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6화 (356/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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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와 유럽에서 레이폰으로 연일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 일본에서는 정령의 숨결로 연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GF에서 개발한 게임들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중국이 움직임을 보였다.

매력적이랄 만큼 비대해진 게임 시장을 노리며 대국답게 큰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회의에서는 계열사 중 GF 글로벌의 사장인 김유천이 이에 관해 보고했다.

“완벽시공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게임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우리 회사의 게임들을 밀어내기 위해서 완벽시공에 전력투구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가물가물할 때는 눈을 감고 꿈속 기억을 되짚는 게 최고다.

‘그거구나. 완벽세계.’

중국판임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그래픽과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게임. 그 탓에 중국판 월드 오브 워드래프트라는 별칭을 붙이며 엄청나게 이슈를 끌어낸 기억이 떠올랐다. 결

과 역시 저들의 자체평가로는 나무랄 데 없었다.

중국 최고의 수출 효자 게임이라는 위치까지 올라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주관적으로 팔이 굽은 평가라고 본다.

‘그냥 인구수 쩔고 내수시장 끝장나는 대국 파워였으니까.’

실제로 포장지를 풀었을 때, 완벽세계는 파다하게 돌던 소문과 달리 그래픽도 후줄근하고 세계관은 마냥 방대하기만 할 뿐, 실속이 없었다. 광활하면서 공허한 것이 명성 자

자한 우리나라의 질소과자와 같을 정도다.

게다가 콘텐츠만 부족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중국의 어설픈 일 처리 덕분에 게임 여기저기에 버그가 무수히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부러우면서도 정말 샘

나는 부분이 대국의 내수시장이 아니던가.

중국 게임이 한국에서 실패하고 ‘표절만 하는 병신들’이라며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욕을 하건 전혀 상관없다. 우리나라는 작은 시장이고 중국은 큰 시장이다. 작게 잃고 크게

따면 성공이듯 완벽세계는 결과적으로 대흥행을 이루었다.

‘그리고 저들도 게임의 성공이라는 맛을 봤지.’

이때가 기점이다.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대충 게임을 만들어서 중국에 내보내기만 하면 성공을 보장받았었다. 질을 낮추고 양을 늘리더라도 ‘평타만 쳐도 중국에서는 대박’이

라는 공식이 무조건 통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진다. 중국의 회사들이 ‘어라? 우리도 해보니까 이쯤은 되잖아? 그럼 직접 해봐야지’라고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비

슷한 수준의 중국 게임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양에서 질적 향상도 이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의 수위는 높아지며 기술력과 작품성을 갖춰야 대성공이라는 과실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긴장해야 해. 그런데 아직은 아니지. 민족주의는 쉽게 안 무너지거든. 자랑스러운 애국심 말이야.’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표어를 꽤 오래 붙잡고 있었듯이 중국도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친 나라다. 천하가 곧 중국이라고 믿어왔지 않던가. 덕분에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뛰

어난 기술과 퀄리티를 가진 중국의 게임이 아니었다.

이른바 국뽕이라고 불리는 그것.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딱 이것만을 보유한 중국의 게임이었으니 김유천 사장의 우려는 아직 일러도 너무 일렀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며 저들은 아직 우리의 눈높이에 오르기에는 한참 멀었다. 게

다가 이건 어마어마한 위기도 아니었다.

‘이걸 나만 알고 있어서는 곤란하지. 독단으로 비치면 안 되니까··· 이렇게 깨닫게끔 해줘야겠어.’

잠시 김유천 사장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김강철 실장님.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회장님.”

“중국에서 정말 그렇게 굉장한 게임을 개발할 수 있기는 한 겁니까?”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응?’

결과를 단호하게 ‘급이 안 됩니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의 대답이 내 예상과는 달랐다. 이유를 말하라며 가만히 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중국은 우리 게임을 참 많이 훔쳐 갔습니다.”

중국에서 인기게임에 대한 순위를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베껴서 만들어진 게임이 몇 개가 되는가?’ ‘불법 사설 서버가 얼마나 있는가?’였다.

여기서 뉴 온라인은 불법 사설 서버만 억 단위로 생겼다 사라진 전적이 있으며 현재 중국에서 개발한 게임들 대부분은 우리 GF의 게임을 가져다가 그대로 판박이처럼 출시

한 것들이다.

오죽하면 ‘중국은 그냥 GF의 게임을 가져다가 지들 버그만 심어서 출시한다’라는 농담마저도 있을 정도다.

‘생각 이상으로 뻔뻔해서 깜짝 놀랄 때도 있었지.’

그냥 클라이언트를 우리 뉴 온라인을 그대로 사용하고 접속 어드레스만 해당 회사의 것을 넣어도 접속이 가능한 게임마저도 존재했다. 이렇듯 중국은 GF를 훔쳐서 게임 개

발 능력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얌체로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이걸 욕할 수는 없다. 모두가 모방하며 기술을 축적했고 따라잡기를 시작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게임 개발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했겠습니까? 미국에서 만든 게임, 일본에서 만든 게임을 훔쳐 온 겁니다. 그렇게 지금의 수준에 도달했고 작금의 위치에 올랐습니

다.”

“중국도 우리 게임을 많이 훔쳐 갔으니 이제는 만드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아니야. 틀렸어. 반죽도 제대로 못 한 공갈빵 같은 게 나온다고.’

준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김강철 실장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직 저들은 작품이랄 수준을 만들어낼 만

큼 개발인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완벽세계를 완성본을 내가 아니까.’

이래서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거다. 점쟁이 같은 미래 예측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을 드러내어 김유천 사장의 고민을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반대가 되어

버렸다.

‘하는 수 없지. 놔둬도 상관없고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면 그거대로 또 괜찮으니까.’

회장이라는 위치이다 보니 나는 항시 스스로 경계한다. 내 행동이 독단과 아집으로 비치지 않도록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중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제대로 공개도 되지 않은 게임이지 않던가.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미

리 대응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자세는 아주 훌륭한 자세였다.

GF 그룹의 게임 매출은 중국에서 엄청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뉴 온라인을 시작으로 다이너스티, LON 온라인, 김강철 실장이 개발한 배틀 오브 발러 마지막으로 클로버 스

팅이 인수한 던전 & 워리어까지.

이 게임 다섯 개의 매출을 합치면 무려 2조 원을 초과한다.

“김유천 사장님.”

나는 애매해진 분위기를 환기하는 정도로 일단락 짓고자 그를 불렀다.

“네. 회장님.”

그는 내 부름에 움찔 놀라며 작게 대답했다.

“완벽시공이라는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게임이 어떤 게임일지 아직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도 모르고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분들도 모를 겁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게임인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게임의 마케팅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것인지를 지금부터 걱정한다고 해서 맞는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마케팅을 시작한 후에 준비하면 늦습니다. 다각도로 분석하고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할 준비는 미리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정도는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따로 글로벌에서 분석하고 회의해서 제 사무실로 찾아오는 게 낫겠군요.”

지금 이 자리는 중국에서 개발한 게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회의 하는 자리가 아니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난 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알겠습니다.”

완벽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만 하는 것으로 끝을 냈다.

이제는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에 대해서 거론할 때다.

“김강철 실장님.”

“네.”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좀 어떻습니까?”

이미 배들 오브 발러를 개발하고 그것을 관리하느라 바쁜 사람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게임을 또 개발하도록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돈이 많아

졌어도 특별한 인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지금 GF에는 내가 미래 기억까지 총동원한 드림팀이 총망라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우리 회사에 인재가 부족하다는 건 한국 자체에 인재가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지.’

아무래도 조만간에 인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 해야 할 듯하다.

“회장님께서 작성하셨다는 기획안과 기획파트. 여기에 살을 보탠 것까지 전부 다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개발하려면 제가 한동안 배틀 오브 발러에서 손을 완전히 떼야

만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개발자가 다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회사의 개발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대해서 애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특히 김강철 실장은 배틀 오브 발러에 애

착을 넘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보이고 있었다.

‘이해는 해. 사실상 처음 우리 쪽으로 넘어올 때 개발했었던 액티브 이후에 첫 작품이니까.’

GF에 들어와서는 처음으로 만든 온전한 자신의 자식이 바로 배틀 오브 발러다. 심지어 LON 온라인 이후 GF의 온라인 게임 매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굉장한 인기작이기까

지 하니 김강철 실장으로서는 손을 뗀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대안이 없어.’

그에게 대충 프로듀싱 정도만 맡기고, 나머지는 개발실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이러면 내가 원하는 형태의 게임이 만들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인재가 부족해.’

동기부여가 될 만한 당근이 필요하다.

“김강철 실장님.”

“네.”

“실장님도 이제는 사장 타이틀을 다셔야지요.”

“네?”

아마도 내게 강하게 배틀 오브 발러의 매출을 어필하면서 자신이 해당 게임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모양인데, 사장 타이틀이

라는 말에 굳어진 얼굴이 무너졌다.

모르긴 몰라도 굳어진 얼굴이 무너진 만큼 굳어졌던 마음도 많이 무너졌을 것이다.

“훌륭한 게임을 만들고 그걸 그냥 회사에만 넘겨 단순하게 월급만 받고 기껏해야 보너스로 만족하는 그런 위치에 언제까지 계실 겁니까? 여기 있으신 다른 사장님들과 같은

자리에 가실 때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뉴 온라인의 초기 개발자인 넷젠의 핵심 개발자들. 그들은 지금 600억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가 되었다. 나그네로크를 개발한 크라비티의 핵심 개발자들도 100억 이상

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다.

팬더그램은 어떠한가? 최근에 급등한 주가로 인해서 그들 또한 못해도 50억은 챙겨갔다.

그런데 김강철 실장은?

“······.”

그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무는 것이 보였다.

배틀 오브 발러는 GF에서 매출 2위다. 또한, 앞으로는 지금까지 우리 그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게임들과 비교조차 안 되는 엄청난 규모의 게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런 게임을 개발한 자신은 회사에서 받는 돈이 고작 몇억의 연봉과 10억 정도의 보너스가 전부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과 비교하면 배부른 소리다.

그러나 잣대의 대상을 바꾼다면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다.

잠시 큰 고민을 하는 듯 보인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회장님. 제가 사장이 되면 배틀 오브 발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혹시, 배틀 오브 발러는 두고 신규 게임을 개발한 스튜디오의 사장으로 가시라고 하면 거절하고 남으시려는 겁니까?”

“······.”

저 침묵은 긍정을 뜻했다.

‘우와. 이것이 너드들의 사고방식인가? 엄청난 수익을 이렇게 포기한다고?’

진짜인가 보다. 한 스튜디오의 사장이 되는 것보다 그냥 자신이 만든 게임의 실장으로 남고 싶어 할 정도로 애착이 깊은 것이다.

‘하지만 뭐··· 상관은 없지.’

애초에 새로운 스튜디오의 소속으로 배틀 오브 발러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GF 소속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닌데 굳이 내 손에 부여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새로운 스튜디오는 우리 GF의 FPS를 담당하는 스튜디오가 될 겁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들은 김강철 실장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러나 당근과 채찍은 함께 있는 법.

“하지만 조건이 있다는 건 아시겠죠?”

“네?”

“우선 제가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 역시 만들어져야 할 겁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벙한 표정으로 ‘네?’라는 대답을 하긴 했지만, 내 입에서 대충 어떤 말이 나올 거라는 것 정도는 이미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도 이미 결정은 내려졌으

리라.

그런데도 김강철 실장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거절하셔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어요. 다만 싫으시다면 다른 곳에 맡길 뿐입니다.”

“다른 곳이요?”

그가 회의실 인원들의 면면을 훑었다. 길남주 사장, 임학규 사장 등등···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렇다.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선택에 고민이 많아지지만, 그게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고민을 머릿속에

서 지워내게 된다.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이퍼 FPS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의 개발실이 김강철 실장의 개발실로 결정됐다.

< 최적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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