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1화 (351/577)

< 민도우 7 >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것이었다.

‘한때, 신이라는 칭호를 수여 받고 세계 최고의 게임 기업으로 칭송받던 기업이 있었지.’

워드래프트와 스타 드래프트 등 게임사에 굵직굵직한 획을 그은 명작을 출시한 그곳의 이름은 바로 아이스 스톰!

하지만 코어 팬들의 눈으로는 미친 짓을, 일반 소비자들의 눈으로도 의아하기 그지없는 행보를 어느 날부터 보이게 된다. 바로 M 시리즈라 불리는 모바일 게임을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기업의 주가는 그대로 곤두박질쳐버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도대체 잘나가던 이 기업이 왜 이런 머저리 같은 짓을 한 걸까?’ 하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인 관

점으로 보면 아주 쉽게 해소된다.

‘모바일 게임은 체면 따위 버려도 될 만큼 막대하게 돈이 되니까.’

PC 플랫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게임이 1년에 얼마 정도를 벌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최대의 수익을 올린 PC게임을 보유하고 있던 아이스 스톰사는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았다. 그들의 1년 수익은 한화로 약 1조 8000억 원!

적잖다.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잣대를 모바일 게임과 견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아이스 스톰의 수익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게임인 플레지 모바일이 무려 2조를 벌었

기 때문이다.

비록 미친 과금 정책을 쓰기는 했지만 한창 과열된 시장에서는 연 매출 4조까지도 계속 성장하다가 이후, 새로운 게임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붕괴되었다. 즉, 무너지기 전의

시점까지는 가장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무대가 바로 이 모바일 게임 시장이다.

‘아이스 스톰의 문제는 이외에도 꽤 여러 가지가 있기는 했다만··· 아무튼! 내가 취할 건 딱 이 정도면 돼. 여기까지가 맥시멈이야.’

사실 애플리케이션 마켓은 절대 작은 시장은 아니다. 규모로 봤을 때 정말 꾸준히 성장할 시장이고 나중에는 30조 규모까지 성장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게임보다 더 크게 성

장할 시장이 마로 애플리케이션 마켓이다.

그런데도 지금 황금알을 넘겨주는 이유는 역량 부족 때문이었다. GF로서는 이 마켓을 활성화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다.

[게임과 음악이라······. 굳이 게임과 음악만은 직접 유통하시겠다는 이유가 뭔가요?]

빌 게이트의 의심은 내 성공에서 비롯한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진행해온 사업 대부분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도전적이며 무모하다 여겨지는 만큼 성공의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는 것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럴 때는 복잡할수록 가볍게 말하는 게 좋다.

[별거 아닙니다. 제가 워낙 방대하게 사업을 벌여놔서 그냥 사업가로 보이시겠지만, 저는 그냥 게임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게임만큼은 양보를 못 하는 겁

니다.]

[그냥 게임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함의를 찾아내고자 고민하는 그에게 이어서 툭 던지듯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계열사들은 게임을 재밌게 만들려고 추가한 회사들이거든요. 운이 좋았다고 봐도 됩니다. 그냥 게

임을 잘하려고 이리저리 해봤는데 다른 분야의 성공도 자연스럽게 따라온 셈이니까요.]

세상에 노력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에 인맥이건 시류를 잘 탔건 간에 기회라는 이름의 운

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대성공을 이룰 수 있다.

미신적인 의미가 아니라 성공한 이들은 기회와 행운을 꽤 믿는 편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수긍하는 빌 게이트를 보다가 불현듯 깜빡했던 부분이 떠올랐다.

[아! 죄송합니다. 하나 추가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어차피 마이크루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냥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거죠?]

[넷플렉스입니다. 넷플렉스 역시 기본 구성으로 들어가고 여기에서의 이익도 저희가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바일에서 영화를 보게 한다는 의미군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빌 게이트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에도 직접 나서서 투자하려고 했었을 만큼 그는 인터넷의 발전에 무한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스마

트폰을 보고 이것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개념을 생각 못 하고 있을 리가 없다.

단지 아직은 한참이나 머나먼 미래라고 보고 있었을 뿐이다.

‘아직 3G 휴대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으니까. 2G 시절에 영화를 모바일로 본다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사실 3G로도 영화를 모바일로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뭔가 깨달은 모양이다.

[모바일로 넷플렉스라. 상상만으로도 짜릿해지는 일이군요. 이건 새로운 협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여기서 뭘 또 하려고?’

이걸 가지고 ‘된다.’ ‘안 된다.’와 같은 내용의 문제는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마이크루로서는 돈이 될 수 있는 거라면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리고 만약에 이들이

강하게 나온다면 그냥 쿨하게 모바일에서 가입하는 방법을 없애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한 상태다.

‘PC로 결재하고 모바일로는 그냥 감상만 하면 어차피 수익은 전부 우리 거니까. 굳이 이걸로 싸우고 그럴 필요가 없지.’

그런데 새로운 협상이라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면 대답이 궁색해질 텐데.’

나는 특별히 좋은 머리를 타고난 것도 아니고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단한 성적을 보유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명문대를 졸업하지도 못했으며 딱히 사업가로

엄청난 수완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꿈속 미래랑 비슷하게만 굴러다오.’

내게 이런 변수는 골치 아픈 일이다.

[우리 OS가 설치될 때 넷플렉스 역시 필수로 설치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OS의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넷플렉스를 볼 수 있게 해주시죠. 대신에 그 비용을 우리 마이크루

에서 제공하겠습니다.]

민도우 7의 점유율을 확고하게 가져가기 위한 마이크루의 제안이다.

우리에게도 마이크루에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

문제는 그 비용에 대해서 어떻게 제공을 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비용을 어떤 식으로 제공하시겠다는 겁니까?]

[OS의 제공을 무료로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조금 전까지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시더니요?]

[그건 그냥 무료로 제공을 하는 문제였지만, 이건 서로가 소프트를 제공하는 거지요.]

넷플렉스의 이용료는 월 10달러이며 1년이면 120달러다.

‘그런데 고작 12달러라니.’

그냥 숫자만 본다면 이건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다. 하지만 사업은 이런 숫자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건 무조건 이득이야.’

넷플렉스의 이용자들을 순식간에 늘릴 방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바일로 넷플렉스를 보다 보면 이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넷플렉스에 길들여진 많

은 사람이 모바일보다는 TV나 PC에서 시청하기를 원하게 되는 사이클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러면 내 쪽에서도 할 말이 생긴다.

‘4년.’

짧게 고민을 마치고 내가 말했다.

[조건을 추가하죠. 저희 제품이 출시되고 딱 4년간만 넷플렉스를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뭐 4년 후에도 서로에게 좋다 싶으면 더 연장하면 되겠지요.]

어차피 마이크루도 평생 서로에게 묶이는 관계를 원하지는 않았을 거다.

‘4년 정도면 자신들의 OS가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했을 시기니까. 우리보다 자신들이 더 유리한 계약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미안하게도 넷플렉스의 폭발적인 성장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즉, 이들은 우리에게 성공의 발판만 주고 헤어질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민도우 역시 마찬가지.

‘시장을 장악하는 건 마이크루의 민도우가 아니라. 레이컴의 스마트폰이 될 거야. OS를 보고 기기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브랜드를 보고 기기를 구매하는 세상

이 만들어진다는 거지.’

마지막에 웃는 기업은 우리가 될 것이다.

[좋습니다.]

빌 게이트 회장의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며 서류에 사인을 했다. 타인의 속내를 누가 감히 읽겠느냐만 악수를 하며 보이는 그의 미소를 보니 아주 흡족한

거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미래를 아는 자의 이점이지.’

양측 모두 뒷생각이 어떠하든 당장은 서로의 계약에 충실하게 사업을 진행해서 서로를 키워줄 것이다.

일을 마치고 나니 대화만 했을 뿐인데도 괜스레 몸이 뻐근했다. 여러모로 긴장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여파이리라. 그러나 지금의 계약은 마무리가 아닌 일의 시작을 알리는 포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니 현실적인 드라마가 안 나오는 거야. 노동 강도가 무진장 빡세잖아.”

복권 당첨되고 흥청망청 쓰는 졸부가 아닌 바에야, 더 많은 돈과 큰 사업을 이루려는 이들의 삶은 바쁘고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타나는 뚜렷한 성과들이 나를 오늘

도 일하게 만든다. 또한, 이 정력적인 활동에는 유효기간이 딱 정해져 있다.

꿈속 미래지식이 고갈되면 나는 무한정 느긋해 질 것이다.

*

오늘도 비행기에 올라 이동하는 데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서울과 인천을 오가듯 한국과 미국을 왕복하는 일이 이제는 마냥 익숙할 따름이다.

‘순간 이동 같은 거 할 줄 알면 진짜 좋을 텐데.’

급한 업무처리는 화상이나 전자결재만으로 처리를 해왔지만, 그렇다고 모든 업무를 전자결재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별수 있으랴. 지금처럼 일주일 혹은 이주

에 한 번씩은 나라를 오가는 수밖에 없다.

이번에 급히 한국을 찾은 것은 조만간에 있을 레이폰의 발표 때문이었다. GF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인 레이폰은 11월 14일, GF의 미국 법인이 있는 LA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처음 공개가 될 예정이다.

서초구에 있는 한우 전문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꽃등심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갔다. 잘 구워진 꽃등심 한 점과 함께 시원한 맥주가 알싸하게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캬! 이 맛이지.”

미국에서 한국의 맛이 그리울 때면 지금처럼 소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우 전문점에서 먹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허전함 때문이지는 않을까 싶다.

“한국인이라 그런가? 역시 소고기는 한우가 맛있네요.”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고기의 등급제와 마블링은 지방의 고소함일 뿐 제대로 된 고기의 맛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자고로 인간은 기름진

음식에 현혹되는 동물이고 나 역시 그러했다.

‘역시 몸에 안 좋은 게 맛은 끝내준다니까.’

여기에 ‘비싸서 더 맛있게 느껴진다’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더해지니 꽃등심의 맛이 더욱 배가 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우는 사료로 키운 거라서 좋네 나쁘네 하지만, 결국 한국인에겐 한우 아니겠습니까?”

내가 젓가락을 움직인 다음부터 레이컴의 양도준 사장 역시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삼키며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다 가만히 불판만 보고 있는 이태환 부사장에게 물었다.

“부사장님은 왜 안 드세요? 입에 안 맞아요?”

“저는 바짝 익혀서 먹습니다.”

“에? 소고기를요? 소고기는 이렇게 육즙이 뚝뚝 떨어질 때 먹어야 제일 맛있는 겁니다.”

“좋은 고기는 바짝 익혀도 맛있습니다.”

“어허. 진짜 풍미가 빠져나가고 흔적만 느끼는 거예요. 자, 바로 지금 먹는 게 진짜배기입니다. 선입견 품지 말고 한 번 드셔보세요.”

“살짝 익혀 먹는 방식은 살코기가 많은 서양의 방식입니다. 한우는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바짝 익혀도 충분히 기름기가 남아 있죠. 나중에 먹어도 아주 부드럽습니다.”

“아이고, 이거 보세요. 이 육즙 빠져나가는 거. 아니, 저렇게 죄다 빼고 먹을 거면 소고기를 왜 먹습니까? 100점짜리를 굳이 50점으로 만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너무 기름지면 오히려 맛을 못 느끼기도 하죠.”

사람들은 이렇게 간단한 음식에서조차 취향이 갈리곤 한다. 누군가는 피만 빠지면 입에 넣어야 맛있고, 또 누군가는 바짝 익힌 고기를 좋아한다. 탕수육의 소스를 부어 먹는

지 찍어 먹는지에 대한 하릴없으면서도 치열한 논쟁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남의 입맛에 신경 쓰지 말자. 취향과 입맛대로 양껏 먹는 것이 최고’였다.

“자~자. 우리 국가 대소사에 버금가는 소고기 토론은 이쯤에서 멈추시고 이리저리 고민할 시간에 한 점이라도 먹읍시다.”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다 익기만 기다리시다가는 하나도 안 남을 수도 있습니다?”

한창 배고플 나이였던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들끼리 고기 뷔페를 종종 가곤 했다. 그럴 때도 지금 이태환 부사장처럼 고기가 다 익기만 기다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늘 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식당에서 나와야만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때의 우리처럼 먹어대지는 않을 테지만, 아무튼 이렇게 고깃집에서 상당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식성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다 익기만 기다리면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태환 부사장의 대답에는 웃음기가 빠져 있었다.

“회장님. 그래서 그런 겁니까?”

그는 지금의 레이컴이 있을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다. 양도준 사장이 영업부터 자금관리와 사람을 다루는 분야를 담당한다면 이태환 부사장은 레이컴에서 개발한 모든 기기

의 A부터 Z까지를 담당했다.

‘융통성은 조금 부족하고.’

기기에 관해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전형적인 공돌이 유형이라서 그런 것인지 이렇게 종종 주어를 빼먹고 질문을 하는 경우들이 잦았

다. 내가 무슨 말이냐며 묻자 그가 대답했다.

“굳이 준비도 되지 않은 기기를 급하게 프레젠테이션하시려고 이유 말입니다.”

< 민도우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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