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5화 (355/577)

< 최적화 >

137. 최적화

레이폰이 발표된 후에 와플에서는 굉장한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 최대한 정보를 숨기고 또 숨기면서 비밀리에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었는데, 경쟁업체에

서 먼저 동일한 기종을 발표해버렸지 않던가.

화가 나도 단단히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쏘리!’

소문일 뿐이지만 화가 단단히 난 스티븐이 임원 회의실을 발칵 뒤집었다는 이야기까지 업계에는 퍼지고 있었다. 결국, 마음이 급해진 와플 역시도 급하게 프레젠테이션을 준

비했고 내년 초에나 해야 했을 와이폰 발표가 12월로 당겨졌다.

언론사에서 이런 상황을 놓칠 리 있으랴.

각종 언론은 서로가 뒤처질까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레이폰의 기술은 절반 이상이 와플의 특허. 와플의 허락 없이 출시 불가능해.】

【자신의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한 레이컴에게 고소를 준비하는 와플.】

이 중 가장 자극적이라 할 수 있는 기사가 바로 이 고소에 관한 기사들이었다.

- 회장님 이거 큰일 아닙니까?

최근 양도준 사장과의 전화통화는 대부분 내가 미국에 있고 그는 한국에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가 되었다. 양도준 사장이 사업을 위해 미국에서 일하고 나

는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다.

- 와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업 중의 하나입니다. 와플의 고소라는 건 미국에서 무시하기 힘들 텐데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우려가 가득했다. 고소라는 부분에서 얼마나 큰 압박감을 느끼는지, 그가 이 사건을 어느 정도로 크게 여기고 걱정하는지가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

라 레이컴의 미국 법인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빗발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 되는 지점은 따로 있었다. 고소라는 와플의 강경 대응으로 말미암아 직원들의 의욕이 크게 상실되었고 분위기가 침체하였다는 것이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 역시! 이미 복안이 있으셨던 거군요?

양도준 사장님은 요즘 내가 무슨 만능 사업가인 줄 아는 모양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라면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을 거다.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지. 꿈속 미래의 기간 동안이라는 유효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척척박사거든.’

와플은 우리를 고소하지 못한다. 특허라는 부분은 많은 기업이 얽히고설켜 있는데 지금 우리가 침해한 그들의 특허 문제는 GF를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싸움이 붙으면 우리 대신 마이크루가 등판할 거거든.’

레이폰과 와플의 양자 대결이 아닌 마이크루까지 끼어든 삼자의 사건으로 확장된다. 이러면 와플 역시 마이크루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와플 폰을 출시해야 하는데, 이건 불

가능한 일이다. 결국, 유야무야 조용히 사건은 일단락될 것이다.

‘내가 괜히 빌 아저씨랑 손을 잡은 거겠어?’

사업가가 하나의 수만 보고 사업을 진행하면 그건 멍청이다. 이토록 다양하게 따져보고 이득을 계산했기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만약 마이크루 없이 우리끼리 출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5~6개 기업에서 특허 소송으로 공격을 해댈 것이고, 긴 시간 동안 법정싸움을 이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GF는 이런 장기적인 법적 싸움을 이어가기에는 많은 부분에

서 부족했다.

이러한 생각을 짧게 마치고 나는 마이크루의 이야기를 짧게 언급하며 양도준 사장을 다독였다.

“법정 싸움이 되더라도 그때는 우리 싸움이 아니게 될 테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습니까? 보고 받기로는 아무 소식 없이 그냥 잠잠하다고 보고를 받긴 했는데요. 이런 사건이 이렇게 조용하다는 게 믿기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와플과 레이컴의 관계로 연일 이슈가 터지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레이폰에 대해서 단 한 줄의 기사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곳에서는 나왔었지. 듣도 보도 못한 인터넷 신문사에서 진짜로 딱 한 줄짜리 기사를 낸 거지만.’

국내 언론이 잠잠한 이유는 두 개다.

첫째는 우리와 친한 언론사에게는 레이폰에 대한 기사를 자제해주기를 원했기 때문.

둘째는 막강한 통신사와 전자제품 대기업들이 레이폰에 대한 기사를 불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레이폰을 출시할 생각이 없는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었

기 때문에 지금처럼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가만히 있을 예정이다.

- 기업들이 이 정도까지 언론을 다룰 수 있다는 건··· 거참······.

“그거야 저보다 그런 기업에서 근무하셨던 양 사장님이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 그야 그렇지만······.

잠깐 할 말이 없어서 둘 다 침묵했다.

‘한심하긴 해. 기업의 이익에 따라서 언론이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게.’

군부 독재 시절이 아니더라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저들의 눈을 가리고 싶으면 쉽게 가릴 수 있다는 건 내심 씁쓸한 현실이었다. 이런 커넥션의 균열은 누

군가의 정의로움이 아니라 이해타산의 충돌로 발생할 테고 말이다.

곧, 수화기 너머로 양도준 사장의 헛기침이 들렸다.

- 한국처럼 휴대폰을 자주 바꾸는 나라가 또 없는데 한국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건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참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상한 법이 하나 있다.

‘위피(WIPI) 의무화.’

와이파이(WIFI)가 아니다. 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의 약자로 ‘무선 인터넷의 상호운용을 위한 플랫폼’을 대충 줄인 용어인데, 사실 의도는 나쁘지 않

았다.

‘각각의 통신사들이 전부 다른 OS를 사용하면 효율이 떨어지니 모두가 통일해서 사용할 수 있는 표준 플랫폼을 도입하자.’는 목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직접 개발한 모바일용

OS이며 이를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엉망이고 실패한 정책이 되었다. 각 통신사마다 개별 위피를 개발함으로써 이름만 같은 OS지 전혀 통일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아까운 세금을 왜 이렇게 쓰는지 답답할 따름이지. 도대체 국책사업으로 진행하는 것들의 태반은 왜 다 이 모양이래?’

레이폰을 한국에서 팔려면 위피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토록 수준 떨어지는 한국의 플랫폼이 레이폰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러니 의무화가 폐지될 때까지는 한국에서 팔 수가 없는 것이다.

“아쉽죠. 그러니 빨리 미국에 출시하고 거기서 제대로 실적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레이폰이 이만큼 시장이 좋고 상업성으로 훌륭한 물건이다. 심지어 국내 기업이 개

발한 이런 훌륭한 상품을 국내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만든 이 황당한 법안을 폐지해라.’라고 나라에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통계로 팩트를 증명해야 한다.

-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양도준 사장에게 격려와 채근을 주며 통화를 마쳤다.

한편, 레이폰의 이슈는 잠잠했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GF가 매일 기사화되고 있었다.

【사이버 쇼크 드디어 한국 발매!】

【사이버 쇼크 도대체 어떤 게임이기에?】

【게임계를 쇼크에 빠트린 사이버 쇼크. 발매 소식에 국내 게이머들 들썩인다.】

가장 먼저 미국에서 발매하고 이후, 일본과 유럽에 발매한 후에야 한국에 사이버 쇼크를 발매한 것이다. 국산 개발사에서 개발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발매가 늦는다는

점 때문에 간혹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GF에 대한 악의적인 글이 올라오는 예도 있었다.

이른바 매국노이고 애국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논지였다.

‘흥이다, 흥! 콘솔 시장이라고는 한 줌 밖에 안 되는 이런 곳에 발매해주는 거에 감사해야지.’

물론, 모든 이들이 ‘매국 기업’이라며 동조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글들이 올라오면 댓글 대다수가 ‘한국에 이런 개발사가 나타나서 킹왕짱 재밌는 게임을 무려! 완벽한! 한국

어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나 해!’라는 글이 주르륵 달린다.

맹세코 댓글 알바를 풀지 않았다.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달아준 의견들이자 자정 작용이다.

아무튼, 한국에 발매도 했겠다, 그간 열심히 지내기도 했겠다, 휴식 겸 자체 치유의 시간을 가질 겸 바깥으로 나왔다. 겜돌이가 쉰다고 해봐야 어디를 가겠는가.

클럽?

‘거긴 잘못 가면 훅 가버리지. 물뽕이란 것도 돌아다닌다더라.’

내가 향한 곳은 사이버 쇼크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곳!

바로 전자상가였다.

“오오!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와. 이거 진짜 사고 싶다. 오늘 엄빠한테 사달라고 졸라야지.”

게임숍이라고 꼭 당장 게임을 사려는 고객만이 오는 건 아니다. ‘어떤 게임을 사는 것이 좋을까?’ ‘뭐가 유행이래?’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중에 구매결정을

하는 학생들도 적잖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모여서 즐기는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사이버 쇼크였다.

‘어쭈? 이 두 녀석은 제법 잘하는데?’

오락실이나 게임방에서 가장 인기 많은 사람은 누구겠는가. 바로 게임 잘하는 게임 고수다. 지금 내가 보는 두 어린 친구들이 그러했는데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 같

은 앳된 아이 하나와 중학생 하나가 멀티 모드로 대결을 하는 중이었다.

이들의 대결이 어찌나 흥미진진했는지 마치 미국에서 진행했던 경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역시 재능을 괜히 따지고 드는 게 아니야. 출발점이 다르고 똑같은 노력을 해버리면 결국은 재능에서 차이가 갈리거든.’

1만 시간을 게임을 해도 심해에서 노는 이가 있는 반면, 100시간만으로 컨트롤과 스타일을 다잡아버리는 이도 있다. 눈을 사로잡는 스타성을 갖춘 부류도 있고 말이다. 저들

이 그래 보였다.

보통은 게임을 한판 하고 나면 다른 사람으로 자리를 내어주면서 서로서로 돌아가며 플레이하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둘의 플레이에 감탄하는 아

이들이 자체적으로 5전 3선승제로 승부를 내라고 자리까지 깔아주고 구경하는 중이었다.

‘이거야말로 나한테는 힐링이지.’

흡족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현재까지 승부는 2대 1. 그리고 지금, 초등학생이 아이답지 않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2대 2의 스코어를 만들며 원점이 되었다. 과연 이 대결의 최종승자가 누구일까? 이런 긴

장감이 구경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즈음!

“현호야. 너, 뭐 하냐?”

대결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어? 형아 왔어?”

주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오자 어린아이는 게임 패드를 내려놓고 형에게 달려간 것이다. 치열하게 맞붙던 상대 역시 머쓱해졌지만, 저들 형제는 아무도 신경 쓰

지 않았다.

“형아. 형아. 이거 해봤어? 사이비 소크?”

“사이버 쇼크. 아니. 형은 못 해봤지.”

“이거 진짜 재밌다?”

“그래?”

“형아. 우리 이거 사면 안 돼?”

세상에 이런 형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온화한 표정으로 동생과 대화를 하던 형의 얼굴에 난감한 감정이 비친다.

“현호야. 이건 제트박스가 있어야 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린 제트박스가 없잖아.”

“제트박스가 뭐야?”

“사이버 쇼크 전용 게임기야. 그거 없으면 사이버 쇼크는 못 해.”

“왜? 컴퓨터로는 안 되는 거야?”

“응. 컴퓨터로는 안 돼. 대신에 형이 용돈 좀 모아뒀으니까. 그거로 다른 거 사줄게.”

“다른 거?”

딱 봐도 넉넉한 형편이 아닌 것 같음에도 형은 동생을 위해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살 수 있을만한 게임을 물색하고 있었다. 참 보기 좋은 모습

이라서 넌지시 지켜보게 된다.

‘FPS에만 시선을 두네.’

아무래도 동생이 FPS를 좋아하는 것 같다.

“형. 그럼 나 이 거.”

동생의 선택은 콜 오브 아너.

한글화를 발로 했다는 악명이 자자하긴 하지만 그래도 게임 자체는 굉장한 수작이다. 어린 나이와 달리 게임을 보는 눈이 있는 아이 같다.

하지만 이번에도 형의 미소는 시원치 않았다.

“그건 우리 집 컴퓨터로 안 돌아가.”

결국 형이 고른 게임은 메달 오브 듀티였다. 동생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출시한 지 무려 5년이나 지난 게임으로 이제는 나름 고전의 항목에 들어갈 만한 게임이다.

‘PC 사양이 꽤 낮은가 보네.’

저들의 모습이 나는 정말 좋게 보였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도 게임을 불법 다운로드하기보다 직접 구매하려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려 해

온 것이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어린 동생도 꽤나 게임에 소질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구경하던 어느 아저씨에서 나는 포지션을 바꾸기로 했다.

“얘야. 너 이름이 뭐니?”

“저요?”

갑자기 옆에 어른이 나타나서는 대뜸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형제의 눈에 경계심이 드러난다.

“갑자기 이름은 왜 물어보세요?”

“그냥 궁금해서. 아까부터 봤는데 게임을 상당히 재미있게 잘하더라.”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는 형과 달리 동생은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금방 웃으며 이름을 알려주었다.

“현호예요. 최현호.”

“그래, 현호야. 사이버 쇼크는 재미있었니?”

“네! 완전··· 진짜 너무너무 킹왕짱 재미있었어요···”

처음은 신이 나서 크게 대답했지만, 곧 옆에 있는 형에게 미안해서인지 눈치를 보며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는 가게의 제트박스 360과 사이버 쇼크. 두 가지의 풀 패키지를 동생에게 안겨주었다.

“이건 이제부터 네 것이다.”

그러자 형이 나섰다.

“저기···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왜?”

“예? 왜냐니요? 이유 없이 이런 큰 선물을···”

할 말을 어찌어찌 이어가는 학생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이유가 왜 필요한데?”

“네?”

“혹시 너희 부모님이 검사나 판사 뭐 그런 고위 공무원이시니?”

“아니요.”

“그럼. 정치계 거물이거나 그러셔?”

“아니에요.”

“잘 됐구나. 그럼 상관없으니 받아라. 그냥 아이가 게임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주는 거니까.”

빠르게 하는 내 말에 형이 어버버하는 사이 계산을 마쳤다. 그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일단은 뿌리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재밌게 해라.”

“그게··· 어···”

“네!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조심스러운 형과 달리 아이는 하고 싶은 게임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했다. 그리고 나는 형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재빨리 전자상가를 벗어났다.

“아~ 좋다.”

가벼운 기분이다.

‘아직 저 아이들과 비슷한 컴퓨터를 쓰는 집이 꽤 많겠지?’

아무리 레오닌 컴퓨터가 저렴하게 보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컴퓨터는 수십만 원을 하는 물건이다. 그걸 1년 아니 2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집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는 2000년 초반 컴퓨터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한 수준으로 최적화하는 걸 목표로 삼는 게 좋겠어.’

훗날 저 아이가 바벨 이터널 스트라이프를 재밌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최적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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