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3화 (353/577)

< 민도우 7 >

- 반갑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발표 자리에 제가 올라온 것은 처음이군요. 혹시, 제 소개를 해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가벼운 농담.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개발자를 올렸으면 당황했을 뻔했네.’

이럴 때 상대방이 웃거나 제스처를 보일 때까지 조크를 던지는 건 실패한 행동이다. 원래 일반인이 개그멘트를 칠 때는 자기가 먼저 웃지만, 코미디언은 스스로 박장대소를

터뜨리지 않는 법이다.

태연하게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 오늘 이 자리는 제가 스텔라를 세상을 내보내던 그 날부터 가장 고대하고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여러분들은 오늘 이 발표회에서 어떠한 발표를 기대

하고 나오셨습니까?

대답하라고 한 질문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같이 대화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발표를 진행하려 만든 의문문일 뿐이다. 듣는 이들도 자신들에게 대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꼭 어느 집단에나 상황파악을 못 하는 인물이 끼어있기 마련이다. 객석의 누군가가 손을 들고 내 질문에 대답을 꼭 하겠다는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저런 눈치 없는 새끼. 아주 레이저를 눈으로 뿜어내는군.’

어차피 나올 대답이야 뻔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할 말도 그 뻔한 대답을 받고 이야기를 이어가나 그냥 혼자 이어서 하나 동일하다.

그러니 뻔한 대답을 듣고 가기로 했다.

- 원래는 지금 발언 기회를 드릴 시간은 아니지만, 열정이 매우 넘치시는 것 같군요. 거기 앞에 손들고 계신 분.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지목을 받은 열정 넘치는 기자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발표할 제품이 와이팟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시나 눈치 없는 만큼 색다르지 않은 질문이었다.

- 그건 우리 레이컴이 아니라 3위나 4위의 업체에 가서 질문하셔도 이런 답변이 나올 겁니다. ‘자신 있다.’라고 말이지요.

세상 천시 어떤 놈이 ‘우리는 삼류입니다. 그들을 이기기 어려워요.’라고 솔직한 말을 하겠는가.

- 그러고 보니까. 조금 화가 나는 건 있군요.

[어떤 거죠?]

‘야. 네 발언권은 아까 끝난 거야.’

하여간 한 번 눈치 없는 인간은 끝까지 눈치가 없다. 다음부터 저 기자한테는 아예 권한을 안 줘버려야겠다.

- ‘와이팟의 대항마.’ ‘와이팟 킬러.’ 뭐, 이런 타이틀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대답은 없었지만, 객석에 앉은 사람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나마 이런 반응이라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 웃기지 않습니까? 시장은 지금 와이팟이 1위, 그리고 우리 레이컴의 스텔라가 2위 우리 두 업체가 MP3P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위, 4위뿐 아니

라 순위를 말하기도 그런 업체까지도 ‘와이팟 킬러’라고 하지 ‘스텔라 킬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코웃음을 쳤다.

- 1등에게 도전장 내밀기 전에 2등부터 이겨야 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그런데 스텔라는 언급조차 없다니요. 하여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 레이컴은 이제 와플을 따라잡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웃음기를 싹 빼고 말했다.

- 이제부터는 와플이 우리를 따라잡아야만 할 테니까요.

자극적인 멘트.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앞의 자극적인 말이 기억에서 전부 사라질 정도로 훨씬 더 충격이 강한 멘트로 이어졌으니, 조용하던 객석에 처음으로 웅성거리는 소

음이 만들어졌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죠? 지금부터 제가 4년간 고대하던 우리 제품에 대한 발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곧 검게만 나오던 스크린에 하얀색 글씨가 천천히 새겨진다.

『Innovation』

나는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 세상은. 우리 인간은! 지금까지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발명품 중 대부분은 이름조차 알리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중 몇몇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혁신

은 바로 그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변화를 일으킬 혁신적인 제품을 여러분에게 선보이려 합니다. 그것도 1가지가 아니라 무려 4가지입니다.

스크린의 글자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이내 그림이 출력된다.

- 풀 터치스크린 스텔라. 훨씬 진화한 휴대폰,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와 이어질 수 있는 통신기기입니다.

당시 와플에세이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의 반응은 이러했다. 객석은 환호하고 열광하며 손뼉을 쳤었다.

그러나 스텔라의 인식 차이는 여기서 도드라진다.

‘아직까지도 엄청 조용하군.’

고요하다. 그것도 그냥 잠잠한 것이 아니라 차가우리만큼 반응이 싸늘했다. 이유는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지금 말한 것들은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2006년인 지금 풀 터치스크린 스텔라를 제외하고는 전부 존재하는 거니까.’

고작 이따위를 발표하면서 ‘혁신’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꼴이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저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잠깐의 딜레이에 불과했다.

- 다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단어 하나하나에 간격을 두었다.

- 스텔라, 휴대폰, 멀티미디어 디바이스 통신기기, 스텔라, 휴대폰, 멀티미디어···

같은 단어들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스크린은 각 제품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빠르게 전화하면서 내 말에 맞추어 출력되었고 이내 각 개체로 나뉘었던 아이콘은 윗면과 아랫

면이 비어있는 정육면체의 모양을 갖추어 갔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한 몇몇 사람에게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어라?]

[설마 저거···?]

- 이제 감이 조금 오시는 거 같습니까?

내 말에 그리고 객석의 웅성거림에 반응하듯이 합쳐진 아이콘은 빙글빙글 돌았다.

- 이것들은 각각이 다른 4개의 제품이 아닙니다. 하나.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와아!]

비로소 레이컴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처음으로 크고 우렁찬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물들이 진심으로 우리가 발표할 제품에 대해서 궁금증을 느

끼기 시작했다. 와플의 대항마로서가 아닌 레이컴의 신제품 그 자체로 말이다.

- 사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기기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하나로 합쳐졌다고 해도 절대 새롭지는 않죠. 이미 동일한 제품이 존재하니까.

『Smart phone』

- 우리의 새로운 제품을 설명하려면 우선 이 제품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스마트폰! 이 제품은 전화도 가능하고, 멀티미디어 기능도 있으며, 인터넷 통

신기기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이 단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주위를 환기하며 저들에게 물었다.

- 혹시 이 자리에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몇몇이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고가의 제품이고, 딱히 활용도가 높지 않은 만큼 업계 관계자나 투자자 그리고 기자들이 모인 이 장소에서도 이용자의 숫자가 부족한 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의 이야기가 쉽게 피부로 와닿으리라.

- 이 제품이 정말로 스마트하다면,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전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계셨어야 할 겁니다. 똑똑하니까. 바쁜 우리의 업무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테니까

요.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중에서도 20%를 넘지 못하는 분들만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왜죠? 왜 그렇게 이용자가 적은 걸까요?

다행히 옆에서 눈치를 주는 것인지, 이번에는 눈치 없는 기자가 가만히 메모지에 내 말을 적을 준비만 하고 있었다. 사실 아까의 그 얼토당토않은 물음은 내심 업신여김을 하

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기대감을 가졌으니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 답은 이러합니다. 스마트폰은 기기가 아니라 이용자가 스마트해져야만이 활용이 가능한 제품이거든요. 기기가 스마트해서 스마트폰이 아니라 이용자가 스마트한 폰이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가볍게 웃었다.

- 물론 그렇다고 이 자리의 80%가 스마트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시겠죠?

처음과 같은 수준의 가벼운 멘트다. 그러나 이번에는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꽉 닫았던 의심과 마음의 문을 일부 열었다는 의미다. 무언가 관심을 가져도 될만한 제품

이 나올 거 같은 기대감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는 증거다.

이때부터 발표는 즐거워진다.

- 사용하기 어려운 스마트폰. 그런데 아무리 스마트해져도 기기가 스마트하지 못하니 활용도는 여전히 떨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똑똑하지 못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정말로 똑똑한 스마트폰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와아아아!]

지금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스마트폰들이 스크린에 하나둘 나타나다가 이내 그 모든 것을 밀어내고, 처음으로 레이폰의 모습이 공개됐다.

- 스마트폰은 이용자가 아닌 기기가 똑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용자는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죠. 또한, 허술한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데스크톱 수준의 애플리케이

션이 구동 가능해야 합니다.

이제 다음 물음이 나와야 한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이미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것을 매일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이크루 소프트 민도우.』

[뭐야? 마이크로 민도우면, 모바일의 그거 아니야?]

[그 정도면 별로 놀랄 것도 아닌데?]

마이크루 소프트는 이미 민도우 모바일을 PDA제품의 OS로 사용하고 있었다. PDA와 스마트폰은 많은 부분에서 영역이 겹치는 제품인지라 당연하게 사람들의 상상은 자신

들이 아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럴 거였으면 이태환 부사장을 소고기 먹으며 설득하지도 않았다.

- 우리의 새로운 스마트폰은 민도우 7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그렇지만 데스크톱 수준의 운영체제로 구동이 됩니다. 그리고 쉽고 이해하기 쉬운 아이콘으로 처음 사용하는 그

누구라도 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꺼진 휴대폰 사진처럼 가만히 검은 액정을 보여주던 스크린.

그 속의 레이폰 액정으로 불이 들어왔다. 곧 컴퓨터가 부팅되며 자주 접했던 ‘마이크로 소프트 민도우’의 로고가 레이폰의 액정 속에서 새롭게 출력됐다.

- 전화 기능을 가진 내 손 안의 컴퓨터. 그것이 바로 이 제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레이폰이라 부릅니다.

[와우!]

[오오오!]

[이거 뭐야? 진짜 컴퓨터처럼 구동되는 거야?]

[화면 봐! 지금 당장 내 눈에도 저 아이콘들이 뭘 의미하는지 파악이 되는데?]

그렇게 레이폰이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들며 본격적으로 그들에게 ‘스마트폰 = 레이폰’이라는 인식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 이쯤에서 우리는 기존에 스마트폰이라고 불리고 있던 휴대폰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스마트폰도, 우리의 레이폰도, 모두 스마트폰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렇기에 개별점을 인식시켜야 했다.

레이폰은 통상적이던 스마트폰과 다르다는 것!

단순한 업그레이드 수준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완벽하게 다른 기기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화면이 바뀌었다.

- 지금 여러분들이 보시는 것들이 바로 기존에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휴대폰들입니다. 어떠십니까?

기존의 스마트폰들은 온전히 휴대폰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무겁고, 포터블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활용하기에는 그 기능이 너무 미미했다. 그러니 꼭 이것을 사용

해야만 업무 효율성이 늘어나는 일부의 사람들만이 사용했던 것이다.

- 한 사람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컴퓨터가 핸드폰처럼 사용하기 쉬워지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소망은 휴대폰의 사용방법이 어려워지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기존의 스마트폰들은 사용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였으며 ‘이건 일반적인 휴대폰과 비교해 활용방법이 훨씬 어려

운 물건입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 같은 외형이었다.

< 민도우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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