낮은 계급인 아트팀은 무엇을 할까?

결정권이랄 게 없다고 보면 된다. 그냥 기획과 개발 파트에서 ‘이렇게 게임을 만들기로 했으니까. 엣지 있고 감동 있게 잘 만들어 줘.’라고 하면 예술적이면서도 상업적이며

감각적이게 ‘짠’하고 만들어내야 했다.

나름의 고뇌는 충분히 할 테지만 파트별 의사결정 과정 중에서의 논쟁과 스트레스는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지금 회의실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당연히 기획팀과 개발팀이었

다.

“실장님! 아니, 형님! 형님도 이거 보시지 않았어요?”

이종만 과장은 오늘 작정한 만큼 자신의 서류를 김강철 실장에게 내밀었다. 바로 윤태식 회장이 직접 작성한 게임의 콘셉트가 자세히 나와 있는 서류였다.

“무려! 회장님 지시사항이십니다. 이걸 다 구현해야 한다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구현할까요?”

“그거야···”

“지금 형님 말씀대로라면 회장님이 기획한 이걸 전부 뒤엎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잘 아시죠? ‘이거다!’ 하고 잡은 콘셉트가 있으면 차라리 안 만들

었으면 안 만들었지 그 콘셉트를 엎어버리는 경우는 없으시잖습니까.”

“그건 알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거잖냐. 회장님이 요구한 기획의 매력과 장점을 유지하면서 개발팀에도 무리 없는 기획을 준비···”

“형님! 아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김강철 실장이 주섬주섬 내뱉는 말에 울화가 치민 이종만 과장이 가슴을 두드렸다.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투다.

“그게 가능했으면 제가 회장님이게요!”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밖에서 다 듣겠다. 우선 데시벨 좀 낮추고 우리 차분하게···”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응? 안 되면? 회장님에게 이 게임은 못 만드는 거라고 말씀드리게?”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가 엎어지면 김강철 실장이 사장으로 올라가는 것도 엎어진다. 배틀 오브 발러까지 내려놓고 이 자리에 섰는데 지금 와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변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니 그의 얼굴도 굳어졌다.

하지만 자신이라고 이종만 과장을 괴롭히고 싶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니다. 어려우니까 다듬고 또 다듬어보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도 반려하면 할

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고 말이다.

그러나 ‘한 열 번 더 빠꾸 놓으면 되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이 실무자에게는 얼마나 큰 막연함과 스트레스였는지를 간과한 점이 문제였다.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는 회장님이 결정하시겠죠. 저야 지금처럼은 일 못 한다고 말씀드리려는 거고요.”

“종만아. 그러지 말고 처음보다 무진장 나아졌으니까 조금 더 고생해보자. 응?”

“능력의 한계인 걸 어쩌라고요!”

“넌 할 수 있어. 너를 믿는 나를 믿어라.”

“어디서 되지도 않는 대사를 치십니까? 무슨 중2병이나 통할 소리를 하시다니요!”

‘이거 안 통하네.’

말이 좋아 자신이 일을 못 하겠다고 말하겠다는 거지 이종만 과장이 못한다고 손 떼면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도 엎어지는 거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김강철 실장이 다급한 표

정으로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모습의 이종만 과장을 붙잡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즈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라? 여기는 분위기가 또 왜 이래요?”

그의 모습을 본 두 사람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

2007년.

‘올해 발매될 게임들은 죄다 어마어마하구나.’

이제 곧 다가올 새로운 해는 그야말로 게임계의 춘추전국 시대나 다름이 없었다.

게임 스테이션 3가 출시되는 해이기도 하면서 FPS의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다 환영할만한 폴 오브 듀티, 바이오 펑크, 포럴, 테일로 3, 매스 임팩트, 트라이시스가 전부 이

1년 사이에 출시된다.

당연히 수많은 게이머가 ‘내 지갑을 가져요!’라며 환호를 질렀고 게임사들은 막강한 경쟁자들과 눈치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시기도 아주 완전히 겹쳐버리지.’

가뜩이나 치열한 1년인데 이 대작들은 2007년 하반기에 소나기처럼 우수수 쏟아지듯 나왔다. 이러니 서로의 경쟁이 심화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FPS의 강세

는 비단 해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만 해도 블랙잭, 어바, 컴뱃 아미스, 오퍼레이트7, 볼프팀··· 젠장. 그만 떠올리자. 갑자기 급이 확 떨어져 버리네.’

세계적으로는 대작이 쏟아져 나온 한 해이지만 우리나라는 예외다. 게이머로서 아주 애석한 말이지만 한국은 예로부터 게임을 잘하는 나라이지 잘 만드는 국가는 아니다. 그

냥 국내도 FPS가 강세였다는 정도로 퉁 치면 될 것이다.

세계 콘솔 시장은 FPS 특화 콘솔이라 불리는 ZBox360의 강세 덕분에 FPS의 시대가 열린 셈이고 한국 게임 시장은 서프라이즈 어택의 엄청난 흥행 덕분에 그 이후, 비엔나

소시지마냥 FPS가 줄줄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전국시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바로 이 시기, 이 시점!

FPS가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작금에 우리 GF에서도 하이퍼 FPS인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피 터지는 경쟁이 시작되는 거지.’

이런 경쟁 시대에 게임을 출시한다는 건 게임사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개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가는 내 미래의 지식과 출중한 우리 직원들의 힘으로 정면승부를 벌여볼 따름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에는 큰 노력과 땀이 필요할 테지만, 승

리한 후라면 달콤한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김강철 실장과 이종만 과장의 회의가 한창인 회의실 문 앞까지 도착했다.

구경해 볼까 해서 손잡이를 잡았는데 꽤 큰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는 회장님이 결정하시겠죠. 저야 지금처럼은 일 못 한다고 말씀 드리려는 거고요.

- 종만아. 그러지 말고···

‘이건 또 뭔 상황이래?“

회의실은 음악실 마냥 대단한 방음설비가 되어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막힌 벽 때문에 일부 방음처리가 가능한 곳이다. 그런데도 이걸 다 뚫고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언성이 높아져 있는 것이다.

‘싸우는 분위기까지는 아닌데.’

잠시 멈칫했다가 괜스레 도둑처럼 엿듣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여기서 누구의 눈치를 보겠는가.

자고로 상황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으로 들어가는 것!

“어라? 여기는 분위기가 또 왜 이래요?”

“회··· 회장님.”

한창 투덕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굳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눈치를 서로 보고 입조심을 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뭔 대화를 했기에 회의를 일어서서 하고 있는 겁니까?”

손만 잘 뻗으면 멱살을 잡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게 별일 아닙···”

“아닙니다, 회장님. 아주 잘 오셨습니다. 마침 지금처럼은 일 못 한···”

“이종만 과장!”

김강철 실장이 다급하게 이종만 과장의 입을 막고 상황을 수습하려 들었다. 여기서 딱 느꼈다. ‘이거 가만히 두면 안되는 문제구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김강철 실장님.”

“네, 회장님.”

“제가 들으면 안 되는 말입니까?”

“아니··· 지금··· 그게,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는 채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됐습니다. 여기서 두 분의 언성이 높아질 일이라면 뻔하죠.”

그 말에 김강철 실장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나 역시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실무자만 못하지만, 회사를 이끌어온 경력이 수년째다. 돌아가는 판세를 읽을 정도는 충분히 된다.

“어딥니까? 무엇을 구현하기가 힘들어서 문제가 생긴 거지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어야 해결을 하든지 판을 엎든지 할 거 아닙니까?”

“······.”

김강철 실장에게 물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그의 입을 통해 듣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이종만 과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으면 네가 대답해보라는 뜻이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히어로들의 특성들 때문입니다!”

“특성이요?”

“게임 특성상 많은 히어로가 존재하고 기술부터 이동 방식까지 너무 다양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이동과 관련된 오브젝트들을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이어지는 답변은 김강철 실장에게서 나왔다. 그는 조금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이종만 과장을 본 뒤에 내게 말했다.

“그리 만들었다 가는 게임 자체가 너무 무거워져서 오직 최상위급 PC로만 구동할 수 있게 되어버립니다. 사양이 낮으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불가능해지는 거지요.”

“왜지요? 지금까지 현재 대중화된 사양에 맞춰서 잘 만들었는데?”

GF에서 개발한 게임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게임들도 시대가 변할수록 굉장히 많은 숫자의 오브젝트들이 추가되곤 했다. 하지만 끄떡없었는데 왜 이번에는 문제가 된다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바벨만큼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직접 보았으니 덮어두고 해결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강철 실장은 직접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선 기획단계에서 판단할 때 게임의 그래픽 수준에서부터 이미 그래픽카드의 부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오브젝트들까지 많다면, 현재 그래픽 게임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렉트Z 9.0으로는 연산이 불가능합니다. 절대로 말이지요.”

“절대 연산이 불가능하다?”

“예. 그래픽 카드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지원을 해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다이렉트Z 10으로 넘어가야만 하는데 그건 곤란하지 않습니까?”

다이렉트Z 10은 마이크루에서 이제 막 태동하는 응용프로그램이다. ‘필요하다면 그냥 쓰면 되지 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지금 이걸 지원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의 부

재였다.

최신형 그래픽카드 8800만이 다이렉트Z 10을 지원하는데 이 그래픽 카드는 가격이 무려 70만 원을 호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이렉트Z 10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콘솔 게임도 함께 개발한다면 콘솔에서 한동안 판매를 보장해줄 테니까 추후 PC 시장에서의 판매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게임 특성상 콘솔로의 출시가 아주 어렵다. 마우스와 키보드가 아닌 콘솔의 컨트롤러로 플레이하기 불편한 게임인 데다가 멀티 플레이를 메인 콘

텐츠로 삼고 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듣고 보니 과연 저들이 논쟁하며 골머리를 쌓을 문제이기는 하다.

해법은 무엇일까. 꿈속 미래에서는 어떤 방식이 나왔던가.

‘이후의 전개에 따라서 경쟁력만 쥐고 있으려면 뭘 내려놓고 뭐를 놓지 말아야 하지?’

목적에 도달하려는 방법 정도면 된다.

우선 첫 목표는 무엇이던가. 라이언 맨의 개봉에 앞서서 최소한 베타 플레이가 가능한 수준까지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에 FPS의 피 튀기는 경쟁 시대를 굳이 정면 돌파하기보다는 피해 가는 것 역시 묘책이 될 수 있다. 즉, 적당한 수준으로 매우 빠르게 내놓는 것이 필수다. 이 말은 다른

요소는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아도 된다는 의미다.

‘명작이면 좋기는 하지. 그러나 굳이 AAA급 타이틀을 고집할 이유까지는 없어.’

지금까지야 한국에서 고퀄리티 게임을 개발하는 곳이 없었으니까 그것에 많은 집착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다 알고 있다.

꿈속 미래와는 달리 내가 사는 현실에서는 이렇다.

한국이라는 나라. 특히 GF라는 게임 개발사는 고퀄리티의 게임을 개발해 내는 곳이다. 이건 이미 입증됐고 널리 알려졌다. 그러니 이 지점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는 고퀄리티가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흥겨운 게임으로 가자. 누구나 가볍게 할 수 있는 캐주얼한 느낌을 살려보면 되겠지.’

어차피 지금 개발하는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GF 게임즈, 넷플렉스, 바벨 그리고 다시 GF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서 우리의 무기가 되어 줄 것인데 최신 그래픽으로 무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히어로가 아닌 게임을 생각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결정했다.

“이종만 과장님.”

“네.”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기획하신 것은 다 엎어야 할 거 같습니다.”

< 최적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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