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2화 (352/577)

< 민도우 7 >

가시가 느껴지는 이태환 부사장의 말.

“어허. 이태환이. 자네 지금 회장님에게 그게 무슨 태도야?”

불편함을 느낀 양도준 사장이 그를 제지하려 나섰다. 이런 그를 내가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양도준 사장님.”

레이컴은 이번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저것이다.

‘아직 발표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것. 그런데 레이컴에서는 저리 말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거의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의 상태였다. 즉, 나의 판단으로는 ‘발표

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이다.

그러나 현장의 실무를 관리하는 이태환 부사장의 견해는 다른 모양이다. 이를 권위로 찍어 누르면 귀를 닫은 고집불통의 리더가 된다.

“더 들어보지요.”

“예, 회장님.”

양도준 사장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이태환 부사장을 한 번 쏘아 보고는 맥주를 마셨다. 그가 그러건 말건 이태환 부사장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저도 회장님만큼. 아니··· 회장님보다 제가 훨씬 더 직접 개발한 레이폰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남의 뒤꽁무니를 바짝 쫓아가면서 이득을 챙기던 레이컴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앞서 나가는 기업으로 성장했다!’라며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랑하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뭐가 문제인 겁니까?””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 마냥 ‘준비가 안 됐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말만 해서야 어떻게 남을 설득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완성되었고 하물며 제품 출시

도 아닌 프레젠테이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벌벌 떨 이유가 있습니까?”

“회장님 말씀대로입니다. 레이폰은 거의 대부분 완성한 상태입니다.”

‘이 아저씨가 술도 안 마셨는데 술 냄새에 벌써 취했나?’

무슨 소리를 하냐며 보는 그때 이태환 부사장이 입가를 씁쓸하게 비틀었다.

“하지만 그건 레이컴에서나 완성됐을 뿐, 마이크루에서 보내 준 민도우는 답이 없는 수준입니다.”

그의 우려는 이유가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단순히 이 기기가 어떤 기기인가에 대해 PPT만 켜놓고 설명하는 그런 것은 먹힐 리가 없다.

당연히 우리의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과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나아가 이것이 기존의 제품과 비교해서 얼마나 편리함을 가질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

다. 그런 작업은 절반도 만들어지지 않은 마이크루의 OS로는 아직 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임시방편 역시 마련했지 않던가.

“그 부분은 이미 레이컴에서 개발한 OS 레이어로 발표하기로 이야기가 다 된 거 아닙니까?”

“네. 저희가 개발한 OS로 발표를 하기로 했었습니다. 최대한 민도우처럼 보일 수 있도록 개조를 해서 말이죠.”

씁쓸한 그의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속상하다 이거구나.’

세상 그 누가 자신이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을 남에게 그냥 넘겨주고 싶겠는가? 사업적인 이익과 손해도 중요하지만, 개발자의 처지에서는 자식처럼 힘들게 개발한 OS였다. 그

리고 그것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인데 이걸 남이 개발한 것으로 공개해야 한다.

이태환 부사장은 지금 그런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이해는 한다만······.’

그렇다고 프레젠테이션에서 ‘우리가 개발한 OS입니다!’라고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속상한 마음이 들더라도 해야 하는 일은 해야만 하는 법!

나는 불판 위의 고기를 먹으며 말했다.

“다 익기만 기다리다가는 하나도 남지 않을까 봐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셨죠?”

“네. 그렇게 질문드렸습니다.”

“그거 맞습니다. 완벽하게 준비 된 레이폰을 기다려서 공개할 때면, 이미 맛 좋은 부위는 다 먹고 사라진 뒤가 될 겁니다. 자고로 모든 물건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이태환 부사장은 무엇이 그렇게 답답했는지 잔에 가득한 맥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지금까지 이런 제품이 나온 게 있습니까? 회장님의 앞선 지시로 우리는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기기를 초월한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차례가 없

을 거라니요. 설마 그 짧은 사이에 빼앗기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거짓말하지 말라는 그에게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빼앗깁니다.”

와이폰이 발표되는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그러나 2007년 초에 발표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민도우 7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금방 1월이 될 테지.’

늦춰버리면 한 가지만큼은 확실해진다. 레이폰은 와이폰보다 늦게 출시하게 될 거다. 최초로 발매가 되는 신개념 스마트폰이라는 이미지와 시장 선점의 위치를 와이폰이 가

져가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발표라도 앞당겨서 먼저 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개라도 먼저 해서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

“지금 우리 레이컴의 경쟁사가 어디죠?”

“설마, 스마트폰의 영역에서도 와플이 우리의 경쟁상대입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와플은 이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기업이 될 겁니다. 우리는 그들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될 테지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타이

틀이라 여기게 될 겁니다.”

기왕이면 와플이 올라서게 될 그 위치에 우리 레이컴이 올라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이냐, 아니냐라는 부분은 시장에서 굉장히 큰 요소를 차지하지.’

가끔 이럴 때면 미국 기업으로 국적을 옮길까 싶은 유혹마저도 생기곤 한다. 그러면 여러 문제점이 단박에 해결될 것이다.

한편, 이태환 부사장의 불만 가득한 표정이 그때야 사라졌다.

“와플에서 만든 스마트폰이라니··· 갑자기 식은땀이 다 나네요. 회장님은 그럼, 와플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견제하고 계신다는 거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완성에 다가간 상태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이렇다. 우리는 고기가 바짝 익기를 기다렸다가는 먹을 게 없어지는 처지인데 와플은 고기를 바짝 익혀서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GF보다 월등한 화력을 가진 불판을 가졌으니 바짝 익은 고기를 훨씬 여유롭게 먹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이 급하다고요? 준비가 안 됐으니까. 준비를 다 하고 하자고요? 우리의 자식을 남의 자식으로 내놓고 싶지 않다고요? 안 됩니다. 이태환 부사장님은 혹시 스타

드래프트라는 게임을 아십니까?”

“저희 애들이 하는 걸 구경한 적은 있습니다.”

“그 게임을 해보면 사람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만반의 준비를 다 해서 본진도 병력도 전부 완벽하게 구성한 뒤에 한 번의 싸움으로 승

부를 보려 하죠. 또 누군가는 그냥 되는대로, 병력이 모이는 대로 일단 적 기지로 돌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싸우면 누가 이길 거 같습니까?”

“완벽하게 준비한 사람이 이기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일단 적 기지로 돌진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것도 아닙니다.”

“A도, B도 아니면 누가 이긴다는 건지······.”

“답은 타이밍을 잡은 사람이 이긴다는 겁니다.”

“네?”

여전히 그는 어리둥절해 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A와 돌격을 추구하는 B. 둘 다 정해진 시간 동안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개발하고 만들어 냅니다. 만약 B가 돌격했을 때 A가 조금

더 완벽해지겠다는 욕심에 방어보단 발전을 추구하고 있었다면? A가 패배할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발전이 아니라. 한 번 막아내고 그때 발전을 추구하려 한다면? 돌격을 실패한 B가 패배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타이밍을 잡은 사람이 승리하는 겁니

다.”

지금 우리의 싸움이 이와 같다.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돼.’

무턱대고 발전 건물만 짓고, 생산기지만 늘려내다가는 결국 본격적으로 부유해지기도 전에 본진이 터지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은 발전보다 공격해야 할 때였다.

*

11월 14일.

안개가 자욱한 이른 시간부터 분주함이 가득하다.

“발표를 또 제게 맡기는 겁니까?”

“회장님께서는 아무리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봐도 이런 큰 무대는 오직 회장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거참.”

상황에 따라서 내가 필요하다면 늘 앞에 나서서 일을 해오기는 했다. 그렇지만 늘 생각해왔듯이 나는 어떤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다. 이 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고 돈

과 인재가 넘치게 된 근래에는 중요한 발표 자리마다 관련 담당자들이 나서도록 처리해왔었다.

이번 레이폰의 프레젠테이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사코 자기들은 역량이 없다고 뒤로 몸을 빼는 것이 아닌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회장님만큼 이 기기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는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의견이에요. 이미 회장님이 발표를 하시는 것으로 결정

을 다 내렸고 또 그것에 맞춰서 준비까지 다 하셨으면서 왜 또 그러십니까?”

“아까워서 그럽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고 뒤에서의 노력 대신 앞에서의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받을 수 있는 자리니까요. 이 영광을 두루두루 나눠야 일할 맛도 나는

겁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은 정말 위험한 배려이십니다. 저 무대를 즐기는 건 회장님이나 가능하지 저 같은 개발자는 마냥 부담일 뿐입니다.”

“하기 전에는 그래도 겪어보면 진짜 다르다니까요.”

“아낌없이 양보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스타 경영인으로서의 회장님 브랜드가 훨씬 좋습니다.”

“나중에 후회할 텐데요?”

그 말에 답답해하는 이들을 밀어내고 양도준 사장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게다가 회장님. 이제 발표까지 고작 4시간 남았습니다. 혹,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맡긴다고 해도 준비하기에는 너무 촉박합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서 그냥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시점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이런 건 제가 많이 해봐서 아는데, 준비가 철저하면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그냥 알아서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끝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

시면 됩니다.”

“수능 만점자들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적당히 양념 넣으면 요리를 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송진호 선수가 회장님을 게임계의 밥 로스라고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참 쉽지?’라고 능멸했다고 개인방송에서는 재능씹···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도대체 뭐로 보고. 게다가 우리 진호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본래보다 고평가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어째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해져만 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오전 10시가 되었다. 어느덧 레이컴의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의 시간이 다가왔다.

남몰래 무대를 통해 객석을 보았는데, 이미 오늘의 발표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흡사 인기 절정의 공연이나 극장 상영관의 객석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역시 그를 따라 하는 게 좋겠지? 멘트 표절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당사자조차 쓰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야.’

머릿속으로 가물가물한 꿈속 미래의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가만히 이를 보며 복기하기를 충분히 한 뒤 무대로 올라갔다.

조용히 걸어 오르는 나를 보면서 환호성이나 손뼉를 치는 사람들은 없었다.

와플이 프레젠테이션 할 때를 보면 기침만 해도 손뼉이 나오던데, 아직은 영 호응이 나오지 않는다. 이를 보자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대중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였던가? 원래는 당사자가 하지도 않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공감은 엄청나게 이뤄졌던 이야기였지.’

와플은 이미 대중들에게 혁신의 이미지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주면 뭐든지 새로운 것이고 혁신으로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2001년부터 그들은

10년간 진짜 혁신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해주었으니, 박수받을 자격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뺏어 와서 미안!’

아이디어의 본래 주인에게 아주 얄팍한 사과를 한 뒤 발표를 시작했다.

< 민도우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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